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우리가
아니, 너와 내가
우리는 아주 짧은 인연을 끝으로 서로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서로의 마음을 은연중에 깨달았음에도, 서로를 잡지 않았다. 잡지 못했다는 쪽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그 짧은 인연의 끝은 나로부터 파생되었다. 그즈음부터 나는 회사에 곧잘 나갔다. 네가 없는 시간에는 심심했고, 너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간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 나갔던 것도, 그렇다고 내가 돈을 벌겠다고 나간 건 더더욱 아니었다. 무기력으로 정신을 갉아먹고 술과 담배로 육신을 파괴하는 것보다야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너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나은 선택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너는 대학에 진학했다. 네가 원하던 대학이었는지 그것은 잘 모르겠지만서도 원하는 전공이었단 것쯤은 알았다. 너의 입학식, 졸업식에는 가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해외 지사로 발령이 났으니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발령이라기 보단 자원에 가까운 것이었다. 나 정도 되는 직책을 갑자기 해외 발령 내리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해외 지사의 파견 근무자를 지원 받고 있단 소식에 괜히 한 번 말을 꺼냈다가, 곧바로 발령 확정. 우연인지 운명인지. 아니면 숙명인 것인지. 이사를 준비하던 내내 너는 시험인지 뭔지 때문에 바빴고, 나는 그런 너에게 기약 없는 약속을 할 수가 없었다. 말없이 떠나왔고, 나는 이 선택이 여전히 괜찮았던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금방 지우기 일쑤였다. 고민하는 것은 나답지도 않을 뿐더러, 후회하는 결정이면 어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또 어쩔 것인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지나친 고민과 후회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
내가 미국으로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언제나 함께였을까. 너와 나는 서로의 감정을 확인은 했을까. 함께 살았을까. 지금까지도 함께 했을까. 아니면 생각보다 안 맞아서 금방 헤어졌을까. 나는 시간 낭비를 곧잘 하게 되었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네 생각이 종종 나는 것을 보면, 난 참 후회도 미련도 많은 사람임을 느낀다.
5년, 아니, 내 인생을 통틀어서 심장이 뛰는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 듯했다. 사귀자고 하니 사귀었고, 헤어지자고 하니 헤어졌다. 헤어짐의 이유는 하나같이 진심이 아닌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대한다는 것은 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랑한다는 말, 보고 싶었다는 말, 주기적으로 데이트에 돈과 시간을 쓰는 것으로는 진심이 아니라는 것인가? 참으로 혼란스러웠다. 내 이 나이가 되어서도 제대로 된 사랑 한 번 못했단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네 안에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있는 것 같다는, 전 연인들의 하나 같은 말들을. 그 다른 사람은 누구일까. 그 사람은 대체 누구길래 일상적인 연인의 행동마저 거부감이 들게 만드는 것일까.
나는 지난 5년 간 간간이 이어져 온 연애에서, 단 한 번의 키스도 섹스도 허락하지 않았다. …사실은 못했다. 아무리 상대가 어필을 해와도 흥분이 되지를 않았다. 어쩌다 한 번씩 흥분이 되어도, 내가 흥분했음을 깨닫는 순간 가라앉았다. 오해하기 딱 좋았다. 성 기능에 문제가 있다거나, 게이라거나, 동성 애인의 경우에는 스트레이트라거나 등등…. 그 덕에 나는 해마다 아주 짧은 연애를 했다.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다는 깊은 고독감을 처음으로 느꼈다. 몸을 주지 못한 것처럼 마음도 줄 수 없었다. 정 하나 붙이지 못한 곳에서 5년이나 살았으면 오래 살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지 두 달째가 되는 날이다.
해외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물론 이마저도 자본과 명예가 기반되어 일정 이상의 편안함은 보장된 상태였지만서도. 이쯤 되니 시차도 힘들고, 먹는 것도 부대끼고, 병원 한번 가는 데에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것도 힘들고, 어쩌구, 저쩌구. 돌아가고 싶단 얘길 둘러둘러 하기 일쑤였다. 미국 지사의 상황도 안정되었고, 사실상 최근 1년간 나의 할 일이라고는 한국에서 한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에서보다 일을 덜 했다. 지루했다. 한 손을 다 접을 만큼 여기서 지냈으니, 이제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이 머릴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때우기만 하다가 결국은 한국 지사 발령을 받게 되었다. 메일을 받자마자 집을 처분했다. 발령 날짜에 맞추어 짐을 정리해 한국으로 부쳤고, 딱히 필요 없는 가구는 헐값에 처분했다.
도착했을 때의 한국은 겨울이었다. 미국 지사가 있는 주는 겨울에도 그다지 춥지 않았고, 항상 날이 좋았다. 5년 만에 서울의 매서운 추위를 느껴보니 내장까지 버들버들 떨렸다. 입김을 푹푹 내뱉으면서 대기하던 비서의 차를 타고 아파트로 향했다. 아파트 정문에 내려서는 뒤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이만 퇴근하라는 말을 남기고 5년 만에 집으로 걸어갔다. 커다란 캐리어 하나를 드르르 끌고 올라가 집 현관에 놔두고 곧바로 다시 내려왔다. 그네에 앉아 담배를 태웠다. 5년 전처럼. 한 개비를 다 태우고서 이 주변은 어찌 변했나 싶어 아파트 단지 바깥으로 나가보았다. 멀리 서서 아파트를 올려다보다가 뒤돌아 아무 곳이나 향해 걷기 시작했다. 느긋하게 한참을 걸으니 대학가였다. 수업 마치는 시간인지 학생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나왔다. 큰 사거리에서 길을 건너려고 횡단보도에 서 있었다. 왠지 모르게, 건너편의 대학생 무리에 눈이 갔다.
나는 너를 단박에 알아보았다.
키는 훨씬 컸고, 옷은 교복이 아니었으며 머리는 파마라도 했는지 옅은 곱슬기가 보였지만, 그렇지만, 나는 너를 알아봤다. 다른 사람들은 흐린데, 너 하나는 아주 명확하게 보였다. 너는 나를 알아볼까. 알아봐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면, 나는 너 하나를 가슴에 두는 바람에, 5년이라는 해외 살이에서 게이면서 스트레이트고 성 기능 불능에 뭐에… 아주 미친놈이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가만히 서서 네가 횡단보도를 다 건너길 기다렸다. 이왕이면 눈도 마주치길 기다렸다.
십 미터.
사 미터.
세 걸음.
너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김하운. 너와 눈이 마주치고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잡으면 손가락 두어 마디나 남던 손목이 이젠 한 마디도 남지 않을 정도로 굵어진 것을 느꼈다. 캐주얼하면서도 잘 어울리는 사복을 입고,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걷는 너를 보니 5년 전의 김하운은 이제 없다는 것 또한 느꼈다. 나는 잠시 말없이 너와 눈을 마주쳤다. 번호 안 바꿨고, 나 아직 거기서 살아.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손목을 놓아주었다.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생각이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네가 나를 잊었을까 봐,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도록 온 가슴에 너를 빼곡히 채워두고도 깨닫지 못했던 나와 달리, 너는 나를 잊은 지 오래일까 봐, 그래서……, 두려웠다. 약간 놀란 듯한 너의 얼굴을 아주 잠시 응시하다가, 돌아섰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돌아보고 싶었고, 네가 나를 잡길 바랐다.
하운아. 만일 우리가, 아니, 너와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우리는 달라졌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난 이 나이를 먹고도 아무것도 모르겠어. 내가 하나 아는 거라고는, 난 언제나 너를 생각했고, 이건 사랑에 가깝다는 것뿐이야.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
베스타 그림 백업
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