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어바등-재희무현

[재희무현] 환연 二.

무협 au

-2차에 맞춰 각색변형된 설정들이 많습니다, 주의.

-7디페 목표로 하고 있음

지혁이 강력하게 추천했던 만큼, 확실히 음식은 맛있었다. 금액도 음식값을 해서 문제였지. 소면이 그나마 저렴했으나 하루 종일 약초를 캐다 팔아서 세 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무현에게 그 소면조차도 한 끼 식사 값으로 날리기는 버거웠다. 그래서 무현은 지혁과 함께 갔던 날 이후로 다시는 산해객잔에 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무현에게 말을 걸었을 땐, 아주 많이 놀랐다.

“왜 또 안 와요?”

“예…?”

단골 의원에게 약초를 팔고 돌아가던 길에 불쑥 무현의 앞을 막은 남자가 물었다. 땅거미가 져가는 무렵이라 노을을 등진 남자의 머리는 불타오르는 듯 보였고 얼굴은 어두컴컴해서 보이지 않았다.

“그, 누구,”

“그날 엄청 빤히 쳐다보시길래 자주 올 줄 알았더니. 혹시 소면 하나 사 먹을 돈도 없어요?”

무례하기 짝이 없는 시비였다. 무현은 다짜고짜 길을 막고 기분 나쁜 말을 뱉는 남자를 상대할 생각은 없었다. 머릿속으로 남자를 피해 돌아갈 길을 생각하던 무현은 완전히 하늘이 어두워지자 비로소 남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옆의 주점에서 등롱을 밝힌 덕이었다.

붉은 머리, 흰 얼굴. 순하게 처진 눈임에도 안광이 없는 검은 눈을 마주하자 무현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아, 그 때 점소이…?”

“손에 든 게 오늘 번 돈이에요?”

“앗.”

무현이 제지할 틈도 없이 손에 들고 있던 주머니를 낚아 챈 남자가 끈을 풀어 주머니를 열었다. 심드렁하던 눈은 주머니 안에 든 작고 소박한 동전들을 보더니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뀌어 무현을 바라봤다.

“설마 이게 다에요? 뭐 사 먹고 온 거 아니고?”

“돌려 주세요. 그게 오늘 번 돈 전부에요.”

“이러면 소면 하나 먹으로 오기도 힘들겠네.”

남자는 겨우 소면 한 그릇 가격이 될듯 말듯 한 동전들을 손가락으로 세보더니 안타까워하며 무현에게 주머니를 돌려줬다. 무현은 주머니를 받자마자 다시 가져가지 못하도록 옷 안 쪽 깊숙한 곳에 밀어 넣었다.

“…그럼 제가 객잔에 가지 못하는 이유도 아셨을테니,”

“왜 그렇게 살아요?”

-지나가도 되겠습니까, 하고 물으려던 무현의 입이 다물렸다. 방금까진 돈이 없는 걸로 시비를 걸더니 이젠 뭐? 무현의 눈꼬리가 날카로워졌다. 무현이 물끄러미 남자를 올려보자 남자가 다시 물었다.

"가난하다면서요. 하루 종일 풀 캐다가 팔아서 겨우 입에 풀칠하는데 어려운 사람한텐 또 적선도 한다면서요? 왜 그렇게 살아요?"

어둠에 잠겨 등롱 하나로 겨우 모습이 보이는 남자는 붉은색이라기보단 어두운 갈색 머리처럼 보였다. 분명 등롱의 빛이 눈에 닿는데도 깊은 우물처럼 새카만 눈을 한참 들여다보던 무현은 불쑥 솟았던 분노가 서서히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시비조가 정중한 질문으로 돌아오니 당황한 건 점소이였다. 남자가 팔짱을 끼며 미소지었다.

"왜요? 알아뒀다가 낭인들한테 암살 사주라도 하시려고?"

"아, 저는 박 무현입니다. 약초를 캐다 팔아서 약초선생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편한 대로 부르십시오."

"…."

남자는 웃음기를 거두고 자신의 이름과 별명을 밝히는 무현을 내려보다가 뒤늦게 입을 열었다.

"…동백입니다. 성은 따로 없어요."

"네, 동백 씨. 제가 왜 이렇게 사는지 궁금하시다고요."

동백이라 밝힌 남자를 보며 무현은 옅게 웃었다. 자신도 그 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누군가를 도울 생각은 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래서 동백의 질문에서 그다지 악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래야 제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에요."

동백의 얼굴 위에 부정적인 의아함이 떠오른다. 무현은 그가 그런 표정을 짓든 말든 한 번 웃어주고 자리를 떴다.

남편, 아내, 그리고 아들 하나. 하인을 둘 정도로 부자는 아니었으나 나름 번듯한 집 한 채 정도는 있는, 그럭저럭 괜찮게 사는 집이었다. 나무꾼이었던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다니며 식용과 약용으로 쓰는 풀을 알려주고 자신이 나무를 베는 동안 아들에게 풀을 캐도록 시켰다. 그렇게 가져온 나무는 종종 고용하는 일용꾼과 나눠 들고 시장에 가서 팔아오고 약초는 분류하여 근처 약방에 팔곤 했다.

부부는 싸우지 않았고 아들은 말썽을 피우지 않았다. 근방에선 사이가 좋은 집이라며 부러워 하는 사람도 꽤 있었다. 둘째 아들이 태어나고 얼마 안되어 외출을 다녀오던 일가가 마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부인과 장남이 불구가 되어 방에서 꼼짝도 못하는 후유증을 얻은 데 반해 가장은 비교적 멀쩡했다. 부러졌던 팔이 붙고 나니 주변에서 식구를 지키지 않고 보신하느라 바쁜 쓰레기처럼 그를 보곤 했다. 가장은 움직일 수 없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데 집중하는 대신, 웬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 쌀을 공양하고 돈을 바치면 기적이 일어난다나 뭐라나. 그가 그럴수록 주변의 평판은 점점 나빠졌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 동안 남편이 새 모이만큼 구해다 주는 음식을 먹고 먼저 회복한 아내는 눈에 띄게 음울해진 장남과 친한 이웃에게 맡겨 뒀던 차남을 챙겼다. 이웃에게 부탁해 삯바느질과 자수, 약초 뿌리 다듬기 등등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은 안 가리고 모두 다 했다. 

비록 걸을 순 없으나 어쨌든 멀쩡해진 아내를 본 남편은 첫 번째 기적이 일어났다며 더욱 열심히 종교를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찌감치 길을 떠난 상인이 다리 밑에서 박 씨의 익사체를 발견했다. 자살인지 타살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아내는 겉치레나마 존재하던 가장이 사라진 후로 몸이 부서져라 일을 했고, 장남은, 박 무현은, 세상을 탓하며 방에 하염없이 누워있었다.

부러졌던 팔 다리는 전부 붙은지 오래였으나 무현은 그 사고 이후로 볼 수도 걸을 수도 없었다. 소리라도 멀쩡히 들려서 다행인가? 무현이 자조적으로 웃으며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는 세상 속에서 흐느끼고 있을 때였다.

"누구 있는가?"

마당에서 누군가 인기척을 내는 소리가 들렸다. 무현은 어머니가 대답하겠거니 싶어 조용히 있었다. 저 같은 병신이 알은 체 해서 뭣하겠는가 싶은 마음도 있었다.

"아무도 없소?“

무현의 집은 마을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산에서 내려와 제일 먼저 보이는 집이다. 이전에도 종종 휴식을 청하거나 물을 부탁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무현은 사고 이후로 그런 객들도 성가셨다. 대답하지 않는 어머니도 원망스러웠다.

"거 아무도 안 계신가-?"

"아, 진짜. 그냥 적당히 들어와서 쉬면 될 것을 왜 그렇게 불러대고 난리입니까?"

결국 짜증이 폭발한 무현은 기어 나가 방문을 벌컥 열고 소리를 질렀다. 불청객은 대문 앞에서 들어오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었는지 나무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없는 집에 멋대로 들어오면 도둑같잖냐. 너 혼자냐?"

"원래 어머니가 계신데 주무시는건지 출타 하셨는지 모르겠네요. 물은 부엌에 있을 테니까 떠다 드시고 적당히 마루에서 쉬다 가세요. 그럼."

무현은 다리를 쓰지 못하는 어머니가 출타했을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대충 얼버무렸다. 불청객과 떠들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할 말만 와다다 쏟아낸 다음 다시 방문을 닫고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두 팔로만 기어야 하는 무현보다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중년 남성이 방문을 잡는 것이 훨씬 빨랐다.

"얘야, 그런데 너 몸이 안 좋니? 자세히 보니까 눈도 안 보이는구나 너. 원래 그랬냐, 아님 병이라도 앓은게냐?"

다짜고짜 턱을 잡는 남자의 손에 화들짝 놀란 무현이 손을 쳐냈다.

"아, 놀래라. 댁이 뭔 상관이에요? 물이나 마시고 가세요."

"선천이 아니라면 고칠 수 있을텐데."

"!"

고칠 수 있다는 말에 무현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마 보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눈도 번쩍 뜨였을 테다. 잠깐 희망을 가질 뻔 했던 무현은 곧바로 단념했다. 그의 아버지가 저런 감언이설에 속아 재산을 바치다 객사한 지 얼마 안 됐다. 장례 치러줄 돈도 없었던 그들은 한 때 가장이었던 남자를 적당히 화장해서 산 속에 뿌리는 것으로 도리를 다했다.

"사기치는거라면 안 속아요. 저희 아버지가 사이비를 믿었다가 돌아가셨거든요."

"에이, 사기 아니다. 내가 아픈 애한테 뭘 바라고 속이겠냐."

당황한 목소리의 남성은 어색하게 웃더니 무현의 머리통을 슥슥 쓰다듬었다. 짜증스럽게 손을 쳐내려던 무현은 입술에 쑥 들어오는 딱딱한 무언가에 놀라 고개를 뒤로 물리려 했다. 그래봤자 엎드려 있는 상태였던지라 남자가 입 속에 밀어넣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하, 이거 진짜 엄청 귀해 보이는건데 너 주는거야. 이제 겨우 지학이나 넘겼을까 싶은 놈이 무슨 얼굴에 그리 우환이 많냐. 내가 이거 갖다 팔아봐야 늘그막에 돈이나 좀 만져보고 끝날텐데, 그보다야 앞날이 창창한 한 목숨 살리는 게 더 보람차지."

무현은 그제야 입에 들어온 것이 풀뿌리라는 것을 알았다. 흙이 조금 씹히긴 했으나 정성스레 털어냈는지 대체로 깨끗했다.

"꼭꼭 씹어먹그라."

무현은 그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풀뿌리를 씹었다. 어쩐지 그래야할 것 같았다. 마음이 이끄는 것인지, 몸이 이끄는 것인지, 풀뿌리를 잘근잘근 씹어 모두 삼킨 무현은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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