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부 - 아베쎄의 벗들.

제 6부 아베쎄의 벗들 - 2. 아홉 개의 바퀴.

아홉 번째 바퀴, 그랑테르.

보르도의 회의주의자 

그 이름과 같이 넓고도 광활한 지롱드 강을 발원지 삼아 흐르는 가론 강이 구불구불한 몸을 틀어 비껴가는 도시 하나, 그 이름은 보르도였다. 관통하는 것이 아니라 비껴가는 것, 강가의 변두리에서 태어난 악동이 하나 있었으니 그 이름은 대문자 R, 평원을 품은 남서부의 소년이었다. 가론 강과 도르도뉴 강이 그 매서운 등을 돌려 갈라서는 가운데 달의 항구로 불리던 도시였으니, 그 어린 시절이 감히 풍부하고 아름다운 포도향으로 가득찼으리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부친은 포도주 거래를 하는 상인이었으나 집안의 실상은 어머니가 전권을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대대로 보르도 토박이였던 그 집안은 보르도의 향기로운 포도주와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진 그 도시를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여겼고 자녀들의 교육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취급했다. 그랑테르는 어릴 적부터 몽테스키외와 그 유명한 수상록을 집필한 몽테뉴가 보르도 출신이라는 것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으나 어린 나이의 치기로 그들의 사상이 하등 쓸모없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서, 사람들의 말을 한 귀로 담아내고 입으로 다시 흘려 보내는 기술을 배웠다. 고향의 사람들은 그랑테르가 크게 될 인물이거나 혹은 미쳐 버린 철학자가 되거나, 둘 중 하나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런 그가 완전한 회의를 머릿속에 담게 된 것은 단 하나의 계기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장성한 형이 하나 있었는데, 얼굴조차 알지 못했다. 부모의 머릿속에서 그는 점점 커져 가고 그랑테르는 점점 작아졌다. 왜냐하면, 그의 형은 이미 파리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있는 인재였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무시와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서 그랑테르는 언제나 제 형과 같이 되기를 바래 왔다. 그의 병든 자존감은 점점 형을 따라가는 것을 목표로 그 머리를 틀었다. 그 무렵 그랑테르의 마음속에는 한 마리 뱀이 살았다고 해도 좋으리라.

헌데 그랑테르가 그 격렬한 감정과 싸우는 일이 절정에 달했을 때 그 형은 결투에서 죽었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공포는 사랑으로 변하기 쉬운 법이다. 순식간에 그랑테르가 느끼던 비틀린 공포는 형에 대한 사랑으로 둔갑했다. 그는 목표를 잃었고, 그 순간만큼은 사랑하던 형을 잃었다. 평생을 파리에서 살고 있는 형의 유령과 싸워야 한다니! 그랑테르는 분노했다. 부모는 그랑테르에게 그 따스함을 돌렸다. 네가 살았으니! 네가 살아 있으니 네 형을 대신하거라! 아하, 그 잔인한 부모라는 존재의 사랑이란. 그랑테르는 느꼈다. 모든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형을 따라잡으려 그리도 노력하던 때는 품 한번 벌려주지 않던 부모가, 형의 부고를 듣고 모든 것을 놓아버린 그에게 팔을 벌리다니, 이제서야? 그랑테르는 비웃었다. 이 무슨 부조리인가! 부조리하다, 나는 이대로 아무것도 될 수 없는 것인가. 아, 그렇다. 그것이 그랑테르의 정신을 병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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