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부 - 아베쎄의 벗들.

제 6부 아베쎄의 벗들 - 2. 아홉 개의 바퀴.

두 번째 바퀴, 앙졸라스.

그라스의 불꽃  

 작은 격자무늬의 창과 허름한 문 뒤쪽으로 무엇이 보이는가? 만약 당신이 파리에 있다면 그것은 콜레라에 걸려 죽어가는 늙은이가 될 수도 있고, 만약 당신이 루앙에 있다면 잔 다르크의 성화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수사일 수도 있다. 허나 그라스에서는 정제된 장미의 영혼이 담긴 아름다운 향수병과 히아신스의 달콤한 냄새, 금작화, 오렌지꽃, 재스민의 정수만을 뽑아내어 만들어낸 향수들을 보았을 것이다. 그 낡은 건물 뒤로, 숨길 수 없는 꽃들의 영혼이 마치 거대한 구름처럼 가득한 곳이 그라스였다. 앙졸라스는 물결치는 꽃밭과 아름다운 올리브 농원이 있는 곳. 그러니까 향기가 있는 곳에서 자랐다. 겉면을 허름하게 씌울 수는 있으나 고귀한 향기는 숨기지 못하는 법인지라, 우리는 이 아름다운 청년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위엄과 불꽃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대강의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인간의 체취를 가리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 인간을 닮았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라스에서는 그 이면성이 공공연히 수용되고 용해되어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향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꽃이 필요하지만, 더불어 짐승의 유지와 올리브의 피가 필요하다.  

짐승은 매일같이 도축되고 올리브는 그 육질이 다 으깨어 지고 마침내 마른 껍데기처럼 바스러질 때 까지 쥐어짜내진다. 한켠에는 꽃밭이, 한켠에는 도축장이 존재하는 이면성의 도시. 하지만 향수처럼 기가 막히게 그 체취를 가리어 아름다운 도시로 불리는 곳이 그라스 아닌가.기름이 녹아들어 꽃이 그 영혼을 기름에게 빼앗기듯이, 그라스의 모든 향수 제조인, 도제, 노동자들은 그 사실을 도시의 부유하는 기름에 빼앗겼다. 나이 어린 소년일 때의 앙졸라스는 일찍이 그라스가 만들어내는 향수와 도시의 이면성에 대한 질문을 시작하였는데, 아무도 그 답을 주지 않았다. 

도축장과 꽃밭. 어디로 갈 것인가? 앙졸라스는 야만성과 유미주의의 극단성을 알아차리고 향수의 도시를 야누스의 도시로 보기 시작했다. 그가 그 한 가운데서 붙잡은 것은 새벽의 떠오르는 태양과 변하지 않는 책의 진리가 부유하는 도서관이었다. 

파리는 앙졸라스에게 이성의 도시였다. 남프랑스 특유의 태만함과 여유 사이에 머무르기에는 부족한 날카로움을 알아차린 그의 부모님은 앙졸라스를 거대한 도시의 대학으로 보내 정치를 업으로 삼는 사람으로 만들고자 했다. 허나 앙졸라스에게 파리는 정치와 출세가 아니라 이성과 학문을 드넓은 세계인 덕에 광산의 광맥에 실수로 구멍을 내어 진귀한 보석을 찾듯 그 자질을 한껏 뿜어낼 수 있는 곳이 되었다. 그렇게, 그라스의 유복한 집안 출신의 청년은 생애 대부분을 꽃밭과 스쳐 지내며 품은 향기를 질척한 파리의 거리에 흩뿌리기 시작했다.

앙졸라스는 파리에 올라와 그 거처를 앵발리드와 후에 지어질 생 클로디떼 성당 사이의 탈레랑 가에 정했는데, 그 거리의 이름과는 상관없이 그는 맛을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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