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어바등-재희무현

[재희무현] 환연 四.

무협au

-퇴고는 나중에 한 번에 하겠습니다. 오타 보이면…알려주세요….

가족들에게 전해줄 찬합을 양 손가득 든 무현에게 해량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한 번 더 같이 가겠다고 권했다.

"됐습니다. 소가주 일로 바쁘잖아요 해량 씨는. 이 정도는 들고 갈 수 있습니다."

"들고 가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잠시 고민한 해량은 다섯 걸음 떨어져 호위 임무를 서고 있던 애영을 불렀다. 이름이 불린 호위단원이 빠르게 다가와 해량의 바로 뒤에 멈춰 섰다.

"네, 소가주님."

"선생님을 댁까지 모셔 드려라."

"전 괜찮다니까요…."

"제가 안 괜찮습니다."

실랑이 끝에 진 무현은 결국 오 겹짜리 찬합 두 보따리를 애영과 한 개씩 나눠 들었다. 애영은 처음에 둘 다 자신이 들겠다고 하였으나 무현이 혹시 누가 덤벼들면 찬합 던지고 칼 꺼낼거냐는 물음에 애영은 조용히 한 보따리만 손에 들었다. 해량은 마차를 내어주고 싶었지만 늘 그렇듯 무현이 거절할 것을 알기에 그저 입을 다물었다. 해량도 알고 있었다. 은혜를 갚고 싶다고 무작정 내어주었다가는 욕심을 부리는 자들에게 화를 입기 마련이었다. 물론 해량은 아예 객식구로 무현의 가족들을 집에 들이고 싶었으나 무현이 싫어할 것이 뻔했다. 고작 풀 값을 더 쳐줘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애영과 함께 집에 돌아오자 인기척에 방문을 연 어머니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혼기가 꽉 차다 못해 이미 넘쳐 버린 아들이 데려온 미모의 여성에게 말을 붙이려는 어머니에게 무현은 선수를 쳤다. 신 소가주의 호위단원이며 그런 관계는 절대 아니고 그저 짐을 들어주러 온 것 뿐이라는 무현의 설명에 어머니는 다 내려놓지 못한 기대를 눈빛에 담아 애영을 쳐다봤다. 애영은 마당에 놓여 있던 평상에 보따리를 올려 두고 무현의 어머니께 예의 바르게 웃어 보인 다음, 무현의 집을 한 바퀴 돌아 보더니 실례했다며 곧장 돌아갔다. 차라도 한 잔 마시고 가지, 아쉬워하는 어머니에게 무현은 찬합을 열어 보여줬다. 마침 전 씨네 논밭일을 거들고 돌아온 무진이 각종 음식으로 가득한 찬합을 보며 눈을 빛내는 바람에 애영의 이야기는 흐지부지 넘어갔다.

세가로 돌아온 애영은 곧장 해량에게 향했다. 해량의 방 밖에서 인기척을 내자 들어오라는 소리에 애영은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밖에서 대기 중인 하인이 없을 때부터 알고 있긴 했지만 해량의 옆에 서 있던 밉상의 남자가 애영에게 아는 척을 했다.

“애용애용! 안녕!”

“그 따위로 부르지 마라. 죽고 싶냐?”

“소가주님, 들었어요? 쟤가 저 위협해요.”

서지혁이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가녀리게 훌쩍거리자 애영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마저 얘기나 해.”

둘의 이런 모습을 하루이틀 본 게 아닌 해량은 어떤 동요도 없이 지혁에게 고개를 까닥였다. 그러자 명목상 호위단장이며, 동시에 정탐대원인 지혁이 삐딱하게 서 있던 몸을 바로 세우고 해량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의 진지한 태도에 애영 또한 미간을 풀고 귀를 열었다. 지혁의 발언이 계속 될수록 앉아 있는 해량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소면 먹고 가요~”

“….”

무현은 자신을 불러세우는 미성의 목소리에 눈가를 구기며 고개를 돌렸다. 붉은 머리를 틀어 올려 묶은 동백이, 벽에 옆으로 기대 서서 팔짱을 낀 채 자신을 보며 웃고 있었다. 무현은 걸음을 멈춘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미심쩍은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서 뭐하세요?”

“음~ 가게 홍보?”

“산해객잔이 가게 홍보도 해요? 안 그래도 만석이잖아요.”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무현에게 터벅터벅 걸어간 동백은 무현의 머리 위로 손을 짚고 허리를 숙였다. 안광 없는 까만 눈이 가까이서 내려보자 무현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당연히 거짓말이죠. 되게 순진하시네요.”

“일 안 하냐고 돌려서 물어본 거잖아요.”

동백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 무현이 반박하자 동백은 입꼬리만 올려 미소지었다. 무현은 슬쩍 그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객잔을 보았다. 높게 세워진 정문 안으로 사람들이 쉴새없이 드나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무현이 가느다래진 눈으로 동백을 쳐다보자 동백이 어깨를 으쓱했다.

“점심 먹기도 한참 지난 시각인데 밥은 드셨어요?”

“집에 가서 먹을 겁니다.”

“에이, 눈 앞에 식당이 있는데 먹고 가세요.”

“돈 없습니다.”

“사드릴게요.”

“그쪽이 왜요?”

“굶고 다니는 거 불쌍해서요?”

무현은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런 의미 없는 대거리가 피곤한 무현과 다르게 동백은 즐거워보였다. 됐다고 거절하고 자리를 뜨려는 무현의 팔뚝을 잡은 동백은 가볍게 그를 끌어당겼다. 물론 무현이 동백에 비해 작고, 좀 마른 편이긴 했지만 이렇게 쉽게 끌려갈 줄은 몰랐기에 무현은 당황하며 질질 끌려갔다. 결국 동백이 권하는 곳에 강제로 착석한 무현은 눈 깜짝할 새에 가져온 소면을 보고 머뭇거리며 젓가락을 들었다.

오늘은 이른 시각부터 옆 마을에 다녀오느라 찐빵 하나로 요기만 했던 상태라 막상 한 젓가락 들자 무현은 순식간에 한 그릇을 해치웠다. 국물까지 다 마시고 나서야 무현은 앞자리에 앉아 양손으로 턱을 받친 채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동백을 깨닫고 어깨를 움츠렸다.

“…계속 거기 앉아서 보고 있었어요?”

“네. 배고팠나봐요? 이렇게 빤히 쳐다보는데도 모르고.”

“아니…. 일 안 하세요? 바빠 보이는데.”

무현은 주변을 휘 둘러봤다. 저번에 왔을 때와는 다르게 보편적인 식사 시간이 아니라 띄엄띄엄 식탁이 비어있긴 했지만 다른 점소이들은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을 봐선 절대 눈 앞의 남자처럼 한가하게 남이 먹는 걸 쳐다볼 상황은 아니었다.

“아, 뭐…. 반 시진 전까지는 성실하게 일 했으니까 괜찮아요.”

“….”

무현은 그게 삯을 받는 사람의 태도인가 싶었지만, 실제로 이렇게 한참 앉아 있는데도 아무도 동백을 부르러 오지 않는 것을 봐선 휴식 시간이라도 받았나보다 생각하기로 했다. 소면 그릇을 깔끔하게 비운 무현은 더 앉아 있을 이유도 없을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동백이 그를 불러 세웠다.

“약초 선생, 살아 돌아왔으면 하는 사람이 있나요?”

“예…?”

발치에 내려뒀던 죽바구니의 끈을 팔에 끼우고 있던 무현이 뜬금없는 소리에 동백을 내려 봤다. 여전히 턱을 손으로 받친 채로 무현을 올려 본 동백은 웃음을 지운 채였다. 무현은 새카만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보다가 대답했다.

“없어요.”

“가까운 사람 중에 죽은 사람이 없어요?”

“죽은 사람은 있지만 살아 돌아오길 바라진 않아요.”

“흐음…. 다행이네요.”

단호한 무현의 대답에 동백은 눈동자를 굴리더니 이내 싱긋 미소지었다. 무현은 이 대화가 어딘가 익숙하다고 생각했다가 곧 며칠 전, 신해량이 해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죽은 사람을 되살려준다고 하던 사이비 종교.

무현은 눈 앞의 청년이 말 못할 상처와 죽어버린 눈빛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대뜸 꺼내는 죽은 사람이 돌아오길 바라냐는 질문. 무현은 좋지 않은 예감에 다시 자리에 앉았다. 바로 가려던 것처럼 굴던 사람이 도로 착석하자 동백의 얼굴에 의아함이 서렸다. 웃거나 무표정인 것만 보다가 새로운 감정을 덧입힌 얼굴을 보니 무현은 새삼 그가 인간 같다고 느꼈다.

“저기 동백 씨, 혹시나 하고 묻는 건데요….”

“네에-”

무현은 혹시나 누군가 들을까봐 주변을 휙휙 둘러보더니 허리를 숙여 동백에게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했다. 동백이 의아함과 호기심이 서린 얼굴로 귀를 가까이 대자 무현이 손바닥 두 개를 들어서 동백의 귀에 속삭였다.

“혹시 누군가 죽은 사람을 살려준다고 동백 씨에게 종교 가입을 권유했습니까…?”

“….”

무현의 말을 들은 동백은 한 뼘 물러나더니 무현을 보고 눈을 크게 두번 깜빡였다. 그리고는,

“푸핫,”

웃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양 손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어깨를 부들부들 떠는 것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무현은 그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무안한 듯 뒤로 물러났다. 몸을 앞으로 내미느라 의자에 겨우 한 치 정도 걸치고 있다가 바로 앉아 동백의 웃음이 그치기를 멋쩍게 기다렸다. 한참을 어깨를 떨며 웃던 동백은 붉게 물들었던 무현의 뺨이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 쯤에야 겨우 진정됐는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었다. 눈꼬리에 살짝 맺힌 눈물 때문에 무현은 괜히 말했다고 후회할 뻔 했다.

“하, 죄송해요. 상상도 못한 질문이어서 그만…. 뭐랬죠? 누가 저한테 종교 가입 권유했냐고요?”

“…네.”

“약초 선생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권유 안 받았어요. 그냥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객잔에서 일하다보니 들리는 것이 많아서요. 어떤 상인들이 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하길래 약초 선생도 그런 사람이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서요.”

“그렇군요. 안 받았으면 다행이고요…. 혹시라도 누가 권유하면 무시하도록 하세요. 그럼 이만.”

무현은 걱정했던 일은 없었다는 말에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동백은 이번에는 조용히 그가 일어나 죽바구니를 등에 메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소면은 잘 먹었어요. 수고하세요.”

“네~ 조심히 들어가요.”

살랑살랑 손을 흔드는 동백에게 묵례한 무현은 객잔 밖으로 나섰다. 중간에 시장에 들러 어머니가 부탁했던 물품을 몇 가지 구매한 무현은 그대로 집에 돌아가려다가 길거리에서 당호로를 사먹고 있던 지혁과 마주쳤다.

“어, 선생님! 지금 귀가하십니까?”

“네. 지혁 씨는 귀갓길은 아니신 것 같은데….”

“들켰나요? 뭐 좀 사오러 나왔다가 자체 휴식 중이에요.”

씩 웃은 지혁이 무현이 들고 있던 죽바구니를 가로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바구니를 뺏긴 무현이 얼이 빠져 있는 사이, 지혁이 한 손에는 바구니 다른 손에는 당호로를 들고 앞서갔다. 저가 메겠다고 실랑이해봐야 듣는 척도 안 한다는 것을 아는 무현은 한숨만 쉬고 바로 그를 쫓아 갔다. 길쭉한 다리로 성큼성큼 걷는 지혁의 뒤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무현은 지혁이 집에 도착하고서야 무릎에 손을 짚고 숨을 골랐다.

“무현 씨…. 평소에 운동 좀 하세요.”

“매일…허억…풀 캐러 산 타거든요…?”

“그런데 왜 이렇게 헉헉대세요.”

“산에선 달리기를 쉬지도 않고 한두 식경씩 하지 않아요!!!”

무현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외치자 지혁의 얼굴에 ‘가벼운 걷기 였는데….’ 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무현은 씩씩 숨을 고르며 대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대문을 열었다. 대문보다 큰 남자가 무현을 따라 들어오자 인기척에 부엌 밖을 나왔던 무진이 흠칫했다가 지혁을 알아보고 다가왔다. 가볍게 인사하는 무진에게 손을 흔든 지혁은 전에 애영이 그랬던 것처럼 평상에 죽바구니를 올려 두고 마당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전에 애영 씨도 그러더니, 뭐 보는 거에요?”

장독대 뒤를 슬쩍 보고 무현의 곁으로 돌아온 지혁에게 무현이 궁금한 듯 물었다. 그에 지혁은 별 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더니 방금 생각난 듯이 말했다.

“아 참. 그러고보니 해량이가-아니고, 소가주님이 시간 내주실 수 있냐고 묻던데요.”

“그 얘기 하려고 집까지 왔군요? 설마 시장에서 만난 것도….”

“시장에서 만난 건 우연이에요!”

지혁이 양 손을 저었다.

“아무튼, 소가주님이 선생님한테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는데요. 시간 되세요?”

“음…. 내일은 하루 종일 산에 있을 예정이라…. 모레 저녁에는 될 것 같은데요.”

“네엡. 그럼 모레 저녁에 모시러 오겠습니다.”

“아니, 제 발로 가도 되는데요.”

극구 만류하는 무현에게 지혁은 초대하는 입장으로써 먼 길을 걸어오게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며 신씨 세가를 도리도 모르는 놈들로 만드실 거냐는 질문에 무현은 결국 수락했다.

“그리고 사람 드나들 때 빼고는 꼭 대문 닫고 있으세요.”

지혁의 당부에 무현은 고개를 들어 대충 만들어진 대문을 살펴 봤다. 밤나무로 만든 번듯한 대문이 부서진 이후로 새로 나무문을 만들 형편이 안 되었던 무현의 가족은 일반 서민들이 그리하듯이 대나무와 밧줄을 엮어 대문을 만들었다. 조금 어설펐던 탓에 대나무 사이사이로 바깥 틈이 다 보여서 문의 역할을 다하지는 못 하고 있었는데, 이런 대문이라도 꼭 닫고 있으라는 지혁의 말에 무현은 미간을 찌푸렸다가 곧 폈다. 뭐, 안 닫고 있는 것보다야 낫겠지. 무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지혁은 한 번 더 확인을 받은 뒤에야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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