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家族
키워드: 잊혀진 ■■■
“그러니까, 말하잖아. 그만하자고.”
모든 인간이 존재만으로 가지게 되는 천부적인 인간관계. 영원한 돌아갈 곳이자 마음의 고향. 결코 끊어낼 수 없는 피와 유전자의 고리. 타지에서 하염없이 유랑하다가도 다시금 발을 디디면 울컥 눈물이 쏟아지고야 마는 안식의 공간, 집. 부모 없이 태어나는 아이는 없으며 고향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고들 하던가. 퍽 안타깝게도 나는 지금 그 필연의 연쇄를 끊어내고자 이 자리에 서 있다.
“너 좋을대로 해라, 실컷 해. 네가 언제 내 말을 귀담아 듣기는 했니? 결국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거면서 새삼스럽게 왜 존중하는 척이야.”
“가볍게 하는 말 아니야. 예전부터 줄곧 생각했던 거고.”
“그러든가 말든가, 내 알 바야? 네가 어디 집 나가서 잘 살 수 있나 보자고. 새파랗게 어린 여자애가 혼자 짐 싸들고 나가서 뭘 할 수 있는데. 그러다 무슨 일 생기면 또 엉엉 울면서 전화할 거야? 능력도 없는 애가 뭔 놈의 자신감만 그렇게 강해서 집을 나가겠다 말겠다 난리야, 아주.”
“누군 고민 안 해본 줄 알아? 이딴 집구석에 박혀 사느니 차라리 나가서 길바닥이나 헤매다 뒤지는 게 나으니까 하는 소리잖아!”
“그래, 그러니까 네 마음대로 실컷 해보라고! 다시는 ‘이딴 집구석’에 발 붙일 생각 하지 마, 그럼!”
“어, 그럴 거야! 제발 돌아와달라고 엎드려 빌어도 안 돌아올 거니까 그렇게 알아! 우리 집에, 아니 엄마 집에 딸자식은 없었다고 생각하고 살아! 엄마 좋아하는 막내 아들이나 데리고 행복하게 살면 되겠네!”
덥석, 캐리어 손잡이를 쥐는 손이 핏발 서 엉망이다.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공간임에도 이곳에 발 붙이고 서 있는 시간 일 분 일 초가 아까워 화가 났다. 끝까지 아쉬워하는 기색 하나 없구나. 십수 년을 보고 산 자식이 제 발로 당신의 곁을 떠나리라 선고하는데도 안타까운 감정 하나 없구나. 그 모든 짜증과 분노가 걱정에서 나오는 것임을 헤아려 안도하기에 나는 너무나도 어리고 미숙했으므로, 단지 저들이 제 존재에 미련 하나 가지지 않았구나 짐작하며 남아있던 마음마저 내다버리고 만다. 먼 미래에 지나가듯이라도 내 이야기를 할까. 많은 시간이 지나면 내 존재를 상기할까. 어리고 미숙했을 지언정 그래도 내 가족이었는데···. 하고 날 생각해주려나. 이제 와서 그런 애틋한 감정이며 연민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나야말로 마음 한 구석에 채 버리지 못한 미련이 남은 탓이겠지. 그러니 재차 다짐하는 것이다. 나는 이 집안의 잊혀진 자식이 되겠다고. 다시는, 영영, 절대로, 기필코 영원히 돌아오지 않아서, 오늘 이 자리에서 나를 그냥 떠내보낸 것을 평생에 걸쳐 후회하게끔, 아니, 어쩌면 그 존재조차 잊어서 영원토록 나라는 존재를 돌아보지 않게끔 하겠다고. 내가 내 삶에서 당신들을 도려냈으니 당신들도 그 삶에서 나를 도려내라고. 우리는 그렇게 해야 행복하다고. 그렇게 묶인 존재라고, 우리들은···.
“… 누나.”
“헛소리 할 거면 들어가.”
“누나, 진짜로 갈 거야? 정말 안 올 거야? … 누나, 한 번만 다시 생각해주면 안 돼? 나는 누나가……”
“왜, 너도 먹여주고 키워줬더니 집 나가는 내가 한심해보여? 너도 알잖아. 내가 이 집에서 받은 게 뭔데? 이 집이 나한테 해준 게 뭔데? 야, 나는, 내가 피 터지도록 공부하고 노력해서 남들은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좋은 대학 가면 그때는 날 한 번쯤 봐줄 줄 알았어. 어디가서 우리집 큰딸이 의대 갔다고, 그렇게 나 몰래 자랑이라도 해주길 바랐다고. 근데···.”
“······.”
“너도 너무 노력하지 마. 어차피 우리 집은 안 돼. 난 뭘 해도 욕이나 처먹을 거고, 넌 뭘 해도 칭찬받으며 살겠지. 그게 네 탓이 아니라는 건 아는데···. 지금은 네 얼굴도 보기 싫어.”
“… 누나, 그러면 나랑 약속해줘. 나중에 다시 내 얼굴 볼 수 있어지면, 누나가, 내 생각이 나면···. 그럼 다시 연락해준다고, 약속해주면 안 돼?”
“··· 잘 지내. 갈게.”
이제 와 모든 선택을 무르고 싶어지는 건 단지 내가 동생을 미워할 수 없기 때문만은 아닐 터다. 수없이 고민하고 갈등해 온 마음이 어떻게 한 순간에 흐려질까 싶으면서도, 죄 없는 정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므로···. 그러니 걸어온 길 한번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긴다. 네가, 내 상상 속의 너와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기를 바라며.
어느 한 범죄자의 수기
키워드: 가지 않은 길
이 시는 지금부터 몇 번 수정을 해야겠습니다.
글러가 실력을 숨김(@amazing_0101) 매일 짧은 글쓰기 2023.7.22.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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