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페커미션 16. 비틀린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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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린 이해
노란 위액이 더러운 길 위에 흐른다. 굳이 닦을 필요가 없었기에 나는 속이 편안해지는 대로 등을 돌렸다. 이 동네는 더럽지 않은 곳이 없어서 위액정도는 좀 토해도 티가 나지 않았다. 정말이지 멋진 동네였다. 더러움이 더러움에 묻히고 쓰레기가 쓰레기에 묻히는 환상적인 내 고향, 판타스틱 케슬 베일이시다. 씨발.
아, 시끄러워. 머릿속에 말벌이 가득 찬 것마냥 시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대가리에서 페이 젠웨이가 시퍼렇게 날 세운 칼을 들고 똑같이 칼 든 페이 젠웨이를 마구 찌르고 있었다. 뭐가 내 진심이고 뭐가 내 진심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아니, 염병, 구라는 치지 말자,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나다. 찌르는 것도 반격하는 것도 상처 입히는 것도 상처 입는 것도 모두 이 페이 젠웨이다. 덕분에 죄 없는 몸뚱아리만 고생이니 몸뚱이에게 절이라도 올려야 하나? 무릎 꿇고 이마라도 땅에 몇 번 박아줘야 하나.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내가 뭘 실수한 건데? 망할 영감탱이들. 고작 내가 그딴 새끼 하나 싫어한다고 나를 버려? 아니, 아니다. 씨발, 부모 버리고 튄 좆같은 아들도 착하다느니 개지랄을 떨며 한 세월을 기다린 노망난 놈들이 휘어져라 지네 병원비를 부담하고 있는 손자를 버린다고? 그럴 리가.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니, 이유? 무슨 이유? 염병할, 그런 거 없어. 그냥 지네 아들 욕하는 손자를 더 이상은 못 견디는 거라고. 하지만 그럼 왜 튀는데? 아들 기다린다고 지금껏 이 쓰레기장에서 기어 다녀놓곤 내가 뭘 했다고 그걸 버려.
몇 년째 옷도 안 갈아입는 노숙자새끼가 감히 날 미친놈 보듯이 봐? 꺼져! 콱 죽여 버리기 전에. 겁먹고 튈 거면서 왜 멀쩡한 사람을 그딴 눈깔로 봐? ……내가 소리 내서 말하고 있었나? 근데, 지금 그게 중요해?
씨발, 내가 뭘 했는데. 노친네들 병원비 대려고 좆빠지게 일하고 와서는 존나 공손하게 여쭤봤잖아, 옆 동네 공장은 이사도 도와주니까 거기 가자고. 맨날 잠도 안자고 기다린 건 기만이었나? 잠깐, 기만을 그렇게 오랫동안 할 수가 있나? 그게 가능하면 지 혼자 튄 아들새끼부터 잡아왔겠지. 그저께도 평소랑 똑같았잖아. 할망구는 안 처자고 기다리고, 밥 차려주고, 내가 그거 먹고. 먹다가 이사하자고 하고, 그러면 할망구는 또 기다리자고 하고. 난 또 개소리 들으니 빡쳐서 거품 물고. 맨날 하던 거잖아. 대체 뭐가 문제야?
그러니까 왜 우냐고…….
염병, 이 난장판인 집꼬라지에서 좆같은 건 애비새끼밖에 없는데 왜 할망구가 울고 지랄이냐고. 쳐 죽일 놈은 애비새끼밖에 없잖아. 그 새끼가 노친네들 인생 망쳐놓고 내 발목 잡은 개잡호로새끼잖아. 씨발 내가 애비 닮아서 호로새끼니까 노친네 우는 소리가 듣기 싫어진 거잖아? 그치만 난 애비새끼가 아니라서 입 닥치라고 안 했잖아? 참고, 참고, 참아서 겨우 그냥 뒤질 것 같다 한 소리밖에 안 했잖아. 내가 진짜 혀 빼물고 자살하는 시늉이라도 했냐고. 더 심한 말하기도 싫어서 자리도 비워줬잖아. 그게 그렇게 듣기 싫었어?
나는 같은 자리를 빙빙 돌며 머리를 쥐어뜯는다. 잘근잘근 손가락을 깨물다가 허공에 삿대질한다. 노친네들이 어디 있는 질 모르니 허공에 대고 삿대질 할 수밖에. 아니 그렇게 듣기 싫은 소릴 해대는데 지금까지 어떻게 같이 살았냐? 왜 이제 와서 날 버린 거냐고? 아냐, 버리지는 않았을 걸? 개소리한다. 이게 버린 게 아니면 뭔데? 사정이 있었을 수 있잖아. 무슨 사정? 씨발 지네 옷이고 짐이고 전부 싹 사라졌는데 무슨 사정? 어차피 나 아니면 병 고칠 돈도 없잖아. 더 이상은 이딴 동네에서 못 살겠어서 그런 걸지도 몰라. 아니, 그럴 거면 옆 동네 공장으로 가면 되는 거 아냐? 그건 왜 거절해놓고 이제 와서 튄 건데? 소리쳐 물어봐도 대답 해 주는 놈 하나 없다. 씨발, 이 동네가 다 그렇지.
이틀 만에 돌아온 집은 누가 살기라도 했냐는 양 텅텅 비어있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개좆만큼 있는 내 물건을 뺀 모든 게 사라지고 없었다. 돌아버린 것 같아서 나는 텅 빈 집에서 뒷걸음질 쳤다. 빈 집이 나를 산채로 잡아먹을 것 같았다. 마법사 따위 한 놈도 없는 케슬 베일에 저주 걸린 집 따위 있을 리 없는 걸 알면서도 속이 메슥거리고 손이 덜덜 떨렸다. 나는 몇 걸음 뒷걸음질 치다가 달리기 시작했다. 여긴 아냐. 여긴 아냐. 여긴 아냐. 이런 곳이 내 집일 리가 없어. 뭔가 잘못된 거 아냐? 내 대가리가 어떻게 되어서 잘못 찾아온 거 아냐? 아니면 어떤 개호로잡놈새끼가 날 괴롭히려고 노친네들을 납치하고 짐까지 싹 뺀 걸지도 모르지. 근데 그 정도로 정성스럽게 날 엿먹일 놈이 있나? 좆같으면 그냥 쳐 죽이고 끝내는 게 이 동네 생리였잖아. 털어도 동전 한 푼 나올 거 없는 새끼에게 뭘 바라서 그런 귀찮은 짓을 하냐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나는 달려 나갔다. 울컥 차오르는 걸 뱉어내려면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그저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나 이 동네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달리고 달리다보면, 여기저기 돌다 보면, 어쩌면, 노친네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날 버리고 동네를 뜬 게 아니라, 어떤 사정이 있어서, 이유가 있어서…….
너무 달려서 속을 다 게우고 나서야 나는 멈추어 섰다. 이 동네에 노친네들이 없다는 건 다섯 번 쯤 확인한 것 같다. 씨발. 좆같아.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있었다. 이 염병할 세상, 콱 뒤져버리라지. 난 버려졌어. 난 버려진 거라고! 하하! 하하하! 지들끼리는 몸도 제대로 못 가눌 노친네마저 날 버린 거야! 씨발 결국 애비는 지네 부모를 닮았던 거라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또 속이 울렁거렸다. 우웩, 하고 나는 골목 구석에 대고 위액을 토해냈다. 아직도 토할 게 남아있었나? 하, 너무 많이 게워서 눈앞까지 흔들렸다. 기분 존나 더러워.
흐린 눈으로 익숙한 고향을 둘러본다. 내가 토를 하건 말건 뒤지건 말건 별로 큰 티도 안 날 어둡고 더러운 동네. 갑부가 될 꿈을 꾸고 이 도시로 모인 자들이 그 꿈에 압사당해 죽어가는 곳. 버려진 자들이 모여 서로를 버리고 사는 작은 지옥. 마법사가 되지 않았다면 여기가 지옥인줄도 모르고 살았겠지. 씨발, 진짜 복권이라도 당첨되지 않는 이상 이 동네를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순간 멍해졌다. 누가 뒤통수를 세게 때린 것만 같았다. 그래, 노친네들이 만약에 돈 때문에 날 거뒀던 거라면? 그런데 복권이라도 당첨된 거라면? 그래서 더 이상 내가 필요 없어졌다면? 그래서 내내 귀찮던 돈줄을 버리고 하하호호 병 고치러 튀었다면? 아, 진짜 그런 거 아냐?
진짜 그런 거 아니냐고?
아니, 현실성은 좆도 없는 개 같은 상상인거 아는데, 근데 말이 되는 게 이것밖에 없잖아. 이거 말고는 도무지 그 영감탱이들이 여기서 튈 이유가 없다고. 그래 실현가능성이 좆만한 로또가 아니더라도, 어딘가에서 돈 나올 구석이 생겼다면, 개좆같은 아들의 개좆같은 아들새끼 비위를 굳이 맞춰가며 살 필요가 없긴 하지.
답 나왔네.
답이 나왔다고.
제일 좆같이 생긴 페이 젠웨이가 엿같이 긴 칼을 내 가슴팍에 찔러 넣었다. 존나 아프다. 아, 씨발. 그런 거였네. 그래서 버려진 거네? 하. 하하. 하하하하하! 씨발, 너무 웃겨서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이거 완전 개그잖아? 씨발, 이렇게 간단한 답을 두고 난 지금까지 뭔 염병을 떤 거야. 결국 아무도 내 편이 아니었던 거지. 아무도! 명쾌한 답이 너무 웃겨서 나는 웃고 또 웃었다. 아, 나 멍청한 거 맞네. 역시 공부랑은 안 맞는 거였잖아.
제일 중요한 가르침은 교수들이 아니라 그들이 주고 있었는데 줄곧 흘려듣고 있었다. 멍청한 나는 이제야 그들이 옳았다는 걸 알았다. 하, 첨엔 무슨 개소린가 했는데, 이게 맞네?
그렇구나, 역시 머글은 갱생이 불가능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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