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마감 글 커미션' 완성본

타입 B :: 1차 창작, 자캐 로그

경적님 커미션, 25.01.12 작업물

그저 하찮은 정육점 주인을 짓밟아주는 것쯤이야 별일 아니리라 생각했다. 애초 저만 특출나게 성채의 주민들을 깔보는 것도 아니었으며, 그가 일하는 동료 선임 후배는 누구 하나 다를 바 없이 구룡에 사는 주민을 길에 널브러진 토사물처럼 취급하고는 했으니.

멀쩡한 사회에서 도의상 허용되지 않는 멸시조차도 구룡성채의 주민에게는 마음껏 내뿜을 수 있다는 점은 인간 본성의 가장 저열한 면을 충족시켰다. 간혹 구룡 근처에 오래 근무한 경관 중에서는 치안유지라는 명목하에 버려진 도시를 부득불 방문하여 제 경찰봉이 흡사 권력의 철퇴라도 되는 양 이곳저곳을 실컷 헤집고 들쑤시는 것을 유희거리 삼았고,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치안 관리라는 빛 좋은 개살구는 경찰이라는 이름을 마음껏 휘두를 몇 안 되는 기회이자 희열이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주민 여럿의 비굴함은 비웃어주고 억울함은 업신여기면 그만이다. 개미집에 물을 붓는 감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유희거리는 이따금 무료한 일상을 적당히 적셔주고는 했기 때문에, 윗선의 뒤치다꺼리에 질린 날에는 버릇처럼 구룡을 찾아 적당히 거슬리는 가게를 찾아 되도 않는 트집을 잡았다.

흡사 벌레 굴처럼 창궐한 성채의 상업 행위는 대부분 국가의 승인은커녕 법적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불법 생계 수단이었으므로 특정 가게를 선택하고 지나치는 게 무용할 정도로 하나같이 범법투성이였다. 그날따라 눈에 띄는 가게나 주민이라 해봐도 운 나쁘게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아닐뿐더러, 법의 그늘막에서 어떻게든 편법으로 숨구멍을 터서 살아가는 것이 곧 삶이고 인생인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제 눈에 띄는 벌레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도 없거니와, 유심히 솎아내는 화풀이 상대는 그날의 기분 고저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기에 제 경찰봉의 희생양은 딱 하나, 변덕이라는 단어로만 지칭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구룡 한구석에 얼룩처럼 살아가던 정육점 여자를 건드린 것 또한 그럴듯한 명분이 없었다. 그 여자의 눈동자가 여타 주민들과는 달리 어떤 비겁도 비굴도 품지 않은 채, 포르말린 속에서 그대로 굳어버린 유리알처럼 또렷했다는 사실 하나만이 제 심기를 곧추세웠을 뿐.

잘못 만들어진 표본인 듯 무감한 정육점 여자는 계집 특유의 앙칼진 경계심조차 찾아볼 수 없었고, 도리어 성채 이곳저곳의 꼬투리를 잡고 들쑤시는 그를 눈 한 치도 깜빡이지 않은 채 응시하고는 했다. 경찰 제복도 경찰봉도 개의치 않는 미묘한 알력이 불쾌했기에 여자의 생업을 알아낸 다음 날, 간판만 달았다 뿐이지 다 쓰러져가는 정육점 내부에 친히 흙발을 내디뎠다.

하필 여자가 상업으로 다루는 것이 식료품이었던 탓에 걸고넘어질 꼬투리야 과할 정도로 많았다. 구룡에서 나는 식료품은 대부분 성채 안에 사는 사람들 입으로 들어가며 그들은 썩어가는 고기라도 입에 넣을 수 있다면 다행이라 여긴다는 지점은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위생과 자재 관리, 건축 상태까지 들먹이며 가게를 마음껏 헤집었다.

고기를 손질하는 도구들은 경찰봉으로 대충 쓸어 더러운 바닥에 흐트러뜨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용도를 알 수 없는 병이 가득 들어있는 선반의 문짝을 무신경하게 열어젖혀 부수기도 하고, 이미 손질된 고기처럼 보이는 덩어리들은 제멋대로 꺼내 들고 널브러뜨렸다.

여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방관했다. 유의미한 반항이 돌아온다면 그것을 더 큰 꼬투리 잡을 생각이라는 걸 눈치챈 것인지, 여자는 제 터전과 상업 활동에 필요한 온갖 자재들이 망가지는 꼴을 그저 방관하고 있을 뿐이었다. 가게가 완전히 뒤집혀 적당히 손을 써서는 망가뜨릴 것도 없는 수준이 될 때까지도 여자는 눈을 똑바로 뜨고 서 있었다. 가게가 망가지는 소리에 몰려나온 주민들 또한 일제히 같은 시선을 띄우고 있었다.

평소에는 혹여 심기를 거스를까 본체만체하던 눈동자들이 하나같이 잘못 말린 생선 대가리처럼 오롯하게 집중되었다. 엉망이 된 가게의 꼴은 보이지도 않는다는 것처럼 깜빡이지도 않는 동공 여러 개가 한꺼번에 쏟아진다. 현실감으로 마땅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닥치자, 목청이 제 역할을 잃고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이성보다 신경이 먼저 감응하여 경찰봉을 쥐고 있던 손바닥이 흥건하게 젖어 든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수많은 눈동자가 신경다발을 헤집고 머릿속 해면체 주름을 하나하나 훑고 지나가는 듯했다.

가장 본능적인 심박이 순식간에 뒤틀리고 호흡이 붕 뜨는 순간, 입으로 들이키는 숨결 사이에 역한 비린내가 확 치받는다. 미처 다 부패하지 못한 단백질이 산화되다 만 냄새. 핏물을 미처 빼지 못한 축축한 고기가 지난 생의 수분을 머금은 채 썩어가는 향. 속이 뒤틀리는 토악질이 목구멍 밖으로 밀려들기 직전에 반사적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젖어버린 손바닥이 끈적하여 불쾌하다는 인식을 완전히 받아들이기도 전, 손바닥 주름 사이에 고인 액체가 진득하게 눌어붙었다.

입가에 옮겨붙은 액체로부터 시큼한 점성을 감각하는 것과 동시에 발치에 널브러진 녹은 고기 더미가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음을 깨닫는다. 흘러내린 액체 사이에 제 손으로 망가뜨린 가재 여럿이 굴러다닌다. 바닥에 부딪혀 엉망으로 깨진 항아리 안에서 검게 물든 쌀, 곰팡이 핀 곡식 따위가 흘러내린다. 선반 근처에 장식품처럼 걸려있던 새끼줄도 함께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성기게 엮은 새끼줄 사이사이에 노란 종이가 덕지덕지 묶여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노란 종이 틈새로 보이는 글자가 붉은색이라는 것을 눈치챌 쯤, 더러운 바닥을 더욱 질척하게 물들인 체액의 빛깔이 제 손바닥에 덕지덕지 들러붙은 액체와 흡사하다는데 인식의 범위가 미친다. 이후에는 이를 데 없는 한기가 등줄기를 스쳤던 것만이 기억에 남았다.

다시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찌 돌아왔는지도 이해하지 못할 거주지 안이었으며, 호흡기 안의 점막까지 지배한 역겨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토악질을 거듭했다. 안압이 오를 때까지 속을 뒤집고 시다 못해 쓴 액을 계속 토해내도 향취만으로도 점성이 느껴지는 역한 기운이 사라지질 않았다.

더러운 곳에서 재수 옴 붙어왔다는 생각이 온 신경을 지배한다. 정육점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직후에 선뜩하게 들러붙었던 수많은 시선에 대해 생각이 흘러가지 않도록 그는 억지로 욕설을 주워섬기며 씨근덕거리는 길을 택한다.

괜히 더러운 것들과 드잡이하는 바람에 비위만 버렸다고. 불쾌하고 경멸스러운 경험이었다며 씹을 거리로 전락시키고 싶었다.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박제된 시선들도,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끔찍한 생고기 냄새마저도. 무형의 것이 분명한 실체 없는 악취는 짙다 못해 진득하게 느껴질 지경이라, 조금이라도 숨을 들이켜면 위장이 꿀렁거리며 신물을 뱉어낸다.

썩어가는 고기의 냄새. 간결한 사실적시로는 미처 담을 수 없는 불온한 향이었다. 언젠가 살아있었음을 피력하는 고깃덩어리가 지난 생이 눅눅하게 묻어난 미련과 원한을 발산하는 것일까.

집안에 냄새가 밴다면 오늘의 불유쾌가 하나의 피박이 되어 두고두고 재현될 것이 뻔했다. 손에 잡히는 창문이란 창문은 전부 활짝 열어 새벽녘의 한기를 기꺼이 맞이하고, 땀으로 흠뻑 젖은 옷가지는 세탁기에 처박아 곧장 물로 적셔버렸다. 살갗에 스며든 고약한 악취는 더운물로 적셔 그대로 하수구에 쓸려내 보낸다.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날 정도의 더운 수온은 자연적으로 신체를 이완하고 긴장을 풀어내었던지라, 정육점 바깥에서 자신을 응시하던 시건방진 눈동자 한둘쯤 내리찍고 돌아올 걸 그랬다는 분심이 피어난다.

그 순간을 벗어났다는 시간적 물리적 거리감은 당초에 느꼈던 기이함마저도 착각의 일환이라는 식으로 편협하게 눌러버렸고, 몸을 완전히 씻고 나올 때쯤에는 내일 다시 돌아가 건방진 벌레들을 몇 차례 짓밟아주며 확연한 위계의 차이를 보여주어야겠다는 결심으로 화한다.

얼굴을 닦으며 가볍게 숨을 내쉬던 찰나, 역하고도 비릿한 향취가 수건에서 확 올라왔다. 반사적으로 인상을 비틀면서 수건을 살펴보았으나 물기에 젖은 솔기만으로 이루어진 평범한 수건이었다. 섬찟하게 수런거리는 심장을 부러 무시하고 천천히 수건을 다시 코끝에 가까이 대었다. 안구마저도 시큰해지는 악취가 정통으로 밀려든다. 뜨거운 물과 비누로 비할 바 없이 꼼꼼하게 씻어낸 냄새가 어째서 수건에 밴 것인지, 미처 추론하기도 전에 본능이 먼저 상황을 넘겨짚었다.

수건이 아니다. 몸이다.

물기에 젖은 살갗이 수증기를 만나 실체라도 자아내는 것처럼 악취를 풍겨대는 것이다. 피부에서 흘러드는 건 녹은 고기의 체액을 닮았으며, 눈을 바짝 뜬 거울 속의 자신은 아까 보았던 주민들의 눈동자와 같이 성말라 있었다. 인지가 상황을 미처 따라가지 못한 경악한 낯이 미처 가라앉기도 전, 거울 속의 남자가 입을 서서히 비틀며 웃었다.

제대로 냉동하지 못한 고기가 흐느적거리다가 용해되어 부패하듯이 살갗이 물성을 잃고 흘러내린다. 경악에 이른 비명은 성대 바깥으로 쏟아져 나오지도 못했다. 쏟아지는 부패액은 욕실 바닥을 더럽히고 형편없이 무너진 근섬유가 관절의 지탱력을 잃는다. 온몸이 바닥에 흐트러지며 철퍽거리는 고깃근 소리가 타일을 타고 울려 퍼진다. 미처 녹지 못한 안구가 거울을 향한다. 매끈한 은빛 공간 안에 자리한 것은 꼴사나운 경악과 잔악한 웃음이 억지로 뒤틀린 남자가 아니었다. 약품으로 세공된 표본 같은 눈동자는 희미하게 호선을 그린다. 삶이라는 표면 안에 잘못 박제된 듯한 여자는, 한낱 고깃덩어리가 된 인간을 지켜볼 때 비로소 미소 지었다.

 

 

(공백 제외 3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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