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재생의 의의

부활에는 어떤 가치를 두는가

made in heaven by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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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은 의술을 행하는 이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질렀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의술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를 탐구하였습니다.

또한 피고인은 살인을 저질러 그 시체를 부패스러운 행위에 사용하였습니다.

저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그 시체를 죽인 살인범을 데려와 물어보시오.

피고인은 지금 유족들 앞에서 고인을 모독하고 있습니다…….

의사가 사람을 되살리고자 하는 게 어찌 잘못이며 모독입니까? 유족들도 아들이 살아 돌아온다면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말을 내뱉자 무성한 야유와 함께 방청석이 들썩거렸다. 폭력적인 아우성 사이 어떤 뭉툭하고 딱딱한 것이 날아와 갈바니의 머리에 부딪혔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 줄줄 흘러내리며 머리와 어깨를 적셨다. 갈바니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눈을 감은 채 손을 떨며 피고석에 그대로 서 있었다. 적출하여 이제는 없는 눈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수갑의 사슬이 절그럭거리며 존재를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 나는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내가 환자의 이익이라 간주하는 섭생의 법칙을 지킬 것이며,

심신에 해를 주는 어떠한 것들도 멀리하겠노라……. 』

 

*

 

느닷없는 주먹질에 갈바니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뒤로 우스꽝스럽게 넘어졌다. 예상치 못한 고통에 눈앞이 핑핑 돌았으나 돌발적인 움직임은 그뿐으로, 갈바니의 앞에 드리운 그림자는 이제 미동도 없이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뒤에서부터 다급한 구둣발 소리가 들려왔다. 갈바니가 정신을 차리려 고개를 흔드는 사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손이 다가와 그의 어깨에 얹혔다.

"선생, 뭡니까? 이거 살아있는 겁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전극을 잘못 연결해서 그래요. 전류를 처음부터 이렇게 많이 방출하면 안 됐는데."

피차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며 장갑을 벗고 어느샌가 축축해진 코 밑을 만져보니 피가 묻어났다. 갈바니는 말없이 일어나 가운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코를 틀어막았다. 오딘의 손이 갈바니의 얼굴 근처에서 헤매는 것을 피하자 결국 그가 손을 거뒀다.

제대로 잠을 못 잔 탓에 내내 정신이 없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주 엽기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고작해야 손끝을 까딱이는 정도로 전류를 흘려보낼 생각이었는데 근육이 오그라들며 팔 전체가 휙 추켜 올라갔다. 코를 막고 있는데도 타는 냄새가 지독했다. 표피를 벗겨놓은 근육이 까맣게 오그라들어 있는 걸 보자 웬만한 일에는 눈 한 번 꿈쩍하지 않는데도 뒷덜미가 오싹해졌다. 혹여나 감전됐다면 끔찍한 꼴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갈바니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폭탄을 안은 기분으로 천천히 변압기의 전원을 내리고 콘센트를 뽑았다. 작은 램프가 꺼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아무 소득 없이 시체 한 구를 버리게 된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일련의 과정은 살려내기 위한 본격적 처치에도 속하지 않았다.

모두가 비웃을 테지만 갈바니는 자신이 사용한 시체에 최소한의 도의를 갖추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실험이 끝나고 나면—지금까지는 한 번도 빠짐 없이 실패했다—결과가 어찌 되었든 최대한 빨리 시체를 갈무리해야 했다. 겨울이었기에 적절한 조치만 취해두면 시체는 해가 지기 전까지는 냄새를 풍기지 않고 버텨주었다. 코를 압박한 엄지와 검지에 힘을 주며 시체 쪽으로 다가가던 갈바니는 문득 오딘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아직도 그 자리에 서서 시체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가볍게 찌푸린 눈이 노려보는 것 같기도 하고, 다시 보면 집중하는 것 같기도 하다. 순간 시체에 손을 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동안 그는 나름의 탐색을 마친 듯 시선을 떼고 몸을 돌렸다. 지방을 긁어낸 부위에 연결해두었던 단자를 뽑으며 갈바니는 오딘의 뒷모습을 힐끔거렸다. 오딘은 방금 전의 그것이 어떤 징조도 아니었다는 듯 소파에 도로 앉았고, 책을 드는 대신 몸을 깊게 기대며 눈을 감았다. 그는 자극적이기만 한 통속소설에까지 질리고 나면 그렇게 한참이나 자는 것처럼 시간을 보내곤 했다. 기우였나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그 고요한 얼굴이 눈에 밟혔다.

온갖 기구와 부산물들로 어지럽혀진 거실을 청소하고 부실하게 식사를 해결하고 나면 얼추 해가 저물었다. 갈바니는 혼자서 바디백을 끌고 나가 파헤쳤던 묘지에 무연고 사체를 도로 묻어놓았다. 그때쯤이면 운동이라고는 조금도 하지 않는 시골 의사의 체력은 예외 없이 완전히 바닥나 팔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장화를 아무렇게나 내팽개쳐둔 채 갈바니는 욕실로 직행했다. 손을 씻다 거울을 살펴보니 얼굴에 채 닦아내지 못한 핏자국이 남아있어 물로 씻었다. 그리고 욕실에서 나오기 전, 벽 뒤에 서서 거실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갈바니가 어수선하게 거실을 들쑤시는 내내 손끝 한 번 움직이지 않았던 동거인이 여전히 소파에 앉아있었다.

오딘은 아직도 눈을 뜨지 않았다.

 

*

 

갈바니는 난로에 불을 때지 않은 채 버텼다. 묘지의 밤은 유달리 싸늘해 빨갛게 얼어붙은 손끝을 계속 비벼줘야 했지만 이 상황에서 굳이 소란스럽게 부스럭거리고 싶지 않았으므로 고집을 피웠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머리를 굴렸다. 무엇이 그의 기분을 삽시간에 망쳐버렸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한 나머지 몇 시간 전 그의 손을 피했던 것까지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작 코피인데 그가 굳이 피를 묻힐 필요는 없었다. 거기다 갈바니는 늘 이렇게 살아왔다. 남의 손이 닿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오딘이 그것을 모를 리 없다…….

어제 끓였던 양배추 스프를 세 번째 데워 마시며 갈바니는 벽에 기댄 채 오딘을 바라보았다. 그에게는 사람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가슴의 움직임이나 신경 떨림이 없었다. 오딘은 눈을 감고 입을 다물면 방금 전 갈바니가 파묻었던 시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가 오래 말이 없을 때면 갈바니는 가끔 불안을 느꼈다. 오딘이 자신의 죽음마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일까봐.

가죽 소파가 갈바니의 무게에 천천히 가라앉았다. 소파에 애매하게 올라 앉은 갈바니는 등받이에 손을 얹은 채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른 입술을 축이다 간신히 속삭였다.

"…기분이 안 좋으세요?"

형편없는 목소리였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갈바니는 미미하게 좁혀진 그의 미간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이유가 뭔지는 몰라도 크게 상심한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가 자신의 말에 이렇게 오래 대답하지 않을 리 없다. 아니면… 아니면……. 심장 박동이 차츰 빨라지기 시작했다. 오딘의 뺨에 금방이라도 닿을 것처럼 손끝이 바들바들 떨렸다.

경직이 일어난 시체가 큰 움직임을 보이는 일은 원래라면 없어야 마땅했다. 살아있는 거냐고 묻던 그는 어쩌면 그 시체가 살아났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외로운 걸까? 그가 한 마디를 내뱉기 위해 고르는 단어들은 나이 많은 군인들의 고집스러운 억양을 연상시켰다. 그가 꽤 오랜 세월을 이러한 상태로 살아왔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명백히 분리되어있는 머리와 몸, 팔, 다리……. 섬세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신경이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니 둔하기는 해도 분명 통증이 있었을 것이다. 어떠한 결과로도 이어지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하는 통증이. 그런 것에는 어떤 가치가 있는가.

존재하지 않는 눈 앞에서 환각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불에 덴 듯 눈두덩이 안쪽이 쑤셔왔다.

차갑게 식은 갈바니의 손끝이 그의 눈가에 닿기 직전 오딘의 입술이 가늘게 열렸다.

"좋다고는 못하겠습니다."

솔직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찰나지만 분명히 움직였다. 귓전에 나긋하게 내려앉는 목소리에 갈바니는 헛숨을 들이켰다. 창백한 뺨에 닿을 것 같던 손을 말아 쥐었다가, 곧 몸을 물려 소파에서 일어났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쿵 뛰고 있었다.

"…당분간 그런 일은 없을 테니 좀 쉬세요."

그러나 그런 일이 무엇인지는 말하면서도 확신할 수 없었다. 갈바니는 가쁜 숨을 억누르며 손을 연신 쥐었다 폈다. 사고로 실험을 망치는 일? 아니면 고약한 냄새로 거실을 가득 채우는 일?

아니면

시체가 살아나는 일?

갈바니는 죽은 사람을 소생시킴으로써 여태껏 의학이 넘보지 못했던 지평을 새로이 열 수 있다 믿어 의심치 않았다. 생명은 견고해질 것이고 모든 질병은 나약해질 것이다. 갈바니를 법정으로까지 이끌어낸 그 한 구의 시체는 후유증에 시달리다 끝내 목숨을 잃은 참전군인이었다. 바람 앞의 촛불처럼 무수히 죽어가던 이들에게 다시 한 번 평온한 삶을 선물할 수 있으리라고, 갈바니는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을 살리는 이로서 행할 수 있는 제일 숭고한 일이 될 것이라고.

그러나 죽음에서 살아 돌아왔을 누군가의 아들이자 남편은 지금 아무 연고 없는 마을에서 자신이 해결해줄 수 없는 고독에 젖어있다. 어지러운 환각에 따라붙는 것은 아우성치는 목소리다. 그 신성한 행위에 부패스럽다는 표현을 서슴치 않던 사람들. 아들이 살아 돌아온다면, 그 한 마디에 희망과 공포가 혼재한 표정으로 울음을 터뜨리던 방청석의 부부, 머리와 어깻죽지를 적시던 지독한 잉크 냄새…….

 

무언가가 입술로 후두둑 떨어지는 느낌에 갈바니는 정신을 차렸다.

반사적으로 들어올린 손바닥에 멎었던 핏방울이 다시금 미지근한 자취를 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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