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 회상
230901, 온이 독백함. 미완임
아아, 나의 유년.
따스한 어둠. 곰팡내. 소음.
온은 그 모든 것을 기억한다.
기억하는 것은 온이 아니다, 그 뒤의 거대한 개념일 뿐이지.
온은 그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잊었다.
고통과 친구와 집착과 단절.
신은 모든 것을 기억하겠지. 위대하신 그분. 찬양하라.
중요하지 않다. 숨을 들이켠다.
기억난다.
불편하게 나누어진 끝방. 달빛이 밝혀주던 먼지 낀 창문.
다시 숨을 들이켠다.
밟으면 삐걱거리는 세 번째 칸.
배관을 통해 이 방 저 방을 오고 가던 일.
진통제.
빈 병의 소리.
그립다. 진짜 그리운 것 같아.
온이 가슴에 손을 얹고서 어렴풋이나마 느껴졌던 것을 되살리려 인상을 쓴다.
그런데 사실은 전혀 그립지 않다. 사실 그는 그리움이 무엇인지 모른다. 정의 말고, 몸으로 느끼는 감정. 가슴이 뻐근하게 조이는 느낌. 아련하게 가빠오는 숨. 눈가가 뜨거워지는 감각. 뇌가 팽창한다는 착각.
그게 대체 뭔지 모르겠다. 알고 싶다거나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다.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움이구나. 그걸로 끝. 더 알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갑자기 노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유는?
따분해서.
죽고 또 죽어도 달라붙는 미치도록 불쾌한 권태로움이 너무 싫어서.
그런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지루하다.
그렇다면 이제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본다.
되새기는 것.
사람들을.
나의 곁에 있었던 사람들을.
하지만 되새길 것이 없다. 친구. 검은 친구.
그의 손가락. 모자 밑으로 드러난 삐딱한 입매. 가끔씩 서늘해지는 붉은 눈동자.
생각하고 생각한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측은해하고 아끼는 듯하면서도, 한편으로 두려움이 서려 있는 그 눈빛을.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향한 올곧은 충성심을.
이게 그리움인가.
자신에게 간청하던 친구. 죽여줘. 제발. 이 삶을 끝내 줘.
온은 고개를 저었다.
많은 뜻이 생략되어 있었다.
안 돼. 못 해. 이게 운명이야. 나도 그러고 싶어. 어쨌든 결국엔 다 그분 뜻이야.
어쨌든 이건 그리움이 아닌 것 같으니 생각을 관두었다.
보통 사람들이 그립다고 표현하는 대상들은 온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어릴 적 가지고 놀던 해진 곰인형, 뒷마당 나무에 올라앉아서 그를 내려다보던 큰까마귀, 그와 신의 연결을 일방적으로나마 잠시 막아주던 온갖 종류의 진통제들.
온도 그들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사실 마지막 건 가끔 생각나긴 했다. 하지만 내성 비슷한 게 생길 대로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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