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Two

https://www.youtube.com/watch?v=xWpEZguQE8E


 다정한 것을 싫어했다.

 때로 다정은, 약한 곳을 파고들어 녹이고 그 새로 틈을 비집고 들어가 나를 침식시키기 마련이었으니까. 해골 딱지가 붙은 화학약품처럼. 손댔다간 살갗이 타들어갈 정도로 위험한 것들. 나는 아무 곳에도 기대면 안 돼. 스스로에게 억지로 강요하듯 그 말을 몇 번을 되새기며 속삭인다. 그러니까 다정은 용납될 수 없는 종류였다. 나에게 무언갈 기대하게 하니까. 타인에게 의지하게 만드니까. 나는 나약해지고야 말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어서 필사적으로 혼자 완전하게 서 버티려 애를 썼다.

 "역시 저는,"

 "…응."

 "언니가 제 언니라서 다행이에요."

 노래부르는 듯한 어조가 귓가로 흘러들어왔다. 시야를 한가득 분홍빛 넘실거리는 머리칼이 채운다. 한 점 그늘 없이 맑게 웃는 낯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는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나는 잘 모르겠어."

 사랑이 아름다운 감정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마냥 귀여워 보여야만 할 동생의 얼굴이 더 이상 그렇게 보이질 않아서, 나는 차마 그것을 더 이상 바라볼 수 없어 고개를 아래로 떨궜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가끔 자문했다. 이게 정상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안다. 아마 죽고 나서 지옥에 가도 할 말이 없겠지. 어쩌면 살아 있는 와중에도 천벌을 받을지 모르고. 말갛기만 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눈을 질끈 감는다. 이런 더러운 감정이 사랑일 리 없다고.

 가끔 아네트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앨 처음 만났을 때 일고여덟 살은 되었을 법한 꼬마의 얼굴이 그 위로 겹쳐지곤 했다. 기댈 곳 하나 없고 그저 외롭고 겁먹은 낯을 한 어린 여자애였을 뿐이던. 그 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나면 헛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그 순하던 애랑.

 "다행이에요."

 "…왜?"

 기쁜 듯 웃는 낯을 바라보다가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톤으로 되물었다. 아네트가 웃는다.

 "그렇게 말해줘서."

 이해할 수 없게도, 네가 내 동생인게 다행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고 있는데도 너는 마냥 웃기만 한다. 이렇게 밀어냈으면 밀려줄 법도 하잖아. 나한테 지쳐서 마음을 거둘 만도 하잖아. 그러나 아네트는 언제나 직선적이었고 일방향적이었다. 역시, 이건 네가 다정해서 그런 거잖아. 네가 나빴어. 목끝까지 차오른 원망을 애써 내리누른다. 내 허리를 끌어안은 손이 단단한 족쇄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한 것은, 그런 구속이 달갑게 느껴지는 나였다.

 그랬다. 아마, 미쳐가는 건 나였다.

 처음부터 나였을 것이다.

 고해하듯 울며 기도하던 몇 년 전의 밤을 떠올린다. 이 더럽고 질척질척한 감정에서 제발 벗어나게 해달라고 울며 빌던 날들도. 피가 섞인 언니에게 품기엔, 지나치게 음습한 것들을 나는 분명하게 품고 있었다. 없애달라고 몇 번을 기도했지만 소용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후로 확신하게 됐다. 아마 적어도 천벌을 받을 일은 없겠지. 이렇게까지 했는데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을 보면, 분명 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 테니까. 그리고 그 후부터는 더 죄책감 없이 언니에게 손을 뻗게 됐다.

 "…나는 잘 모르겠어."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 그 아래 짙푸른 눈동자. 예쁘기도 하지. 죄책감을 담고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것마냥 스러질 것 같은 표정을 하는 모습이 몹시도 사랑스럽기만 했다. 나에게만 이런 모습을 보여줄거라는 점에서 더욱. 나는 언니의 허리를 끌어안은 손에 말없이 힘을 주고, 어깨 부근에 머리를 기댔다. 미지근한 온기가 선명했다. 이걸로 충분하다.

 "다행이에요."

 "…왜?"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로 언니가 되묻는다. 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당신은 모르겠지. 몰라야 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다. 언니가 알량한 죄책감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도덕심 따위로 인해 몹시도 망설이며 내 손을 잡아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그걸 깨달은 이후로 몇 년을 공들여 내내 언니를 흔들어 왔다. 다정한 척 여린 곳을 파고들어 단단히 속에 자리잡는다. 그리고 내가 언니의 일부가 되도록 내버려둔다. 내가 없으면, 더 이상 완전할 수 없게. 그뿐이다. 그리고 확신하건대, 곧 그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해줘서."

 내게 벽을 치려고 했었다면 아마, 나도 네가 내 동생이라 다행이고 정말 좋다고 속삭여줬겠지. 잔인하도록 다정한 어조와 눈빛을 하고. 지금의 모습은 흔들린다는 증거다. 또한 동시에 언니에겐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래서 다행이야. 절대 말할 수 없는 속내를 속으로 꾸역꾸역 삼키며 달큰한 낯으로 웃는다. 지금은 그저 이것으로만 충분했다. 곧 언니는 무너지게 될 테니까. 그저 나는, 그 때가 되면 무너져가는 잔해를 다치지 않도록 내 품으로 받아내기만 하면 될 터다. 그러니까 모든 것은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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