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의 행방 下 2/3

사랑의 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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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을 끝낼 때쯤에는 이미 늦은 시간이 되어 있었다. 잠옷으로 갈아입고 욕실 문을 열자 요르의 코끝에 스친 것은 바디로션의 플로럴 향을 단번에 지울 만큼 그보다 훨씬 향긋하고 달콤한 향기였다. 요르는 그 향기에 목욕하러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본 로이드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그때의 그는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뱅쇼를 만들겠다며 큰 냄비에 레드 와인을 아낌없이 붓고 있었다. 요르의 기억 그대로 여전히 부엌에 우뚝 서 있던 그는 등 뒤로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끼고 요르를 향해 돌아봤다. 좋은 타이밍에 오셨네요. 마침 방금 다 됐는데, 주무시기 전에 같이 한 잔 어떠세요. 달고 맛있을 거예요. 요르는 그의 조금 자신만만하고 자상한 권유를 거절해 본 적이 없다. 네! 좀 늦었지만 제가 도와드릴 건 없을까요? 부엌을 향하는 조금 젖은 긴 머리칼에서는 은은한 잔향이 풍겼다.

“정말 맛있어요…!”

늘 쓰는 익숙한 머그컵에 오늘은 커피도 홍차도 아닌 조금 색다른 것이 담겼다. 달큰한 와인 음료 안에 요르가 직접 장식한 시나몬 스틱과 오렌지 슬라이스가 먹음직스럽게 동동 떠 있다. 요르는 입김을 후후 불어 뜨거운 음료를 식힌 후 조금 입에 머금고 음미하더니 살며시 웃는다. 남자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자신의 것을 마셨다. 분명 그녀와 같은 맛을 느끼고 있지만 자신은 그녀 같은 미소를 지을 줄은 모른다. 아무리 지금의 그는 <로이드 포저>라 해도 그녀만큼은 하지 못한다. 

티타임을 가질 때면 늘 앉는 거실의 지정석에 둘은 편히 등을 기댔다. 지금은 이미 꿈나라로 향한 아이를 위한 작은 의자는 비어있는 채다. 입안에 감도는 것은 평소에 마시는 익숙한 맛과 향이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무심코 마음을 놓아 버릴지도 모를 정도로 아늑하고… 편안한, 등빛이 마음까지 번지는 듯한 광경이다. 맛있도록 만들었으니 맛있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듯이 새삼 매번 귀하게 여기는 모습에 매일 조금씩 익숙해지는 건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나날이었다. 이제야 남자는 그녀의 흉내라도 내며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입에 맞으시다니 다행이에요.”

하지만 너무 많이 드시면 안 돼요. …전처럼 풀썩 쓰러지거나 하시면. 로이드는 미소 뒤로 짤막한 우려를 덧붙였다.

어리둥절해진 요르는 이미 흐릿해져 버린 기억을 더듬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금방 울상으로 변해 작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한동안 잊고 있던 죄를 순순히 시인했다.

“우우… 그땐… 제가 정말 죄송했어요…”

검지를 맞대고 꼼지락거리는 아이 같은 버릇은 오늘도 그대로다. 요르가 떠올리고 있을 장면을 분명 로이드도 떠올리고 있었다. 추운 지역을 가족이 함께 여행하던 중 뱅쇼 여섯 잔을 연달아 들이켠 요르에게 말 그대로 짧고 강렬한 습격을 당했던 사건이었다. 요르의 얼굴을 그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건 그녀가 술에 취해 부끄러움을 잠시 잊어버리는 때에나인 것 같다. 그런 자각이 일절 없는 듯한 본인에게는 말해줄 생각이 없지만. 그가 괜찮다고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여전히 가늘게 웃고 있었다. 남몰래 조금 장난스러웠던 마음은 와인의 알코올처럼 휘발되고 이제 그 입가에 남은 것은 다른 마음이었다. ……어떤 마음? 누구도 답할 수 없는 물음표가 머리 위에 떠오름과 돌연 동시에 남자는 음료를 한입 머금고 고요히 웃음기를 죽인다. 달짝지근함을 꿀꺽 삼켜 버리는 것과 동시에 거짓 미소를 수면위로 떠올린다. 그의 입술과 혀에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절대 깨지지 않는 가면과 잊은 적 없는 의도다. 요르가 머그컵을 입술에서 떨어뜨리는 찰나를 기다려 말을 붙였다.

“오늘도 일 고생하셨어요. 오늘은 시청에서 큰 행사가 있다고 하셨잖아요. 바쁘셨을 텐데. 많이 피곤하시죠.”

로이드의 말에 요르는 지나간 시간을 조용히 상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의 앞에서 투명한 가면을 쓴 남자의 어떤 의도였다. 남자의 의도를 모르는 요르는 차라리 상냥한 그가 자신의 고약한 술버릇을 한번 더 놀려줄 정도로 상냥하지 않은 편이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로이드의 다정한 말에 요르가 상기한 것은 숨 돌릴 틈 없이 바빴던 오늘의 일과가 아니라 로이드와 닮은 사람. 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던. ‘그 남자’였다.

그래서 요르는 갑자기 자신을 책망하는 시선에 짓눌리는 것처럼 조금 힘에 겨워졌다. 사실은 둘 중 누구에게도 받은 적 없고 그저 요르의 상상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요르는 상상에서도 현실에서도 둘 중 누구의 앞에서도 떳떳해질 수 없었다.

“네… 그, 그래도… 무사히 잘 끝났으니, 괜찮아요! 그리고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거든요.”

지금 엄청 쌩쌩해요, 저! 그 말을 증명하려는 듯 요르는 양손을 들어 불끈 주먹 쥐어 보였다. 평소보다 밝아진 톤의 음성과 과장된 몸짓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지만 남자는 굳이 지적하지 않기로 했다. 로이드 포저라면 그것이 맞다. 합당한 이유가 이미 정해진 선택에 뒤이어 떠올랐다.

“잘됐네요. 음....... 그러고 보니, 저희 토요일 점심에 외식하러 가기로 한 거 말인데요.”

자신이 지쳐서 보여서, 혹은 일 이야기를 피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해서, 요르는 그가 그런 상냥한 이유로 일부러 금방 말을 돌려준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역시 로이드 씨는 그와 다르다. 그는 로이드 씨와 다르다. 그러니 나는… 그런 생각을 마지막으로 요르는 지나간 그 남자와의 집요한 문답을 끊임없이 속으로 되뇌는 일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눈앞의 소중한 사람과 다른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자고.

돌아오는 길에 식당 근처 잡화점에 들르면 좋을 것 같아요. 어머, 벌써요. 네. 티슈가 거의 벌써 다 떨어져 가더라고요. 가능하면 슈퍼에도 들르고 싶은데 아마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 것 같네요. 그럼 제가 일요일에 아냐와 본드랑 산책 나갈 때 슈퍼에서 계란이랑 우유를 사 올게요. 급한 일이 들어오지만 않는다면 그날 저도 같이 가요. 요르 씨 혼자서 녀석들 챙기면서 짐까지 드시기는 힘들 거예요. 후후, 감사해요. 그날 로이드 씨께 갑자기 급한 일이 들어오지만 않으신다면요. 아마 그날은 괜찮을 거예요. …아마도. 낮은 톤의 웃음소리가 겹쳐서 공간 안에 잔잔히 울린다.

보충해야 하는 여러 생필품과 식료품. 슬슬 시작해야 할지도 모를 겨울옷 정리. 새 이불을 사는 일. 아냐의 닳은 옷을 수선 맡기는 일…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는 시간이 무한하다면 끝도 없이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 대부분의 평범한 가족이 공유하는 흔한 일상을 소재로 한 대화였지만 실상 두 사람은 가족보다는 부부라는 이름의 전우이자 비즈니스 파트너에 가까웠다. 전쟁과 이익 계산 대신에 눈뜨기 힘든 아침과 일상의 트러블에 맞서는 전투 그리고 양보를 하는. 로이드 포저와 요르 포저라는 서로 다른 색의 실은 촘촘히 엮이고 그렇게 나날이 단단히 매듭지어져 간다.

 

하지만 컵은 비어 가고 온기는 식어가기 때문에 그 빈틈 사이에 적막이 자리 잡을 때도 있다. 적막이 어색한 사이는 전혀 아니었지만 지금의 요르는 어깨 위로 내려앉은 이 고요가 무거웠다. 사실은 잠시라도 대화가 끊기면 정적을 틈타 입술을 비집고 나올지도 모를 어떤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것은 요르의 속에 맺히고 고여서 이제는 흘러넘치기 직전의 의문이자 그와의 매듭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내고 헐겁게 할 칼날이었다. 요르는 그것을 두려워하면서도 내내 혼자 감추며 견디고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를 위해 만든 비밀이 아니라 요르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기에 아무런 힘도 없었다. 무력한 비밀을 품고 있으면 나 자신마저 약해진다.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입술은 달싹거리며 그의 내일 일정에 대해 물어보는 아주 가볍고 평범한 문장을 뽑아내는 연습을 했다.

저기, 로이드 씨. “요르 씨.”

나지막이 이름이 불렸다. 그에게는 굳이 연습이 필요하지 않았을 테니 뭐든 한발 빠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곧이어 요르는 어쩌면 그도 자신과 같은 비밀을 감추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상하게도.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물어보고 싶으신 거요?”

“…반드시 답해주셔야 하는 건 아니에요. 그저 제가 혼자 궁금한 것뿐이라.”

적요를 깨고 대담하게 이름을 부른 것치고는 그는 뒤를 쉽게 잇지 못했다. 요르의 눈을 바라보지 않았다. 두 사람을 감싼 시간이 그 순간만큼은 아주 느리게 흘렀다. 그렇게 요르는 그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하나 더 늘었다. 로이드 씨가 제게 무엇이 궁금한지. 저는 궁금해요. 감히, 라며 스스로를 나무라면서도 요르는 자신과 닮은 나약함을 그에게서 보고 있었다.

“그저 제 욕심인 줄은 알지만…… 너무 신경이 쓰여서요.”

로이드가 이내 결심한 듯 요르를 본다. 눈이 마주친다. 요르는 그의 눈동자에 성실하게 시선으로 답한다. 하지만 치열하게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의심하는 일은 요르 자신마저도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 눈에 담긴 것이 욕심이라니. 요르가 아는 욕심은 그렇게 반짝이는 맑은 예쁜 색이 아니었는데. 그에게 가족을 사랑하는 일 말고도 욕심이 있구나. 또 하나 그에 대해 처음 알았다. 그리고 하나 더. 그의 조금 불그스름해진 뺨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어떤 욕심은 소중하거나 사랑스러울 수도 있는 법이라고.

요르의 그런 마음을 알 리가 없는 남자는 소중하지도 사랑스럽지도 않은 불순한 제 속셈을 밝힌다.

“…혹시 제 건 없을까요?”

“네?”

요르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러니까……. 누구한테 주신 거예요? 그… 음. 초콜릿.”

“......네?”

그것은 꼭 요르의 욕심처럼 들려서.

“하트 모양이요.”

덜컹. 하고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가 몸을 타고 전율한다.

두근. 두근. 몸 안의 하트가 세차게 뛴다. 어디에도 간 적 없는 하트의 행방을 그는 묻고 있었다. 긴장인지 공포인지 불안인지. 다만 기대는 아니어야 하는 이 낯설고 조금 두려운 고동. 심장의 소란한 움직임과 그와 이어진 시선 외의 모든 감각이 흐릿해져 간다. 외창을 넘어 들려오는 자동차의 머나먼 소음, 컵 안에 남은 시나몬의 강렬한 향기, 요르를 남겨두고 홀로 빠르게 달리는 초침의 존재 같은 것은 전부. 

쿵. 쿵. 울리는 소리가 꼭 몸부림치는 것처럼 들린다.

“…어떻게, 알고 계셨어요?”

“요르 씨.”

컵을 단단히 다잡는 새하얀 두 손이 조금 떨고 있었다. 남자는 그 의미를 낱낱이 헤아리고 싶었던 까닭에 그녀의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에 부정하지 않았다. 가여워하지도 않는다. 그런 오만은 스파이에게 독이었기에.

“하트... 음… 그게. 그건…”

“갑자기 이런 걸 물어봐서 놀라셨죠. 죄송해요.”

왜 로이드 씨가 사과하시는 걸까요. 요르는 다시 그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려다가도 떠오르는 대로 금방 새하얗게 날아가 버려서 결국 다듬어 말이 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러는 사이 로이드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옅게 웃었다. 그리고 또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다 식어 버린 미지근한 온도로 말한다.

“어제 아침에 우연히 요르 씨 가방에 들어있던 걸 봤는데, 그걸 누구한테 주셨는지… 조금 궁금해져서요.”

그건 어째서인가요. 요르가 그렇게 말하지 못한 건 진짜 욕심이란 무엇인지 모르는 듯한 무결한 얼굴에 진심으로 알고 싶은 것을 되물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궁금한 게 점점 늘어간다. 의심한 적 없던 것을 자꾸 의심하게 된다. 이유가 있다면 그것 말고 다른 이유는 없는지 알고 싶다. 또다시 그의 미소에 대고 하지 못할 질문만 써 내려가느라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어라 말해야 하는지, 뭐든 간에 전부 타이밍을 놓치고 있었다.

남자는 그런 요르를 헤아렸다.

“하지만 별로 말씀하고 싶지 않으신 거라면 괜찮습니다. 저는 요르 씨의 사생활을 존중하니까요. …역시 제가 괜한 걸 여쭤봤나 보군요.”

로이드는 군더더기 하나 없는 말끔한 미소로 순순히 한발 물러났다. 그것은 로이드 포저의 덕목이었다. 그리고 스파이 황혼의 속셈이었다.

스파이에게 의도를 숨기는 것은 쉽다. 갈망을 모르는 무심한 얼굴을 연기하는 것은 더 쉽다. 그의 거짓은 호흡처럼 이루어진다. 

그가 수백 수천의 계획을 세우는 것은 하나의 목적을 위해. 황혼에게 가치 있는 것은 진실을 아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은 가리지 않는다. 보통 사람이라면 주저하는 것이라도 스파이는 얼마든지 한다. 새빨간 거짓말도. 할 자격조차 없는 위로의 말도.

그녀가 숨기는 것을 알아내고 싶어서 세상에 없는 사람의 얼굴 가죽을 쓰고 세상에 없는 이름을 지어내 그녀를 기만하는 것까지도. <로이드 포저>가 하는 것처럼.

<루안 노이만>이 베를린트 시청에는 물론 오스타니아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자라는 것을 요르 포저가 알 수는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의 존재와 얼굴과 이름이 탄생하고 그의 이름이 실린 위조 직원 명단이 만들어졌던 유일한 이유가 전부 자신이라는 것도 요르는 앞으로도 영영 알 수 없다. 황혼이 스파이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루안 노이만은 다수의 호감과 질투를 동시에 살 수 있는 인물이어야 했다. 특히 요르 포저의 호감과 요르 포저로 인한 질투를. 또한 요르에게 로이드 포저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로이드 포저와는 달라야 했다. 로이드와 같은 눈으로 그녀와 시선을 맞물리고 로이드처럼 가늘고 상냥한 눈으로 웃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로이드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이었다. 로이드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짓도 저질렀다. 로이드 포저라면 요르를 그렇게 홀로 남겨 두고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루안이기도 하며 로이드이기도 하지만 사실 무엇도 아닌 남자는 둘 사이의 흐릿한 경계 어디쯤에 요르를 데려와 시험했다. 그리고 소리 없이 물었다. 당신은 나와 함께 있는 지금 나에게서 무엇을 보고 누구를 생각하고 있나. 어쩌면 파랑과는 전혀 다른 눈동자를 가진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는가. 나를, 아니. 로이드에 대해 떠올리고 말하고 웃는 그녀를 보면서도 그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를 다른 가능성을 이번에는 놓치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다만 그 모든 순간에서 요르를 탓하거나 슬프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고 바랐다. ……그녀의 침울한 기분 하나하나에도 임무는 영향을 받기 마련이니까.

출퇴근 동선을 포함한 요르의 일상적인 루틴은 임무를 위해 당연히 전부 파악하고 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우연히 일어나거나 아주 짧은 순간의 상호작용이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재차 조사해 보아도 요르가 사적인 관심을 보이거나 로이드의 눈을 피해 만남을 지속하고 있는 인물은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가능성은 요르가 집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오스타니아의 모든 국가기관에는 황혼이 속한 정보국의 동료가 잠입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황혼이 임무의 주 무대가 되는 이든 칼리지에 빈번히 잠입하는 것과 달리 동료 공작원들이 주재하는 요르의 직장에는 비교적 감시가 느슨해지는 것은 늘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WISE에서 효율을 따져보았을 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황혼은 이를 이번의 치명적인 실책으로 여겨 스스로를 꾸짖었다. 매번 별다른 수상한 점이 없다는 결론으로 끝나는 정기 보고서를 읽는 것으로 안심해서는 안 됐다. 그래서 결국 이렇게 임무에 위기라고 부르기도 우스운 위기를 초래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방심하고 있던 사이 지나치게 순진한 요르 씨가 웬 이상한 남자에게 속아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음. 그가 지금껏 보아온 그녀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이렇게 순진한 여자는 꼭 <로이드>에게만 속진 않을 것이다. ‘그 남자’는 <로이드>처럼 어떤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그녀에게 접근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설마 요르 씨의 남편인 로이드 포저, 즉 <황혼>의 정보를 비밀리에 캐내기 위해? <올빼미>를 망치기 위해 오스타니아의 첩보기관에서 보낸 자일지도 모른다. 만에 하나 그때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처리하는 것이 제일 뒤탈이 없을 것이다. 허나 황혼은 이번에야말로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기로 하지 않았는가.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어쩌면 정말로. 요르 씨 자체가 그자의 목적이라면…?

그 빌어먹을 가능성이란 곧 이런 것이다. <스트릭스>의 설정상 요르 씨가 결혼 사실을 숨겨 온 일 년이라는 시간 사이에 그녀를 흠모하던 어떤 자가 연심을 접지 못하고 유부녀가 된 요르 씨에게 뒤늦게 마음을 고백했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요르 씨가 위장 결혼이라는 사실을 들켜서 그 남자에게 약점을 잡혔을까. 그것을 차마 로이드에게 도움도 청하지 못하고 혼자 쩔쩔매고 있다가 도리어 그 남자에게 의지하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로이드 포저에게보다도.

혹은……. …이건 정말 인정하기 어려웠지만. 로이드 포저는 요르 씨의 인간적인 호감을 사는 남자일 뿐이고, 그녀가 이성적인 매력과 끌림을 느낄 수 있는 남자가 아니었다고 한다면 말이 될 수도 있다. 아주 간단히 말해 자신은 요르 씨의 취향이 아니다. 그리고 요르 씨는 그녀의 취향인 다른 어떤 매력적인 남성에게 이끌려 특별한 감정을 가지게 된 것이다. 로이드에게는 느끼지 못한 감정. 가령 이를테면 연애 감정이나, …사랑. 같은 것.

그것은, 자신이 죽여버린 것. 스스로는 느끼지도 원치도 않지만 임무의 편의를 위한 수단으로써 타인에게 촉발하고 다룰 수 있는 것. 그러나 때로 쉽게 종잡을 수만은 없어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조금 귀찮은 것. 황혼에게 사랑이란 그런 것이었다. 이처럼 행방을 알 수 없어 불안과 초조를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만약 사랑이라는 비이성적이고 맹목적인 감정이 요르 씨에게서 작용했다면. 정말 그런 거라면. 수개월 계약 관계를 유지하며 한집에서 함께 지내온 자신보다 그 남자에게 발렌타인데이 초콜릿을 선물할 가치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래. 그렇게 가정해 보면 납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이 터무니없는 상황을.

<올빼미>는 본래 사랑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임무였다. 처음 아내 역을 맡을 여성을 구할 때도 여성의 취향보다는 이해의 일치를 고려했다.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간단히 손에 넣은 협력자가 바로 요르 브라이어. 공통의 이해와 편의를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 본질이기에 지금까지의 다른 임무와는 달리, 황혼은 여성 파트너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매개로 이용하지 않아도 됐다. 이는 곧 그가 요르에게 사랑을 촉발하려 한 적이 없다는 의미다. 다만 요르는 숨길 수 없이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황혼은 그녀의 이름이 무엇인지와 동시에 알아차렸다. 그래서 이용했다. 그녀가 남동생을 사랑하는 것을 그녀의 약점으로 삼고, 아이를 사랑하게 된 그녀를 <올빼미>에 속박해 두었다.

한번은 자신이 의도하여 촉발한 적 없는 감정이 그녀에게 깃들었다고 확신했다. 또 하나 간단히 손에 넣은 것을 때를 놓치지 않고 이용하려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스파이의 관성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순전히 오해였다는 것을 (턱이) 아프도록 알아버린 후로는 단념했다. 단지 그 단념이 너무 일렀던 것이 현재의 패착이 된 것이 아니었는가 황혼은 지금에 와서는 답을 알 수 없는 문제를 계산해야 했다. 

이러한 위기감에서 비롯된 스파이의 가설은 약간의 허술함과 불필요한 감정과 충동을 군데군데에 싣고 끝도 없이 이어져 갔다. 그리고 가설의 수 이상으로 대책을 세워야 했다. 무수히 가지를 뻗어 나가는 대책 플로 차트의 공통 목적은 바로. 그 남자. 그러니까, 유부녀에게 손을 댄 그 파렴치한을 찾아내는 것. 그놈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 숨기고 있는 비밀과 목적까지.

누구든 사람이라면 숨기고 있는 비밀이 있기 마련이고 그것은 곧 흠결이 될 확률이 높다. 특히 본래 ‘무결’한 ‘남자’라는 건 자신이 만들어낸 <로이드 포저>를 제외하고는 세상에 존재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놈의 그것을 알아보는 것은 내내 남의 비밀을 캐며 살아온 스파이에게는 간단한 일일 게 분명하다. 이후로는 요르 씨에게 자연스럽게 남자의 결점을 일깨워 서서히, 혹은 순식간에 그 ‘특별한 감정’을 무엇보다 보잘것없는 것으로 만든다. 감사든 존경이든 신뢰든. 설령 정말로 사랑이었다 한들. 요르 씨가 그에게 주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든지. 마음을 멀어지게 하는 건 마음을 촉발하는 것만큼 스파이의 특기다. 

그로 인해 요르 씨가 상심한다면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위로를 건네고 이번에야말로 그녀가 가장 신뢰할 수 있고 의지할 만한 남자가, 그런 동거인이 되어주면 된다. 그것이 모든 가설에 통용될 수 있는 대책이었다.

그러나 계획의 시작부터 황혼의 예상한 대로 흘러가진 않았다.

그가 다른 사람의 연기를 하며 요르의 곁을 차지하고 있던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녀에게 드리우는 다른 남자의 그늘은 보이지 않았다. 등 뒤에 들러붙는 유치하거나 절박한 질투의 시선도, 어떤 기회를 노리는 접근도, 루안의 정체와 요르와 루안 사이의 관계를 가늠하는 관찰의 눈초리마저 없었다. 만약 그 어떤 사소한 신호나 기색이라도 있었다면 황혼이 그것을 놓쳤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황혼은 결국 조금. 조금 많이. 성급해졌다. 그것을 그 스스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완벽하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어요. 그런 걸 꾸며내는 요령 좋은 사람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거든요.”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짓을 해 버린 것은 그런 조급함에서 기인했다. 요르 씨가 얼마나 자책할지, 그녀를 얼마나 괴롭히는 일이 될까 알면서도. 그녀를 경계로 몰아세웠다. 정말로 절박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그렇게 했다. 해서는 안 됐을 말과 행동. 로이드가 하지 않을 짓이자 스파이로서도 부적절했던 짓이었다. 

무슨 상황이 닥쳐오건 어떤 것을 맞닥뜨리건, 또는 세워둔 모든 가설이 빗나가더라도 온전히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스파이라면 무엇에든 유연히 대처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니까.

하지만 이번에도 예상치 못한 변수는 요르 씨였다.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그런 눈빛을 하게 할 줄은 몰랐어.

“저는 로이드 씨뿐이에요.”

물기가 어린 눈동자의 반짝임은 마치 루비와 같다. 

“로이드 씨께 드리고 싶었어요. 저는.”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빨강.

“정말 그분뿐이에요.”

눈앞에 비치는 그 아름다운 진홍에 남자는 시선을 빼앗겼지만 그녀는 금방 두 눈을 그에게서 감추었다.

그런데 거센 박동이 돌연 남자의 가슴 가운데서 느껴진 건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새삼스럽게 그가 살아있음을 알리는 것처럼 심장은 고동쳤다. 방금 막 태어난 생명이 된 것 같은 감각은 그에게 무척 낯설고 난폭했다.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건 무슨 의미인가요?

거센 박동을 따라 뿌옇게 조금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도 그것은 로이드 포저에게나 마땅한 질문이라는 걸 그가 직감했다. 로이드 포저만이 가질 수 있는 궁금증을 루안 노이만이 알 수는 없는 일이다. 자기 자신에게 입을 틀어 막힌 채로 그가 입 밖에 낼 수 있던 건 고작. 미안해요.

말과 동시에 조심스럽게 숨을 쉬었다. 그러지 않으면 금방 무언가를 깨닫고 들켜 버릴 것 같아져서. 시도 끝에 드디어 붙들어 매인 심장은 맺힌 눈물 따위에 지지 않아야 했다. 울지 마세요.

태양 아래에서 찾고 있는 그림자의 끄트머리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은 그림자가 사실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림자의 부재는 곧 자신이 그림자보다 짙은 어둠 속에 있거나 혹은 있지도 않은 자의 뒤를 쫓고 있음을 증명할 따름이다.

그림자 없는 상상 속 남자가 아니라 눈앞의 숨결이 이토록 생생한 여자를 바라봤다.

자신은 스스로 빛을 내는 것 앞에서 그림자를 찾고 있었다. 은은히 빛나는 살갗 위로 나뭇잎 그림자가 흔들리며 드리운다 해도 그 빛을 완전히 가릴 수는 없다.

그녀는 자신이 몰아간 경계의 벼랑 끝에서 추락하지도 도망치지도 않았다. 완전히 이겨 내지는 못할 것 같았으나 지지도 않았다. 그럼 당신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견디고 있나. 비에 젖고 바람에 불린 붉은 눈동자는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당신이 말한 것처럼, 정말로 나를. 내게 전하지 못한 후회를.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게.

문득 무엇도 의심하지는 않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피어오르려는 죄책감에 눈을 감고 이 모든 것이 연기일 가능성을 점쳐야만 했다. 떨고 있는 저 작은 손끝마저도.

언젠가처럼 그녀에게 도청기를 설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이곳에 직접 오기를 택했다. 두 눈으로 보고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임무를 위해. 진실을 알기 위해서. 황혼은 생각했다. 그렇다면 자신이 알게 된 진실은 무엇일까.

요르 씨의 결백. 그림자의 부재. 그리고 나의……

그녀를 염려했던 마음. 확인받고 싶었던 마음. 이제야 안심하고 있다는 생소한 자각. …이런 감정들을 대체 무엇이라 부르고 어떤 카테고리로 분류해야 임무에 이용할 수 있을까. 골몰하기보다는 침잠시키고 지워버리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걸 알고 있다.

요르 씨의 사랑을 손에 넣은 다른 사람은 사실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 한들 그녀의 하트는 그녀의 손을 떠나 어디에 있는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로이드 포저의 몫이었다고는 하나 자신의 손에는 그것이 쥐어지지 않았다. 아마 지금보다 시간이 더 지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요르 씨를 흔들고 싶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의 마음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흔들린 건 자신이었다. 그리고 흔든 것은 그녀였다. 

그녀는 그토록 유약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흔들리지 않고 자신에게 말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자니 그녀만큼, 그녀보다도 약해지는 것 같은 기분을 참을 수 없어졌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 앞에서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 수는 없다. 맞부딪친 그 눈빛을 견디지 못해 결국 그녀를 혼자 그곳에 두고 도망쳤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것의 소생으로부터. 안에서 촉발되려는 무언가에서부터.

그렇게 도망쳐 왔으나 돌아온 곳은 다시 요르 씨의 앞이다. 

그 단정한 눈동자. 지금 그녀의 눈에 비치고 있는 것은 루안 노이만이 아니다. 그 가면으로는 그녀의 진심을 알 수도, 그녀를 흔들 수도 없다.

…하지만 로이드라면, 다르지 않을까. 황혼은 자각하지 못한 미약한 기대를 적확한 판단이라 얼버무리고 아까의 무수한 가설, 자신의 오해와는 정반대의 생각을 떠올렸다. 

요르 씨는 로이드에게 선을 긋고 제외하지 않았다. 

사실 그것과는 정반대인 것이다. 어쩌면 요르 씨에게 나는 특별하다. 어쩌면 소중하다.

유리 브라이어와 아냐에게는 미치지 못할 정도로 덜. 그러나 거리와 생활 반경에 널린 아무나보다는 조금 더.

딱 그 정도의 적당한 온도.

어쩐지 이 판단은 그 누구에게도 이르지 못할 것 같았다. 황혼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가슴이 울렁였다. 그러나 그 감각은 고작 한 줌일 뿐이라, 독처럼 심장에서 온몸으로 퍼져 버리기 전에 서서히 내리눌러 갈무리했다.

그는 가라앉힌 마음으로 묵묵히 생각했다. 의심도 해 보았지만, <로이드>에게 초콜릿을 주고 싶었다는 요르 씨의 말이 거짓으로는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내심 조금 안도했다. 아니, 그 말에 기껍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가 듣고자 했던 바로 그 말이다. 지금의 임무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었다. 임무의 불안 요소를 단번에 지워 버리는, 스파이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한마디였다.

단지 그뿐.

그 외의 그 무엇도 아니고.

그렇게 줄어들 줄로만 알았던 이성의 균열에 또 다른 의문과 의심이 샘솟아 그 빈틈을 채웠다. 스파이에게 반드시 필요한 안 좋은 습관이었다.

‘그것은 로이드라면 듣지 못했을 말이었나?’

황혼이었기에 알 수 있었으나 로이드는 어쩌면 끝까지 무지한 채였을지도 모르는 요르 씨의 마음과 그 온도에 대해서 그는 생각했다.

아니, 사실은 황혼은 <로이드>의 가면을 쓰고 있을 때에도 어느 순간부턴가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다. 따스한 미소가 지워지지 않는 맑은 얼굴을 보면 안심하는 동시에 그런 그녀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다만 로이드와의 안온한 나날이 이어지는 한, 그것이 황혼의 임무인 한. 로이드는 그녀의 입에서 직접 들을 날은 오지 않을 거라는 것도 막연히 알게 되었다. 또한 지금처럼, 그리고 앞으로도 그녀가 자각하지 못한 채라면 더더욱.

그는 이제 불안하지 않았다.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도 안심시킨 것도 지금 바로 눈앞의 여자였으니. 하지만 이름조차 얻지 못한 감정이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서, 이제는 더 큰 무언가가 되어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다시 한번 듣고 싶어졌다.

그 하트가 향해야 했던 곳은 나였고, 나뿐이라던 그녀의 말을.

그럴 수만 있다면 이번에야말로 모든 의문이 해결될 것도 같았다. 다른 누구 아닌 자신에게 말해준다면. 그게 요르 씨의 진심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게 된다면.

그래서다. 지금 그는 그녀에게 아마도 특별해지고 소중해진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 아무리 한심하고 약은 짓이라는 걸 알아도, 그녀를 시험하는 것을 그만둘 수 없다. 이제 그것은 가능성을 재고 안심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어떻게 형용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이 기분에 그녀가 답을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아서. 한번 더 그 말을 듣는 것이 대체 뭐라고. 이번에는 내 눈을 보고 말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이번에는 웃어주지 않을까 해서.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이 감정은 욕심인가. 그녀에게 갈구하고 있는 이 마음이란. 이름을 지어준다면 그런 이름인가. 부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 변변찮은 이름일 리가 없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름과 함께 뒷골목의 소각로에 태워버린 지 오래인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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