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타적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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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향녹차 by 참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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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으헉! 너, 너, 너 그거 뭐야!"

"뭐긴 뭐야, 사람을 보고 지금..."

아, 나 말하는 게 아니구나.

급히 목을 감싸 가렸지만 유고는 이미 놀랄 대로 놀란 뒤였다. 너무 펄쩍 뛰며 비명을 질러대서 나까지 덩달아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하마터면 남는 손 대신 머그를 들고 있던 손을 쓸 뻔했는데, 차라리 그랬으면 커피 쏟고 수습한다는 핑계로 유고를 딴 데 정신팔리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뭐냐고오! 누가 우리 야옹이 목을 다, 다, 다 그렇게 해놨어? 뭐야? 어떤 새끼야!"

"아침부터 이게 무슨 난리야……어떤 새끼?"

입막음할 틈도 없이 우키까지 불쑥 튀어나왔다. 전직 괴도 자존심 지켜주는 인간이 하나도 없어, 어떻게 된 집구석이.

유고는 늘 나를 고양이라고 불러대지만 사실 진짜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니는 사람은 우키다. 하도 발소리가 나지 않아 가끔은 초능력으로 둥둥 떠 다니는 게 아닌가 관찰해보고 싶기까지 했다. 이런 순간에는 특히나 더.

"알반 목이 왜? 부러지기라도 했어?"

"이거 봐!"

"뭘 봐! 어따 손을 대! 하지 마세요! 안 돼요!"

"넌 이럴 때도 그런 장난이나 쳐?!"

이런 순간이니까 벗어나려고 그러는 거다, 멍청아.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난리도 아닌 주제에 그 멍청이는 힘만 셌다. 유고가 작정하고 달라붙으니 커피잔까지 든 채로 버티기가 쉽지 않았다.

허망하게 떨어져나간 손 아래 내 목덜미가 어떤 꼴인지는 유고와 우키가 그렇게 경악하는 눈빛을 날려대지 않아도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좀, 삼가줬으면 좋겠는데……하긴 나라도 쟤네가 이 꼴 해서 돌아다니면 가만 있지는 않을 것 같긴 해. 터무니없게도 심장이 간질거렸다.

"사람 꼴이 아니네. 사람이 만든 꼴도 아닌 것 같고."

얼룩덜룩 시뻘겋고 시퍼런 순흔과 잇자국, 검게 변해가는 손자국까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내 목을 다가와 들여다 본 우키가 일축했다. 표현 너무 고상한 거 아니야? 아무리 우리 셋 다 인간이 인간 취급도 못 받는 동네서 살다 왔다 해도 말이지.

"우웅, 옆집 개한테 물려서 이렇게 됐어.

"옆집 개 안 키우잖아."

"고양이?"

"이자벨 아줌마 햄스터 키우시던데?"

"햄스터 화나면 꽤 무서운 거 알아? 엄청 세게 물더라."

"알반."

우키는 거의 언제나 조용히 말하는 편이지만, 이 나직한 부름은 평소의 차분함과는 다른 종류다. 가만히 끝음에 힘을 주어 맺는 '알반'은 일종의 경고일 것이다. 드디어 내 팔을 놓아준 유고도 열렬히 고개를 끄덕이며 눈에 힘을 빡 주는 게 보였다. 딱히 이 두 사람이 무서운 건 아니지만 이대로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알비, 네가 뭐든 혼자 해결하려고 하는 건 알지만."

뭐라고 말할까 혀를 굴리는 틈에 우키가 먼저 느리게 말을 이었다. 저걸 부정해 봤자 내가 생 옥수수를 하나 다 씹어먹겠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취급이나 받겠지, 그러니까, 개소리라고 무시당하겠지……

"너답지 않게 제대로 숨기는 시늉도 못 할 정도면 심각한 거 아니야? 아무나 붙잡고 도와달라고 해. 우리끼리는 그래도 되잖아."

단호한 지적을 유고도 냉큼 받아 거든다.

"우리끼리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도 도와줄걸! 이러고 니나에게 간다고 생각해 봐, 꼬리 아홉 개 다 나오는 거 볼 수 있을지도 몰라. 엄청 놀라면서 화내줄 텐데."

"우우. 니나 꼬리는 졸면서도 나오고 취해도 나오잖아."

"우리 야옹이, 꼬투리 잡는 거 보니 할 말 없나 보네."

아, 눈치는 다들 빨라가지고.

가족들의 걱정 어린 시선은 분명 따듯하고 간지러운데, 어떤 인간 같지도 않은 게(우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말이다) 물고 뜯고 씹어놓은 상처는 그 부드러운 염려가 닿자마자 두 배로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사람 몸뚱이는 대체 왜 이 모양인지 알 수가 없다. 열기가 더 번지기 전에 어떻게든 하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 상처를 벅벅 긁을 뻔했다.

“집에 경찰도 사는데 이게 무슨 꼴인지 모르겠다.”

유고가 그렇게 투덜거리지 않았더라면 정말 두 사람 눈앞에서 피를 보았을 것이다.

두 사람의 눈은 내가 들여다볼 수 없는 거울이다. 보지 않아도 그 사나운 잇자국으로부터 들불처럼 번졌을 홍조를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이제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덥고, 뜨겁고, 아프게 욱신거린다. 저릿한 고통이 심장을 쥐어짜 계속해서 쿵쿵 뛰게 만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 기분은 가파른 상승세를 타는 중이다. 아침부터 가족들에게 괜한 걱정이나 끼쳤고, 한동안은 날이 더워져도 꼼짝없이 목티 신세를 져야 하는 데다가, 우리 셋이 공유할 만한 경험이나 심상 따위야 뻔할 뻔 자니 앞으로 저 두 사람에게서는 하드한 BDSM 플레이에 심취해 사는 구제불능 마조히스트 취급이나 받게 생겼는데도.

정말로 좋을 이유라곤 하나도 없는데, 이성도 논리도 찾아볼 수 없는 아찔한 기쁨이 목을 타고 꿀렁꿀렁 넘어가서, 너무 아프고, 하지만 죽도록 달았다. 어쩔 때는 숨 쉬기보다 더 쉬웠던 거짓말을 한 마디도 짜낼 수 없을 정도로.

"나 진짜 괜찮아.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야."

"알반."

"정말이야. 문제 생기면 바로 말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둘 다 날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니까. 내가 혼자서도 뭐든 잘한다는 게 공짜로 도와준다는 사람 굳이 마다한다는 뜻은 아니거든?"

그리고 아무리 가족이래도 이런 걸 아침부터 자세히 설명할 계제는 아닌 것 같다, 덧붙였더니 둘은 날 한 대 쥐어박고 싶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결국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 너희도 가족 앞이 아니라 고해소에서도 못 털어놓을 취향 하나씩 있을 것 같긴 했다.

제 살 깎아먹는 짓밖에 더 되지 않는 투닥거림이 잠시 이어졌다. 유고는 헤드락을 걸겠다고 덤벼들었고, 나는 걔 정수리에 커피 쏟아버리겠다고 유치한 협박이나 곁들여가며 도망쳤다. 아일랜드 식탁을 빙빙 돌았더니 커피머신을 만지던 우키는 그 잠깐도 참아주는 법 없이 닥치고 꺼지라고 구수한 욕을 쏴댄다. 우리는 찔끔 어깨를 움츠리며 분부 받잡아 거실로 꺼지려고 했는데, 눈에 쌍심지를 켠 우키가 나만 붙잡아 돌려세웠다.

"응? 왜?"

"보기 흉하니까 가리고 있어."

어디선가 나온 손수건으로 꼼꼼히 목을 가려주더니, '약 없으면 이따 내 방으로 와' 하고 퍽 친절하게 굴지 않겠는가?

덕분에 시끄럽다고 비척비척 걸어나온 펄거에게는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우키를 껴안고 뺨을 비비며 애교부리는 걸 들켜서 아침 댓바람부터 기운도 좋다는 핀잔과 떨떠름한 눈빛을 세트로 받긴 했어도 이만하면 선방이다. 먼저 거실 소파에 자리잡은 유고가 웩, 성의도 없이 토하는 시늉을 해서 한바탕 더 투닥거릴 뻔했는데, 정말로 질려버린 게 분명한 우키가 빽 소리쳤다.

"가서 써니나 깨워 와! 유고, 너는 눈곱 좀 떼고!"

"쟤는……가끔 진짜 엄마처럼 굴 때가 있다니까."

"한 달에 한 번 정도?"

"나는 일주일에 한 번쯤이라고 봐……."

"네가 애라서 그래."

"말 다했냐? 넌 뭐 대단한 어른이라 그렇게 짐승한테 물어뜯긴 꼴을 해가지고 다니세요?"

"어른이니까 이러고 다닐 수 있는 거지. 애가 이러고 있으면 진짜 큰일나는 거 아냐?"

유고는 2층까지 다 올라오고 나서야 마지못해 수긍했다.

"집안 꼬라지 잘 돌아간다. 뭔 말을 못하겠다니까, 이 타락의 화신들 앞에서."

"넌 아니고?"

"난 아니지! 난 따지자면 지금 퍼져 자는 놈에 더 가깝지! 야, 너도 정신 바짝 차려. 뭔 일 있으면 걔한테라도 가서 말하라고. 어쨌든 걔는 경찰이고……그리고 네 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 게 뻔하잖아."

멀쩡하게 살 팔자가 아니면 최소한 멀쩡해 보이는 놈이라도 옆에 둬야 한다고, 유고는 별 듣도 보도 못한 개똥철학을 펼치다가 아니다, 걔도 멀쩡하진 않은데, 아무튼……어쩌고저쩌고 꿍얼거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나는 써니의 방문 앞에 홀로 남겨졌다. 누가 봐도 졸음이 덜 가신 걸음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충동적으로 물었다.

"써니는 이런 짓 안 하겠지? 그러니까, 모르겠지."

"당연하지. 걔가 싸가지가 바가지긴 해도 뭐, 나쁜 놈은 아니잖아. 너도 어디 가서 개만도 못한 놈이랑 놀지 말고 좀 건실한 사람 찾아보면 안 되냐? 경찰공무원이 있는 집구석에서 진짜 이게 뭔 날벼락이야……."

화장실 문이 닫혔다.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나도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니까, 내 방에 달린 문을.

시트도 이불도 내가 걷어내고 나간 그대로였다. 헝클어진 짧은 금발이 흰 시트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졌다. 반듯하게 누워 있던 넓은 어깨가 움찔거리다가 홱 돌아갔다. 문을 여는 소리에 반응한 것 같은데, 암막 커튼을 확 걷어버리자 눈살까지 사정없이 찌푸리며 또 반대로 돌아눕는 모습이 이상하게 귀여워 보였다.

"써니, 일어나서 내려오래. 우키가."

"……."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가 뭐라고 웅얼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차피 '오늘 출근 안 한다'거나 '싫어 더 잘래'거나 입에 붙은 욕이거나 할 테니 알아들으려 애쓸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나는 그저 써니가 내 침대에서 그러고 뭉개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아 장난스레 그의 위에 모로 엎어졌다. 오만상을 다 쓴 얼굴을 들여다보며 킬킬거리고 있자니, 얇은 이불 속에서 불쑥 솟아 나온 써니의 팔이 나를 휘감아 품으로 당겼다.

"아침 안 먹을 거야?"

"이거 뭐야?"

부지불식간에 우키가 묶어준 손수건을 빼앗겼다. 써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내 목을 심각하게 노려보았다. 미안……하고 속삭이는 게 듣기 싫어서 나는 꿈틀거리며 그의 두 팔 안에 더욱 파고들었다.

조금 마른 입술에 쪽쪽 가볍게 입을 맞추자 써니의 표정도 한결 풀어졌다. 간밤에도 실컷 매달렸던 팔이 허리와 등을 강하게 껴안아주었다. 안고 있는 사람은 따지자면 그인데 어리광부리듯 이마를 비벼 오는 쪽도 그였다. 벗은 어깨와 상완이 이만하고 보기 좋은 입매 속에 숨은 이로는 사람을 이렇게나 물어뜯어놓은 남자가 귀엽게 구는 순간이 너무, 너무 좋아서 덜컥 겁이 날 정도다. 심장을 꺼내 살살 긁어보고 싶을 만큼 간지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수상쩍을 만큼 기분이 좋고,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아찔하게 기뻤다. 갖다 붙일 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피로 이어진 건 아니지만 감히 그보다 더 소중하다 단언할 수 있는 가족들의 걱정과 배려, 험악하게 투닥거릴 때도 단 한 번도 잊어본 적 없는 굳은 믿음과 다정한 우애. 드러내면 드러내는 만큼 받아들여주고, 감추면 감추는 만큼 기다려주는 형제들 사이에서 나는 이따금 참기 어려울 만큼 실룩거리는 입꼬리를 감추느라 애를 먹었다. 우키와 유고, 펄거의 시선과 목소리가 내게 머무르는 동안 나는 완벽하게 안전하고 평안하다. 기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게 더 알맞은 말일 것이다.

그게 전부가 아닐 뿐이다. 거짓말하기가 어려워지는 사람들 앞에서 굳이 숨겨야만 하는 것이 생기고, 그 아프고 쓰라린 비밀이, 가장 근사한 비밀을 독점하고 있다는 깨달음이 온 마음을 썩혀버릴 만큼 달아서 가끔 울고 싶어질 뿐이다.

"많이 아파?"

"으응, 조금."

"아……미안. 내가 못 참고……그러려던 건 아닌데, 그게."

코앞에서 마주한 써니의 두 눈은 다른 형제들과 다를 게 없었다. 걱정과 미안함, 염려와 애정이 가득 담긴 아름다운 청보랏빛 눈동자. 창을 등진 섬세한 속눈썹과 우아한 눈매에 쏙 들어가 평소보다 짙게 반짝거렸다.

다정하기만 한 이 눈이 지난 밤에 어떤 욕망으로 번들거렸는지를 기억한다. 광기에 가까운 욕심과 가지런한 이를 어떻게 나란히 드러냈는지는 이 지붕 아래, 아니 이 세상에 오직 나만이 아는 비밀이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은 모조리 틀려먹었다. 나는 그들에게 이 비밀만큼은, 이 남자 하나만큼은 가르쳐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

사람 목을 사람 아닌 꼴로 물어뜯어놓은 짐승만도 못한 새끼가, 남을 이렇게나 험하게 다루는 나쁜 놈이, 어쩌면 개자식이,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다정하고 정의로운 써니일 거라고는 다들 평생 상상도 못 해봤으면 좋겠다. 경찰도 사는 집에서 이런 꼴로 돌아다니냐고 한탄하면서, 바로 그 경찰이 간밤에 숨도 못 쉴 정도의 힘으로 내 목을 잡아 짓누르며 목과 어깨를 물어뜯고 상처를 핥고 또, 울고불고 애원하고 비는 것도 깡그리 무시하며 몇 번이나 내 안을 깊이 파고들어 제 욕심을 채웠을 거라고는 다같이 벽에 똥칠하는 날이 와도 몰랐으면 좋겠다.

조심스럽게 뺨을 어루만지는 이 커다란 손이 또 어떤 식으로 나를 다룰 줄 아는지, 엄격하고 금욕적인 저 얼굴이 어떤 사나운 본능으로 일그러질 수 있는지……

"써니."

너라면 절대 이런 짓 안 할 거래. 그 말을 들은 순간 왜 그렇게 기뻤는지 모르겠어. 아니, 알지만 그마저도 비밀로 하고 싶어. 히죽히죽 새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불러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기만 하는데도 써니는 날 탓하지 않았다. 조금 굳어 있던 얼굴이 마저 풀리며 픽 웃어주는 게, 정말, 미치도록 좋았다. 이렇게까지. 이런 생각까지 할 정도로 그가 좋았다. 그가 나만의 비밀이란 사실이.

"사실 하나도 안 아파."

"거짓말이지, 알비."

"진짠데."

"알반."

우키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가 크게 다를 것 없는 경고를 실어 내 이름을 불렀다. 다시 얼굴이, 물어뜯긴 목이, 쿵쿵 뛰는 심장께가, 그리고 팔과 다리로 이어져 손끝 발끝까지 온통 벌겋게 뜨거워졌다. 짜릿하고 달콤했다.

단 한 번도 써니에게 이러지 말라거나 이러면 아프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다. 몇 번이나 몸을 섞고 다른 형제들 모르게 서로의 침대에서 일어나는 일이 잦아지는데도 그는 여전히 힘 조절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어느 정도로 참아야 하고 또 어느 정도로 멋대로 굴어도 되는지 감도 잡지 못했다.

전적으로 내 탓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 보기에도 절대 이런 짓 하지 않을 것 같은 네가, 퉁명스러운 척해도 사실은 다정한 네가,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렇게도 헌신적이고 사려깊은 네가, 오직 내게만 가눌 수 없는 감정과 욕망을 쏟아붓는 게 좋아서. 어떤 형태로든 내게 남기는 모든 게 다 좋아서……

단단하고 거친 손끝이 물어뜯긴 상처를 어루만졌을 때, 그 벅찬 비밀이 나도 모르게 조금 흘러넘쳤다.

"거기……"

"아파?"

"아니, 거기……키스해줘."

천천히 다가오는 숨이 터무니없이 무거웠다. 눈꺼풀을 지그시 누르는 황홀경에 굳이 저항하지 않았다. 욱신거리는 상처에 써니가 다시 이를 세웠을 때, 나의 캄캄한 세상에 그가 남기는 고통이란 오직 아득한 행복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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