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푸른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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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시로 선단은 우주해적 출신 선조가 어쩌다 떼돈을 벌어 이름이 알려진 케이스다. 말은 제3외행성계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비전이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그 뒤로도 쭉 그냥 돈 많은 우주해적, 깽값 물어줄 자신 있는 우주깡패, 뭐 그런 존재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제는 그 시절처럼 보이는 우주선 다 공격해가며 털어먹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게 되어 좀 더 다방면의 착취와 약탈을 꿈꾸게 되었다는 차이 정도나 있을까?
돈 많고 버릇 나쁜 놈들이 온 우주를 쏘다니며 할 일이 달리 뭐가 있겠는가. 선대 카네시로 보스에게는 사생아가 많았다. 아주아주 많았다. 나도 그 중 하나라고는 하는데……유전자 검사 결과를 받아보고도 믿기지 않더라.
보스가 보낸 사람들에게 끌려가 처음 그를 대면했을 때도, 자기 사생아들 긁어모아 정식으로 입적해주겠단 미끼를 내걸며 경쟁이나 붙이던 악취미에 휘말렸을 때도, 그래서 뒷골목을 전전하던 시절엔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도 현실감이라곤 쥐뿔만큼도 느끼지 못했다. 카네시로 선단에서 가장 화려하기로 소문난 우주선에 며칠 묵었을 때도, 신개척지의 캠퍼스에 던져졌을 때도, 그래서 연방정규탐사선을 탈 자격을 갖추어 처음 정거장에 입선했던 때도 나는 항상 나도 모르는 어딘가에, 아무것도 아닌 시간에 부유했다. 무중력 훈련실까지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비현실적으로만 보이는 창문 너머에 나 홀로 쓸 만한 공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온 우주를 전세낸 듯한 기분이 들 때면 나는 옆에 떠 가는 사람들과 정 반대로 머리를 둔 채 가없는 무력함을 곱씹었다. 다이아몬드 팔찌 하나 훔치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는데……머나먼 고향에서는 모든 것이었던 광물이 외계에서는 큰 가치 없는 돌멩이 취급이었다. 훔칠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침대 옆에 머리를 쾅쾅 가져다 박을 게 아니라면 비참해지기를 멈출 수 없었다. 피붙이. 부와 명예. 승리. 나만의 자리. 어떻게 해도 가질 수 없는 것들. 변치 않거나 영속하는 것. 누구에게도 없다고 코웃음치기는 쉽지만, 한 번이라도 가져보고 싶을 뿐이란 사실을 전하기는 그토록 어려운 삶. 혹은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너였을까? 나는 다이아몬드를 굴러다니는 돌멩이로 만드는 남자에게만은 무엇이나 털어놓았다. 항성으로 빚어 만든 것처럼 아름답고 달의 그림자에서 막 꺼내온 것처럼 서늘한 눈을 마주한 채로는, 내 안에 든 시끄러운 생각이 멋대로 튀어나가 그 빛나는 사람에게 달려드는 것을 좀처럼 막을 수가 없었다. 덕지덕지 들러붙는 마음이, 어쩌면 욕망이 징그럽다고, 성가시고 지저분하다고 생각할까봐 조마조마한 순간마다 입술을 무는 버릇이 생겼다.
그는 버려진 행성 뒷골목 출신의 꾀죄죄한 시간을 걷어차는 대신 떨리는 목이며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안고는 했다. 큰 손과 긴장해 마른 입술……퍼석하고 풋풋한 키스에 킬킬거리고 웃다가 문득 나는, 아, 나도 다를 게 없구나……하는 사실을 깨달아 몸이 반 바퀴 빙글 돌아가는 줄도 몰랐다.
그는 모두가 둥둥 떠다니며 빙글빙글 돌고 아무것도 없는 우주만 매한 쳐다보는 정거장에서도 땅에 발 붙인 사람처럼 살았다. 행성을 떠받드는 가장 단단한 기둥처럼 중심을 잡고, 내가 어디에 거꾸로 매달려 장난 같은 입술을 쪼아도 벌건 이마를 가리며 곧 단단한 두 팔을 뻗어오는 남자였다. 내가 그와 똑바로 눈을 마주하도록 붙잡고, 무심코 몸을 빼면 꽉 붙들어 껴안고, 그렇게 영영 잊어버릴 뻔했던 지각의 경도와 세상의 무게를 떠올리게 해주는 사람은 써니뿐이었다. 입술이 바짝 말랐다. 그 건조한 감각을 너무 좋아해서, 해적보다 더한 놈들이 죽은 진물만 줄줄 흐를 때까지 껍데기를 벗겨가버린 내 꿈을 말하기도 그만둘 수 없었다.
[알반. 알반, 듣고 있지? 안 들리는 척하지 마. 네 이어피스 성능이 제일 좋은 거 모르는 사람 없잖아.]
나는 머나먼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내가 뒷골목에 굴러다니는 먼지 덩어리만도 못했던 시간을 중독적인 악몽처럼 추구했다. 시달릴 때는 괴로운데 막상 깨어나면 다시 맛보고픈 그런 외로운 꿈.
발 붙일 땅 없는 우주 한복판에서, 꿈보다 더 꿈같은 세상을 유영하면서도 나는 늘 중금속 섞인 흙먼지를 상상 속 침대 삼아 잠들었다. 온갖 걸 다 만드는 기업 이름이 새겨진 비닐 포대에 갓난애를 열심히 감싸 관청 앞에 두고 사라졌다는 엄마가 그리웠다. 형제처럼 붙어 온기를 나누며 자란 놈들은 모조리 열두 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는데도 그 애들이 장성해 목수나 기계공이 된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우주를 누비는 사람들에게는 돌덩어리 이상도 이하도 아닌 번쩍이는 광물이 꿈의 끄트머리였던 나의 세계. 팽창하지 않는 우주로 돌아가고 싶었다. 영영 머무를 필요는 없어도, 딱 한 번만, 한 번만 나는, 뿌리채 뜯겨온 풀포기처럼 영문 모르고 시들기 전에 죽은 행성을 딛고 서야만 했다.
[해치 열지 마. 어차피 안 열려. 내 권한이 우선이니까……알고 있지? 넌 똑똑하니까. 시험은 말아먹은 척해도 중요한 건 누구보다도 먼저 외우고 다녔잖아. 알반, 잘 들어. 생체인증신호가 하나만 남으면 최종 프로토콜이 가동해서 기지를 요람-대기 상태로 만들 거야. 그러면……]
써니는 고장난 문밖, 두꺼운 창밖, 그의 우주에 있었다. 나는 가끔 들렀다만 가는 사람처럼, 그에게 안기거나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때에 손을 잡고 침묵을 곱씹거나 할 때도 늘 한 발을 빼고 있었다. 멀찍이 은하 하나 정도는 훌쩍 건너뛰어 도망가버릴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나는 보이는 진공과 어둠과 머나먼 항성의 마지막 외침과 존재의 증거 따위로 가득한 시간 속에 볼품없이 조그만 간이 정거장이나 배회하는 처지였다. 무덤가를 돌아다니는 유령이나 다름없는 나를, 그의 우주는 불 리 없는 바람이나 몰아칠 리 없는 파도처럼 흔들고 삼켰다. 내가 그의 세상에 살랑거리며 다가갔다 도망치길 반복하는 물거품이리라는 건 공상에 불과했다. 처음부터 나는 끝도 없는 사람에 풍덩 빠져 있었고, 그는 외로울 틈도 주지 않고 다 익은 사과가 떨어져 구르는 부드러운 흙과 이끼와 큰 바다와 넘어져도 다치지 않을 백사장과……그런 삶을 걷는 상상을 하게 했던 것이다. 꿈을 토해낸 자리에 행여나 나쁜 것이 스며들까봐, 그가 또 다른 꿈을 나누어준 것이다…….
[……알반. 곧 줄을 끊을 거야. 네 신호만 남기려면 어쩔 수 없어. 알고 있지? 알반……알비. 나 좀 봐. 아니다, 보지 마. 눈을 감아, 알비.]
그는 나보다 아주 조금 더 경력이 길었다. 소속도 달라서 일정이 겹치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외우주 항해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면 난처해하면서도 주섬주섬 열심히 기억을 되살리는 게 다 보였다. 창백한 푸른 점 이야기를 처음 그에게 해준 사람은 바로 나다. 언제부턴가 그는 어딜 가나 나보다 더 열심히 창밖을 살피게 되었다. 약탈당하고 착취당한 끝에 마침내 버려진 지구는 더 이상 요람이라 부를 수 없는 쓰레기장인데도, 나는 꼭 한 번만 돌아가고 싶은 고향을 악몽이라 부르면 불렀지 그다지 아름답게 묘사한 적이 없는데도, 그런데도 그는 내가 천국이라도 그리워하는 것처럼 유난을 떨 때가 있었다.
별과 별 사이에 있는 써니를 보며, 나는 그가 영영 지구를 찾아주지 못한대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문득 주워섬긴다. 위태롭게 깜빡거리는 비상등 불빛 아래, 무섭도록 냉막하지만 세상 그 무엇보다도 다정한 두 눈이 꿈에서도 본 적 없이 푸르고 아름다워서. 창백하지도 않고 점처럼 멀지도 않은 그 푸른 눈동자가 훔치지 않고 오래도록 두고 보고픈 보석만 같아서.
눈을 감아도 사라지지 않는 사람의 말이 또, 기나긴 외로움으로부터 나를 잡아당겨 반석 같은 사랑에 발 붙이게 했으므로.
[고향에……지구에 가 보고 싶다고 했지. 그럼 그걸 상상해봐. 별로 좋은 기억이 아니면, 음, 어떻게 하면 좋아질지 생각해보는 건 어때? 함께 가기로 했잖아. 내가, 내가 데려가준다고 그랬지……둘이 같이 가면 좀 별로였던 곳도 괜찮아질 거야. 기억 속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야, 알반. 나랑 같이 여행을 가는 거야. 좋았던 걸 오래 기억하고 앞으로도 그리워하려고, 이 다음에도 무언가를 추억하고 이야기하려고 그런 꿈을 꾼 거야. 네가 나쁜 게 아니야.]
그는 걷거나 달릴 수도 있을 것처럼 안정적이고 모범적인 자세를 잡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안전 케이블이 허락하는 만큼 멀어져가는 중이기도 했다. 나는 그가 정말 점처럼 작아질 때까지 창을 두들기며 두 눈을 부릅뜨고 버티고만 싶었다. 눈알이 마르고 갈라져 아예 두쪽으로 쪼개지며 피눈물을 쏟아낸다 해도 절대 감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감으라 하지 않았나. 강하게, 언뜻 고압적으로 들릴 만큼 세게 힘주어 말했으므로 나는 그 말을 들어야만 했다. 명령권자이면서도 그런 순간까지도 정말은 명령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의 말을 들어야만 했고……그 자신도 모르게 다정하고 한없이 충실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만 했다. 눈을 감으면 알게 되는 것들을 꾸역꾸역 삼킨다. 그가 우뚝 버티고 선 우주의 공동(空洞)은 사실 누구나의 감은 눈꺼풀 속에서부터 번져나왔다고, 그러므로 다시 눈을 뜨면 내 옆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달려들면 언제든 번쩍 안아 들어주는 나만의 써니가 약속을 속삭이고, 그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영영 곁에 있으리라고 헛되고 헛된 희망도 잠시 품었다. 눈 감으면 보이는 내 우주는 변함없이 주리고 깜깜하고 외로웠는데, 그런데 슬프도록 잡음 없는 이어피스를 통해 써니가……
[……까지 세고 구조 요청을 보내, 알반. 알고 있지? 본선에도 보내고 카네시로 선단에도 구하러 오라고 통보해. 반응 별로면 내 이름이라도 팔고. 안에만 계속 있어야 해, 혹시라도 해치 뜯어볼 생각은 절대 하지 마. 기관실 근처에도 얼씬도 말고. 구조반이 도착하면 그쪽 엔지니어가 시키는 대로만 해. 절대, 절대 날 찾지 마, 알비. 나오지 말고, 눈 뜨지 말고, 그냥……제발, 무사히 있어줘. 물도 식량도 충분하니까……먹고 마시는 거 잊지 말고, 다 고쳐놨으니 통신도 계속 될 거고, 누구든 반드시 널 구하러 올 테니까 포기하지 말고……그리고, 아, 젠장. 배터리가……알반, 사랑해.]
머쓱해 죽겠다는 듯 하하,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다시 한 번.
[사랑해. 이걸로 됐어.]
나를 사랑하는 남자가 시키는 대로 억겁을 헤아렸다. 눈을 떴을 때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고요했다.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르지도 않았고 비상등 대신 제대로 된 빛이 돌아온 기지 안은 여전히 밝았으며 나는 홀로 남아 외롭기에는 너무도 두서없고 요란한 고백을 받은 뒤였다. 아무리 두들겨도 흠집조차 나지 않을 거대한 창에 두 손바닥을, 코를, 이마를 아프도록 누르며 내다보아도 눈 감은 동안 보았던 꿈은, 악몽은, 내 소원은, 익숙한 품은, 남은 생에 내내 기다리고 그리워할 기억은 없었다. 오직 내게만 있었다.
그러니까 그 순간, 무한한 우주의 한 점에 나는 혼자였다. 구조 요청을 해야 한다는 사실 따위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별과 별 사이에 나는 완벽한 독자(獨自)였다. 사방천지를 뒤덮은 공허와 하나같이 멀기만 한 광채가 아무렇게나 뒤섞여 밀려들었다. 너무 어둡기도 했고 너무 밝기도 했다. 빛은 어디에나 있고 아름다운 것은 어차피 아름다울 테지만 은하 건너에서 죽은 별의 이름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문득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별을 헤아렸다. 찾지 말라는 말 따위는 깡그리 무시하고서,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따박따박 웃전 명령 잘 들어가며 살았다고, 사는 내내 후회조차 하지 못할 시간을 되감으려고 했다. 살아생전 다 해낼 수 없는 일에 매달리는 필부의 심경을 이해했다. 산을 깎아 바늘을 만들고 바다를 퍼내서 도랑을 괴는 바로 그런 심정으로 온갖 별의 수와 크기와 빛깔을 외웠다.
꼭 창백한 푸른 점이 아니어도 비슷하게 파르스름한 빛은 찾아보기 쉽다. 푸른 것들은 다 저마다의 이유로 푸르렀다. 그러나 그날 영영 잃어버린 눈동자와 같은 빛깔은 어디에도 없었다. 영원에 영원을 거듭해 우주를 내달리며 찾아도 없을 것이다. 별의 무덤 속에도 팽창하는 공백 너머에도, 너는.
오직 꿈에도 다 못 그릴 나의 꿈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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