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패치] Pretty Bad Guy 1
*연령반전
*현대AU
"여기서 피우면 안 되는데요."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변성기를 호되게 겪었으나 아직 세월의 풍파는 맞지 않은 앳된 구석이 있는, 성인이나 되었을까 싶은 목소리. 그렇기에 패치는 그 목소리를 가볍게 무시했다. 그가 담배를 입에 물고 숨을 들이마시자 끄트머리를 불태우던 작은 빛이 환하게 빛났다. 독한 연기가 패치의 숨을 가득 채웠으나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담배를 태웠던 그에게는 별다른 자극을 주지 못했다.
"피우면 안 된다니까요?"
아. 머리 위로 성큼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패치가 얼굴을 구겼다. 적당히 무시하면 알아서 떨어져 나갈 줄 알았더니 이 녀석은 그런 부류가 아닌 모양이었다. 패치는 이제 절반이나 탔을까 싶은 담배를 입에 물고 고개를 돌렸다. 해를 등지고 선 탓에 제게 시비를 건 녀석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고, 하필이면 키도 덩치도 커서 올려다보는 것도 힘들었다. 자리 선정 죽이네, 씨발. 덩치는 그가 작게 읊조리는 말을 들었는지 낮은 목소리로 그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쓸데없이 귀도 좋은 놈이었다.
"뭐라고요?"
"꺼지라고."
"안 되는데요. 여기 학교 앞인데?"
"그럼 학교나 가, 애송아."
"불 끄면 가 드릴게요."
"씨발, 뭐 이딴 녀석이…."
오늘은 아침부터 재수가 없으려고. 아까부터 산들바람에 날리며 신경을 거스르는 머리칼을 신경질적으로 털어낸 패치가 쪼그려 앉았던 무릎을 폈다. 더는 담배를 피울 기분도 아니어서 다 타지도 않은 꽁초도 지져 끈 그가 덩치를 올려다봤다. 허리를 곧게 폈는데도 시선을 위로 올려야지만 마주할 수 있는 눈에 기분은 한층 더 구겨졌다. 그는 불쾌한 기분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형형한 눈을 마주했다. 됐냐?
"어…."
"따박따박 말대답하던 새끼는 어디 갔어? 비켜."
"…예, 조심히 가십쇼."
"예의는 얼어 죽을."
패치는 얌전히 길을 터 주는 그를 지나쳤다. 지나는 사람도 몇 없어 오가며 담배 한 대 피우기 좋은 골목이었건만 역시 저기는 발길을 끊어야 할 듯했다. 그 생각을 하자 그러잖아도 수직 하향하고 있던 기분이 더 곤두박질쳤다. 패치는 불만스레 혀를 차며 골목을 떠나는 발을 빠르게 놀렸다. 일하러 가기까지 시간이 남아 버렸으니 다른 곳에라도 가서 죽치고 있을 생각이었다.
골목을 돌아 학교 앞을 떠나는 패치의 뒤꽁무니를 바라보던 매뉴얼은 고개를 갸웃하며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저 사람은 좀 독특한 구석이 있었다. 학교 안에서 약을 한다는 소문이 도는 놈들도 종종 있는 마당에 학교 앞의 흡연을 걸고넘어지면 기분 좋아할 사람이 없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매뉴얼은 다시 고개를 갸웃하며 남자가 앉아 있던 곳을 돌아보았다. 방금까지 담배를 피우던 자리라기에는 깨끗한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꽁초도 재도 전부 가져가 버린 남자의 불만 어린 얼굴을 떠올리던 그는 곧 발을 돌렸다. 입도 거칠고 흡연 금지 구역도 당당하게 무시하지만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는 나쁜 사람은 아니라니. 그 두 사실이 공존할 수 있던가 고민하며 그는 교문 안으로 들어섰다.
Pretty bad guy
하늘로 흩어지던 어느 여름날의 꿈
"헤이, 전학생."
들려오는 목소리에 매뉴얼은 눈도 돌리지 않은 채 웃음 지었다. 그러자 건들거리는 목소리는 웃음기를 담고 한 번 더 날아들었다. 어쭈, 형님이 말하는데 돌아보지도 않아? 그 말에 캐비닛을 닫은 매뉴얼이 캐비닛 문에 기대며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돌아봤다.
"형님은 무슨 형님이야?"
"갓 들어온 녀석이 말이 많다?"
"텃세 부리는 노인네는 옆집으로 충분해."
자식이. 스턴이 웃음을 터뜨리며 매뉴얼의 어깨를 주먹으로 툭 밀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환한 미소에 매뉴얼도 마주 웃으며 등을 내리쳤다. 아오, 하며 아픈 척 얼굴을 찌푸리던 스턴은 곧 킬킬 웃으며 가벼운 말을 던졌다. 다음 수업 뭐야? 경제. 와우, 어려운 거 듣네. 가자, 안내해 드릴게. 이거 황송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네. 아, 그런데….
"빨간 머리?"
"응."
"여기 빨간 머리가 한둘이야? 당장 농구부에도 있는데."
"아니. 걔보다 더 빨간, 진짜 불타는 것 같은 머리 있잖아."
뜬금없는 질문에 곰곰이 생각에 빠지던 스턴이 아, 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 사람 말하는 건가? 근데 그 사람은 학생 아닌데?
"빨간 머리인데 파란 눈, 맞지? 만났어?"
"어, 오늘 아침에. 학생 아니라고?"
"아니야. 한동안 조용하던데…. 그런데 왜?"
"그냥…. 그런 머리는 처음 봐서."
"그렇지? 곱상하게 생기기도 했고."
"으음…."
"관심 있냐?"
장난기 다분한 말에 화들짝 놀란 매뉴얼이 목소리를 높였다. 스턴의 킥킥대는 웃음을 옆구리에 끼우고 응징해주려 손을 뻗던 그는 찌르르 울리는 종소리에 또 깜짝 놀라 그대로 복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안내해 준다더니, 지각이잖아 인마! 그의 우렁찬 목소리와 두 쌍의 다급한 발소리가 복도를 가득 메웠다.
'그 사람? 유명하지. 애들 머리를 다 뜯어 놔서.'
붉은 머리 파란 눈의 살쾡이. 말 거는 애들에게 시비 걸고 성질을 긁어 대고, 그러다 싸움이라도 나면 누구도 멀쩡한 얼굴로 돌아가지 못하게 주먹질해 대는 동네 깡패. 그 사람에게 머리를 잡힌 채 턱을 얻어맞은 애가 한둘이 아니라고 했다. 한동안 인적 드문 학교 근처 골목에 숨어 있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니, 보이지 않았'었'지. 갑자기 왜 다시 나타났는지는 모르겠는데. 너무 치근대지 마라, 얼굴에 혹했다가는 호되게 당한다더라, 블라블라…. 제가 청해 놓고서도 매뉴얼은 스턴이 꺼내는 질 낮은 가십은 손을 내저어 막아 버렸다. 그런 건 별로 안 궁금해. 어쨌든 그가 만났던 이는 학생이 아니었고, 그런 주제에 이 학교의 유명 인사였다는 게 스턴에게서 얻은 쓸만한 정보였다.
그런데 그 사람은 왜? 새삼스레 이유를 궁금해하며 농구공을 튀기던 스턴에게 매뉴얼은 이유를 대충 둘러댔다. 그냥, 굉장히 독특한 사람이다 싶어서. 그리고 역시 관심 가는 거냐며 놀리는 스턴에게 소리를 빽 지르다 몸을 풀던 농구부 주장에게 가볍게 잔소리를 들은 게 몇 시간 전이었더라.
"어."
그 사람을 하루에 두 번씩이나 마주치면 인연인가. 매뉴얼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어벙하게 눈을 깜박였다. 그를 못 알아봤는지 멈춰 선 발을 무시하며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던 남자는, 그 커다란 발이 움직일 생각이 없자 눈을 굴려 그를 올려다봤다. 살짝 구겨져 있던 붉은 눈썹 사이가 조금 더 구겨지더니 마찬가지로 붉은 입술이 떨어졌다.
"뭐야?"
"...그거 몸에 안 좋아요."
"지랄한다. 꺼져."
"길목에서 피운 건 그쪽인데요?"
그러자 어이없다는 듯이 한숨을 푹 내쉰 남자가 느리게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매뉴얼을 바라보며 보란 듯이 들고 있던 담배를 물었다. 필터까지 태우는 불을 지져 끄며 길게 연기를 뱉어내는 푸른 눈은 형형했다. 손에 들고 있던 재떨이에 꽁초를 집어넣은 남자는 매뉴얼을 노려보다 발길을 돌렸다.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뒤통수는 금세 골목 사이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다 뒤늦게 쫓아가 보려던 매뉴얼은 그사이 놓쳐 버린 인영에 머쓱해진 목덜미를 쓸었다. 보통은 아주 기분 나빠하며 고성을 지르거나, 냉큼 꼬리를 말고 도망갔는데. 마치 도발하는 것처럼 당당한 눈으로 올려다보던 남자는 확실히 독특한 구석이 있었다. 손에 꼭 들고 있던 재떨이도, 미처 숨기지 못해 후드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붉은 머리칼도.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던데…."
응? 되묻는 목소리에 매뉴얼은 제가 무심코 말을 꺼냈다는 걸 알고 고개를 저었다. 별일 아니라며 밀어내도 끈질기게 머리를 들이밀던 옆자리의 아이는 선생님의 호통이 떨어지고서야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심통이 난 녀석을 무시하고 허리를 바르게 편 매뉴얼은 다시 아까의 생각으로 돌아갔다. 나쁜 사람 아닌 것 같던데, 그 사람.
눈이 마주치면 시비를 걸어온다느니 하는 말은 전부 거짓일 게 뻔했다. 그 말대로라면 매뉴얼은 벌써 양쪽 구레나룻을 전부 뽑혔어야 했는데, 오늘도 멀쩡히 달고 등교했다는 게 그 증거였다. 다른 동네에서 흘러들어온 녀석이라는 말은 맞을 수도 있겠으나 그 외의 이야기는 전부 거짓 쪽에 올려놓아 마땅할 것 같았다. 아마 덩치 작고 반반하다고 어떻게 해보려다가 호되게 혼난 놈들이 퍼뜨린 소문이겠지. 아, 사실이 하나 더 있었다. 타오르는 붉은 머리에 이상하게 푸른 눈이 촌스럽기는커녕 예쁘게 보인다던 말.
"너 걔한테 관심 있어?"
"아, 어제부터 같은 질문 하는 녀석들이 왜 이렇게 많아?"
"왜, 부끄럽냐? 안 그래도 돼. 여기 그 녀석한테 관심 가지던 애들 천지야."
수업을 마치고서도 그에게 달라붙어 비슷한 질문을 던지는 녀석을 매뉴얼이 슬쩍 밀어냈다. 하지만 이름도 기억 안 나는 녀석은 눈치도 없는지 자꾸 달라붙었다. 인기몰이하는 전학생이라 그런지 보는 눈이 있다니까? 이제는 잘 보이지도 않는 놈을 어떻게 찾아냈대? 재잘대는 목소리가 슬슬 성가시기 시작해 그는 일부러 멀리 시선을 던졌다. 복도를 메운 학생들, 창밖으로 높이 뜬 오전의 햇살. 모퉁이를 돌자 길게 늘어선 캐비닛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다음 수업이 몇 층이었던지 생각해내는 사이 옆에서 조잘대는 가십은 점점 위험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었다.
"…뒤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닐지 모른다는 거지. 학교 마치고부터 밤늦게까지는 시내에 나가 있는데, 그 시간에 어느 가게가 문을 열겠어? 분명히…."
"야."
매뉴얼의 외마디에 담긴 노기에 정신없이 놀리던 입이 다물렸다. 그러다 자신이 매뉴얼의 기에 눌렸다는 걸 깨달은 그는 애써 웃음기를 가장하며 말을 붙이려 했으나 이어지는 말에 그마저도 실패했다.
"아니, 그런 소문도 돌더라는…."
"뚫린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거 아니다."
매서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던 매뉴얼이 겨우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니까 말조심하자, 친구? 아까처럼 내 얘기 하고 다니면 네 얼굴이 아주 재밌어질 테니까. 바짝 얼어붙은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고 그를 내버려 둔 채 복도의 인파 속으로 섞여든 매뉴얼은 곧 한숨을 쉬며 뻐근한 목을 돌렸다. 아, 이놈의 성질머리.
"너 데이비드한테 뭐라고 했냐?"
"아무 짓도 안 했어."
매뉴얼은 한숨을 쉬며 바닥에 커다랗게 적힌 S자를 밟았다. 사우스힐즈 고등학교, 그리고 학교 마크가 커다랗게 박힌 체육관 바닥을 발로 슬슬 문지르며 나직한 혼잣말을 뱉었다. 학교 이름 짓기도 어지간히 귀찮았나 보지, 하는 말에 스턴이 큭 웃으며 동의를 표했다. 정성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지?
"그런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데이비드? 들었지. 누가 봤다던데? 애 때려잡을 것처럼 노려보더라고."
"아, 뭘 때려잡아…. 소문도 빠르네."
"이 조그만 학교에 뭘 바라냐?"
"언제는 크고 멋진 학교라더니."
"걔 원래 그런 말 옮기기 좋아하는 녀석이야. 시비 걸리는 건 일상이니까 걱정 마."
"누가 걱정한대?"
정말? 능글맞게 물어보는 말에 매뉴얼도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더럽게 걱정 많이 했다. 됐냐? 그러며 들고 있던 농구공을 던지자 가뿐히 받아낸 스턴이 공을 통통 튀겼다. 체육관 바닥을 울리는 공의 맑은 소리 위로 여러 개의 발소리가 섞여 들기 시작했다. 할 짓 없는 녀석들아! 그들을 부르는 주장의 목소리에 매뉴얼은 왼손을 들어 보였다.
"너 살쾡이 만났다며?"
"너는 또 어디서 들었는데?"
"데이비드."
"그 새끼가…."
"어어, 진정해. 걔 말고도 다들 알아.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녔던데?"
물론 데이비드가 가끔 흠씬 두들겨주고 싶은 녀석이라는 데에는 동의해. 키득거리던 우드는 곧 엇나갔던 주제를 다시 꺼냈다. 그래서, 어때? 살쾡이 만난 소감은.
"사람 하나 마주친 거지, 소감은…."
"정말 그게 다라고? 솔직히 예쁘지?"
"자식이…. 몰라."
"빼는 거 봐라."
집요해지는 물음에 슬슬 난감해지던 차에 누군가 그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한 무리의 학생들이 우르르 그들을 둘러쌌다. 무슨 재미있는 얘기를 하길래 준비 운동도 안 해? 건장한 팔 두 개를 등에 업은 우드의 입이 열리려는 걸 본 매뉴얼과 스턴이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는,
"오늘 주장이 간식 쏜단다!"
크게 외치는 스턴의 목소리에 몰려들었던 부원들은 다들 우드에게 엉겨 붙었다. 신난 아이들이 우와 외치는 목소리와 당황한 우드가 그들을 부르는 목소리가 한데 뒤엉켜 체육관을 웅웅 울렸다. 그 틈을 타 인파 속에서 빠져나온 매뉴얼과 스턴은 즐겁게 웃으며 손바닥을 짝 맞부딪쳤다.
조용한 마을. 스쿨버스를 타지 않아도 충분한 거리에 있는 학교. 운동이 필요하다면 가볍게 뛰어서, 그렇지 않으면 자전거를 타고 금방 닿을 수 있는 시내. 새로 이사 온 동네는 그럭저럭 매뉴얼의 마음에 들었다. 좀 애매한 시기에 전학 오긴 했어도 친구들도, 선생들도 나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그의 가족이 운영하는 가게가 조금 더 크고 깔끔해졌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 가게가 번화가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해 장사가 잘 되리라는 것도.
"무슨 가게라고 했더라?"
"샌드위치. 샐러드도 팔고 커피도 팔고, 하여튼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건 다 있어."
"전에 그 맛없는 햄버거 가게 있던 곳인가 보네."
"우리 집은 맛있어. 매상 좀 올려주면 좋고."
"그것도 가게 거야?"
스턴의 질문에 매뉴얼이 고개를 끄덕이며 가져온 종이봉투를 살짝 들어 보였다. 덕분에 질리도록 먹고 있지. 봉투에 찍힌 가게 로고를 확인한 스턴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를 냈다. 가게 이름이 생각보다 평범하네. 난 뭐, 샌드위치의 매뉴얼이라든지 그런 거일 줄 알았는데.
"우리 아빠가 내 이름은 이렇게 지었어도 작명에는 꽤 소질 있어."
"네 이름도 충분히 잘 지은 것 같아."
"뭔 뜻이냐 그거?"
칭찬해줘도 난리야. 스턴이 고개를 저으며 포크로 구운 콩을 떠서 입에 넣었다. 다음 주에는 이 쓰레기 같은 급식 말고 너네 집 샌드위치나 사 먹어야겠다. 그러자 매뉴얼이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어라, 왜 말을 돌리지?
"악! 아 씨, 이 자식이 밥 먹는데!"
"빨리 불어, 아직 정강이 하나 남았다."
"궁금증을 폭력으로 해결하냐? 이름 잘 지었다는 말 취소야!"
"취소하면 다인 줄 알아? 무슨 뜻이냐니까?"
"매뉴얼이 매뉴얼이지 다른 뜻이 뭐 있냐?"
"똑바로 말 안 하겠다 이거지?"
스턴의 종이 식판을 엎을 것처럼 투닥거리던 그들은 지잉 울리는 스턴의 휴대폰에 잠시 휴전했다. 얌체처럼 매뉴얼의 발길질을 쏙 피하며 휴대폰을 집어 들어 보던 스턴이 작게 입을 오므리더니 매뉴얼에게 시선을 던졌다.
"야, 파티 갈래?"
"언제?"
"이번 주 토요일."
"토요일 저녁?"
"응."
스턴이 보고 있던 화면을 내밀었다. 거기 떠 있는 SNS 메시지는 분명 파티 초대장이었다. 꽤 정성이 들어간 메시지를 훑어보던 매뉴얼이 음, 하며 입을 다물었다. 아직 가게에 파트타이머를 구하지 않았으니 바쁘기야 하겠는데....
"저기."
"어... 어?"
"안녕, 네가 매뉴얼이야?"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답을 하려던 매뉴얼은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놀라 곁을 돌아보았다. 그를 부른 굽이치는 금발의 여학생은 붉은 입꼬리를 씩 말아 올리고 있었다.
"한나라고 해."
"어, 그래. 매뉴얼이야."
"파티에 초대하려고 하는데 네 연락처가 없더라고."
"아, 방금 확인했어."
"그래?"
매뉴얼이 들고 있던 스턴의 휴대폰을 흔들자 한나의 눈길이 그에 잠시 닿았다 떨어졌다. 그래서–, 그러고서는 고민하느라 잠시 끊겼던 한나의 목소리는 다시 이어졌다.
"파티에 올 거야? 네 몫의 케이크를 남겨 놓을게."
"간다면 늦게 갈 것 같은데, 아마. 따로 빼 놓지 않아도 돼."
"그래,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
새침하게 올라간 한나의 눈이 부드럽게 휘어지며 인사를 건넸다. 그에게 건성으로 인사하고는 스턴의 휴대폰을 돌려 주려던 매뉴얼은, 대신 스턴의 매서운 발길질을 받아야 했다.
"아, 왜!"
"이 멍청한 자식아!"
"누가 멍청한 자식이래?"
"전화번호가 그렇게 아깝냐?"
"아까우면 뭐 어쩔 건데?!"
이 보는 눈도 없고 눈치도 없는 새끼야! 스턴의 힐난에 매뉴얼도 억울한 목소리를 냈다. 너는 내가 무슨 생각인지 알고나 말해라! 그렇게 또 한동안 투닥거리던 둘은 찌르르 울리는 종소리에 먹던 점심도 대충 쓰레기통에 집어넣고는 다시 달려야 했다. 달리면서도 매뉴얼의 억울한 항변은 그치지 않았다. 내 번호도 비싸, 이 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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