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의 무저갱

https://www.youtube.com/watch?v=uZ9hB107AHs

 사랑한다고, 그렇게 말했었지.

 그 말을 믿으며 남은 삶을 살아갈수도, 거짓말이라 여기고 남은 삶을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차세오는 그 중 후자를 택했다. 일차적으론 애초에 그 말이 사실일 리 없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차세오가 그간 봐온 주은이라는 인간은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유형의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남에게 진심을 줄 수 없는 인간. 그 상대가 설령 자신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그 사랑한다던 고백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면 남은 삶이 지나치게 괴로워질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정말 주은의 진심이었다면, 차세오는….

 차세오는, 이제 어떻게 해야 좋을까?

 짝사랑이라면, 그것은 많이 괴로운 일이었지만, 괜찮다고 생각했다. 주은이 제 마음을 알고 있다는 사실쯤은 차세오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걸 의도적으로 모른척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애초부터 차세오는 보답받고 싶다는 욕심 같은 걸 품는 종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더, 정확히는.

 "그런게 저 같은 인간 따위에게 허락될 리가 없으니까요."

 차세오가 냉소적으로 웃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은 스스로를 향한 혐오에 찌든 자아검열에 의해 이미 잘려나간지 오래였다. 남이 들으면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겠지만, 적어도, 차세오는 스스로를 사랑하기엔 가치 없고 아까운 인간이라고 여겼다. 그러니 조금 괴로워도 괜찮았다. 견딜 만 했다. 주은이 흥미 위주의 이유로 자신을 들쑤신다는 것쯤은 이미 알았다. 들쑤셔질 때마다, 마음은 통제되는 영역 바깥에서 마구잡이로 요동쳤지만 곧 괜찮아졌다. 어차피 그 끝은 결국, 지독한 외사랑일 것이란 사실을 완전히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를 사랑하니까.'

 차세오가 이를 악물었다. 그런 말 따위, 진심일 리 없다. 애초에 주은과 같은 유형의 인간의 호감은 다소 파괴적이다. 설령 그게 어떤 의미의 애정이었다고 해도, 받는 이를 부서지게 만드는 종류의. 왜냐하면 그 기반에 있는 감정은 애틋하고 달콤한 사랑 따위가 아니라 어떤 흥미와 지배욕 내지는 정복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너를 내 손 안에 잡고 흔들고, 좌우하겠다는 원초적인 욕망. 그것이 설령 자신이 죽은 후라 하더라도….

 

 그런 의도에서였다면, 주은은 확실히 성공했다.

 왜냐하면 차세오는 주은이 죽고 나서도, 그 망령에 사로잡혀 있다시피 하니까.

 죽기 직전 마음에 없는 말 한마디를 거짓으로 내뱉는 것 하나로, 상대의 삶을 끝까지 지배하는 것. 죽고 나서도 상대가 자신에게 사로잡혀 있게 하는 것. 꽤나 수지맞는 장사다. 차세오가 다시 한번 냉소적으로 웃었다. 제법 효과적인 방법이지 않은가. 아직도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차세오를 보라. 주은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칭찬부터 건네고 싶을 수준이었다. 정말, 끝까지 더없이 잔인하게 군 것만으로도 만족하지 못해서 이렇게까지….

 더 이상 내뱉을 상대 없는 원망을 되새기던 차세오가 억지로 웃었다.

 "글쎄, 아마도 후회하냐고 물으면."

 그러나 후회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고 가정했을 때 다른 선택을 내릴 수 있어야 가능한 감정이다. 

 "그렇지 않다고 할 것 같은데…."

 돌이켜 다시 선택한다고 했을 때, 다른 선택을 내릴 것이냐고 물으면 고개를 내저으리라. 그리고 그 사실이 차세오를 조금, 조금 더 괴롭게 했다.

차세오가 잠시 숨을 멈췄다. 시선의 궤적이 주은의 영정을 그대로 덧그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웃고 있는 사진은 정말 생전의 것 그대로였다.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수 있을 것처럼. 그래서 그 사진을 향해서라도 따져 묻고 싶었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굴었냐고. 끝까지 그러고 싶었냐고. 그 감정의 본질은 분명 원망이었을 것이다. 

 "고통스럽냐고 물어보면,"

 다만 그저 그런 상상을 가끔 하게 됐다. 그 모든 건 차세오의 꿈이었을지도 모르고, 주은이 심장마비로 죽은 건 아마 우연이었을 거라고. 얼마든지 죄책감을 덜 수 있는 그 가정은 생각만으로도 꽤나 달콤해서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그런 상상에 빠져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고 속에 매몰되어 안주할 수 없음은 스스로도 안다. 적어도 차세오가, 그 모든 것이 정말 꿈이고 우연에 불과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그 안에서 주은을 죽이는 것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세계를 위해서였다는 변명을 댄다 한들.

 "그건, 조금 그런 것 같네요."

 억지로 웃었다. 


 주은이 픽, 하고 비웃는다. 

 "그럴 용기도 없는 주제에 도피하지 마."

 "… …."

 "내가 널 아는데 무슨."

 그 말은 지나치게 차갑고 또 매서워서, 말도 형태를 지닐 수 있다면 그건 분명히 날카로운 끝을 지닌 흉기일 것이란 생각을 퍼뜩 했다. 심장 어드메에 무언가 푹, 꽂힌 듯 아팠다. 차세오는 정곡을 찔렸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맞는 말이었다. 그건 어쩌면 회피에 불과했을 것이다. 정말로….

 "그걸 알면, 당신이 해요."

 차세오가 울컥 차오르는 무언가를 참지 못하고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당신은 다 알면서, 제 손으로 당신을 죽이라는 잔인한 발상을 합니까?"

 "세오야, 그 발상을 한 건 내가 아닌데."

 주은이 느긋한 어조로 대꾸했다. 

 "왜 나한테 화풀이야?"

 "당신이 강요하고 있잖습니까."

 그리고 차세오가 그 말끝을 잘랐다. 기세가 짐짓 사나웠다. 그 말을 끝으로 한참 침묵이 흐른다. 질기기 그지없는 묵직한 침묵 끝에 먼저 손을 들어 항복한 것은 결국 또 차세오였다. 느릿하게 한숨을 한 번 뱉은 차세오가 입을 열었다.

 "…부탁이니까, 그거. 제 손으로 하라는 말만 안 하면 안됩니까?"

 그리고 상대는, 정말 별 것 아니라는 어투로 대답해왔다. 어쩌면 견디기 힘든 것은 이 상황 자체가 아니라 시종일관 느긋하고 침착한 그의 태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전부 지금 와선 의미 없는 일들이지만.

 "자살할 수는 없잖아."

 그 말을 듣자마자 차라리 그렇게 해 달라는 대답이 목 끝까지 차올랐던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쪽이 덜 고통스러울 거라고 여겼으니까. 그것이 더없이 이기적인 발상임을 안다. 결국 자신의 손으로 선택할 수 없어서, 남에게 결정과 그 책임을 떠넘기는 꼴이니까. 왜냐하면, 차세오는 도저히 그 죄책감을 짊어질 자신이 없기 때문에. 결국 자신은 고작 그만큼의 나약한 인간인 것이다. 스스로도 그 사실을 뼈저리게 잘 알아서, 문득 차세오는 괴로울 만큼 견딜 수 없어졌다.

 차라리 그렇게라도 하면, 그렇게 입술을 달싹이던 차세오는 입을 꾹 다물었다.

 "…됐습니다."

 

 주은이 코웃음을 친다.

 "그래서 이렇게 그냥 가만히 있자고? 나를 죽이지도 않고? 그냥 세계 멸망을 맞자는 거야?"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요."

 "그럼?"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 손으로라도 하게 해달라고 말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울컥, 깊은 곳에서 무언가 짓눌려 있던 것이 치고 다시 올라왔다. 마음 어딘가가 그 탓에 들썩거린다. 그러나 오히려 머리 속은 차갑게 식는 것 같았다. 이 감정은 어쩌면 분노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원망, 억울함, 또는 배신감. 그 어드메의 무언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버틸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 못 하겠는데."

 차세오가 한 번 자조했다.

 "그걸 제 손으로 하라고요."

 잠깐 다시 침묵이 흘렀다. 이번에 먼저 입을 연 건 주은의 쪽이었다. 되려 서늘한 어조로.

 "세오야, 그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네가 해야 할 일이잖아."

 "… …."

 "왜 그걸 나한테 떠넘겨? 너는 왜 항상 도피만 해? 그거, 네가 견딜 수 없어도 해야 하는 일이잖아."

 말에도 형태가 있다면. 그 순간 차세오는 방금 전 했던 생각을 다시 상기했다. 날이 선 칼이 두어 번은 차세오의 뺨 언저리를 스쳤고, 끝끝내는 가장 중심부, 심장보다 더 깊숙하고 은밀한 곳까지 파고들어 단단히 틀어박혔다. 차세오가 순간적으로 숨을 집어삼켰다. 정말로 어딘가에 관통당한 것처럼 숨이 막히고 아파 왔기 때문이다. 주은이 던진 말 끝에선 마치 핏물이 묻어 나오는 것만 같았다. 안 그래도 창백했던 차세오의 낯빛이 그대로 희게 질린다. 차세오는 입술 끝을 파르르 떨다가, 말없이 시선을 내리깔았다. 

 "…화낸 건, 미안합니다."

 겨우 띄엄띄엄 뱉어낸 말은 말 돌리기에 가까운 사과였다. 차세오가 다시금 심호흡을 한다. 겨우 숨을 골라내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인정하죠, 화풀이였으니까."

 사실 화를 낼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주은이었을 것이다. 뜬금없이 낯선 방 안에 갇혀서 죽음을 강요받고 있는 것은 그였으니까. 그를 죽여야 하는 차세오보다는, 죽어야 하는 당사자인 주은이 오히려 더…. 거기까지 생각이 가 닿기가 무섭게, 심장이 콱 조여드는 것 같은 감각이 전신을 지배했다. 문득, 차세오는 이것이 정말 울 것 같은 기분이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으나 그랬다.

 "그렇다고 해서, 말을 그런 식으로…."

 두어 번 다시 입술을 달싹인다.

 "왜…."

 

 겨우 삼켜낸 것은 눈물이었던가.

 "다 알면서, 그런 식으로…."

 주은이 시야 앞에서 여상스런 태도로 그저 웃었다. 다 아니까 그런 거지. 안 그래? 그럼 나 말고 누가 너한테 이런 말을 하겠어. 감히, 누가. 너에게. 단단하게 내려박아지는 단어들이 몸에 박히는 쐐기라도 되는 것처럼 아팠다. 시야가 흔들렸다. 안쪽에 맺힌 주은의 상이 흐릿해지더니, 이내 몇 개로 겹쳐진다. 

 "다, 알면서, 그런 식으로…."

 물기를 밴 목소리가 흔들리는 것을 자각하고 나서야, 차세오는 그게 눈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신 정말,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냐고, 그렇게 묻고 싶었을 것이다.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은 그거였다.

 "너를 사랑하니까."

 이내 귓가에는 믿을 수 없는 한 마디가 들려왔다. 차세오의 숨이 잠시 멎었다. 주춤, 두어 걸음 물러난다. 시야 앞에 선 주은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부드럽게 웃었다. 당장이라도 멎어 버릴 만큼 차갑게 식었던 심장이 미친듯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설렘 같은 이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달착지근하고도 분홍빛인 감정의 이름을 붙이기엔 지나치게 싸늘하고, 또, 분노가 섞인….

 "…웃기지 마시죠."

 그 무언가의 감정.

 "왜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금방이라도 사랑고백을 한 인간의 것치고는, 주은의 태도는 지나치게 유유자적했다.

 "당신이 날 사랑할 리 없으니까."

 차세오가 억눌린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미안한데, 사실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 없어. 어차피 넌 날 사랑하잖아?"

 주은이 비죽, 하고 한 번 웃는다. 

 "그걸 알면…그냥 말하지 말지 그랬습니까."

 가장 먼저 치솟아 올라온 것은 당연하게도 원망이었다. 곧 죽을 사람이면서, 왜 끝까지 이렇게 자신을 흔들어놓고만 가냐고 따지고 싶었다. 왜 당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지고 놀다고만 가냐고. 차라리 말하지 말지. 그랬으면 그냥 힘겨웠던 짝사랑으로 끝낼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런 말을 해서. 내 손으로 당신을 죽이라는 요구만으로도 충분히 잔인하지 않았냐고, 그렇게 묻고 싶었는데. 

 "그렇지만 이제 마지막이잖아, 세오야."

 여전히 부드러운 태도였다.

 "차라리 말하지나 말지. 어떻게 그런 말을 듣고도 제 손으로 당신을 죽이라고…."

 물기에 젖어 흔들리는 목소리를, 주은의 다정하고도 단호한 말이 잘랐다.

 "10분 남았어."

 그건 꼭 사형선고처럼 느껴졌다. 결국 너는 나를 죽여야 할 거라는 선언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너는 결국 나를 죽이게 될 거라는 확신처럼 들리기도 했다. 차세오가 잠시 속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당신은 죽음이 두렵지도 않습니까?"

 "두렵다니까."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해요. 어떻게 그렇게…."

 "어쩌겠어."

 차세오가 허탈하게 웃는다.

 "당신 정말 잔인하네요."

 

 주은이 픽, 한번 웃었다.

 "칭찬 고맙다."

 "… …."

 "나도 알아. 그런데도 날 사랑한 건 너잖아. 다시 말하지만 뭐 어쩌겠어? 난 원래 이런 놈이고, 알면서도 날 사랑한 건 너야."

 사실은 그 말이야말로 가장 잔인한 말이었을 것이다. 차세오는 그제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웃을 수 있었다. 유쾌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자조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어쩌면 모든 게 순조로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적어도, 그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사랑한다는 말이나 하지 말지."

 "왜? 그럼 죽일 수 있을 것 같았어?"

 "마지막 동정 같은 건 필요 없다는 소리였지만…. 아뇨, 어떻게 해도 결과는 같았겠군요. 됐습니다."

 차세오가 잠시 냉소적으로 웃는다. 

 "왜? 진심이었을 수도 있잖아."

 "당신 그런 인간 아니잖아요."

 "내가 어떤 인간인데."

 차세오는 잠깐의 고심하는 시간조차 갖지 않은 채, 그저 눈을 한번 꾹 감았다 떴다. 그리고 대답한다.

 "누구에게도 진심을 주지 않는 사람."

 "너 치고 잘 봤네."

 주은이 다시 한 번 웃었다. 차세오가 대꾸했다. 그것 봐요, 맞잖습니까. 사실 어차피 이제 와서 그런 것들은 모두 의미 없는 일이었다. 주은이 차세오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아니던. 그런다고 결말이 바뀔 일은 없을 테니까. 그저 잠시 원망이 스칠 뿐이다. 왜 하필 이런 마지막 순간에 그 말을 들어야 했는지. 그렇게 절절하게 바라던 한 마디였지만, 단 한 순간도 이루어질 일이 없으리라 믿고 있었던 말을. 이제 와서, 이런 식으로. 차라리 아무것도 듣지 않았다면 덜 괴로웠을까. 그저 그런 생각을 하게 됐을 뿐이다.

 "아냐, 그래도 사랑한다고 했던 건 진심이었어. 믿든지 말든지."

 죽을 거면, 정말…흔들고 가지나 말지. 차세오가 다시금 혼잣말에 가깝게 뇌까린다. 이내 차세오가 힐끗 모래시계를 보았다. 모래는 거의 조금을 남겨놓고 다 떨어져가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계, 또는 주은이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 사실 처음부터 어차피 결정은 내려져 있었다. 그저 그 상대가 주은이라서, 수없이 망설이고 또 회피하고 도망치고 못 하겠다고 투정을 부렸던 것 뿐이다. 차세오는 주은이 자신의 손에 억지로 쥐여준 총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됐어요. 제가 졌으니까…."

 그건 분명히 중의적인 표현이었다. 나는 이미 졌으니까 그런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로 흔들 이유가 없다는 것과, 당신이 원하는 대로 당신을 쏴 주겠다는 말. 

 "…남길 말, 있습니까?"

 모래시계에게 한 번 시선을 준 주은이 픽, 웃었다.

 "사랑했어, 세오야.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못해서 세계는 멸망하겠지만."

 "…아뇨, 쏠 겁니다."

 의외로 차세오는 단박에 흔들림 없는 어조로 답했다. 

 "좋아요. 그 말을 믿든 안 믿든 그건 제 자유겠지만…."

 그리고 겨우 떨리는 손으로 주은에게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다.

 타앙─.

 시끄러운 총성이 한 번 좁은 방을 울렸다. 빗나갈 리 없는 사정거리에서, 총알은 목표물을 그대로 관통한다. 겨우, 털썩 팔을 내린 차세오가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상대가 더 이상 들을 리 없는 마지막 말을.

 "…믿지 않는 쪽이, 남은 삶을 견뎌나가기에 조금 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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