레 미제라블 2차 창작

코끼리 수레가 오는 날.

레 미제라블, 가브로쉬.

다 내가 아끼는 몇 가지 것들.


오늘은 코끼리가 오는 날이야. 

그래서 우린 노래를 부를 거고, 춤을 출 거고, 매듭을 풀 거고, 인사를 할 거야. 가브로쉬는 눈을 꿈뻑였다. 다시 한 번 말해 줄래? 대답 대신, 아이가 양 손을 잡아끌었다. 땟국물이 흐르는 두 손바닥과 부르튼 손등을 이리저리 들여다 보다가, 그렇게 묻는 것이었다. 

너, 여기 거리 주인이 누군지 알아? 

가브로쉬는 입을 불퉁하게 내밀었다. 

거리에 주인이 어딨어! 그런 건 없어. 

저엉말?

정말. 

그 대답에, 양손을 꼭 쥔 채 아이는 깔깔대는 웃음소리를 내었다. 온통 흰 색이야. 난 흰 색이 싫어. 가브로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대도, 제 얼룩덜룩한 남자 바지와 누군가 덧입힌 여자 저고리가 부끄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 불퉁함 속에는 일부간의 열적음이 담겨 있었다. 그러니까, 한 불한당이 하는 일처럼 굴었던 것이다. 그것이 가브로쉬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그러나 곁에 선 아이는 그 일부간의 불퉁함이자 거짓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다. 

손님들 다 오셨니? 

바깥에서 왁자한 소리로 답하는 말이 돌아왔다. 다 왔어! 아이는 웃으며 이제 되었다, 말하고, 가브로쉬를 아주 완강하게 잡아당기는 것이었다. 잡아 끄는 손길에 걸어 나가며, 가브로쉬는 자신이 맨발인 것을 알았다. 허리춤에 찼던 총도 보이지 않았다. 뒤를 돌아 보니, 저 멀리 낡은 나뭇더미 위에 신발과 총이 고대로 놓여 있질 않은가. 소년은 고개를 돌려 손을 잠시간이나마 멈추어 보려 했다. 저기 내 것이 있어! 그러나 가브로쉬가 채 그 손을 놓기도 전에, 아이가 소년의 등을 힘차게 밀어 어느 마당으로 내보내는 것이었다. 가브로쉬는 대뜸 저를 떠밀은 그 애에게 한 마디 따끔하게 해 주려 도로 고개를 돌렸다. 

내 것이 저기 있다니까!......

그러다가, 꼬마는 벌렸던 입을 딱 다물고야 말았다. 잔뜩 성이 났음을 보여 주기 위해 한껏 힘을 주었던 어깨가 내려간다. 푸르른 잔디로 덮인 마당 위에 서서, 가브로쉬는 잠깐 눈을 꿈뻑였다. 날이 아주 좋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햇살, 바람결에는 막 구운 고소한 빵 냄새가 실려 오고, 희고 소박한 옷을 입은 이들이 가브로쉬를 기다리고 있었다. 꼭 저만한 꼬마들이었다. 희디흰 옷을 입고, 허리에 붉은 띠를 두른. 가브로쉬는 찬찬히 잔디 위를 걸어나갔다. 얕게 자란 잔디 끝이 맨발바닥을 간질인다. 걸음이 가볍다. 아주아주. 마치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저기, 마당 한 가운데에 빵 바구니가 놓인 식탁이 있고, 식탁 곁에 외투가 하나 놓였다. 가브로쉬는 그것이 제 것임을 알았다. 약간 때가 타고, 조금 찢어진 부분이 있는. 꼭 거리에서의 자신과 같은 신세였던 외투. 소년은 그래서 쭈뼛대며 그 외투 곁에 앉았다. 어느 새인가, 그를 떠밀었던 아이가 곁에 와서 선다. 

너, 배 안 고프니? 

배야 늘상 고프지. 

그 말에, 웅성대며 앞에 앉은 꼬마들이 무어라 이야기를 나눈다. 가브로쉬는 눈썹을 들썩였다. 

쟤네들도 배가 고픈 거니? 

아냐, 네가 배가 고프다고 하니 걱정이 되어서 그래. 

그리고, 좌중에 앉아 있던 아홉 꼬마가 차례로 일어서 어디론가 열심히 뛰어 가는 것이다. 가브로쉬는 도로 눈을 두어 번 꿈뻑였다. 그것은 그 아홉 꼬마가 모두 저를 보며 한 번씩 웃어 주고서, 그러고서 자리를 떴기 때문이리라. 이제 곁에 섰던 아이가 빵 바구니를 가까이 끌어다 놓았다. 가브로쉬는 그것을 한 번 보고, 아이의 얼굴을 한 번 보았다. 나더러 무얼 어쩌라구?, 그렇게 묻기도 전에, 아이가 대뜸 말하는 것이다. 

자, 흠향해라. 

가브로쉬는 곧장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렸다. 거리의 수장은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먹어 치우라 이 말이지? 

다 네 것이야. 

그래, 그럼 다 먹어 치워 주지! 거리에 사는 애들은 늘상 잠을 저녁상 삼곤 하거든.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는 날이야. 자, 어서. 

그것은 잘 구운 흰빵이었다. 버터도 달걀도 없었지만, 그것대로 맛이 좋은 빵. 오래오래 씹을 필요도 없이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가는 것 말이다. 빵 장수에게서 사려면 오 수는 주어야 할 것. 가브로쉬는 횡재했다는 생각에 신나게 웃었다. 양 손에 빵을 쥐고 한 입씩 베어물어도 바구니에는 너덧 덩이, 아니, 어쩌면 일고여덟 덩이가 더 남아 있을 테니. 

아주 맛있지 않니?

껍질이 아주 바삭해. 막 구운 빵이구나! 

그러엄. 검은 빵을 먹는 날은 아니거든. 

막 구운 빵이라는 건 안 좋은 날도 재수 좋은 날로 만들어 주는 재주가 있어. 그런데 이게 꼭 그러네! 

양 볼 가득 빵을 넣고 우물대며 가브로쉬가 웃었다. 그것을 본 아이도 신나게 웃으며 박수를 치는 것이다. 그 빵은 아주 맛이 좋았다. 정말로. 게다가 모자랄 일도 없을 터였다. 가브로쉬는 저도 몰래 들썩들썩하며 콧노래를 불렀다. 재수 좋은 날 부르는 노래를. 그것의 가사는 대강 이러했다. 명랑하다, 내 성격은. 그것은 볼테르의 잘못. 초라하다, 내 옷은. 그것은 루소의 잘못... 헌데 가만히 그 음율을 듣던 아이가 대뜸 고개를 저어대는 탓에, 가브로쉬는 흥얼댐과 우물댐을 동시에 멈추었다. 그리고 꿀떡, 삼켜냈다. 그리고, 도로 일부간 불퉁한 표정을 지은 채 반문했다. 

너희, 이 노래 안 부르니?

안 부르진 않지만, 오늘은 다른 노랠 불러야 하거든. 

이것만큼 재미난 노래도 없는데. 

아냐, 가브로쉬. 오늘은 좋아하는 것에 대한 노래가 필요해. 

난 그런 노래는 몰라. 내가 아는 건 거리에 도는 유행가랑, 앙리 4세 만세 같은 것들이야. 

그러자 아이가 웃었다.

배우면 되지! 

그리고, 가브로쉬가 남은 빵을 씹도록 내버려 둔 채로. 아직 아무도 돌아오지 않아 널따랗게 비어 있는 마당을 보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그 가사는 이러했다. 

장미 위 빗방울, 아기 고양이 수염, 

밝은 구리 주전자와 따스한 울 장갑.

갈색 포장지에 싸여 끈으로 묶인 꾸러미들.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의 것들. 

소년 가브로쉬는 그 노래를 듣자마자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무슨 노래가 그렇게 간질거려? 나는 못 부르겠다! 그렇게 외치고서 도로 빵을 먹는 데에 집중하려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꼬마는 그런 작디작은 기쁨을 겪어 본 적이 드물 뿐더러, 밝고 따스한 것의 즐거움을 잊은 지 조금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브로쉬의 반응에도 아이는 아랑곳 않고 노래를 이어 나갔다. 


크림색 조랑말과 바삭한 사과 슈트루델, 

초인종과 썰매 종, 국수를 곁들인 슈니첼 요리. 

날개 위에 달을 얹고 나는 야생 거위들.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의 것들. 

빵을 몇 입 베어물고서, 가브로쉬는 여전히 탐탁찮은 얼굴이었다. 아이가 고개를 숙여 그 얼굴을 보더니 물었다. 왜, 마음에 안 드니? 그래서 가브로쉬는 손에 든 빵을 내려 놓고, 팔짱을 낀 채 약간 연설조의 투로 말을 이어 나갔다. 

난 그런 것들을 모른단 말야. 그러니까, 크림색 조랑말 대신 파리 거리에는 비루먹은 갈색 말이 있고, 바삭한 슈트루델은 무슨, 눅눅한 빵과자면 다행이지! 초인종은 주먹질이고, 썰매 좋은 총소리다. 알겠니? 난 그 노랠 도저히 부를 수가 없다. 

그렇게 선언해 두고서, 가브로쉬는 조금 슬퍼졌다. 음율은 정말로 따스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제게 퍽 어울리지는 않는 노랫가락 아닌가. 어딘가 따스히 벽난로가 불타는 가정에서야 명절이 되면 서로에게 불러 줄 지도 모르는 노래다. 그러나 거리에서는 서로에게 그런 노래를 부르는 것은 차라리 뒈지라고 저주하는 꼴에 가깝다. 결코 따뜻할 수 없는 곳에서는 결코 노래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가브로쉬는 그래서 빵을 먹다 말고, 식탁에 내려 둔 채 코를 약간 훌쩍였다. 그러자 아이가 다시 고개를 숙여 물었다. 

그러면 네가 좋아하는 것들을 넣어 부르자. 

별로 안 어울릴 것 같아.  

괜찮아. 얼른! 넌 무얼 좋아해? 

가브로쉬가 다시 입을 삐죽이자 아이는 소년을 부추기듯 소매를 잡고 흔들었다. 얼른, 응?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가브로쉬는 고민에 빠졌다.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고민에. 

흰 면포 같은 빵. 

면포 같은 빵? 

그래, 으음, 어른들 저고리. 

또? 

두 뼘 넘게 덜 탄 성당 초하고, 반짝이는 루이 금화. 

오호라.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약간 석죽은 표정으로 고개 숙인 가브로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노랫가락에 새로이 가사를 붙여 부르는 것이다. 흰 면포 같은 빵, 어른들 저고리. 두 뼘 넘게 덜 탄 성당 초와 반짝이는 금화... 가브로쉬는 신중하게 그 노래를 들었다. 아주 어울리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꼬마는 도로 빵을 먹는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기로 결심했다. 

그것, 참 괜찮다. 

그래. 내가 뭐랬어. 또 무어가 있지? 

굶지 않는 날. 

그리고? 

잡히지 않고 거리를 마구 뛰었던 날.  

그렇게 첫 절이 완성되었다. 가브로쉬 식 노래가 말이다. 

흰 면포 같은 빵, 어른들 저고리. 

두 뼘 넘게 덜 탄 성당 초와 반짝이는 금화. 

굶지 않는 날과 잡히지 않고 거리를 마구 뛰었던 날. 

다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것들. 

그리고 그 다음은, 가브로쉬가 몇 번 흥얼거리고서 빵을 쥔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데서부터 시작했다. 노래가 퍽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 보자, 하고서. 소년 가브로쉬는 늘상 거리에서 하던 것처럼 노래했다. 

얼빠진 어른들 얼굴, 구멍 난 주머니. 

벽보 찢는 일과 라틴어로 하는 욕.

앙리 3세 만세를 부를 때에 보이던 표정들...

그러고서, 아주 잠깐 소년은 노래를 멈추었다. 삼키었던 빵이 목구멍에 꽉 막히는 것만 같아서. 기억나는 얼굴들이 있었으나 떠올리지를 못했다. 왜 그럴까? 가브로쉬는 작은 손에 든 빵 덩어리를 도로 내려 둘 수밖에 없었다. 뭔가 아주 중요한 걸 잊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작은 심장이 뛰던 그 자리에 꽉 매인 어느 매듭. 가브로쉬는 기침을 했다. 빵가루가 묻은 입가를 닦고, 한참을 선 채 옷깃을 만지작대었다. 흰 옷 입은 아이가 물끄러미 자신을 보았을 때, 소년은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왜 그러니?

얹혔어.

무엇이 말야.

모르겠다. 여기 꽉 뭉쳐서 내려가질 않아.

저런.

아이가 가브로쉬의 손 위에 제 손을 얹는다.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 기억나질 않아?

......

괜찮다. 여기선 모두가 솔직하게 말해도 되거든.

그 때에, 소년 가브로쉬는 정말로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그 말이 옳았기 때문이리라. 소년에게도 슬픔이 있을 것이다. 가령 가족이 없거나 거리를 떠돌며 하루 먹을 빵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처량한 마음이. 우리는 작은 이들에게 담기는 슬픔의 크기가 어떻든 간에, 그들이 슬픔을 가지고 살아나가는 일이 어른들보다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같은 크기의 돌멩이를 같은 용량의 물이 담긴 작은 잔과 큰 잔에 각각 던져 넣었을 때, 어느 쪽의 물이 더 높이 차오르겠는가? 이것은 아주 단순한 과학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가브로쉬는 어디선가 제 마음에 툭 들어온 돌멩이 하나에 넘쳐 흐르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파리 거리의 수장은 거의 우는 법을 잊었다. 대신 아주 기분이 나쁜 얼굴로 짜증을 내는 것이다.

몰라! ... 답답하다. 이 빵이 무언가 잘못된 게 아냐?

가브로쉬,

배가 부른데도 기분이 이렇게 나쁜 건 뭔가 이상한 거야. 이럴 리가 없어.

우리, 산보나 할까?

흰 옷 입은 아이가 아주 엄숙하게, 흔히 어른들이 하듯 권유하는 투로 말했을 때, 가브로쉬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게 무슨 말야?

답답할 땐 어떻게 했었는지 기억나니?

거리를 마구 뛰었지.

그래! 네가 좋아하는 걸 해 보자.

그런데 여긴 파리가 아니잖아.

가브로쉬는 다시 주변을 휘휘 둘러본다. 쨍하고 푸르르고 깨끗하며 다정한 곳, 자신이 살던 곳과 전혀 다른 여기. 저 멀리 아홉 꼬마들이 와글와글 소리 내며 거대한 흰 천을 들고 온다. 흰 빵처럼 멋진 면포! 뻥 뚫린 골목처럼 제 앞에 펼쳐지는 넓디넓은 면포. 그 양 쪽을 잡은 채 꼬마들이 늘어선다. 퍽 예쁜 광경이구나, 가브로쉬는 그렇게 생각했다. 제 손 붙잡고 있던 아이가 먼저 달려 나간다. 끝자락에 서서, 마치 어느 호텔 앞 급사가 하듯 허리를 숙이며 말하는 것 아닌가.

파리가 아니면 어때! 이 거리의 주인이 누군지 아니?

거리엔 주인이 없어!

아냐, 여긴 있어.

그리고 활짝 웃는 천진한 얼굴로 양 손을 벌려 내민다. 가브로쉬에게.

여긴 네 거리야.

소년은 잠시간 어리벙벙한 얼굴로 서 있었다.

여기가?

그러엄!

하지만 여긴 거리가 아닌걸.

네 공간이야. 너를 위한 곳이란 말이지.

멍한 얼굴로 눈을 껌뻑이는 가브로쉬에게 그 아이가 손짓했다. 자, 뛰어. 이 가운데로! 흰 천이 길게, 기일게 뻗어 저 먼 곳 수평선까지 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되는 그 광경 앞에서. 가브로쉬는 가슴에 꽉 매인 것 같던 어느 매듭을 손으로 쥐었다. 아이는 다시 말한다. 앞으로 달려 나가면 되는 거야. 아주 잠시간만, 소년은 망설여 보았다. 그래도 될 것만 같아서.

넘어지진 않을까?

괜찮아.

나 혼자 다른 곳으로 뚝 떨어져 버리지 않을까?

아냐!

아이는 주먹을 꼭 쥔 채로 그에게 말한다. 아냐, 가브로쉬. 여긴 네 거리야. 그 말 한 마디에 가브로쉬는 작은 용기를 얻었다. 그 작은 용기로 한 발을 땅에 한번 탕, 굴러 보았다. 푹신하고 기분 좋은 잔디밭이 닿는다. 그 기분 좋음에 가브로쉬는 또,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켜 보았다. 싱그럽고 든든하고 따스한 공기, 작은 꼬마는 가끔 그런 것들을 통해 용기를 얻는다. 자, 이제 준비는 다 되었다. 가브로쉬는 크게 소리를 한 번 질렀다.

거리의 수장 나가신다!

앞으로 달려 나간다. 흰 천의 한 가운데로, 줄느런히 선 꼬마들이 파도 갈라지듯 그 천을 양 쪽으로 잡아당기고, 가브로쉬는 걸릴 것 없이 뛴다. 달려! 누군가 외치고, 하얀 그 면포가 갈라진다. 경쾌하게 노래하듯 울리는 천 찢어지는 소리! 가브로쉬는 온 몸으로 그 희디흰 길의 중앙을 가르며 뛰었다. 하나, 둘, 셋, 와르르, 응원하는 소리들이 따라 붙는다. 그리고 넷, 다섯, 여섯. 발 끝에 부드럽기 짝이 없는 잔디와, 푸른 하늘이 가득 담긴 공기, 일곱, 여덟, 아홉! 가브로쉬는 숨을 쉬었다. 작은 허파 가득히 차오르는 숨이 활기차다. 뛴다! 저기로, 어디로? 앞으로! 갈 길을 몰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뛴다! 늘 그랬던 것처럼. 전혀 모르는 곳에서도 자신이 아는 곳처럼!

뛰어!

뛰어!

달려!

잘 한다!

천이 찢어지며 꼬마들이 가세한다.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이. 한 발 내디뎠을 때 그곳에 내리막길이 있으면 어떠랴? 몸을 둥글게 말고 구르면 그만인 것을. 저기 뛰던 다른 아이들이 함께 언덕을 굴러 내려간다. 잔디밭 위로. 마치 어느 통통 튀는 공들처럼. 그럴 때에는, 옷에 든 짙은 풀물들이 멋들어진 향수보다도 더 나은 향을 풍긴다. 가브로쉬는 양 손 감싸 안아 굴러 내려가며 자신이 완전히 반으로 갈라낸 흰 천이 어느 새의 두 날개처럼 바람 타고 훨훨 날아 하늘로 오르는 것을 보았다. 깔깔대는 소리가 터진다. 바닥에 구르던 몸이 완전히 멈추었을 때에도 그 웃음이 잦아들지를 않아서, 소년 가브로쉬는 기침까지 몇 번 해가며 풀밭 위에 뒹굴렀다. 언덕을 굴러 내려온 아이들이 그 주변에 왁자지껄 모여 든다. 가브로쉬는 일어나 앉았다. 그때까지도 웃음이 났다. 소년은 아주 즐거웠다. 훨훨 날아간 천은 어느새 보이질 않고, 가슴에 꽉 죄인 것 같은 매듭은 풀어지고.

이것 참 재밌다!

그렇지?

한 번 더 할 수 있어?

나중에, 지금은 할 일이 있거든.

그리고, 다시 아홉 꼬마는 저들끼리 눈길을 주고 받은 채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다. 가브로쉬가 손 뻗어 어디가느냐고 묻기도 전에. 다시 한 명만이 곁에 남았다. 이제 그 아이는 양 손을 내밀어 가브로쉬의 어깨를 붙잡았다.

지금 할 일이 무언데? 난 정말이지 모르겠다. 다 좋긴 한데 말야.

으음, 오늘은 코끼리가 오는 날이거든.

코끼리?

응, 코끼리 수레가 올 거야.

이제 아이는 엄숙한 체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웃자고 흉내내는 어른들 식의 예의 차리기가 아니라, 정말로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를 말하는 투였기 때문에. 가브로쉬는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옷을 툭툭 털어야만 했다. 그리고 아이를 따라 아주 중요하고, 심각한 태도로 되물었다.

저기, 코끼리 수레가 무어니?

..... 알고 싶어?

응, 알고 싶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 그리고 내가 한 것들이 죄다 그것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

흰 옷 입은 아이는 이제 손을 내려 가브로쉬에게 뻗었다. 잡으라는 것처럼. 가브로쉬는 그 손을 물끄러미 보다가 냉큼 붙잡았다.

눈 꼭 감고 날 따라와, 가브로쉬.

왜?

코끼리 수레가 무언지 알려 주려고.

그래서 소년은 눈을 감았다. 향기는 여전하다. 흰 옷 입은 아이가 앞서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사그락대며 바짓단에 잔디가 스치고, 어느 샌가 귓가에 졸졸대는 시냇물 소리가 들린다.

코끼리 수레는 네가 탈 거야.

이크, 여길 가다간 젖겠는데.

괜찮아. 필요한 일이거든.

발목까지 물이 잠겨 들었다. 이제 발 끝에 잔디 대신 달그락거리는 조약돌이 닿았다. 가브로쉬는 잠깐 눈을 떠 보고 싶은 생각에 어깨를 들썩였다.

날 어디로 데려 가려고 그래?

코끼리 수레 타는 곳으로.

... 그건 어디로 가?

널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물결은 다정하다. 가브로쉬는 눈을 감고 흐르는 물살이 발목을 감싸 들었다 다시 제 갈길 가는 그 느낌이 퍽 괜찮다고 생각했다. 제 손을 잡은 이가 다시 말을 이어 나간다. 어쩐지 조금 나이 든 것 같은 목소리로.

코끼리 수레를 타려면 몇 가지 과정이 필요해, 가브로쉬. 미사 드리는 것처럼 말야.

난 미사라는 걸 퍽 싫어하는데! 그건 지루하단 말야.

그럼, 우리도 알지.

겨우 같은 크기였던 것만 같은 손이 조금 커진 것 같았다. 가브로쉬는 문득 발 밑에 닿았던 물살이 사라진 것을 알았다. 이제 조금 찬 대리석 바닥이 발바닥 아래로 느껴진다. 성당 냄새, 그런데 아주 화려하지 않은 성당을 지나는 것 같은 냄새가 났다. 파리의 큰 성당들은 비싼 향을 뒤섞어 태우곤 했었지. 매캐함에 기침하는 이들도 있을 만큼. 가브로쉬는 생각했다. 그리고 코를 크게 벌름대어 향기를 들이켜 보고서, 이 향은 그렇지 않은 종류에 속한다고, 그렇게 결론지었다. 쑥 향이 난다. 그것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뭘 했지?

노래를 불렀지.

그래, 노래를 불렀지. 미사때처럼.

아하, 가브로쉬는 작게 소리내었다. 다시 흥얼댈 수 있어. 제 손을 잡은 이가 웃음 소리를 내었다. 이번엔 조금 더 큰, 어른의 소리처럼.

그리고 네가 무얼 했지?

뛰었어.

뛰면서 기분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니?

기분이 좋았어.

다시, 발바닥에 닿는 감각은 여전히 대리석 위를 걷는 것 같으나. 냄새가 바뀌었다. 가브로쉬는 문득 멈추어 섰다. 소년이 알고 있는 몇 안되는 향 중에 하나.

그래, 맞아. 네 기분을 좋게 하려고 뛰어 보자고 했지.

......

이제 다 됐어.

...있지.

가브로쉬는 손을 꼼지락거려 보았다. 손이 크다. 아이의 손이 아니야. 연하고 부드러운 손바닥이 아니라 조금 투박하고, 손가락이 가느다란 어른 손이야. 꼬마의 손을 아주 감싸 들 수 있을 만큼 커진. 그 새 이 아이가 자란 걸까? 가브로쉬는 어깨를 늘어뜨린 채 섰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그럴 때에 어린 아이들은 약간 시무룩해지고, 조금 쪼그라든다. 가브로쉬가 고개를 숙이려 하자, 그 손이 이제 양 어깨를 감싼다.

왜 그래, 가브로쉬?

어쩐지 아는 목소리 같아. 가브로쉬는 그렇게 생각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입을 몇 번 우물대다가 아이는 자신이 아는 것을 툭 내어뱉었다.

왜 여기서 장례식 냄새가 나?

죽음, 어느 날엔가 성당에서 풍겨대던 차갑고도 따스한 향, 사람들의 눈물 섞여 어딘가 서글프던 향냄새. 주변에서 온통 풍겨 대는 그런 냄새들. 그곳에 그대로 멈춰 선 가브로쉬를 잡아 내어 끌지도 않고, 또 밀어내지도 않고. 그 손이 가브로쉬의 양 팔을 쓸어내린다. 달래는 것처럼. 톡, 다시 작은 돌멩이 같은 무언가 가브로쉬의 안에 빠뜨려졌다. 꼬마는 찰랑이는 마음이 넘쳐나지 않게 애쓰고 싶어 하지만. 울상이 되고 말았다. 눈을 감은 채로도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가브로쉬는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 여긴 네 거리이고 말야.

... 코끼리 수레도 내 거라고 했었잖아.

맞아.

가브로쉬는 잠깐 코를 훌쩍여 보려 했다. 그렇게 들이키면 이 매캐한 울음이 삼켜질까 해서. 그런데 그렇게 해 보아도 사라지지를 않는 것을. 대신 조금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 이제 눈 떠도 돼?

그럼.

양 팔을 감쌌던 손이 사라진다. 가브로쉬는 오히려 그것에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자기를 이끌었던 그 누군가는 온데간데 없다. 주위를 두리번대면, 저 멀리. 아스라이 사라졌던 흰 천 두 개가 내려앉은 곳에 손짓하는 아홉 명의 사람들. 그리고 코끼리 수레.

......

꼬마 가브로쉬는 가슴을 들썩이며 울음을 꽉꽉 눌러 참으려 했다. 어쩌면 그 아이는 자신이 잊어버렸던 것들을, 잊으려고 했던 것들을 다시 떠올리기가 싫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알고 있었던 어느 작고 긍정적인 감각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면 아주 서글픈 것처럼 말이다. 예를 들면 부드러운 흰 빵이라거나, 따뜻한 공기라거나, 앙리 3세 만세를 부르면 자신을 돌아 보던 얼굴들. 짓궂은 장난에 웃던 어떤 이들. 그리고 멋진 저고리와 짝이 맞는 바지라거나, 호텔 옆 가게에서 살 수 있는 달콤한 카라멜 같은 것들. 실은 가브로쉬는 그런 것들을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엔가 그는 거리에 떨어져 사랑하는 것들을 달리 했지만. 그가 거리의 수장인 것과는 별개로. 그 꼬마 또한 따뜻하고, 부드럽고, 달콤하고, 편안한 것들을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가브로쉬!

누군가 우렁차게 그 이름을 불렀다. 가브로쉬는 마침내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어린 아이들이 하듯이. 마치 어딘가에 그 울음을 듣고 달려와 자신을 달래 줄 이를 알고 있는 것처럼. 양 주먹으로 얼굴을 문질러가며 엉엉 울었다. 저 멀리 손짓하는 이들이 작게 노래를 부르며 손을 흔든다. 다 네가 아끼는 몇 가지 것들. 소년 가브로쉬는 이제 불퉁하지도, 어른스럽지도, 약삭빠르지도 않았다. 그 애는 그저 소년이었다. 한 번도 그래 보지 못했으나, 이 곳은 가브로쉬의 거리였으므로. 코끼리 수레가 보인다. 훨씬 작지만 조금 더 곱게 다듬어졌고, 낯간지러운 장미꽃과 흰 안개꽃이 여기저기 달린 썩 멋들어진 수레. 검고 얼룩덜룩한 것들이 아니라 밝고 화사하고 고운 코끼리 수레. 가브로쉬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방금 전에 그랬던 것처럼. 자, 이제 떠나야지. 가브로쉬는 알았다. 저 코끼리 수레가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자꾸만 넘쳐 흐르는 눈물은 이제 아무 상관도 없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도, 그 사람들도 자신이 아끼는 몇 가지 것들에 들어가는 이들이며. 실은 마지막으로 하늘을 보았을 때에 눈 마주쳤던 이들이므로. 가브로쉬는 아무 두려움 없이 달려 나갔다. 발 끝에서는 신선한 물 냄새가, 몸에서는 쑥 향기가, 양 손에서 성당의 서글픈 향 냄새가 난다. 저기, 와락 벌려진 팔들이 보인다. 자신을 반기느라 활짝 핀 꽃들처럼 기꺼운 품들이 보인다. 가브로쉬는 울며 웃으며 달려 나갔다. 코끼리 수레를 타러. 자신을 기다리는 이들을 만나러.


흰 면포 같은 빵, 어른들 저고리. 

두 뼘 넘게 덜 탄 성당 초와 반짝이는 금화. 

굶지 않는 날과 잡히지 않고 거리를 마구 뛰었던 날. 

다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것들. 

얼빠진 어른들 얼굴, 구멍 난 주머니. 

벽보 찢는 일과 라틴어로 하는 욕.

앙리 3세 만세를 불러 대면 날 보던 표정들.

다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것들.

벽보 붙이는 일, 연설 듣던 일.

빵 나눠 주던 손길과 머리를 쓰다듬는 장난.

소식을 전해 주면 모두들 내게 건네 주던 칭찬.

다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것들.

발길질 당하고

추위에 떨며 굶고

누군가 내게 욕을 해대도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억해 내려고 하면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 않아.

다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것들.

다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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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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