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작업물

3월 15일의 독배.

ㅎㄱ님 커미션.

어느 죽음의 모방.

1.

연단에 올라선 앙졸라스는 숨을 골랐다.

 

 

친애하는 동지들이여.

 

 

그 한 마디를 할 때에, 수백 개가 넘는 머리들 가운데 앙졸라스가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뿐이었다. 저기, 푸른 조끼를 입은 채 자신의 정 반대편에 앉아 있는 콩브페르. 어김없이 빛나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 그 눈을 볼 때마다 앙졸라스는 알 수 없는 슬픔과 안타까움을 함께 느꼈다. 어찌하여 과거의 동지는 지금의 자신을 변함없는 눈으로 바라보는가. 차라리 일말의 공격심이나 혐오감을 내비쳐 주면 좋았을 것인데. 콩브페르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 순간 앙졸라스는 망설여서는 안 되었다.

며칠 전 온건파에서 발의한 법안이 통과를 앞둔 날이었다. 급진파들은 그것이 부르주아와 전 귀족, 루이필리프를 비롯한 왕족들에 대한 처벌을 담당하고 있는 공안위원회를 축소시키자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라 해석하였고, 그 조치가 아직은 이르다 판단하고서 이 법안을 저지하기 위한 무기로서 지도자인 젊은 앙졸라스를 내보낸 것이었다. 그 청년은 이제 의회 왼쪽을 점령하고 있는 급진파를 대신해 이 자리에서 사람들을 설득해야만 하는 입장에 처했다. 헌데 길거리에서 자신이 연단에 오르던 그 때처럼, 콩브페르의 변하지 않은 선명하고도 곧은 눈길이 폐부를 찌르는 것만 같지 않은가. 한 때의 동지는 이제 자신과 정 반대의 자리에 앉아, 과거 혁명을 위해 함께 길거리에서 마주하던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으며, 어쩌다 보니, 정신 차려 보니, 이리 될 줄도 모르고, 터져나갈 불씨인 줄도 모르고. 이들은 마치 프랑스 혁명기 갈라섰던 두 친구들의 모방품들처럼 되어 버린 꼴이었다. 맞잡았던 손을 놓지 않겠다고 생각했건만. 모든 것은 틀어졌고, 그리하여 입술이 굳어진다. 콩브페르의 그 눈빛이 자신의 말을 막아서는 것을 잘라 내며 앙졸라스는 다시 숨을 고른다. 이제 신념을 위해 입을 열 때이다. 그러므로 이 당당한 청년은 자신이 믿는 것을 내려놓지 않으려 한다.

 

 

로베스피에르 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화국과 혁명을 위협하는 자는 혁명의 언저리에 앉아 있으며, 그들은 온건주의자를 자청하고 때에 따라서는 애국심에 흠뻑 젖기도 한다고 말입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그렇다고 한다면, 아, 로베스피에르도 이러했을 것인가. 앙졸라스는 숨을 들이켰다.

 

 

가짜 혁명가가 아니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이제 한때 자신의 동지를 가짜 혁명가라 칭하고 있다. 앙졸라스는 속으로 단어를 짓씹어 보았다. 가짜 혁명가. 콩브페르는 변함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연설을 듣고 있으며, 그 끄덕임이 펌프질처럼 끔찍함을 치밀어 오르게 한다. 그리하여 앙졸라스는 연단 위에서 보이지 못할 만큼만 몸서리쳤다. 왜 자네는 나와 다른 곳을 바라보기로 했고, 나 또한 자네와 다른 곳을 바라보기로 결정했는가? 그 질문은 내내, 묻지 못한 채로 남아 썩어가고 있었다. 신념이 맞부딪히는 순간은 양보하지 않았던 그 버릇이 그대로 남은 것은 어쩌면 혁명의 성공 후, 그들이 어느 부분에서는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한 증거일지도 모를진대. 물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으므로. 이제 모방품들은 그저 그 곳에 남아 궤변과 논리의 차이에 대한 생각을 해야만 한다. 앙졸라스는 연단의 한 켠을 붙잡고 서 말을 이어 나갔다.

 

 

시민들의 피로 성공한 이 혁명은 고작 부르주아와 타협하고자 일어선 것이 아닙니다. 이 혁명은, 우리가 꿈꾸던 새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분연히 떨쳐 일어난 것이기에 결코 누군가에게 양보하거나, 건네줄 수 있는 것 또한 아닙니다. 우리는 타협할 수 없습니다. 공화국을 누구의 손에 넘기려 합니까? 부르주아들입니까? 망설이는 온건파들입니까? 아닙니다! 이 공화국은 시민의 것입니다. 결코 넘길 수 없는 것입니다.

 

 

넘길 수 없다. 절대로 넘길 수 없다. 앙졸라스는 부르튼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는 또한 이러한 상황들에 조금 지쳐 피곤했다. 그러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믿었다. 자신의 정치적 행동이 옳다는 것을. 그가 신념을 내밀 적에, 그것은 아무도 막아설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설령 콩브페르라 하더라도, 자신의 옛 동료라 하더라도. 그러므로 이제 콩브페르는 그저 반대편에 선 사람이고 또한 그 차가운 이성이 판단하는 대로 혁명이 가는 길을 막고 있는 사람에 불과하게 된다. 이 법안을 발의한 사람들의 이름 중 분명 콩브페르가 있었다. 헌데, 어째서 자신은 흔들리는가. 그 질문의 순간에, 앙졸라스는 콩브페르가 함께 걸어나갈만한 이였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나는 여기서 말합니다.

 

 

무엇을? 앙졸라스는 다음 문장을 이어 나가기 위해 잠시 목을 가다듬어야 했다. 눈을 들었을 때 콩브페르가 보였으나 그는 그것을 무시하였다. 애써.

 

 

온건파의 가면을 쓴 자들에게 이 혁명을 넘겨줄 수는 없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절대, 절대로, 이 혁명은 늦춰져서는 안 되고, 멈춰질 수도 없습니다. 저들이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이 의회의 존재 의미는 민중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폭력을 남용하자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곳에 쓰자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마주해야합니다. 혁명이 일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이 시점에서 우리가 우리 손에 든 공안위원회라는 이 신성한 무기이자 처벌 도구를 내려놓는 것은 동시에 혁명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민중은 고귀한 복수를 행하는 것이고, 저희가 그 대변자입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민중을 대변하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분명한 것은 저기 오른편에 줄줄이 앉아 있는 누군가들처럼 아직 해결되지도 못한 압제자를 향한 정당한 분노와 정의라는 것의 실현을 막는 일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공화국은 멈춰 서서는 안 됩니다!

 

 

앙졸라스는 말을 못박아 내었다. 박수가 터져 나온다.

 

 

절대로, 이 공화국을 멈춰 서게 해서는 안 됩니다!

 

 

둥글게 둘러 앉은 이들이 관객처럼, 아니, 어쩌면 콜로세움의 구경꾼들처럼 일제히 일어선다. 서슴없이 소리친다. 보라! 여기저기서, 박수, 야유, 갈채, 동의하는 외침, 벌떡 일어서서 자신에게 지지를 보내는 소리, 삿대질하는 이들, 젊은 지도자에게 감탄하는 이들. 앙졸라스는 그 군중 사이에서 콩브페르가 천천히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여전히 평온한 눈빛으로, 미소를 지은 채 일어나, 박수를 보내는 콩브페르를. 앙졸라스는 일순 아주 슬픈 얼굴을 보았다고 생각하였으며, 그리하여 소리 없이 되뇌였다. 아, 자네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청년의 몸이 모든 광경에서 비롯된 피로에 젖어 늘어진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앙졸라스는 연단을 내려왔다. 급진파 의원들이 우르르 다가와 그에게 다음 연설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지만 앙졸라스는 콩브페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곧 온건파가 콩브페르를 둘러싸 그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앙졸라스는 물었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콩브페르? 질문은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답은 없다. 돌파구처럼, 앙졸라스는 생각했다. 허나 우리는 멈춰 설 수 없어.

 

 

 

2.

연단에 올라선 이를 보던 콩브페르는 숨을 골랐다.

 

 

친애하는 동지들이여.

 

 

그 한 마디를 내뱉는 그가 눈 속으로 훅, 끼쳐 들어왔다. 앙졸라스, 어김없이 곧은 자세로 수많은 이들 앞에서 연설을 시작하려 하는 앙졸라스. 콩브페르는 그 태도에 감탄했다. 늘 그러하듯이, 그는 자신의 수령을 알고 있었다. 자네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군. 콩브페르는 속으로 중얼거리고서 눈을 감았다. 뻑뻑한 눈을 잠시 문지른 콩브페르는 다시 앙졸라스에게로 눈을 올린다. 거리에서 혁명을 외칠 때도 앙졸라스는 항상 그러했다. 혁명 그 자체를 담고 있는 사람처럼 빛나는 존재. 어느 압도적인 힘이 이끄는 것처럼 말을 하는 사람의 표상. 그러나 한 때의 동지는 이제 자신과 정 반대의 자리에 서서, 변하지 않은 목소리로, 변하지 않은 어조로 자신에 대한 공격을 담아 다시 공화국과 혁명을 외치려 한다. 거리에서 자신에게 신뢰와 애정을 담은 눈빛을 보내던 앙졸라스는 변하지 않았음을 콩브페르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지금 그를 바라보며 느껴지는 분노도, 슬픔도 아닌 착잡한 감정을 차마 드러낼 수 없었다. 서로에게서 등을 돌린 과거의 동지들이라니, 이 어찌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콩브페르는 온건파에서 공안위원회를 축소하는 법안을 발의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앙졸라스를 떠올렸다. 살아 돌아온 로베스피에르라 불리는 사람이니 급진파에서는 분명 앙졸라스에게 의회를 설득하는 일을 맡길 터. 반드시 그들은 어느 혁명기 두 친구의 모방품이 될 수밖에 없을 터. 그럼에도 온건파는 콩브페르에게 그렇게 요구했다. 여기서 우리가 무너지면 우리 모두가 끝장입니다. 공안위원회는 축소되어야 하고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며, 진보는 저들의 독재만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콩브페르는 앙졸라스와 맞서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는 앙졸라스처럼, 어느 부분에서는 변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는 이였으므로. 결론은 단 하나다. 콩브페르는 본디 버릇처럼 신념을 정면충돌시켜 보고자 하였으며, 그리하여 법안에 이름을 올린다. 그리고 앙졸라스를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다. 나는 왜 자네의 반대편에 앉아 있는가?

 

 

로베스피에르 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화국과 혁명을 위협하는 자는 혁명 의 언저리에 앉아 있으며, 그들은 온건주의자를 자청하고 때에 따라서는 애국심에 흠뻑 젖기도 한다고 말입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그렇다고 한다면, 아, 로베스피에르를 마주한 데물랭이 이러했을 것인가. 콩브페르는 숨을 들이켰다.

 

가짜 혁명가가 아니라는 것은 아닙니다.

 

 

가짜 혁명가, 그래, 자네와 나는 서로를 그리 칭하고 있지. 콩브페르는 앙졸라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니, 앙졸라스에게는 항상 눈을 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지금 이 의회에 앉아 있는 모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빛나는 금발을 가진 혁명의 화신! 아, 지금이야말로 그가 가장 빛날 때였다. 콩브페르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항상 꿈꾸어 왔던 순간이 왔을 때 자신이 무슨 역할을 해야 할 것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가 앙졸라스이기도 했고, 또한 콩브페르이기도 했다. 의회의 정 반대 자리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아야 하는 이 시간은 고통이었으나, 재차 확인의 시간이기도 했다. 앙졸라스는 불꽃이 튀는 듯한 눈으로 길고 긴 연설문을 당장 이 자리에서 뽑아내고 있는 사람처럼 말을 이어 나갔지만 콩브페르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오직 한 가지 문장만, 한 가지 질문만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자네는 어째서 나와 다른 길을 걷게 되었는가? 의미 없는 질문임은 잘 알고 있었다. 콩브페르 자신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건 앙졸라스 또한 마찬가지일 터, 하여 콩브페르는 그저 눈을 앙졸라스에게서 떼지 않았다. 제 동지에게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우정의 표시는 그것이었다. 자네의 말을 듣고 있어, 자네의 신념을 꺾으려는 게 아니라 그저 존중의 의미로 듣고 있다네.

 

 

...이 공화국은 시민의 것입니다. 결코 넘길 수 없는 것입니다.

 

 

앙졸라스의 마지막 말은 그 어떤 것보다 선명하다. 언어가 그 자체로 자신을 말한다. 넘길 수 없다는 것. 콩브페르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넘길 수 없게 된 것이 혁명이자 신념이었다. 앙졸라스는 이제 가장 큰 위협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될 것이고, 온건파와 급진파는 더욱 날을 세우고 서로를 끌어내릴 틈을 노릴 것이었다. 거리에서 전단을 돌리고 혁명을 말하며 민중들을 독려하던 때는 지났다. 이제 앙졸라스와 콩브페르는 아베쎄의 벗들이라는 이름 하에서 뭉친 것이 아니라 왼쪽과 오른쪽의 좌석으로 갈려 첨예하게 혁명의 가치에 대해 대립하는 중인 정적들에 불과했다. 그것은 세상이 아는 사실이며, 언론이 아는 사실이고 또한 정치적 동료들이 아는 사실이나. 앙졸라스와 콩브페르 두 사람만이 외면하려 들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설사 서로가 서로에게 맞서고 싶지 않다 해도 맞서야만 하는 어느 기이한 소극笑劇. 신념이라는 것은 이렇게 잔인할 때가 있었으며 역사를 아는 콩브페르는 그 부분에서 고통 받고 있는 중이었다.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대답했던 사실은 분명 혁명을 위한 신념을 내려놓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으나. 헌데, 어째서, 자신은 어째서 이리 흔들리는가.

 

 

나는 여기서 말합니다.

 

 

무엇을? 앙졸라스가 다음 문장을 이어 나가기 위해 잠시 목을 가다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콩브페르는 멍하니 그의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온건파의 가면을 쓴 자들에게 이 혁명을 넘겨줄 수는 없다는 것을.

 

 

내가 그리하듯 자네 또한 자네의 신념을 꺾지 않을 것을 아네. 콩브페르는 생각 했다.

 

 

나는 여기서 폭력을 남용하자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곳에 쓰자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마주해야합니다.

 

 

혁명은 피를 불러오지만 그 피가 과해서는 안 된다. 앙졸라스는 언제나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혁명이 성공한 지 한 달. 과연 우리는 충분한 피를 흘렸던가. 알 수 없었다. 공안위원회는 날이 갈수록 그 몸집을 불려 갔고 중심에는 앙졸라스를 지도자로 한 급진파가 서 있었다. 콩브페르는 앙졸라스가 공안위원회를 운영하는 이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허나 책임은 피할 수 없을 터. 이제는 정말로, 서로의 신념을 무기 삼아 공격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 않은가. 연설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마침내 앙졸라스는 선명한 목소리로 못 박았다. 박수가 터져 나온다.

 

 

절대로, 이 공화국을 멈춰 서게 해서는 안 됩니다!

동의하는 소리, 제 편에서 사람들이 외치는 항의와 고함 소리. 콩브페르는 반대편에서 급진파 의원들이 일어나 박수를 치는 것을 보았다. 이도 저도 아니었던 다른 이들도 일어나 그 연설에 박수를 보냈다. 앙졸라스가 굳건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한두 번 고개를 끄덕이며 연설을 마무리하는 것을 보았을 때 콩브페르는 몸을 일으켰다. 눈이 마주쳤다. 콩브페르는 일렁이는 마음속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천천히, 양 손을 들어 박수를 보낸다. 콩브페르는 앙졸라스가 제게서 눈을 떼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곧 온건파 의원들이 자신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수많은 질문과 제안과 저 정치적 공격에 맞설 방안을 퍼부어 댔지만 콩브페르는 앙졸라스가 급진파 의원들에게 둘러싸여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 자네와 나는 어쩌다 이리 되었는가? 콩브페르는 물었다. 그리고 크게 숨을 들이쉬며 생각했다. 허나 우리는 멈출 수 없게 되었지.

 

 

 

3.

<얼마만큼의 피가 흘러야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신성한 폭력이라는 말은 언제까지 유효한가? 공안위원회는 공적인 판단 아래서 보았을 때 지나치게 많은 세금을 소비하고 있으며, 이는 진보를 늦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앙졸라스,

누군가 그를 불러 앙졸라스는 손에 든 신문을 내려놓았다. 길거리 소년의 얼굴에서 자신이 아는 누군가를 보았기에 한 부 사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곳의 정치면이 온통 급진파를 향한 비판과 일부의 공격과 비난으로 가득한 일은 참으로 고약하기 짝이 없는 사고였다. 그 정면에, 콩브페르의 글이 자리 잡아 있지 않던가. 거친 언어는 아니었다. 늘 그렇듯이 자신이 원하는 바와 믿는 바를 조곤조곤 설파하는 것 뿐. 공격이라기보다는 그저 자신이 믿는 바는 이것이라는 투의 말에 가까웠기에 앙졸라스는 글을 읽다 도중에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변치 않은 동지의 모습이 견디기 힘들어진 것이다.

 

그건 또 무언가.

민중이 전해 준 소식지,

 

 

앙졸라스는 손에 든 신문을 곱게 접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급진파의 동료 중 한명이었다. 평소에는 조용하나 가끔 다소 씩씩대는 투가 과도한 사람, 그는 신문의 내용을 흘끔대더니 거칠게 대답했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안되겠구만. 주변에 앉아 있던 급진파 의원들이 피식 웃는 소리를 들었지만 앙졸라스는 웃을 수는 없었다. 어차피 곧 사라질 테니 말이야. 저 멀리서 누군가 외쳤고, 그 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던 그 젊은 청년이 앙졸라스의 앞자리에 앉더니 대뜸 말하는 것이었다.

 

 

이 자들을 정말 그냥 내버려 둘 건가, 앙졸라스?

그게 무슨 소린가.

콩브페르 이 치의 글에 많은 사람들이 요동치고 있어. 공안위원회의 축소가 어쩌면 정당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는 말일세.

 

 

앙졸라스는 콩브페르가 그 글을 쓴 이유가 자명하다고 여겼다. 자신의 신념을 말하고자 한 것. 결코 그것은 정치적 공격이 아니다. 적어도 동지적 입장에서 고려해 보았을 때 그러했으나,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아베쎄의 벗들이었던 때와는 다르다. 이제 카페 뮈쟁에서 토론하며 드러나던 사상적 차이는 자네의 생각이 그러하다면, 이라는 말 한 마디로 넘겨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 공격이자 자신의 위치에 대한 위협이 되어 쏘아진다. 저 활자들이 모두 화살이라도 된 것처럼. 앙졸라스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나 그저 그런가, 하는 간단한 의문의 말로 말꼬리를 돌리려 했다. 헌데 자신의 앞자리에 앉은 이는 끈질기게 콩브페르의 이름을 꺼내고자 하는 투였다.

 

 

콩브페르, 이 자가 하는 말이 얼마나 어이없는 것이고 말도 안 되는 말인줄 아나? 진보를 외친다는 자가 부르주아와 타협하자는 것과 똑같은 말을 하다니 말이야. 자신이 바라는 것은 오직 깨끗한 진보밖에 없다고 하면서, 스스로 우리보고 더러워지자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말을 하고 있단 말이야.

서로 신념이 다를 뿐이지 우리는 함께 진보를 믿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네. 그 입 조심하게.

자네, 이러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알고 그렇게 태평한 것인가?

 

 

그가 책상을 쾅, 내리쳤다. 앙졸라스는 차분하게, 허나 위압감 있게 그를 보았다.

 

 

무슨 일을 말하는 겐가?

 

 

그 차가운 눈, 심판자의 눈, 허나 살인자는 아닌 그 눈. 젊은 의원은 앙졸라스가 자신을 바라보는 기세에 눌려 몸을 뒤로 빼었다. 그가 말하는 것처럼 그 신성한 폭력이 담긴 눈에 그는 굴복하며 말했다.

 

 

...혁명이 망가지는 일 말일세. 앙졸라스.

고작 글 하나로 망가질 혁명이었다면 우리가 봉기하지도 않았을 걸세.

 

 

앙졸라스는 책상을 짚고 일어서며 말했다. 콩브페르의 글이 얼마나 위협이 되었는지는 상관하지 않기로 그는 마음먹었다. 그것이 정치적 공격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상황에 대해 탄식할 뿐. 앙졸라스의 말에 순간 급진파 의원들이 모여 있던 카페가 굳어졌다. 고작 글 하나로, 그래, 혁명이라는 것이 글 하나로 망가질 리가 없다는 믿음이 수군거림 안에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마침, 저 멀리서 누군가 앙졸라스에게 편지를 찾아 가라고 소리를 쳤다. 앙졸라스는 몸을 돌려 카페의 입구로 걸어 나갔다. 의원들은 경탄 어린 시선으로 말했다. 저 정도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우리의 지도자란!

아니, 그것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왜곡과 왜곡이 겹쳐 만들어내는 혁명의 영웅, 한 정파의 지도자이자 정치가. 앙졸라스는 그저 콩브페르의 옛 동료이자 지금도 그의 신념을 존중하는 혁명의 동지였을 뿐이다. 역사란 것의 잔인성은 항상 이토록 조용히 등장한다. 앙졸라스는 편지를 받아 들고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거리를 걸어가며 시린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숨을 내뱉었다.

 

카페 입구의 급사가 건네준 편지 두 장 중 한 장은 급진파 의원의 것이었다. 앙졸라스는 이대로 온건파와 콩브페르를 내버려 둘 것이냐고 거칠게 묻던 자신의 동료 의원들의 태도를 떠올리며 지끈거리는 미간을 잡았다. 어찌 해야 할 것인가. 앙졸라스는 나머지 편지 한 장을 뜯어냈다. 급하게 휘갈긴 듯한 글씨가 날카로웠다. 앙졸라스,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네. 내일이면 그들의 절반은 기소될 것이야. 자네의 의견이 급히 필요하네. 정적, 앙졸라스는 등 뒤로 드물게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기어이.

 

 

 

4.

콩브페르는 천천히, 온건파가 모이는 카페로 들어왔다. 콩브페르를 본 몇몇 의원이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그저 온화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콩브페르 뒤로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저분이 이번에 글을 쓰신 분인가? 그렇다네.

 

무슈 콩브페르, 안녕하십니까.

 

예의 바르게 다가와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이는 나이가 지긋한 의원이었다. 콩브페르는 그의 얼굴을 전에 본 적이 있다 싶어 일어서서 기꺼이 그와 악수를 나누었다. 악수와 동시에 그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띠며 콩브페르의 등을 툭툭 두들긴다.

 

 

큰일을 하고 계신 겁니다.

예...?

저쪽에 한 방 먹였습니다. 그 글 말이에요. 제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그게 무슨...

당신의 진보에 대한 신념을 존경합니다.

 

 

그 초로의 노인이 진심과 무게를 담아 그렇게 말했을 때 콩브페르는 기꺼이 웃을 수 없었다. 내 신념, 그것이 가지는 무게가 얼마이기에 나는 지금 내 동지를 공격하는 것에 대한 존경의 말을 듣고 있는가. 곧 콩브페르는 신문에 글을 다시 쓸 것이며 그것은 앙졸라스의 연설에 대한 또 다른 반격이 되리라. 생각하고서, 콩브페르는 문득 구역질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서 노인의 손을 놓았다.

 

 

저는 존경할 만한 사람은 못 됩니다. 앙졸라스야말로 존경할 만한 사람이지요.

 

 

노인의 표정이 잠깐 굳어졌다. 그러다 풀리며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겸손하실 필요 없습니다. 농담으로 받아들였는지 주변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동료 의원들이 웃었다. 콩브페르, 자네, 유머 감각이 늘었구만! 손사래를 치며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콩브페르는 그 말에 웃을 수가 없어 그저 시선을 돌리며 허탈한 감탄사 몇 번을 내뱉었을 뿐이었다. 그렇습니까. 콩브페르는 노인에게서 등을 돌려 구석에 있는 자신의 자리로 갔다. 책상 위에는 텅 빈 종이 서너 장과 펜이 놓여 있다. 마치 그레브 광장에 한때 자리하던 단두대처럼. 기어이. 콩브페르는 입술을 꽉 물고서 한참 동안을, 종이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찌 해야 할 것인가. 괴로웠다. 내 동지, 자네와 나의 과거는 이제 상관이 없게 될 것인가? 콩브페르는 글의 첫 머리를 적어내려가기도 전에 손을 멈추었다. 내가 이것을 진정 써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탓에.

 

저쪽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콩브페르에게 의원 두 명이 다가와 속삭였다. 우리에게는 강력한 언어가 필요해, 콩브페르. 마치 자네 글 솜씨라면 될 거야, 하는 믿음과 자네밖에 없네, 하는 의존이 함께 담긴 양날의 칼을 들고 다가오듯. 콩브페르는 그들이 섬뜩했다. 의도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을 뿐.

 

 

나는 이미 내 동지를 비판했네.

그는 자네의 동지라 칭할 수 없는 자야. 콩브페르.

아니, 앙졸라스는 내 동지일세.

 

그 간단하고도 단호한 말에 두 의원들은 잠시 서로를 마주보다 콩브페르에게 말했다.

아니, 자네의 정적이지.

툭, 내뱉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에 콩브페르는 글을 쓰려 놀리던 손을 멈췄다.

 

 

콩브페르, 자네 아직도 1832년에 살고 있는가? 이제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닐세. 저들이 의회의 주도권을 잡았어. 우리 목이 위험하단 말일세.

......

 

 

콩브페르는 펜을 내려놓고 굳은 표정으로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는다.

 

 

앙졸라스, 그 치가 우리를 가만히 놔둘 치인가? 자네도 일전의 연설을 듣지 않았던가.

그만하게.

 

 

입술이 천천히 떨어졌다. 콩브페르는 부정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저 대화를 중단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앙졸라스의 연설은 그저 자신이 믿는 바를 말하는 것이었는데. 적어도 그는 그렇게 믿었다.

 

 

콩브페르, 시간이 없네.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어. 이대로 멈추면 안 되네.

......

 

무슨 시간 말인가. 콩브페르는 눈을 감고 얼굴을 감쌌다. 세상을 향한 무기였던 우리의 말과 글이 서로를 향한 무기가 될 줄이야. 콩브페르는 고개를 저었다.

 

 

자네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알겠으니, 나에게 시간을 좀 주겠나? 아무리 시간이 없다 해도 내게 줄 수는 있겠지.

 

 

드물게 그 두 의원들은 콩브페르의 비아냥거림을 마주하고, 온건파의 젊은 지도자는 책상 위로 고개를 숙인다. 잠시간의 침묵 후 카페는 다시 시끄러워진다. 모든 것은 멈출 생각 없이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일상의 순간들에서부터 동지와 동지의 충돌까지. 그러므로 지금의 이 상황들은 어느 육중한 수레의 굴러감이나 다름없게 된 것이다. 너무도 무거워진 혁명 그 자체가 힘껏 달려 나가 무언가를 들이받지 않는 이상은, 그것은 점점 더 빨라 질 것이며 눈이 먼 것처럼 무고한 것들에게 상처를 내며 다닐지도 모른다. 과연 멈출 수 있는가? 아무도 몰랐다. 콩브페르마저. 그는 글을 쓰기 전 다시 앙졸라스를 생각했다.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6.

때가 너무 이르다고 말하는 것 아닙니까!

 

 

앙졸라스는 거세게 외치며 책상을 내리쳤으나, 그 누구도 움찔하는 기색조차 보이질 않았다.

안 됩니다. 나는 그 기소안에 동의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급진파 의원들은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었다. 허나 그들은 곧 기세를 되찾고 날카롭게 앙졸라스에게 말했다. 지금이 적절한 때입니다, 아니면 저희도 무너질 겁니다!

 

 

앙졸라스, 정신 차리고 현실을 보아야 할 때인데!

뭐가 현실입니까. 말씀해 보시지요. 공안위원회는 축소되지 않을 것이고 의회의 주도권은 우리에게 넘어왔는데, 그 힘을 이용해 제가 제 옛 동지를 기소해야한다는 것이 현실이 아닙니까?

앙졸라스, 내 말 좀 듣게.

 

 

나이가 있는 의원 한 명이 앙졸라스의 차가운 말투에도 굴하지 않고 일어서서 그에게 다가왔다. 진정하라는 듯이 손을 뻗으며. 앙졸라스는 길게 숨을 내뱉으며 다시 말을 내리치듯 소리내었다. 나는 그 기소안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자네가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이 기소안은 처리될 걸세.

......

허나 앙졸라스, 지금 우리 상황이 어떤가. 다시 들여다보세. 저들이 언제 다시 진보의 이름 아래 혁명을 지지부진하게 굴러가도록 만들지 모르는 상황 아닌가. 혁명에 제동을 거는 자들은 정치의 체스판 위에서 치워져야만 하지 않겠나?

콩브페르가 지은 죄가 무엇이길래,

만들어 내야지.

 

그가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가 천천히 앙졸라스를 보며 너무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는 투로 말했다. 허나 그 자가 온건파를 이끌고 있는 이상 혁명은 계속해서 느려질 걸세. 그러고서 변명이라도 하는 듯 덧붙였으나. 이미 일그러진 얼굴의 젊은 지도자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강경함으로 그를 쏘아보고 있지 않은가. 앙졸라스는 죄를 만 들어 낸다는 말 한 마디에 머리가 거꾸로 도는 것만 같았다.

 

 

이건 무슨 말도 안 되는...

앙졸라스, 내 말 듣게. 자네, 지금 이 자를 너무 많이 옹호했어. 그게 죄라면 나도 차라리 기소당하겠네.

자네는 조용히 하게.

 

저 멀리서 젊은 의원이 외치자 앙졸라스는 날카롭게 대꾸했다.

 

 

내가 내 동지를 옹호하겠다는 게 죄인가?

동지를 옹호하는 것은 죄가 아니지, 허나 정적을 옹호하는 것은 자네 목에 칼을 들이대는 일일세.

대체가...

앙졸라스는 부릅뜬 눈으로 그들 모두를 보았다. 그는 약간 두려울 때 하던 버릇처럼 더 차갑디 차가운 목소리로 외친다. 그래서 내가 살기 위해 내 동지를 죽이란 말인가? 그들은 대답한다. 그렇다고.

 

 

그래야 하네. 앙졸라스. 그래야 해.

나는 그럴 수 없어.

자네만 죽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죽을 수도 있어.

 

 

앙졸라스는 말을 아끼다가 고통스럽게 내뱉었다. 왜, 왜 하필 콩브페르인가. 아무도 듣지 못할 만큼 조용한 말이었으나 충분한 괴로움을 담고 있는 한숨처럼. 팡테옹파에는 불쾌한 침묵이 감돈다. 앙졸라스, 어서. 하는 무언의 압박을 담고 있는 침묵. 앙졸라스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외치고 싶었다. 나는 내 동지를 죽음의 길로 내밀 수 없어.

 

 

나는 할 수 없네.

자네가 안 하겠다면 우리가 할 걸세.

그는 죄가 없어!

공화국을 위해서야. 앙졸라스.

 

 

앙졸라스는 그러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가는 핏줄이 터져나가고 근육이 부어오를 때까지 손에 힘을 주고서 고통스러운 한숨을 내뱉었다. 공화국, 내 이상과 동지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앙졸라스는 자신의 신념이 무슨 가치가 있는지 스스로 되물었다. 공화국을 위해서? 혹은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앙졸라스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고 싶지 않아. 앙졸라스가 다시 중얼거리자 급진파 의원들 이 서로 눈길을 주고받았다.

 

 

앙졸라스, 지금이 아니면 영영 때를 놓칠 걸세. 우리는 멈출 수 없어.

 

지금이 아니면. 앙졸라스는 입을 다물었다. 지금이 아니면?

 

 

 

 

7.

다음날 콩브페르는 의회에서 곧바로 체포되어 공안위원회에 기소되었다.

 

 

8.

콩브페르가 사형을 선고받은 후, 앙졸라스는 급진파의 대표직을 내려놓았다.

 

 

 

 

9.

아무도 콩브페르의 죄명을 몰랐다.

콩브페르는 뻑뻑하다 못해 얼어붙은 것 같은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여기가 어딘가. 콩브페르는 눈을 이리저리 굴려 정신을 차려 보았다. 차가 운 감방. 축축하고 더러운 감방에서 콩브페르는 죄수복을 입고 있었다. 이제야 머릿속에는 그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사형수로구나. 곧 소크라테스처럼 독배를 들어야 할 처지인.

 

 

끌어내!

 

 

콩브페르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부러진 발목이 시리게 되지 않는 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쇠사슬에 발목을 아프게 움켜쥐었다. 근육이 뜯겨져 나가는 고통의 일상은 그를 무디게 만들며, 신음소리조차 드물게 흘러나오도록 목구멍을 잠그었다. 오늘은 또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콩브페르는 건장한 사내들이 자신을 양 쪽에서 들어 올리는 것을 느꼈다. 어디로 가는 것인가.

정신 차리쇼.

 

 

철썩, 물비린내가 콩브페르를 뒤덮었다. 머리에 흥건했던 피가 씻겨 내려와 콩브페르의 마른 입술을 적셨다. 감방의 좁은 통로를 질질 끌려가던 콩브페르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물이 흘러내려 감방의 통로에 핏자국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묵직한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나무 의자가 끌어내려지는 소리가 날카롭게 귀를 찌르다가. 눈앞에 뜨거운 횃불이 훅, 다가왔다. 눈꺼풀 너머로 그 열기가 어른거린다. 콩브페르는 자신을 붙잡고 있는 간수들의 팔마저 버거워 늘어졌다.

 

 

그 손 놓게.

 

단호한 목소리에 콩브페르는 눈을 떴다. 앙졸라스?

 

 

어서!

 

 

앙졸라스의 재촉에 간수들은 순순히 콩브페르를 놓아 주었다. 제대로 가누어지지 않는 몸뚱이가 퍽, 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감옥의 돌바닥에 부딪히고. 콩브페르는 그들이 면회실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급하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었다.

 

 

자네인가...?

그래, 나일세.

 

앙졸라스가 콩브페르를 부축해 올렸다. 의자에 앉히고서 얼굴을 한참동안 들여다보던 앙졸라스가 비틀어 쥐어짜내는 소리로 말했다. 자네, 얼굴이 많이 상했구만.

 

별 것 아닐세.

별 것이 아니기는...

 

 

앙졸라스가 피에 젖은 콩브페르의 얼굴을 매만져 보다 조용히 흘려내었다. 고통처럼. 옛 동지이자 정적이며 또한 공화국의 죄수를 훑어보다가, 앙졸라스는 알았다. 그가 아주 성치 않은 상태에 있음을.

자네 발목은 또 왜 이런가, 혹여...

콩브페르는 뺨 위에 얹어진 앙졸라스 손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덜덜 떨리는 것을 감추고자 애쓰면서.

 

 

자네는 괜찮은가?

그걸 물을 때가 아닐세, 콩브페르.

자네 얼굴도 상했어.

 

 

그 여상한 질문 하나, 마치 어느 날 아침에 만나 묻던 것처럼. 그 말을 들은 앙졸라스는 슬프게 미소 지으며 답할 수밖에 없었다. 자네 걱정할 기운은 남아 있어. 앙졸라스가 콩브페르의 얼굴을 천천히 더듬어 나간다. 이리저리 살핀다. 그 손길에 콩브페르는 웃었다. 여전히 옛 시절의 다정함이 남아 있음이 느껴졌기에. 그 시절에, 콩브페르는 무뚝뚝한 얼굴 아래 숨겨진 표정이 드러나는 순간을 좋아했다. 나의 동지,

 

 

앙졸라스, 자네 많이 힘들었는가보이.

자네를 이곳으로 보내 놓고서 내가 어찌 편하겠는가.

 

 

콩브페르가 두 손으로 앙졸라스의 손을 맞잡는다.

 

 

그럴 것 없어.

무엇 말인가.

자네가 힘들어 할 필요 없다는 말일세.

아니, 나 때문일세. 자네도 잘 알지 않나.

 

앙졸라스는 콩브페르의 말을 끊어냈다. 단말마의 비명과도 같은 말이었다. 나 때문이야. 콩브페르. 사지로 몰아넣은 자가 자신이라는 앙졸라스의 고백을 듣는 콩브페르의 마음은 잠시간 함께 비명을 질렀으나, 곧 그는 본디 하던 대로 길을 이끄는 이가 된다. 함께 걸을 만한 이, 그것이 콩브페르였으므로. 이 친구, 그래서 얼굴이 이리 상했는가. 콩브페르는 그리 말하며 힘이 들어가지 않아 덜덜 떨리는 손에 어떻게든 힘을 주어 보려 하였으나, 그것은 그저 앙졸라스의 손에 간절히 매달린 꼴이나 다름없게 보였다.

 

앙졸라스,

...내가 자네를.

나는 자네를 이해해.

 

 

콩브페르는 희게 웃었다. 앙졸라스의 손을 잡고. 그렇게 말했다. 나는 자네를 이해해. 누구도 우리를 멈출 수 없었을 뿐이야. 역사는 그렇게 흘러간다고 믿지 않았던가.

 

 

우리가 뮈쟁에서 토론을 하던 나날들을 기억하는가?

콩브페르...

전부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느 날 앙졸라스 자네가 내게 했던 말은 기억나네. 비가 오는 날이었어. 동지라면 다른 이의 슬픔과 죄책감까지 기꺼이 짊어지고 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야.

......

나는 자네에게 동지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뿐일세.

 

 

앙졸라스는 이를 꽉 깨물었다. 가슴 속에서, 뜨거운 울음이, 차가운 슬픔이 솟아올라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차마 눈물을 흘릴 수는 없어 앙졸라스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 내가 그렇게 말했었지. 간신히 한 마디를 내뱉고서 고개를 수그린 앙졸라스의 흩어진 금발을 보던 콩브페르가 중얼거렸다. 자네가 연설하는 모습을 보던 것이 좋았는데.

 

연단 위에 선 자네는 언제나 빛나는 혁명의 태양 같았지.

늦은 밤에 콩브페르 자네가 내 연설문을 수정해 주던 것이 기억나네.

 

 

앙졸라스의 잇새로 한 마디의 추억이 흘러나왔다. 콩브페르는 그 말에 다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힘겹게 끄덕였다. 그래, 그랬었지.

 

 

앙졸라스 자네는 원체 글을 빨리 쓰는 이 아니었던가. 나는 오래 걸리는 사람이니 늦게까지 뮈쟁에 앉아 있던 일도 흔했었고.

펜을 놀리면서 생각하다가 자네가 내게 질문했었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자네 대답이 기억나네. 앙졸라스,

 

 

콩브페르는 꿈을 꾸는 것과 같은 얼굴로 천천히 단어 하나씩 내뱉었다.

자네는 동지라고 했어.

내가 그리 말했었지, 그래. ... 그랬었던가.

벗이라는 것은 신념을 나눈 자, 다른 길을 걷더라도 서로를 사랑할 자들이라 했었네.

앙졸라스의 눈에서 기어이 눈물이 떨어져 콩브페르의 죄수복을 적셨다. 피로 물든 천 위로 한 방물, 눈물이 떨어져 번지고.

 

 

울지 말게나.

 

 

콩브페르가 앙졸라스의 뺨을 쓰다듬었다. 애써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 주며 무너진 자신의 벗에게 말한다. 나는 괜찮네. 앙졸라스는 다 찢겨지고 부르튼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는 콩브페르의 손을 잡고 억눌린 울음을 토해 냈다.

 

 

그러지 말아, 제발.

자네를 원망하지 않아. 나는 자네를,

 

콩브페르의 목소리가 울렁였다. 기어이 콩브페르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자네를 이해하네. 앙졸라스. 자신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 없이 우는 앙졸라스의 손을 쓰다듬으며, 콩브페르는 말했다. 나는 자네를 이해해.

 

 

나를 용서하지 말게.

그게 무슨 소리야, 앙졸라스.

자네를 사지로 몰아넣은 나를 용서하지 말라는 걸세. 콩브페르, 내가 자네를 이 차가운 감옥으로 들여보냈어. 자네의 발목을 부러뜨리고 얼굴을 찢은 것은 결국 나야. 나를 절대 용서하지 말게.

자네는 내 벗이잖나.

 

 

자네가 말했던 것처럼. 앙졸라스가 비참한 표정과 눈물로 뒤덮인 얼굴을 들어 콩브페르를 바라보았다. 콩브페르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가만히 입을 열어, 찢겨지고 망가진 몸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를 단단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을 뿐이다.

 

 

자네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영원히 나의 벗이야. 앙졸라스.

......

그러니 제발 울지 말게나.

 

 

앙졸라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 말에 완강히 반박이라도 하듯이. 그러나 또한 수용하듯이. 빛나는 금발과 눈물에 젖은 푸른 눈동자가 콩브페르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자네 또한 마찬가지네. 콩브페르. 그렇게 말해 주어 고마워.

아니, 영원히, 어쩌면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벗이네.

앙졸라스,

 

 

콩브페르가 천천히 기운이 빠져 나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네, 그런 말은 왜 하는가... 앙졸라스는 입술을 달싹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네는 나의 벗이야. 힘주어 잡은 손 사이로 어떤 결연함이 느껴졌다. 쾅, 철문이 열렸다. 나와, 하는 말 한마디. 콩브페르는 면회 시간이 다 되었다며 자신의 양 팔을 거칠게 잡고 앙졸라스에게서 떼어내는 손길에 저항하고 싶었다. 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간수들은 자비 없이 콩브페르를 끌어냈다. 앙졸라스, 앙졸라스, 입에서 쇳소리가 나왔다. 철문 사이로, 바닥에 꿇어 앉아 여전히 눈물 흘리고 있는 앙졸라스가 보였다.

 

 

 

10.

밤,

마지막 밤. 잔인하도록 흘러가는 시간이 피부를 짓눌러 고통스러운 밤. 숨통을 짓죄어 오는 어둠, 그리고 새벽.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이들에게는 또 다른 날,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이 될 날. 앙졸라스는 자신의 방을 정리했다. 글들은 불태웠다. 깨끗한 옷을 입고, 숨을 가다듬었다.

콩브페르는 그 날 차가운 감방 바닥에 누워 창살 사이로 들이치는 어둠을 보고 있었다. 날이 밝아올 때 쯤, 간수들이 자신을 데리고 갈 것이었으므로. 어김없이 흘러가는 어둠을 보고 있자니 마음은 그저 평온할 뿐이었다. 억눌러 왔던 눈물은 이미 다 쏟아낸 후였으니. 콩브페르는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아니, 막상 마주하니 할 것도 없었다. 자신은 이렇게 되었고, 그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누군가를 탓할 일도, 저주할 일도 없었다.

 

 

 

11.

콩브페르는 다음 날 아침 감옥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끌려갔다. 그곳에는 앙졸라스와 사형 집행인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어이 내가 죽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벗에게 미안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콩브페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치 비현실적인 오페라처럼, 눈앞의 광경이 휙휙 스쳐 지나갔다. 사형 집행인이 독배를 따라 제 앞에 놓아두고, 잠시간 침묵하였다가, 마지막 말이 없느냐고 물었다. 콩브페르는 정신을 올바르게 세우려 애를 썼다. 앙졸라스에게 유언을 말하겠다는 콩브페르에게, 사형 집행인 은 무표정하게 그리 하라고 대꾸하고 방을 나갔다.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이는 자신의 벗이자,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 믿었던 동지였으니. 무서울 것은 없었다. 그래서 콩브페르는 평온하게 내뱉었다.

 

 

잘 지내게. 나의 벗.

 

 

앙졸라스는 기묘한, 그 무언가, 허탈함과 슬픔과, 결연함이 뒤섞인 미소를 지으며 콩브페르의 앞으로 다가왔다. 천천히. 콩브페르는 그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푸른 눈동자에 비친 자신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도 같았다. 앙졸라스는 손을 뻗어 콩브페르의 앞에 놓여 있던 잔을 잡았다. 찰랑이는 독배를 든 앙졸라스의 눈에서 한 방울,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단숨에 잔은 비워졌다. 앙졸라스가 테이블에 잔을 내려놓기도 전에, 그는 쓰러졌다. 금발이 마치 빛을 흩뿌리는 것처럼 흩어졌다. 안 돼, 콩브페르는 내뱉었다. 앙졸라스, 안 돼. 붉은 외투가 검은 감방의 빛 아래서 쨍하도록 밝았다. 앙졸라스는 울컥울컥 올라 오는 피를 내뱉으며 웃었다. 콩브페르,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앙졸라스가 중얼거렸다.

 

 

나는 벗으로서 나의 의무를 다하려는 것 뿐일세.

앙졸라스!....

 

콩브페르는 그 앞에 무릎 꿇었다. 푸른 눈에 실핏줄이 비쳤다. 안 돼. 앙졸라스... 콩브페르는 흐려져 가는 앙졸라스의 눈빛을 보며, 벗의 몸을 붙잡고 울었다. 안 돼! 감방 안에 처절한 비명이 정정 울렸다. 콩브페르는 쇠사슬을 절그럭 거리며 테이블 위에 있던 독배를 붙잡았다. 자네의 몫은 내가 마시겠네. 내 것은 자네가 들이켰으니. 콩브페르는 간절한 손길로 독주를 부어 단숨에 들이켰다. 식도를 타고 독이 천천히 내려갔다. 콩브페르는 앙졸라스가 입을 움직이며 무언가 말하려는 것을 보았다. 콩브페르는 다 비운 잔을 내려놓으려다 비틀거리며 쓰러지고. 땡그랑, 잔이 돌바닥에 부딪혀 날카로운 소리를 내고, 의회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이들은 이제 그때처럼 마주하여 서로를 본다.

콩브페르는 자신의 눈앞에서 앙졸라스가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쿨럭, 하고 입으로 올라오는 피를 내뱉자 앙졸라스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이렇게 되었을 것을. 콩브페르는 경련하듯 꿈틀거리고 있는 벗의 손을 붙잡았다. 앙졸라스가 미소를 지었다. 콩브페르는 그 얼굴을 마주보며 힘겹게 입꼬리를 올렸다. 콩브페르, 앙졸라스. 우리가 서로를 죽인 건가? 아니, 우리는 서로를 살렸네. 그래, 자네와 나는 서로를 살렸어.

창살 사이로 햇살이 비쳐 왔다. 드디어, 멈추었다. 죽어서 멈추었다. 그리고 서로를 살려서 멈추었다. 누가 굴러가는 역사의 바퀴를 멈출 수 있느냐 묻는다면, 이리 대답하라. 그것은 두 죽음으로 멈춘 것을 내가 똑똑히 보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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