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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덕짓 by 일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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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와 그를 창조한 것

23.04.??

너 가끔 그런 생각 안 해봤어? 네가 모든 것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란 거.

내가 새로운 것을 찾아냈다 생각하고 있어. 완전히 새로운 건 창조할 수 없지. 나는 그 모든 것에 하나의 관점을 덧붙이는 거야. 새로운 시각. 바꿔 쓴 시각. 훔친 시각.

봐. 넌 내가 네 안에 있다고 생각하잖아. 어쩌면 나는, 우리는 네가 꾸다 만 백일몽 사이로 고개만 내밀었다 떠나는 존재일지도 몰라. 너는 내가 놓고 간 잔상을 만지작대며 네게 새로운 영감이 떠올랐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우리는 네 안에서 소모될 뿐이야. 바래고 풍화되어 닳아 없어진 것들이 네 안의 토양이 되겠지. 너는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네 안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야. 나는 네게 찾아왔고 너는 응답했을 뿐이야. 너는 비어 있어. 네가 어떤 경향을 나타낼지는 너에게 달렸어.

그건 모순이잖아.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어떻게 선택을 내리지? 내린다 해도 그건 내 선택이 아니겠지. 내 안에 비옥한 토양이 있다 해도 새로운 작물을 틔울 수 없다면 하등 쓸모가 없어. 있던 것이 나를 끊임없이 대체하고, 영감이라 불리우는 것들은 사라져갈 뿐이고, 그 어떤 것도 온전한 내가 아니라면 세상 모든 것이 한바탕 꿈일 뿐이구나.

온전한 너는 그 모든 것이지. 무엇인가에 의해 채워진 너. 날마다 흐릿해지는 영감을 가슴에 묻고 사는 너, 네 주변에 가끔 원망이나 드러내는 너. 잊지 마, 우린 널 둘러싼 곳에서 왔어. 네가 잠깐 간직한 별들에게 소유권을 주장할 수는 없어. 우린 네 아래에 있지 않아. 밖의 아래, 위, 옆 그리고 모든 방향들. 넌 그 모든 것들을 매몰차게 대해서는 안 돼. 적어도 네가 우리를 품고 있는 동안에 우리는 너이기도 하니까.

그렇다면 난 대체 뭐지?

넌 네가 가지고 있었던 것, 가지고 있으나 잊혀진 것, 어쩌다 가지게 된 것이야. 우리는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고 빠르게 사라져. 넌 그 모든 것이지만 그들의 주인은 아니야. 넌 네가 바라는 모습을 이미 가지고 있어. 그것들은 사진처럼 또렷하게 멈추어 있지 않아서 찾아내기 힘들 뿐이지. 네가 어떤 의문을 품는다 하더라도 난 일정하고 한결같이 대답하지 못해.

나도 곧 잊혀질 거야. 하지만 그 자리는 곧 채워지겠지. 1분 후가 될 수도 있고, 그냥 넌 거기 있기만 하면 돼. 그럼 우리는 널 찾아갈 거야.

초인간

23.04.30

옛날 옛적에 두 모습이 있었다.

한 모습은 흑요석처럼 반질거리는 눈을 치켜뜨고 혐오하고 있었다.

한 모습은 도마뱀처럼 갈라진 눈을 뒤룩이며 생각하고 있었다.

너무도 다른 두 모습을 본 신은 흥미가 돋아서, 흙으로 만든 인형 안에 그 둘을 새겨넣고 '나'라는 이름을 붙였다. 두 모습은 나라는 인형 안에 갇히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신은 두 모습을 잊었다.

한참이 변한 후, 신은 인형을 떠올렸다. 인형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하지만 '나'라는 이름은 모호해져 있었다. 신은 두 모습 중 하나가, 어쩌면 둘 모두가 인형 밖으로 빠져

모른다고 생각했다. 신은 인형에게 죽음을 보여주었다. 인형은 눈을 굴리다가 물방울을 흘렸다.

신은 다음으로 인형에게 삶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인형에게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신은 흥미를 느끼며, 인형을 가만히 내버려 두기로 했다.

또 얼마간이 변한 후, 신은 인형을 다시 찾았다. 신은 인형에게 어둠을 보여주었다.

인형은 더 이상 물방울을 흘리지 않았다. 신은 잠시 고민하다가 인형에게 의지를 주었다.

신은 이제 인형에 조금의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인형은 성숙한 인간처럼 보였다.

하지만 신은 인형에게 원하는 것이 남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신은, 인형에게 붙여 주었던 '나'라는 이름을 없앴다. 그러자 인형이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했다.

보여요. 이제 모든 것이 보여요.

그래서 신은 너는 어떤 모습이냐고 물었다.

저는 이제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이제 모든 것입니다. 당신이 제게 의지를 주었을 때 저는 조금이나마 자유를 얻었어요. 하지만 지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리고 인형은 이어서 말했다.

완전히 다른 것은 없어요. 모든 것은 마침내 같아졌습니다.

인형이 여기까지 말했을 때, 신은 인형이 성숙한 인간으로 비교되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다. 인형 속에 있었던 두 모습은 융화되고 갈라지고 다시 동화되었다.

신은 말했다.

- 너를 태어나게 한 것은 너다.

그래서 인형은 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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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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