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손, 밤, 꿈.
하길님 커미션 / 앙즈앙, 앙쟝 / 공백 포함 30046자.
1. 봄
이 시대에는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았으나, 어떤 혁명적인 떨림이 은연중에 흐르고 있었다. 거리와 건물들 사이 사이에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같은 속삭임, 은밀한 다짐, 약속,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는 쪽지 같은 것들이 존재했다. 또한 기묘한 공기가 맴돌고 있었다. 그렇다. 그것은 – 오래된 노르트담 성당의 종처럼 – 거대한 울림으로 젊은이들을 매혹시켰다. 이것은 누군가가 이미 말한 바 있는 단어와 문장에 불과하다. 그러니 집어치우자. 독자가 알아야 할 사실 중 하나는 누군가는 그 울림에 매혹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은 허물어진 곳, 한 곳은 노동자들과 인접해 있고 한 곳은 학생들과 인접되어 있던 그 비밀스러운 모임의 수장인 사람은 매혹되지 않았다. 그를 매혹시키기에 그 울림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다. 다만 그는 너무 가까이서 종 소리를 들어 버렸기에, 매혹되기에는 너무나 잔인했던 시대의 마지막을 이미 목격했기에, 그리할 수 없었다.
이것은 아직 봄이었을 때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아주 잔인하다시피 명확히 말하자면 이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릴 것을 뻔히 알고서도 그의 곁을 지키는 기괴한 유다가 되거나, 혹은 예수 그 스스로가 되는 일이다. 비극이고 또한 알려진 결말로서, 오페라 한 편으로 소비하기에는 너무나 두렵고 또 숭고한 일이었다. 감히 아무도 선택할 수 없는 길. 앙졸라스라는 이 유복한 집안의 아들이자, 아베쎄의 벗들의 수장이고, 또한 동지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품고 있는 이상의 사제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가 분명 그 거리의 바리케이드가 어찌 되었는지 알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러니 상상해보자. 차분히. 독자인 우리가 절대 알 수 없는 그 감정을 감히. 앙졸라스가 품은 비탄을, 역사에 대한 믿음이 배신당했다는 그 슬픔을. 그리고 동지를 잃었다는, 그것도 자신과 뜻을 함께 하다가 잃었다는 깊고 깊은 죄책감과 자신에 대한 혐오와 속죄를. 이 모든 것을 상상해 보자. 동지들을 바라볼 때마다 그는 마치 기요틴에서 자신의 손발이 썰려 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심지어 그랑테르를 볼 때도! 왜냐하면 그것은 앙졸라스가 그 모든 이들의 끝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를 아는 동지들은 이미 앙졸라스가 무언가 달라져 있음을 무의식 중에 눈치채고 있었는데, 그것은 앙졸라스의 눈이 더 깊어지고 입은 더 완고히 다물어졌으며 패인 입꼬리 끝에 우묵히 괴인 슬픔이 드러났던 탓이었다. 도저히 모를래야 모를 수 없는 것과 같았다. 그러니 앙졸라스라는 이 청년의 자제력과 통솔력은 얼마나 대단한가. 앙졸라스는 대중과 조직을 다루던 힘을 자신에게도 발휘할 줄 알았다. 훨씬 더 잔인하고 냉정히. 그래서 그를 근처에 둔 동지들은 저 깊은 마음의 심연에서부터 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입 밖으로 꺼낼 만큼의 확신은 두지 못했다. 그를 아끼고 주의 깊게 관찰하는 이들조차 그리 했을 정도니.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그의 의지는 얼마나 대단한가. 그 의지가 산을 옮길 수 있었다면 피레네 산맥은 언덕 하나 없는 평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 의지가 햇볕이 되었다면 센 강은 이미 말라 간척지가 되었을 것이다. 앙졸라스는 1831년을 이미 그렇게 살아 낸 바 있다. 견딜 수 없이 무거운 비밀을 지고, 혼란에 빠져 세 달을 칩거했었으나, 그의 정신 안에 살아 숨쉬는 혁명은 온전했다. 처음 이 청년은 이 모든 것을 밝히고 자신의 동지들을 원래 있던 삶으로 되돌려 보낼 생각을 했으나, 그의 앞에 놓여진 명료한 사실은 혁명을 외치고 바리케이드를 계획하는 일이 이미 자신의 삶이라는 것이었다. 앙졸라스는 어찌 보면, 그 시간 동안 역사를 다시 보는 법을 배운 것이리라. 실패한 혁명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역사 속으로 그저 사라질 것인가, 혹은 또 다른 도화선이 될 것인가. 이것에 대한 결론은 자명했다. 89년에도 그러했고, 30년의 7월 혁명도 그러했다. 누군가는 실패한 혁명이라고 칭했고 그것을 깎아내리기 위해 전력을 다했으나 혁명의 불씨는 아직 사람들의 마음속에 번히 불타고 있지 않은가! 앙졸라스는 그것을 깨달았다. 번개치듯 깨닫고서 붉은 외투를 집어 들고 도로 거리로 나왔다. 앙졸라스는 처절히 알았다. 역사가 그를 배신한 것과 같지만 결국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여전히, 늘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혁명을 외치기로 결심했다. 앙졸라스는 그가 할 일이 곧 미래의 누군가에게 자양분이 되어 자라기를 원했다. 그것은 배신이 아니라 오히려 큰 수레바퀴 안의 바퀴살과도 같았다. 앙졸라스는 신을 믿지 않았지만 역사가 돌아가는 과학적 원리에 대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충격적인 사실을 감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또 다시 자신을 희생하기로 마음먹었다. 전에 그러했듯이. 1832년 6월 6일이 그에게 처음이 아니었으나, 처음인 것처럼 그 날을 맞이하기로. 그리 했다.
여기서 하나의 문제가 발생한다. 앙졸라스는 자신에 대한 결심을 굳혔다. 기실 그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나 자신은 신경쓰기에는 지나치게 사소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세상과 미래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앙졸라스는 자신이 아니라 동지들에 대한 걱정을 했다. 그네들의 죽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곳으로 몰아가는 것이 옳은가? 아니, 알려 주어야 하는 것이 맞는가? 수도 없이 많은 방향들이 그의 앞에 있었다. 그리고 차마 택할 수 없으나 그것이 옳은 방향이 있었다. 청년 앙졸라스는 감히 그의 자제력과 통찰력을 발휘해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결심했다. 택할 수 없으나 옳은 길로. 그는 그의 동지들에게 끝을 설명하지 않고서, 그저 역사가 자신들을 또 다시 희생시켜 자양분으로 삼아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뒤바꿀 수 있는 것인가? 아니, 그것은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 외에 다른 삶을 권한다면 앙졸라스는 죄를 짓지 않게 되는 것인가? 그것은 역사만이 알 일이었다. 그러나 다만, 앙졸라스는 자신의 동지들이 다른 삶, 죽음을 마주하지 않고서 시대를 모르는 체 하고 안온히 살아갈 수 있는 삶을 거부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여러 방면에서 보았을 때 그것은 슬프지만 옳은 길이었다. 미래의 사람들인 우리가 당시의 시대를 이해할 때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 봄, 앙졸라스는 애를 썼다. 다가오고 있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또 입 밖으로 내지 않기 위해서. 비록 그가 동지들의 얼굴을 매일같이 마주해야 하고, 그럴 때마다 깊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고 해도. 그는 입 밖으로 어떤 사실도 내지 않았고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동지들을 안심시켰다. 아주 서정적인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것을 잡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 한 명은 바로 중세에 심취하였으나 현재를 잊지 않는 시인, 즈앙, 장 프루베르였다.
이것은 말했다시피 봄의 이야기다. 날씨가 좋았다. 앙졸라스는 산책을 위해 뮈쟁을 빠져나왔다. 그것은 지난 해부터, 견딜 수 없을 때 동지들에게서 떨어져 나오는 것을 택한 그만의 버릇이었다.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종종 그 당시의 청년들은 산책을 하며 영감을 느끼고 살아났기 때문이다. 공기가 그들에게 활기를 주었고 별이 목적을 주었다. 하지만 앙졸라스는 그 어던 것도 진실로 느끼지 않았다. 더욱 가혹한 사실을 그가 알고 있었기 떄문일 것이다. 그 너머의 무언가. 그 때 앙졸라스의 현실에 작은 충격을 주었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즈앙이다. 나는 이것을 태양과 별의 만남이라고 칭하리라. 이것은 차마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이 땅에 서 있는 사람들로서는 아주 불가능한 일이라고 받아들여도 좋을 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의 사이에는 신뢰와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해가 지면 어둠을 통해 별이 빛난다. 천천히, 먼 길을 따라 순차적으로 전달된다. 반면 태양은 아주 직설적으로 인류에게 말을 건다. 그러한 성정을 가진 둘이 함께 산책길을 걷게 되었으니, 이 어쩌 드문 일이 아니랴. 앙졸라스는 길을 걷다 말고 참지 못해 즈앙에게 그리 말했다. 즈앙, 자리를 비켜 주게. 자네가 있으니 산책에 집중할 수 없네. 하지만 그것은 진실로 즈앙이 방해가 되기 때문이 아니었다. 즈앙 때문에 튀어나온 앙졸라스 그 자신의 생각이 방해가 되는 것이었을 뿐. 즈앙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다. 성정이 부드럽고 수줍음을 타는 사람들은 남이 속으로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얼굴 근육과 작은 손의 제스처만으로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는 법이다. 이것은 그 자신이 안으로 파고드는 성격을 일부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즈앙도 그러했다. 다만 그는 자신의 안에 쌓인 것을 어떻게 표출해야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 이는 성숙한 사람의 태도였다. 앙졸라스는 그 단단한 얼굴을 무너뜨리지 않았으나 즈앙은 둘러진 수사복 안에 숨겨진 상처를 보았다. 그래서 즈앙은 동지의 말을 따라 뮈쟁으로 돌아가서 걱정을 하는 대신, 파리 거리의 어느 골목에 우뚝 멈춰 선 채 앙졸라스에게 물었다. 자네, 요즘 무슨 일 있나?
- 아무 일도 없네, 즈앙.
- 내게 거짓말은 하지 말아 주게. 나는 자네의 벗이지 않나. 나는 그저 자네가 요새 깊이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앙졸라스.
- 머릿속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더라면 수많은 내 생각들이 뇌의 회로마다 꽉 차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걸세. 즈앙. 나는 늘 생각을 하네.
- 머릿속을 열어 들여다 본다니, 졸르를리 식 화법인걸.
벗의 농담에 앙졸라스가 가볍게 웃었다. 그 웃음에 우리는 봄 밤의 안온한 하늘이 그네들의 머리 위에 있다는 것을 감히 알아차릴 수 있으리라. 즈앙도 함께 웃었다. 그 웃음은 바람이 작게 불어와 따스한 손길로 그네들의 아직 소년 같은 머리칼을 어루만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앙졸라스는 길에 멈추어 선 즈앙을 돌아보고서 고개를 저었다. 자네도 참.
- 내 걱정은 할 필요가 없네. 지금은 걱정이 필요한 때가 아니야.
- 앙졸라스, 사람에 대한 걱정은 누구나 필요해. 그래서 어쩌면 신이라는 존재가 있을 지도 모르잖나. 모두를 위해.
- 즈앙,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신을 믿지 않네.
- 하지만 나는 믿지, 앙졸라스?
불쑥 즈앙이 그렇게 말했을 때 앙졸라스의 표정은 굳어졌다. 이런 면에 있어서 즈앙을 물이라 칭하자. 물결치고, 자유롭고, 또한 품고 흘러가는 일을 아주 잘 하는 그런 사람. 거세게 몰아치면 서 있는 사람도 그 물결에 휩쓸어 갈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 앙졸라스는 그보다 훨씬 더 뜨거웠다. 그는 불꽃이라고 칭해야 할 것이다. 겹겹이 쌓인 미묘하게 다른 색의 불꽃들은 그의 이성이 쌓여 만들어낸 것이었고, 보기에는 부드러우나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그네들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 물과 불꽃이 만나는 상황처럼 서로가 서로를 조금씩 내주어 무언가 다른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보통이었다. 조심히 서로에게 닿아, 수증기라는 아주 새롭고 서로가 없으면 만들어지지 않을 물질을 내놓는 대화. 물론 지금의 상황은 그렇게 돌아가기에는 영 힘들어 보였지만. 자신을 믿느냐고 묻는 즈앙 앞에서 앙졸라스는 평소처럼 은은한 미소를 띄며 그럼, 즈앙. 우리는 벗이잖은가.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를 믿지 못함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니었다.
- 앙졸라스, 말해 주게. 나를 믿지?
- 믿네, 자네가 아니면, 동지들이 아니면, 누구를 믿겠는가?
- 그럼 자네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말해 줘.
앙졸라스는 한숨 비슷한 것을 내쉬었다. 수레국화 들판이 봄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고, 앙졸라스는 저 넓은 들판 너머를 바라보다 시선을 하늘 끝쪽에 두고 그렇게 말했다. 역사에 대해 생각하네. 즈앙은 그 말을 듣고 수줍게 웃었다. 앙졸라스가 역사, 라는 단어를 내뱉었을 때 즈앙은 저절로 미래, 라는 말을 생각했기 때문에 나온 웃음일 것이다. 즈앙은 자신이 고민하고 공부하는 어마어마한 양들의 지식에 대해 자만하지 않았으나 그저 나누기를 즐겼다. 그래서 즈앙은 말했다.
- 아, 그럴 것 같았어.
- 어떻게 알았는가?
- 자네는 늘 거대하고, 아름답고, 숙명적인 것들에 대한 고민을 하지. 그것을 어찌 하면 이 땅에 실현시킬 수 있을까. 그런 것들인가?
- 비슷하네. 즈앙, 하지만 나는 요새 다른 것에 대해 생각한다네.
- 어떤 것?
즈앙은 수레국화 들판의 한 구석에 서 있는 나무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앉아 다리쉼을 할 생각으로. 앙졸라스는 그 숭고하고 슬픈 몸을 천천히 움직여 즈앙의 옆으로 다가갔다. 즈앙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앙졸라스를 조금 재촉했다. 어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그 다급함은 학자들이 가지는 궁금증과 같았다. 앙졸라스는 입을 열었다.
- 내 고향을 아는가.
- 자네는 그라스 출신이지.
- 내 고향에서는 향수를 만드네. 사람들은 도시의 벽에서도 향기가 날 것이라고들 말하던데, 그들은 틀렸어. 오히려 짐승의 피 냄새가 나지.
-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한 번도 그라스에 가 본적이 없어서 묻는 걸세.
- 말 그대로, 즈앙. 향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름이 필요하네. 짐승의 기름과 올리브 기름에 꽃을 빠뜨리거나 부어 그 향기를 기름이 죄다 흡수하게 만든다네. 허, 그것은 왕과 똑같아. 민중이 가진 향기를 죄다 귀족과 그 아랫것들의 기름 속에 넣어버리려고 애쓰지. 그것을 위해서 짐승들은 매일같이 도축장으로 끌려가. 눅눅한 비린내와 비명 소리, 숙련된 도살자. 그리고 꽃밭. 내 말을 알겠는가, 즈앙?
- 자네는 야누스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지.
문득 즈앙이 그리스 신의 이름을 꺼내자 앙졸라스의 눈이 빛났다. 대화는 이때부터 진정으로 시작된 것이라 말해야 할 것이다. 앙졸라스는 그 몸을 휙 돌려 즈앙을 마주보았다. 그리고 손에 든 책을 잠시 바닥에 내려 둔 채 들판 한 군데를 가리키었다. 장중한 지휘자처럼. 즈앙은 앙졸라스의 손가락 끝에 있을 것들을 눈으로 살폈다. 고양이 한 마리가 쥐를 잡아 물고 가고 있었다. 즈앙은 앙졸라스의 말뜻을 알아 듣고서 다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 때로 목숨에는 희생이 들어가지. 앙졸라스. 야누스처럼. 자네의 고향처럼. 그건 두 이면을 가지고 있는 거야.
- 내 말이 바로 그 말일세. 즈앙.
앙졸라스의 눈은 즈앙을 보고 있었다. 즈앙은 문득 두 머리를 가진 야누스를 생각하며 앙졸라스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는 행동을 했다. 그토록 모순적인 곳에서 이렇게 올곧은 사람이 태어날 수 있다니, 하는 마음으로. 앙졸라스는 손가락을 내리고 말을 이어 나갔다.
- 모든 것에는 이면이 있네. 즈앙. 루이처럼. 부오나파르트처럼 말일세. 어떤 면은 넓고 어떤 면은 좁을 수 있겠지만. 가끔 지나치게 공명정대한 이면을 우리는 마주하네. 그럴 때 우리는 쉽사리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되지. 안 그런가.
- 자네 말이 맞아. 그럼 자네는 역사의 야누스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거로군.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특히 역사라는 것은 너무도 광대해. 그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품어 안고 천천히 움직이는 육중한 수레바퀴 같은 걸세.
- 그 공명정대함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생각해 본 적 있나?
여기서 즈앙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살짝 걸음했는데. 그것은 앙졸라스의 눈이 차갑도록 일렁이는 푸른 불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놀랐다. 이 시인은 이면성을 떠올리게 하는 일, 그것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고민해야 할 것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가끔 앙졸라스가 그 말을 꺼낼 때 그의 눈은 이렇게까지 슬프고 또 깊어 보이지 않았다. 즈앙은 직감적으로 그것이 함부로 끌어낼 수 없는 거대한 바위처럼 앙졸라스의 가슴에 박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 생각해 본 적은 없네. 그러나 자네의 말을 듣고 나서 드는 생각이 있네. 역사도 또한 희생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지. 훌륭한 머리가 아니라 썩어빠진 머리라면 잘려 나가야 해.
즈앙은 말을 돌리기 위해 셰니에의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직감적으로 앙졸라스가 어떤 불안에 떨고 있음을 눈치챘기 때문이고, 자신의 반대편에 서 있는 동지가 아주 드물게 흔들리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앙졸라스에게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자 그 말을 꺼냈다. 당연히, 머리가 잘려 나가고 누군가 죽는 일이 있을 수 있다. 혁명의 바람 아래서 꺾이는 꽃들이 있을 것이다. 헌데도 즈앙은 미래를 바라보고 이루어낼 것에 아주 초연하게 집중하고자 했다. 당시의 앙졸라스에게는 그것을 생각하면 남는 것은 비통과 또 다른 단단한 결심 뿐이었기에. 앙졸라스는 말을 돌리려는 즈앙의 시도를 부드럽게 거부했다.
- 아니, 즈앙. 나는 머리가 잘리는 일을 말하려고 하는 게 아닐세. 그것은 희생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 아, 그래.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군.
즈앙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갔다. 앙졸라스는 여전히 일렁이는 푸른 불꽃의 눈을 하고 수레국화 들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꽃이 피지 않았다. 즈앙은 여름에 수레국화가 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말했다.
- 앙졸라스. 역사의 이면성은 우리에게 큰 문제일세. 하지만 우리 모두 알잖나. 여름이 되면 피는 꽃은 그 때를 알고 피는 거야. 역사 또한 그러할 걸세.
그리고 즈앙은 숨을 들이쉬고 특유의 박식함을 발휘해 조금의 말을 더 얹었다. 이러한 것으로.
- 자네가 아는 지 모르겠지만. 야누스는 출입문의 수호신이네. 두 얼굴을 가진 것 뿐만 아니라 문을 열고 닫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 그는 처음과 끝이고, 시작과 변화일세. 역사가 만일 야누스에 비교될 수 있다면 우리는 분명 문과 처음, 변화에 대해 생각해야 할 걸세. 그저 두 얼굴이 아니야. 앙졸라스. 그 이면성은 어떻게 보면, 문일세. 열려 다른 곳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 말이야.
- 자네의 말이 내게 위로가 되네.
앙졸라스는 작게 숨을 터뜨리는 소리를 내었다. 정말로. 고맙네. 즈앙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시인은 자신이 올바른 위로를 했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기이함을 느끼고 있었다. 기실 앙졸라스가 위안과 위로를 얻는 일이 있다손들, 이렇게 구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즈앙은 앙졸라스가 여름 꽃에서 기쁨을 얻는다고 생각해 보았으나 결국 그것은 앙졸라스가 진정 기쁨을 느끼는 일이 무엇인가 하는 고민으로 연결되었다. 가만히 즈앙은 앙졸라스의 미간에 내려앉은 상념을 바라보다가, 쉽사리 내뱉어지지 않는 무언가를 생각하며 바닥에 내려 놓은 책을 자신의 벗 대신 집어 들었다. 결론은 자명했다. 앙졸라스는 공화국과 파트리아, 그리고 이성과 동지들 사이에서 기쁨을 얻었다. 즈앙이 아는 한 그 믿음은 쉽사리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앙졸라스는 지금, 왜 자신에게 흔들림을 내비칠 정도로 약해졌는가? 무언가를 붙잡아두고서 꽁꽁 감싸 센 강에 던져 버릴 기세로, 입을 다물고 있는가?
- 앙졸라스.
- 왜 그러는가.
- 가끔은 나와 산책을 하며 이런 이야기를 해 주어도 괜찮네. 나는. 무슨 말인지 자네도 알겠지.
그리고 아주 다정하게도, 즈앙은 수줍게 웃으며 책을 앙졸라스에게 건넸다. 앙졸라스는 그 성정에 탄복하며 웃었다. 아주 작은 미소였으나 즈앙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벗이, 애정하는 이가 웃는다는 것은 일종의 봉인과도 같아서 그리 하겠다는 말을 맹세로 지어 도장을 꾹 누른 것이나 다름 없기에. 결국 그네들은 나무 밑으로 가서 앉는 일을 내려 두고 뮈쟁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앙졸라스는 가끔 즈앙과 함께 산책하였으나 다시 야누스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없었다. 봄은 그렇게 지나갔다.
2. 손.
1831년과 1832년, 7월 혁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 두 해는 역사에서 가장 특수하고 놀라운 시기의 하나다. 그리고 앙졸라스는 그 해를 다시 한번 겪고 있었다. 봄의 끝자락에서. 여름의 시작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것은 누구라도 듣게 되면 악마나 신의 농간질이 아닌지 생각하게 되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도 알 수 없는 어떤 특이한 장치로 인해 그는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의 벗들은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으나 곧 어떠한 인간이라도 그러듯이 죽음으로 달려가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앙졸라스 그 자신도 마찬가지였으나, 이 청년, 이성의 사제는 전혀 그것을 개의치 않았다. 그저 벗들의 죽음을 다시 한 번 보아야 한다는 사실이 그의 폐부를 찔러 서서히 그를 갉아먹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는 타들어가는 가슴에 매일같이 물 한방울을 떨구어 살아가는 꼴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치 못했다. 여전히. 앙졸라스는 종종 뮈쟁에서 밤을 새우던 일의 횟수를 늘려 거의 매일같이 뮈쟁의 구석 자리 자신의 테이블에 붙어 앉아 있었다. 쿠르페락은 앙졸라스가 나무가 되어 뿌리를 내리려나보다고 농담을 해댔지만, 앙졸라스는 그 단단한 얼굴을 두어 번 저어 보이고 다시 일에 몰두하는 것이다. 그는 새벽 내내 전단을 쓰고 계획을 세우며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연설을 수정하고 또 수정해댔다. 앙졸라스는 이 모든 것이 조금이라도 헛된 것이 아니기를 간곡히 바랐다. 어떤 날은 그러했다. 새벽 뮈쟁의 창가에 이슬이 조금씩 내려앉고 있었을 때. 앙졸라스가 마지막 연설문을 붙잡고 고민하고 있었던 즈음에. 생 메리 성당이 막 두 시를 울린 참이었다. 그러자 문득, 단단한 턱이 가볍게 떨리며 그 고개가 잉크 자국 가득한 책상 위로 푹 숙여지는 것이다. 앙졸라스는 장 프루베르의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은 맞잡은 손의 이야기다.
- 자네 괜찮아?
간혹 우연이 만들어내는 행운이 있다. 아마 지금 이 순간을 그렇게 칭해도 좋으리라. 앙졸라스는 퍼뜩 고개를 들어 자신이 들어간 비극의 구덩이에서 빠져나왔다. 즈앙. 손에는 빵과 종이에 싼 치즈를 들고, 작은 소시지를 다른 손에 잡고서. 뒷방의 입구에 서 있는 즈앙은 망설이지 않고 걸어와 앙졸라스의 이마를 짚었다. 그 손길은 거침없고 능숙한 뱃사람이 자신보다 열 배는 큰 돛대를 다루는 것처럼 대담하고 과감했다. 앙졸라스는 말하자면 아베쎄의 벗들의 돛대였다. 그네들이 싸움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한은 그럴 것이다. 수장이란 바람을 실어 육중한 몸체를 움직일 의무를 떠안는다. 그러니 즈앙이, 자신들을 나아가게 해주는 돛이자 돛대인 앙졸라스를 들여다 보고 또 이리 저리 매만져 돕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리라. 그만큼 즈앙은 망설이지 않았다.
- 많이 피곤해 보이네, 앙졸라스.
- 난 괜찮아. 새벽에는 늘 그렇잖은가. 헌데 자네 손에 그것은 뭔가?
- 아, 이것...
즈앙은 방금 전의 걸음걸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게 웃었다. 그것이 자신을 위한 선물이라는 것을 앙졸라스는 눈치챌 수 있었으나, 그 웃음은 괜스레 즈앙의 입으로 자네 것일세, 하는 소리를 듣고 싶어지게 만드는 웃음이었다. 앙졸라스는 뻣뻣하게 굳은 손과 팔을 뻗으려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기지개를 쭉 켰다. 그리고 허리에 손을 얹고서 소년 같은 장난조의 말을 내뱉었다.
- 새벽에 배가 고팠는데, 잘 되었군. 자네 것을 내가 빼앗아 먹어도 되겠는가?
- 아니, 아니, 앙졸라스... 이것은 전부 자네 것일세. 빼앗아 먹지 않아도 돼.
그 말을 들은 시인은 화들짝 놀라는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앙졸라스의 얼굴을 보며 손을 내젓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내뱉어 놓고 앙졸라스는 소리를 내어 웃었다. 즈앙이 마저 더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앙졸라스의 얼굴에 어린 장난기를 눈치채는 순간 즈앙은 다시 수줍은 얼굴로 돌아가 작게 웃음소리를 냈다.
- 고맙네, 즈앙. 앉게. 같이 들지.
- 그래도 되겠는가?
갑자기, 새벽의 뮈쟁에서 만찬이 벌어졌다. 좋은 치즈와 빵에 썩 나쁘지 않은 절인 고기가 곁들여진 것이다. 즈앙은 쿠르페락의 지팡이가 있었다면 좋았을 뻔 했다고 말했고 앙졸라스는 그 말을 듣고서 다시 웃었다. 온종일 긴장되어 있던 정신이 작게 풀어진 것이다. 기실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 맞았다. 파리에는 콜레라가 창궐했으며 민중의 지지를 받는 어떤 아버지 상의 전쟁 영웅인 라마르크 장군이 병상에 누운 것이다. 민중은 지금 끓어 넘치기 직전인 용암이었다. 여기서 아베쎄의 벗들의 역할이 어찌 중요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으랴! 앙졸라스의 작업량이 배로 늘어난 것도 물론이거니와, 쿠르페락과 콩브페르, 푀이, 레에글, 졸리, 바오렐을 비롯한 이들이 거리를 뛰어다니는 일이 두 배, 어쩌면 세 배로 늘어났다. 이 때 아베쎄의 벗들은 얼굴에 환희를 띄고 거리를 뛰어다녔다. 뮈쟁에서 은밀한 회의를 진행할때면, 그네들의 목소리는 낮아지고 속닥이는 말 속으로 긴장감이 피어났다. 앙졸라스는, 그 변하지 않는 광경들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앙졸라스를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와 내 동지들. 라마르크. 바리케이드. 대포. 아마도, 그럴 것이다. 앙졸라스는 그렇게 생각하고서 자신을 채찍질해댔다. 하지만 뜻밖에도 즈앙이 찾아와 그를 쉬게 해 주는 일이 생긴 것에 앙졸라스는 놀랐다. 그리고 곧, 즈앙이 주변 사람들을 면밀히 살피고 챙기는 일에 대한 열정에 대해 떠올리고서 다시 웃었다.
- 나는 참으로 운이 좋네. 자네 같은 동지를 두었으니.
- 아니야. 그저 자네가 너무 무리하는 것 같아서.
- 괜찮네. 하지만 새벽에 만나는 벗은 언제나 좋은 법 아닌가.
그렇게 말하고서 두 청년은 마주 웃으며 빵과 치즈를 자르기 시작했다. 향긋한 냄새가 나는 소시지는 반으로 나뉘어 서로의 접시 위에 얹어졌다. 즈앙은 사려깊게도 물주전자를 가져와 양철 컵에 따라 주었고, 앙졸라스는 그것을 들어 건배하듯 말했다.
-자네의 친절을 위해.
- 앙졸라스, 나는 그저 내가 할 일을 할 뿐이야. 그러니 이 잔은 그냥 우리를 위해 드세.
- 그런가? 하지만 자네는 가끔 자네도 모르는 새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나누어 주네. 좋은 일이지.
하고서, 청년들은 신성한 의식이라도 하듯 서로의 컵을 부딪히고 물을 들이켰다. 그것이 성수였으리라. 빵 위에 치즈를 얹어 한 입 베어 물고, 씹으며 웃는 작은 순간. 아, 그러나 앙졸라스는 자신이 그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지 못함을 알았다. 그의 마음은 아직도 저 멀리, 이제는 과거인지 혹은 현재인지도 모를 순간에 가 있었다. 앙졸라스는 문득 자신이 마지막 연설을 끝내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서 입으로 가져가던 빵을 내려 놓았다.
- 왜 그런가, 입맛에 안 맞는가?
- 아닐세, 끝내지 못한 일이 생각나서.
- 앙졸라스. 요새 들어 자네 정말 이상한 것 아는가? 너무 자네를 몰아쳐 대는 것 같아.
- 내가?
앙졸라스는 고개를 단호히 저었다. 그 움직임은 바위가 굴러 떨어져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을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즈앙은 그 말을 꺼낸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꺼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즈앙은 마음 속 깊이 자신이 앙졸라스를 아낀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것은 사람들이 흔히 서로간의 사이에서 쓰는 말로 바꾸자면, 사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거대했다. 그는 앙졸라스를 존경했으며 존중했고 또 그만큼 걱정했다. 그렇기에 즈앙은 이번에는 부드럽게 대화를 거부하는 앙졸라스의 태도를 잠시 미루어 두고 자신이 할 말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자네 말처럼,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뿐일세.
- 그래도, 앙졸라스. 나는 자네가 걱정이 되네. 스스로를 챙겨야 거리를 돌아다닐 힘도 생길 것 아닌가.
- 진보란 게을러서는 안 되네. 즈앙. 다가올 미래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아주 기민하게 움직여야 해. 자네도 잘 알지 않나. 요즘 파리 거리가 심상찮아. 석수장이들과 학생들, 벽돌공들, 화가의 조수들 모두 민중이라는 깃발 아래 모일 거고, 우리는 혁명을 일으킬 걸세. 우리가 꿰메어 놓은 것들이 얼마나 단단한지, 터진 부분은 없는지 매일같이 점검해야만 해.
앙졸라스는 이렇게 말함으로서 수장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는데, 그 자신이 전혀 게으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딛고 선 땅을 다지는 것처럼 발을 구르는 선언과도 같았다. 앙졸라스의 말투에는 수많은 연설로 인이 박힌 말투가 배어 있었다. 특히 동지들에게 이런 말을 할 때면 사람들은 앙졸라스가 지금 연단에 서서 민중에게 외치고 있는 장면을 생생히 떠올릴 수 있었다. 즈앙도 마찬가지였다. 앙졸라스가 과열된 회의를 잠시 중단시키고 중요한 것들을 상기시킬때마다 아베쎄의 벗들은 너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중심을 잡았다. 수령이란 그런 것이다. 기꺼이 함께 싸울 수 있는 사람. 즈앙은 그 단단함을 사랑했으나, 지금은 조금 달랐다. 이 청년은 시인이었으나 또한 혁명군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즈앙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헛기침을 잠깐 했다. 그 행동에는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대담함이 있었다. 즈앙은 망설이지 않고 말을 꺼냈다.
- 앙졸라스, 내게 야누스 이야기를 했었던 날, 기억하는가?
- ...기억하네. 헌데 그건 왜.
- 그 이후로 자네의 말이 자꾸 맴돌아. 자네가 뭔가 홀로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생각을 지워 버릴 수가 없네. 앙졸라스, 나는 자네의 벗이야. 그것이 무엇이든 함께 나누어 등에 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네. 그러니 부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내게 말해 주겠나?
- ......
그 대담함, 신의를 담아 만든 다정함. 즈앙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앙졸라스는 거의 입을 열어 자신이 알고 있는 그 무서운 사실을 내뱉을 뻔 했으나. 곧 정신을 차리고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 행동에 즈앙은 자신이 물러나야 함을 깨달았다. 과정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은, 그들이 이미 이러한 과정을 수십번 반복하며 자신의 벗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제하고는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앙졸라스는 고개를 정말로 단호하게, 두어 번. 서릿발 같은 천사의 심판적 행동으로 내젓고서 그 입술을 꾹 다물었다. 즈앙은 가만히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눈을 천천히 껌뻑였다. 앙졸라스의 눈매에 작게, 슬픔이 깃들었다 떠나는 것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즈앙의 눈이 자신을 떠나지 않자 앙졸라스는 그 단단함에 작고 달콤하게 굴복하듯 중얼거렸다.
- 가끔 나는 두렵네.
- 알고 있네.
- 가끔 나는 흔들리네.
- 그것도 알고 있네.
- 그러나 나는 기어이 나아갈 걸세.
즈앙은 말을 멈췄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꽉 쥐어져 있는 앙졸라스의 손등 위를 덮었다. 어머니가 아이를 토닥이듯이, 새벽 별빛이 산등성이를 토닥이듯이, 그렇게 부드러이 동지의 손을 토닥였던 것이다. 앙졸라스는 그 행동에 놀라지 않았다. 다 알고 있네. 앙졸라스. 즈앙은 그리 중얼거렸고 앙졸라스는 끝내 그 숭고한 고개를 떨구고 잠시동안 침묵해야 했다. 진실한 침묵의 시간. 의도되거나 혹은 이끌어낸 것이 아닌 그저 정말로 필요한 침묵의 시간. 즈앙은 앙졸라스의 손을 잡고 있었다. 힘을 주어 꽉 쥔 주먹이 풀어지고, 따뜻하고 따뜻한, 작은 아기새 같은 즈앙의 손을 앙졸라스도 마주잡았다. 새벽별이 지켜보고 있는 광경이었다. 앙졸라스는 그 꽉 쥔 손을 아스러지도록 세게 붙잡으며 말했다.
- 즈앙. 동지. 나의 벗. 내 말을 들어 주게나.
- 그게 무엇인가?
- 우리가 바리케이드를 세울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자네도 잘 아는 바일 걸세.
- 물론이지. 앙졸라스. 파리가 환희에 들뜨고 시민들이 모두 공화정을 외치는 날이 곧 올 거야. 그럼 우리는 더 밝은 내일을 꿈꾸던 자들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자들이 되겠지!
앙졸라스는 다른 손으로 즈앙의 손을 꼭 부여잡았다. 단단히 연결된 손에서 온기가 전해져 오는 순간 즈앙은 문득 눈에서 눈물이 흐름을 느꼈다. 사람의 감정이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그 순간. 앙졸라스가 즈앙의 손을 잡는 순간 즈앙은 그것을 느꼈다. 그러나 즈앙은 차마 진실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이렇게 다른 질문을 내뱉을 뿐이었다.
- 걱정이 많이 되는가보이. 하지만. 앙졸라스.
- 즈앙. 나는 자네를 아끼네. 자네도 잘 알다시피.
- 우리는 벗인걸. 어찌 안 그럴 수 있단 말인가.
- 아니, 그것 말고도... 즈앙. 만일 바리케이드가 세워진다면. 자네는 자네의 몸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해 주게.
- 내가. 나의 몸을?
- 기꺼이 죽을 수 있다고 맹세한 것을 아네. 하지만 분명 누군가는 살아야 해.
- 대체 왜 그리 말하는가?
- 어서. 즈앙. 어서.
아, 이 세상에 동지가 드러내는 간절함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으랴! 즈앙은 그 순간 이끌려 약속을 하였다. 그리하겠네. 하고서. 그 자신이 스스로 어길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진실로 약속한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나아가 앙졸라스의 속을 알고 품어 주기 위해. 즈앙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청년들이 잘 알고 있듯이, 죽음이 앞에 닥치면 둘 모두 망설이지 않을 터였다. 그것은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것에는 희생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전부였다. 목숨이라는 것, 그 밝고 희미한, 모순된, 그것을 희생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앙졸라스는 더욱 절실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즈앙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차마 흐르는 것을 내버려 둘 수 가 없었다. 그 애처로운 얼굴. 그 슬픔. 그러나 즈앙은 다만 슬퍼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이해하고자, 사랑하고자 애쓰는 것이었다. 자신을 향해 톡, 톡, 떨어지는 그 따스한 눈물을 앙졸라스는 차마 거부할 수 없었다. 어찌 이럴 수 있을까. 당신은. 앙졸라스는 입술을 꾹 물었다.
- 앙졸라스.
- 즈앙.
청년들은 서로의 이름을 주고받으며 손을 꼭 잡았다. 둘의 손이 이어진 순간. 숙명은 몸을 뒤채어 거대한 몸을 움직이기로 결심했다. 아, 그렇다. 그 손. 손. 새벽에 서로를 붙잡은 손. 그것이 전부였다.
3. 밤.
혁명은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그리고 모든 것으로. 유쾌함으로, 박식함으로, 과감함으로, 예민함으로,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불운을 받아들이는 슬픔으로, 회의와 찬양으로, 그리고 마침내 미래를 생각하는 머리와 세상 그 무엇도 꺾을 수 없는 단단한 의지로 완성된다. 이 아홉 가지는 바리케이드에 실존할 것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자 모든 것인 청년들로, 역사란 것의 수레바퀴에 올라타고 뒤에 서고 앞장 서고 하며 밀고 당기는 그 일을 아주 능숙하지는 않으나 정열적으로 해낼 준비가 된 청년들이 해낼 것이었다. 장례식의 전날에는 비가 왔다. 뮈쟁은 고요했다.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 잠들어 피어날 나비들처럼 고치 속으로 들어가 마지막 실을 잣고 있었다. 그것으로 자신의 잠을 완성시키고 끝내는 역사의 천에 들어갈 한 줄의 실이 될 것이었다. 그 얇고 연약한 실은 아주 쉽사리 끊어지기 쉬운 것이라고 말하리라. 누가 칼이나 무딘 가위를 들이댄다면 석둑, 하고 잘려나갈 것이었으나 분명 그것은 천이 될 수 있는 실이었기에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 그네들은 일종의 희망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희망, 이 위대한 단어. 그리고 감히 미래와 공화국을 꿈꾸는 머리들! 이 다정함을, 과감히 나서 세상을 뒤엎겠다는 그 사건을 일으킬 이들이 얼마나 높다란 숭고함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이는 불행할진저! 자신이 나고 자란 조국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더 나은 것을 꿈꾼다는 이 마음이 얼마나 순수한가. 독자들은 알아야 한다. 서술되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에는 분명 그러한 마음들이 담겨 있다. 다정함, 따뜻함, 사랑, 그런 것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감정들이.
이것은 혁명 전야, 바리케이드가 아직 지어지기 전, 밤의 이야기다.
앙졸라스는 뮈쟁에 앉아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흔들리는 별빛이 아니라 똑바로 자신을 향해 말하는 별을. 앙졸라스는 흔들리고 있었다. 그가 흔들리기에 별빛은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뮈쟁에 머물던 동지가 떠나가고, 앙졸라스는 즈앙의 뒷모습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자신이 보지도 못한 즈앙의 최후를 다시 한번 되돌이키고 있었다. 즈앙, 시인, 아베쎄의 벗들에서 가장 어리고 가장 대담한 사람. 그 시의 최후를 생각하면 앙졸라스는 한없이 슬퍼졌다. 앙졸라스는 시간이 흐르면 있을 두 가지 장례식을 생각하고 있었다. 라마르크 장군과, 즈앙의. 후자는 장례식이라고 할 것도 없이, 운구도 미사도 없이 진행되겠지만 앙졸라스는 마음 속으로 자신이 동지의 시신을 거둘 수 없다는 사실에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역사인 것인지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그 자신도 확신했으나 여전히, 그는 흔들렸다. 즈앙은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발걸음을 돌려 뮈쟁으로 다시 향했다. 이제는 진실이 무언지 알 준비가 되어 있었다. 즈앙은 그날, 손을 잡았던 날을 기억했다. 야누스 이야기를 하던 앙졸라스의 슬픈 눈을 기억했다. 즈앙은 앙졸라스가 무언가 알고 있다고 확신했으니, 이것은 기어이 밝혀질 수 밖에 없는 진실이었다.
- 즈앙, 자네 아직 안 갔는가.
앙졸라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창가에 앉아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채로 즈앙의 발걸음에 답했다. 즈앙은 소리나지 않는 몸의 행동으로 대답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옮겨 그의 곁에 앉아 손을 잡았다. 문득, 앙졸라스가 즈앙을 바라보며 웃었다. 즈앙은 정말로, 그 순간만큼은 앙졸라스가 누군가를 애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이 다만 라마르크뿐인가? 혹 그가 혁명에 바친 목숨들을 애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즈앙은 고개를 떨구었다가 그 이름들을 떠올렸다. 카미유 데물랭, 앙투안 생쥐스트, 조르주 당통과 장 폴 마라, 그리고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 그네들을 애도하고 있는가? 아니면, 혹 아니면... 즈앙은 잠시 헛기침을 했다가 자신이 느끼는 바를 있는 그대로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 자네는 지금 누구를 애도하는 중인가?
- 죽은 이들.
앙졸라스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으나 그 목소리에는 떨림이 담겨 있었다. 이것은 밤의 이상한 마법이다. 말이 이어지는 것이 참으로 대수롭지 않으나 대수로운 것이다. 말을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이 무엇을 느끼는지 알게 된다. 앙졸라스는 즈앙이 자신에게 이러한 말을 한 의도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아 입을 다물었다. 아직은 안 되었다. 아니, 아직이라는 말은 쓸 수가 없었다. 영영 안 되었다.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앙졸라스는 자리를 피하려 했다. 늘 그렇듯이 즈앙은 별을 보며 이 밤을 보낼 것이라 생각하고서. 하지만 즈앙은 그 날 별을 보러 온 것이 아니었다. 앙졸라스를 보러 온 것이었다. 일어서려는 앙졸라스의 팔을 즈앙이 가볍게 붙잡았다. 그 부드러운 행동에도 수장은 놀란 것 같았다. 즈앙이 자신을 붙잡고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이미 눈치로 알 것 같았기 때문일까.
- 어떤 이들?
- 자네도 알다시피, 혁명에서 죽은 이들.
- 로베스피에르와 생 쥐스트 같은 이들.
- 그래, 그리고 다른 이름 없는 민중들.
즈앙은 앙졸라스의 팔을 붙잡아 가만히 의자로 이끌었다. 앙졸라스는 저항하지 않고 가만히 즈앙의 앞에 앉아 그 눈을 바라보았다. 누구라도 알 수 있었겠지만, 즈앙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왜 그러한지는, 또 다시,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앙졸라스는 혁명의 전날 추모의 의식을 거행하는 사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가장 살아 있을 혁명 전야에 그는 장례식을 생각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애통하고, 비극적인 일인가. 즈앙은 그것을 알고서 고개를 떨구었다. 눈에 샘처럼 고인 맑은 눈물이 툭, 하고 떨어진다. 앙졸라스는 그것을 보며 웃어 보인다. 즈앙. 왜 우는가.
- 자네의 마음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말해 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네.
- 즈앙,
앙졸라스는 타이르는 투였다. 그만 묻게, 하는 암묵적인 사인과도 같았다.
- 앙졸라스. 나는 자네의 슬픔을 느껴.
- 쓸데없는 소리를.
- 내가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면 자네의 밤은 왜 이리 흔들리는지부터 말해 주게.
- 즈앙.
그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속에는 지극히도 깊은 슬픔이 배어 나왔기에 즈앙은 앙졸라스가 부정하지 않고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드러내지 않고, 가슴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꾹꾹 억누르고 있던 무언가가 기어이 터져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즈앙은 얼굴에 맺힌 눈물을 닦아 내고 앙졸라스가 손을 꾹 쥐어잡으며 강인한 턱을 작게 떠는 것을 보았다. 즈앙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시인은 화가 남을 느꼈다. 그러나 그 화는 슬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분명 동지가 짊어지고 있는 짐이 있을 것인데, 그것을 누구에게도 나누어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꼴을 보는 것에 슬퍼서 분노하는 것이었다. 기실, 분노하는 이의 분노가 만일 다른 감정에서 비롯되었다고 치면, 그것은 나무를 태우는 불길이 아니라 또 다른 것, 예를 들면 석탄과 같은 것을 태우는 경우와 같아 더더욱 강렬하고 더욱 뜨겁다. 즈앙은 분노하고 있었다. 앙졸라스를 이토록 슬프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 어찌할 바를 모르는 자신에게, 그리고 자신의 동지를 괴롭혀대는 것들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즈앙은 입술을 꾹 물었다가 목소리를 높여 그리 말했다.
- 자네는 나를 믿는다고 했지.
- 그래. 그리했네.
앙졸라스의 목소리는 가라앉았다. 즈앙에게 어떠한 적의나 애정도 드러내지 않은 그저 매끄러운 맨 목소리였다. 치솟아오르는 것을 다스리는 데에는 그만한 사람이 없었다. 냉철한 불꽃, 그것을 품었다가 터뜨릴 줄 아는 사람. 그러나 즈앙은 앙졸라스가 그러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 앙졸라스. 이제 보니 자네는 나를 믿지 않으나 보이.
- 그게 무슨 소린가. 즈앙. 우리가 알고 지낸 시간들을 생각하면 그 말은 내게 배신같은 말일세.
- 그럼, 자네가 진 슬픔을 나도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을 어찌 몰라 주는가? 응?
- 즈앙, 이것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내가 지고 가야 할 것이지.
- 세상 어떤 것도 나눌 수 없는 것은 없어. 앙졸라스, 그러니! 그러니 제발...
시인은 벽력같은 목소리를 냈다. 따라 고개를 떨구며 앙졸라스의 손을 쥐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이 화가 앙졸라스의 존재를 향한 것이 아님을 나타내기 위해서. 즈앙은 분노했으나 그것은 앙졸라스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앙졸라스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꼭 그것은 자신이 잘못한 것처럼,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결국 모든 것은 자신에게 칼날처럼 돌아왔다. 앙졸라스는 고개를 들었다. 눈물이 흐르려고 하는 것을 감추려는 뜻이었다.
- 나의 벗, 내 동지. 왜 자네는 혼자서 짊어지려 하는가?
- 혼자서 짊어지고 가야 하니까.
- 우리는 계속해서 시작으로 돌아오고 있네. 앙졸라스. 세상 그 어떤 것도...
- 시작으로 돌아오고 있지. 즈앙. 그건 내가 아주 잘 아네...!
문득 즈앙이 말을 멈췄다. 시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그 말이 낯설지 않았다. 즈앙은 눈을 잠시 감았다 떴다. 앙졸라스. 혹시. 자네가 말했던 야누스가 이것에 대한 이야기인가? 끔찍한 사실이 다가오고 있었다. 모든 것이 산산히 부수어지는 순간이었다. 닿지 않던 손이 닿았을 때도 몰랐던 것을, 밤, 그날 밤. 즈앙은 알았다.
- 앙졸라스. 우리는. 내일 그 날.
- 그만, 즈앙. 그만. 그만. 그만...
앙졸라스는 즈앙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머리를 붙잡았다. 아닐세. 즈앙. 아니야. 그만 하게. 그만 해. 나는 자네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괴롭네. 이제 그만해주게. 나는 충분히... 아니야. 앙졸라스는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만. 나를 그만 괴롭히게. 고통이 폐부를 찔러 철철 흘러나오는 피를 토하는 목소리로. 앙졸라스는 즈앙을 뿌리치고 덜덜 떨며 몸을 숙였다. 즈앙은 문득 일어섰다. 앙졸라스.
- 앙졸라스.
즈앙은 벗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실체로 보고 있었다. 존재하는 모습으로 보고 있었다. 앙졸라스는 괴로워하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죽음을 추모하고 있기 때문에. 앙졸라스는 몸을 숙이고 있었다. 너무나 도망치고 싶지만 도망칠 수 없는 사실 앞에서 자신을 숨기려 애를 쓰고 있었다. 즈앙은 울컥울컥 올라오는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고 흐느꼈다. 이제야 즈앙도 알았다. 알고 있었던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아, 차마 누구도 꺼내지 못했던 단어가 시인의 입에서 시처럼 흘러나왔다. 그날 밤.
- 자네는 이 일이 어찌 될 줄 알고 있는 것이지.
- 즈앙, 제발. 그만. 그만.
- 자네는, 모두 알고 있고, 그것은. 그것은.
- 그만!
앙졸라스가 귀를 틀어막았다. 고개를 들었다.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태양 같은 금발이 흩어지고, 그 푸르고 차가운 눈이 벽을 넘어 흐르는 홍수를 막지 못하는 것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앙졸라스는 자신이 외마디 비명을 지른 것에 놀랐다. 그러나 흐르는 눈물을 닦지는 않았다. 앙졸라스는 문득 흐느끼는 즈앙의 눈이 아주 차분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 앙졸라스, 나는, 죽는가?
- 즈앙...
- 그렇구나.
즈앙은 뒤로 물러설까 생각했다. 아니, 두렵지 않았다. 아니, 이것은 두려우나 기꺼이 나갈 용기가 충분한 이가 하는 고민이었다. 뒤로 물러서면 당당해질 것인가, 아니다. 즈앙은 지금은 자신의 당당함보다 앙졸라스의 괴로움을 위로하고자 했다. 다정한 시인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누군가를 감싸 안고자 했다. 단단한 앙졸라스가 뒤로 물러서 자신을 드러내었던 것과 같이. 타고난 성정대로, 그리 하기로 결정했다. 즈앙은 앞으로 나아가 앙졸라스를 안았다. 사랑하는 내 벗.
- 자네 홀로 이 아픔을 어찌 견뎠을까.
- ......
- 자네는 어떻게 이 사실을 안고서 살아갔을까.
즈앙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숨기지 않으며 앙졸라스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나는 자네를 위해 우네. 자네가 나를 위해 울었듯이. 즈앙은 흐느끼는 잇새로 뱉었다. 앙졸라스의 몸은 차가운 조각상처럼 굳어 있다 이내 천천히 풀리며 즈앙의 몸을 감싸 안았다. 손이 맞닿았다. 밤은 찼으나 춥지 않았다. 앙졸라스는 마침내 손에 쥔 석탄을 내려 놓고 그것으로 불꽃을 만들 준비를 하였다. 석탄을 쥔 손을 잡아 벌려 함께 쥐자 말해준 벗 덕분에. 앙졸라스는 내려놓았다. 아, 마음 속 그득한 서늘한 밤 바람이여. 앙졸라스는 즈앙의 등을 토닥였다. 자네를, 자네가. 아니, 즈앙. 뭐라고 말을 잇지 못하는 앙졸라스를 보며 즈앙이 그 손을 들어 앙졸라스의 뺨을 감쌌다. 아니야, 말하지 말게.
- 나는, 앙졸라스. 자네처럼 모든 이를 위해 울어 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작은 것들부터 돌아보는 탓에 모든 것을 위해 울기에는 내 시간이 모자랄 것 같네. 그러니 다만, 자네를 위해서, 내 벗들과 이 땅, 미래를 위해 울게 해 주게.
- 자네의 죽음은 그럼, 누가 울어 주나.
- 이미 누군가 울어 주었잖나.
그것도 아주 긴 시간동안. 즈앙은 눈을 감고 앙졸라스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대었다. 단단히 맞잡은 손이 서로의 손등을 감쌌다. 아. 그대들의 밤. 독자들은 이제 숨을 멈추어야 한다. 감히 이 청년들이 말하건대, 숨을 멈추고 추모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른 장례식을 거행하는 이 청년들을 위해서.
- 앙졸라스. 자네는 나를 믿지.
- 자네도 나를 믿지 않나, 즈앙.
- 그래, 그리 하면, 내가 어찌 할지 알겠지.
앙졸라스는 말을 멈추었다. 이제는 천국이 추락하는 순간도 두렵지 않으리라. 이미 눈 앞에서 산산히 부숴져 무너지는 세상을 보았으니. 앙졸라스는 천사와 나팔을 믿지 않았으니, 그를 지탱하고 있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은 두려워했다. 그런데 이제는 흩어지고 있었다. 여기서 나는 모순된 것을 말하려 한다. 아주 모순된 것. 그러나 일상적인 것. 앙졸라스는 이제 두렵지 않았다. 그렇다. 두렵지 않았다. 즈앙이 그러하듯이.
- 나는 내 자리를 지킬 걸세.
- 나는 내 자리에 서 있을 걸세.
- 그리하면.
- 그리하면.
- 어쩌면 나의 죽음으로 시작되고, 그것은.
- 어쩌면 나의 죽음으로 마무리될 걸세.
앙졸라스, 즈앙. 즈앙, 앙졸라스. 청년들은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밤이 그득했다. 그네들의 이름으로, 그네들의 밤이었다. 그 청년들의 밤이었다. 수장과 시인이 서로를 이해한 밤이었다. 봄과 손을 지나, 밤을 보내고 있었다. 나의 벗, 나의 사랑하는 벗. 서로를 그리 부르는 이들이 다시 한번 진정한 벗이 된 밤이었다. 앙졸라스와 즈앙은 눈을 떴다. 그리고 서로를 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다 괜찮을걸세. 하는 웃음이었다. 우리는 이제 알고 있지 않나. 앙졸라스가 방백처럼 속삭였다. 즈앙, 자네를 한번만 더 안아 보고 싶네.
- 나는 이미 자네에게 안겨 있는걸.
- 자네의 영혼도 끌어안아 보고 싶네.
- 그럼 어서 안아 보게. 나도 자네의 영혼을 안고 싶어.
앙졸라스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즈앙의 따스한 몸을 당겨 끌어안았다. 손 끝으로 전해지는 온기가 홧홧하여, 앙졸라스는 다시, 흐느꼈다. 내 벗, 자네를 살리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건만. 그리고 앙졸라스는 생각했다. 다만, 자신이 먼저 죽을 수만 있다면. 즈앙은 부드러운 금발을 손으로 매만지며 앙졸라스를 달래듯이 속삭였다. 앙졸라스, 괜찮아.
- 육신이 가더라도 내 영혼을 끌어안게. 알겠지?
- 자네에게 내가 할 말일세. 육신이 가더라도.
그들은 서로를 다시 한번, 아주 꽉, 끌어안았다. 영혼을 안았다. 그날 밤이었다.
4. 꿈.
파리 사람들이 오늘날 중앙 시장에서 랑뷔토 거리로 들어가면, 오른쪽 몽데투르 거리의 맞은편에 광주리 가게 하나를 보게 되는데, 그 간판은 나폴레옹 황제 모양을 한 바구니로서,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폴레옹은,
버들가지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도 그러했다. 버들가지는 낭창낭창하고 잘 휘어지는 것이니. 역사도 그러했다. 휘어지는 동시에 잘 꿰면 형태를 갖춘다. 씨줄과 날줄로 엮어 쓰여지는 비유의 문학, 역사의 절묘한 타이밍, 베틀 북이 날아가면 한 줄이 짜지고, 다른 줄이 빠지면 그곳에는 구멍이 날 수 밖에 없으므로 조금의 틈도 허용할 수 없는 직조의 예술. 역사에서는 구멍이란 날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감히 독자들에게 말하건대, 그네들, 역사적인 것이 될 뻔한 그 청년들의 역사에도 구멍은 나지 않았다. 온전한 하나의 무늬와 하나의 천으로 완성되어진 이야기만이 그네들에게 남았다. 그네들에게 씨줄은 시대였으며 날줄은 그들 스스로의 목숨이었다.
6월이 왔다. 딱총나무 꽃이 피었고 시간이 조금 지난 뒤였다. 라마르크 장군이 죽었다. 모든 사건은 아주 순식간에 일어나 파리 거리에 선 사람들을 스쳐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역사와 삶은 사람을 스쳐지나가는 데 아주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막상 무언가를 계획하던 사람들도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지면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자신이 한 일을 돌아볼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리하여, 라마르크의 장례식 날 아베쎄의 벗들은 추모의 촛불을 저항의 횃불로 바꾸기로 결의하고 조용히 때를 기다리다가, 샹브르리 거리와 몽데투르 거리를 막고, 코랭트 주점을 목으로 하여 생 드니 거리를 바라보는 그 곳에 바리케이트를 친 것이다. 한바탕의 소동이었던 그 일은, 마치 번개가 친 후에 천둥이 치는 것 같았다. 붉은 깃발을 든 앙졸라스가 라마르크의 시신이 든 운구로 뛰쳐 나가 번개처럼 민중의 노래를 외쳤고 아베쎄의 벗들을 선두로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번쩍이는 빛에 뒤따라오는 소리를 내며 마차를 뒤집고 침대를 내던지고 의자와 책상을 포석에 부딪혀 깨뜨린 뒤 시민들에게 손짓했던 것이다. 앙졸라스는 그 때 웃고 있었다. 즈앙도 마찬가지였다. 쿠르페락이, 우리는 더 많은 가구가 필요하니 던질 수 있을 만큼 던지시오! 라고 외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어리벙벙했다. 이른 나이에 그리 큰 일을 겪는 것은 말하건대 주정뱅이가 어릴 적부터 술을 들이키키 시작한 것과 같아서, 일종의 해를 끼친다. 그렇다. 그네들은 너무 젊었던 것이다. 그 학생들 – 물론 조금 나이가 든 학생과 노동자를 포함하고 있는 집단 – 은 분명 자신들이 하는 일일 분명히 알고 있었으나 알고 있지 못했다. 그 일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게 될 지는, 예상할 사람이 없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희열과 어떤 감정에 구름처럼 들떠 있었다. 그리고 파리 거리의 습한 슬픔들을 죄다 빨아들인 그 바리케이드에서, 무거워진 구름에서 비가 내리듯 어떤 눈물들이 내릴 것이라는 사실이 자명했다. 앙졸라스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즈앙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네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것은 꿈의 이야기다.
한 차례 시가전이 지나갔다. 지붕 위의 병사와 길거리의 청년이 같은 자리에 누워 밤이 찾아오기를 기다려야만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네들은 일종의 장례식을 공유하게 되었는데, 한 사람에게는 응당한 애도가 허락될 것이었으나, 한 사람에게는 허락되지 않을 터였다는 사실만이 달랐다. 바리케이드의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동지의 죽음 앞에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소리내어 울어서는 안 되었다. 아직은. 그러나 모두가, 응당한 애도를 받지 못할 영혼을 위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젊은 생명이여. 맥동해야 하는 그 숨결은 어디로 가고 차가움과 육신의 향내만 남았는가. 사람들은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탄약을 점검하고, 전열을 가다듬었으며, 길거리에 널부러져 있는 서로의 무너진 마음을 주워서 꿰메어 주기 시작했다. 앙졸라스는 뺨에 튄 피와 화약을 닦으며 동지들을 둘러보았다. 한 명이 없었다.
- 앙졸라스.
콩브페르가 기민하게, 그러나 불안에 떠는 손을 감추려 가만히 앙졸라스의 곁으로 다가왔다. 즈앙이 없네.
- ......
- 즈앙이, 아무래도.
- 포로가 되었나보군.
앙졸라스는 짧게 상황을 정리했다. 감정이 끼어들기에는 너무나 벅찬 순간이었다. 버거운 순간. 그랬다.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다시 마주하여야 할 이 순간이 내게 무슨 의미를 주는가. 즈앙에게는 무슨... 앙졸라스는 생각을 문득 멈추었다. 즈앙. 자네가 한 말을 기억하겠네. 허나 나는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걸세. 그리고 앙졸라스는 몸을 틀어 콩브페르를 마주했다. 그 청년은 다시, 푸르른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아주 조용히.
- 콩브페르.
- 우리에게는 저들의 스파이가 있어. 자네는 저 자를 어찌 할 셈인가?
- 내가 어찌 하려는 지 자네가 가장 잘 알 것이네.
콩브페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장의 성정을 잘 아는 자는 가만히 입을 열어 말을 덧붙였다.
- 잘 아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 콩브페르.
- 듣고 있네.
- 나와 즈앙을 교환하자고 제의한다면 저들이 응할 것인가?
- 앙졸라스!
콩브페르가 단호한 몸짓으로 앙졸라스의 팔뚝을 꽉 붙잡았다. 정신 차리게. 그 말은 수장이 어떤 흔들림에 빠졌을 때를 눈치챈 동지의 것이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 슬픔을 어찌 모르겠는가. 벗이 적의 손아귀에 떨어졌다는 사실. 자신의 한 뭉텅이가 떨어져 나가 누군가에게 난도질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괴로움을. 콩브페르 또한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앙졸라스는 그리 해서는 안 되었다. 진정, 그것을 알되, 그러나 그것에 빠져들어서는 안 되었다. 그는 이 바리케이드의 수장이었기에, 이 숭고한 미사의 집행자였기에.
- ...
- 자네는 아직 할 일이 남았어.
- 그래.
앙졸라스는 다시 몸을 돌려 바리케이드 너머를 바라보았다. 저 곳에 즈앙이 있을 것이었다. 입술을 꽉 물었다.
- 자네가, 저 스파이의 목숨과 즈앙의 목숨을 바꾸는 일을 제안해 보게.
- 그리 하겠네. 앙졸라스. 그리고 자네...
콩브페르는 앙졸라스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말을 꺼내려고 하였다. 앙졸라스 또한 콩브페르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었다.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을 참이었다. 패색이 짙어지고 있었으나 끝까지 앙졸라스는 입을 다물고 있을 작정이었다. 서릿발 같은 의지여. 부드러움이 통하지 않는 칼날이여. 그러나 콩브페르가 차마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저 멀리서, 외마디 비명처럼, 아니, 엄중한 선언처럼. 들려왔다.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 프랑스 만세! 미래 만세!
앙졸라스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예정된 미래가 현재가 되는 순간이 그의 뒷골을 비수처럼 찔러 왔다. 그는 진정으로 고통스러웠다. 그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신호탄처럼 울려 왔다. 이제 그는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아니라 진정 두렵지 않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고통이 스며들어 와 어금니를 떨리게 했다. 이를 악물었으나 앙졸라스는, 다음에 들려 올 하나의 파열음을 알았기에 눈을 질끈 감을 수 밖에 없었다. 차마 하늘을 마주할 수 없어서. 그리고.
탕.
하고서.
앙졸라스는 무너져내렸다. 속으로만.
- ...즈앙.
콩브페르가 중얼거렸다. 앙졸라스는 피눈물이 흐르는 가슴을 움켜잡고 싶었으나 그에게는 단지 한 순간의 무너짐도 허용되지 않았음을 알기에, 그는 그리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다시 차가운 불꽃으로 타올랐다. 그는 그 자리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거칠 것 없는 걸음걸이로 바리케이드 안을 가로질러갔다. 모두가 수장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총 소리를 들었기에, 모두가 앙졸라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문을 얼여 제꼈다. 엄한 천사의 모습이었다. 묶여 있는 스파이의 머리채를 잡아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서. 앙졸라스는 입에서 불꽃을 토해내듯 그렇게 말했다.
- 네 친구들이 방금 너를 쏘았다.
스파이는 웃었다. 앙졸라스는 강퍅한 손짓으로 그의 머리채를 내던지고 술집을 나왔다. 따라 들어오는 콩브페르와 쿠르페락, 동지들, 가브로쉬를 물리고서 그는 골목의 한 자리에 주저앉았다. 얼굴을 감싸 쥐고 단말마의 고통을 뱉었다. 아. 그리고 몸을 떨기 시작했다. 즈앙. 한 마디가 지나가고, 그의 푸른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즈앙. 나의 동지. 내 상냥한 친구. 아. 즈앙.
- 자, 우리는 밤에 너희 진지로 쳐들어갈 셈이다. 어쩔 테냐?
- ...
- 왜 말이 없지?
즈앙은 핏줄이 터져 붉어진 눈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정부군은 청년의 멱살을 잡았다가, 그가 아무 대답을 않고서 꿰뚫어보는 눈으로 바라보자 그를 내동댕이쳤다. 즈앙의 뼈마디가 포석에 부딪혀 검푸르게, 슬픔만큼 짙게 멍들어 갔다. 장갑 낀 손으로 수 차례 얻어맞은 뺨은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찢어진 입술은 바리케이드에 세워진 붉은 기와 같았다. 즈앙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생명이 그에게서 바져나가고 있었으나, 청년은 그것에 굴하지 않았다.
- 입만 열면 되는데.
- 할 말이라고는 이것 뿐이다.
그리고 즈앙은 몸을 일으켰다. 비틀거리다 땅을 딛고 섰다. 그리고 울컥울컥 쏟아져나오는 소리를 냈다. 공화국 만세! 정부군이 즈앙의 입을 틀어막았다. 숨이 막혀 오는 순간에도 즈앙은 자신의 목소리가 부디 바리케이드 너머의 사람들에게 닿기만을 바랐다. 정부군은 그를 가차없이 다루었다. 두꺼운 밧줄이 청년의 연약한 살에 자국을 남겼다. 그리고, 검은 총구가 그의 눈 앞에 늘어섰다. 정부군은 마지막으로 유언을 남길 기회도 주지 않을 성 싶었다. 즈앙은 총구 앞에서 가만히 침묵했다. 머릿속으로 자신의 동지들을 꼽아보는 중이었다. 내 사랑하는 동지들. 그리고, 그리고. 앙졸라스. 앙졸라스. 즈앙은 지금이 자신의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더더욱 두렵지 않았다. 그래서 입을 열고, 기운을 짜내어, 외쳤다.
- 프랑스 만세! 미래 만세!
그리고 즈앙은 웃었다. 예정된 미래가 현재가 되는 순간이 다가왔고, 그는 그것으로 행복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이리 울릴 것을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웃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신호탄처럼 울려 왔다. 이제 그는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아니라 진정 두렵지 않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두려워 하지 마, 앙졸라스. 그 한 마디를 차마 하지 못한 것이 그를 떨리게 했다. 이를 악물었으나 즈앙은, 다음에 들려 올 하나의 파열음을 알았기에 눈을 떴다. 고개를 들었다. 하늘을 보기 위해서. 그리고.
탕.
하고서.
즈앙은 고개를 떨구었다.
때로 역사는 잔인하디 잔인하다. 그것은 6월의 바리케이드 위에서도 다를 바가 없었을 터이다. 내 눈으로 본 것은 그랬으니 독자의 판단은 뒤로 미루어 보는 기만을 저지르려 한다. 시대의 숨결은 때로 잔혹하기도 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영웅들에게 따뜻했던 숨결이 어째서 그 젊은 이들에게는 매서운 서리바람과 같았는지를. 어째서 우리는 수많은 죽음을 지켜보았던 것과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그것을 보아야 하는지를. 이제는 우리는 안다. 알고 너무 잘 알아서 마침내 담대해지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것은 그네들이 도달한 경지다. 그것은 그저, 담담한 태도로 자신의 시체를 바라볼, 어쩌면 바라보지도 못하고 목소리만을 마지막으로 들어야 할 동지들에게 미안함을 전해야 한다는 사실이 슬플 뿐인. 그런 경지다. 동지들에게는 드러낼 수 없어 슬픔에 잠겼었고, 또한 이 년여를 자신과 같이 살아왔던 동지를 떠올리며 또 다른 슬픔에 잠겨, 출렁이는 바닷물 속 조개껍질처럼 가만히 가라앉게 되는 일이다. 천천히. 그리고 또 천천히. 아, 그러니 그 꿈은, 그네들이 꾸던 꿈은 아름다운 빛을 마지막으로 발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청년들의 세상을 내려놓으려 몸부림치고 있는 역사는 또 다른 고운 꿈을 꾸기 위해 그 몸을 뒤채고 있었다.
즈앙은 꿈을 꾸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꾸어야 할 꿈을. 사실이 아니라서 바랄 수 있는 꿈을. 그저 편안하기를. 그 자신이 아니라 세상이, 그리고 그의 동지들이, 앙졸라스가. 앙졸라스가 편안하기를. 즈앙은 꿈을 꾸고 있었다.
앙졸라스는 마지막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국을 생각하며, 그의 죽음이 이 바리케이드의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되새기며. 엄중하고 당당한 수령의 모습으로 우뚝 서 사람들에게 외쳤다. 최후의 일인까지! 자유가 세상을 덮을 때까지! 앙졸라스는 총을 들었다. 그는 꿈을 꾸고 있었다. 바리케이드 위에 휘날리는 깃발 하나가, 파리라는 거대한 도시의 일부분이었다는 사실을 잠시나마 사람들이 기억하기를. 자신이 겪었던 모든 시간들에 대한 답이 되어 돌아오기를 기도했다. 이 청년의 꿈은 다만, 빛을 발하며, 그 거리 한 가운데 서 있을 뿐이었다. 앙졸라스는 기도했다. 자신과 자신의 동지들에게 찾아올 죽음이, 부디 역사의 불꽃이 숨쉬게 하는 도구가 되기를. 부디 그리 하기를.
그리하여 그것은 정말로. 그러한 이야기였다. 봄, 손, 밤, 꿈의 이야기였다. 이해의 봄, 마주잡은 손, 따스한 밤, 빛나는 꿈. 그러했다. 다만 추락하는 것이 아닌. 날아 오를 것들의, 야누스의 찬사가 덧붙여질, 그러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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