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마감 글 커미션' 완성본

1차 창작, 자캐로그

냐냥이님 커미션, 23.08.14 작업물

아이돌 연습생처럼 귀여운 인상, 깜찍한 분홍색 머리칼, 하지만 맵싹하기가 남 부럽지 않을 정도인 주먹. 시형은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힘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악력으로 상대의 멱살을 틀어쥐고 주먹을 내질렀다. 망설임을 모르는 행동은 상대의 입술, 코, 눈두덩이를 차례차례 곤죽으로 만든다. 말 그대로 피떡이라는 말이 어울릴 지경이 되어서야 시형은 잡고 있던 멱을 놓아준다. 땅을 딛고 서 있는 놈들은 제 무리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야 시형은 입가에 맺힌 피를 땅에 탁 뱉는다.

"이 새끼들이 전부야? 따까리 아니고 대가리인 거 확실해?"

"확실해. 여러 군데서 확인했어. 이 동네는 얘네들이 먹었단다."

"아하학! 진짜 별 것도 아니구만! 동네가 허접인 거야, 아니면 얘네들이 좆밥인 거야?"

"둘 다 아닐까?"

시형은 키득키득 웃으면서 땅 위에서 바르작거리고 있는 동네 일짱이라는 놈에게 일갈한다.

"야, 골목대장 노릇 할 거면 주먹질을 좀 더 배우든가. 아니면 쪽수라도 빵빵하게 채워오든가."

열다섯이 뭐냐, 열다섯이. 열다섯 대 다섯. 세 배 차이인데 개발리는 건 너희들이 이상한 거야. 간만에 제대로 된 싸움 좀 하나 했더니. 안산까지 왔는데 김만 빠졌잖아.

"몸풀기도 안 되는구먼! 야, 대가리."

시형은 자신이 직접 두들겨 패준 우두머리를 발끝으로 툭툭 건드리면서 통보한다.

"앞으로 이 동네 일짱 먹고 싶으면 시파한테 도전하라고 전해라? 너희들보다는 좀 나은 놈이 다음 대가리가 됐으면 좋겠네!"

 

 

시파, 이시형을 필두로 구성된 깡패 조직. 동네에서 일짱 먹는 놈들과 붙어 무패 전적을 자랑한다더라, 대한민국 전역을 돌면서 지역 패거리 도장 깨기를 하고 다닌다더라, 전국구 깡패인 것치고는 구성원들의 나이가 꽤 젊고 어리다더라……. 보통 소문이란 입에서 입을 거칠수록 과장되고 허세가 덧붙기 마련이지만 시파를 둘러싼 정보는 대부분 사실에 기반했다. 시형은 헛소문으로 자신을 부풀리는 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파의 구성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범죄 전적이 있다든가, 경찰 무리와 싸워 이겼다든가 하는 헛소문이 따라붙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그런 사소한 찌라시는 시파가 또 어느 동네의 일짱을 개박살 냈다더라 하는 사실에 기반한 커다란 소문에 잡아먹히고는 했다. 결과적으로 항간에 떠도는 소문은 시파의 본래 형태를 제법 잘 유지하고 있었다. 이에 따른 장점이라면, 종종 새로운 동네에 방문했을 때 소문을 들은 대가리가 친히 마중 나와 준다는 것 정도?

"재미가 없잖아~ 아아, 요즘 진짜 재미없다고!"

하지만 싸움이 거듭되고 승리 전적만 쌓여갈수록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지 못한다는 단점 또한 존재했다. 박살 낼 예정인 놈들보다 박살 내버린 놈들의 수가 더 많아졌으니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곧 전국 제패가 코앞인데 뭐가 재미없어?"

"남은 지역 짱도 허접한 새끼일까 봐."

시형은 어릴 적에 가출한 이후부터 오로지 자신의 주먹만을 믿었다. 힘이 곧 진리. 불만은 곧 싸움으로 해결. 아주 간단한 원리 아닌가. 애매한 삐딱선을 타고 자란 찌끄레기와는 기본 조건 자체가 달랐다. 전국 동네를 다니며 패거리 사냥을 하다 보니 깨달은 사실인데, 의외로…….

"싸움 한 번 안 해본 놈들이 동네를 꿀꺽한 경우가 많은 건 대체 왜인 거야?"

"그거야 간단하지. 가오로 승부 보는 허세형 일진."

공권력의 영역을 벗어난 힘의 사회는 오로지 싸움 실력으로만 우열이 정해질 것 같지만, 의외로 이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간 이시형이 전국구를 나다니며 깨달은 동네를 먹는 조건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적당히 입김이 셀 것. 두 번째, 외관으로 강해 보일 것. 세 번째, 인맥이 괜찮을 것. 놀랍게도 이게 전부다. 동네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일진의 경우, 대부분 '진짜 싸움'은 맛보지도 못한 채 우물 안의 왕 행세를 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았다. 당연한 일이다. 일진들끼리 토너먼트로 짱을 정하는 것도 아니니까. 역설적으로, 적당히 힘 있는 놈들끼리는 서로 부딪치는 게 도리어 손해다. 왜냐하면 싸움이 붙는 순간 승자와 패자라는 낙인이 찍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승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권력에 도전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수치고, 패자 입장에서는 괜히 덤볐다가 '걔 일짱에게 깨졌대' 정도의 꼬리표밖에 못 얻는 제로섬 게임. 그런 의미에서, 시파는 지역 패거리 중에서는 상당한 이단아라고 볼 수 있었다. 진심으로 전국구를 제패하기 위해 움직이는 집단. 오로지 힘의 우열만을 중심으로 둔 싸움광들.

"다음 지역은 어디지? 또 까먹었어."

"이제 인천만 남았어."

"인천? 거기는 좀 싸울 만하면 좋겠는데! 일짱이랍시고 덤볐는데 몇 번 얻어맞은 후에 꽁지 빠져라 도망 가는 놈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지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여겼다. 왜냐하면 그간 전국을 돌며 여러 깡패를 악으로 깡으로 때려눕힌 시형은 더 이상 패배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 시기의 시형은 별생각 없이 방문한 인천에서 고작 여자 하나에게 와장창 깨지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전국 제패하면 뭐 하지? 나는 시파의 이시형이다! 라는 이름표를 이마에 붙이고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시형은 발에 채는 깡통을 깡 걷어차면서 늘어져라 하품한다. 무리를 줄줄이 매달고 다니던 평소와 달리 혼자뿐이다. 마지막 남은 인천은 혼자 제패하고 오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조금 무리수일 수도 있겠지만 인천을 호령하는 무리가 있다는 소문은 들어본 적 없으니 지역 바깥으로 소문이 새지 않을 정도라면 고만고만한 수준일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생활도 슬슬 지겹네. 계속 싸움만 하면 재밌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알짜배기 싸움꾼은 만나기 어렵고. 어설프게 일진 놀이하는 것들은 백이면 백 자존심만 세서는 '여기 짱이 누구냐' 물어볼 때 '나다. 어쩔래?' 정도로 대답하고. 허수아비를 걸러내고 진짜배기를 찾아내더라도 기대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인천까지 제패하면 그냥 다른 흥밋거리를 찾아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거치며 걸음을 옮기던 시형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온다.

‘알바 구함’

불이 켜진 꽃집 문짝에 붙어있는 종이 한 장. 딱 네 글자로 표현한 구인글. 딱 봐도 장사 안되게 생겼는데 알바를 뽑아? 꽃집이 위치한 골목은 스산하고 어두워서 상권이 다 죽었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을 정도였다. 유동 인구가 많아 보이지도 않는데 꽃집이라니. 순간 이시형은 ‘거기 골목에 있는 꽃집 있지. 거기 알바가 진짜 잘생겼대’라는 소리를 듣는 자신을 상상한다. 내가 뭐, 어디 가서 꿀리는 얼굴은 아니긴 하지. 평범하게 돈 벌고 일하면 좀 덜 지루하려나?

꽃집 문을 열고 들어간 것은 다분히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당장 일을 구하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지만 이런 곳에서 일하는 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꽃집 안은 적막했고 특별한 인기척이 없었다. 저기요, 하고 목소리를 내보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뭐야, 자리를 비웠나? 김빠진다고 생각하던 찰나, 시형의 눈에 계산대가 눈에 띈다.

"……에이, 설마."

이런 골목 구석 꽃집에 돈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어. 생각하고 계산대 돈통을 열어본 시형은 생각보다 두둑한 돈다발을 발견한다. 5만 원권 2장, 10만 원권 13장. 총 33만 원. 한 차례 주변을 더 둘러보고 CCTV가 없음을 확인한 시형은 양심의 말을 따를 생각을 버리고 돈을 반 접어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애초 주먹으로 살아온 시형은 도둑질이라는 범죄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된 지 오래되었으니. 시형이 가뿐한 마음으로 뒤로 돌아 가게를 나가려는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었던 입구에 떡하니 기대어 있는 붉은 머리의 여성을 발견한다.

"……아, 씨. 깜짝이야. 넌 뭐야?"

"어디 가게? 이 좀도둑아."

"네가 여기 주인이냐?"

아, 절도 신고가 들어가면 귀찮아지는데. 경찰과 대거리하는 건 두렵지 않았으나 이래저래 입씨름하는 것만은 귀찮았던 탓에, 시형은 재빠르게 판단한다. 저 연약해 보이는 가게 주인을 적당히 때려눕히고 도망가자고. 어차피 시형은 이 지역 사람도 아니었으니 볼 일을 다 끝내고 거주지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속전속결로 끝내자고 생각한 시형은 입구를 막아선 여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음 순간, 시형은 날카로운 통증이 팔을 스치는 감각에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아악!!"

통증 부위를 내려다보니 시형의 팔뚝에서는 새빨갛다 못해 눈이 시릴 정도의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시형은 뒤늦게 여성의 손바닥에 쥐어진 카람빗을 발견한다.

"뭐, 뭐야?!"

베었어? 저 여자가 직접?

"어휴, 난 그냥 말만 걸었을 뿐인데 다짜고짜 달려들고 말이야. 진짜 혼나봐야 정신 차릴래."

너 따위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처럼 냉랭하게 쏟아지는 말은 여유가 넘쳤다. 그 간단한 언사에 도발 당한 시형은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다시 여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차피 약해빠져 보이니까 흉기만 놓게 만들면 별것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여자는 별다른 움직임도 없이 다시금 시형의 팔을 칼날로 찢어버린다. 아까보다 조금 더 확실하고 화끈한 통증이 팔을 감싼다.

"이런, 제기랄!"

평범한 일반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속도에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다. 저 여자 뭐야? 진짜 그냥 꽃집 주인 맞아? 꽃집 주인이 저런 본격적인 흉기는 왜 들고 있는 건데? 수많은 싸움 편력으로 다져진 날카로운 육감은 시형에게 경고한다. 이 사람하고 싸우면 진짜로 진다고. 주먹 좀 날리고 패싸움 좀 한다고 이길 수 있는 수준의 살기가 아니라고. 확신에 가까운 짐작이 들었음에도 시형은 도망치지 않았다. 그놈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젠장, 젠장! 내가 도망갈 줄 알고!?"

시형은 피가 뚝뚝 흐르는 팔뚝을 부여잡고 패기 있게 덤벼들었으나 결판은 순식간에 나버렸다. 시형이 주먹을 휘두르는 족족, 여자는 카람빗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온 살점을 사정없이 베어냈고 몇 합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시형의 양팔은 너덜너덜하게 넝마가 되어버렸다. 손가락을 움직이지도 못할 통증에 시형은 빼도 박도 못하는 패배를 실감한다. 아니, 실감이고 자시고 그냥 졌다. 주먹을 쥘 수도 없는데 여기서 또 뭘 한단 말인가.

"……젠장."

작게 지껄인 시형은 이를 바득 갈면서 여성을 노려본다. 여성은 카람빗에 묻은 피를 탈탈 털어내는 와중에도 시형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싸움의 근본은 눈을 피하지 않는 것. 눈앞의 상대는 단순한 여자가 아니라 맹수다. 그것도 자신은 만나보지 못한 부류의 맹수. 이제 남은 건 경찰에게 인계되어서 절도죄로 입건 당하는 것뿐이겠지. 일반인에게 제멋대로 날붙이를 휘두르는 거 보니까 생각보다 대단한 뒷배가 있을 수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시형은 이만 바득바득 갈았으나, 잠깐의 적막 후 여성의 입가에서 나온 말은 의외였다.

"너, 패기 있네."

"……뭐?"

"아직 어려 보이는데 그런 깡이 대체 어디서 난 거지? 주먹을 휘두르는 폼이 그냥 시정잡배는 아니던데. 네가 그… 뭐냐, 시바인가 시발인가 하는 놈이니?"

"시파거든!!"

"아 그래, 어쨌든 비슷했잖아. 전국구 단위로 패거리 싸움하고 다닌다는 문제아가 너지?"

시형의 침묵을 곧 긍정으로 받아들인 여성은 미소를 띠면서 통보와 같은 선언을 내린다.

"너, 애매한 조직에서 깔짝거리지 말고. 내 밑으로 들어와라."

"…… 뭐?"

"야쿠자가 되라는 소리야. 물론 선택권은 없어. 너는 내가 좀 키워보고 싶어졌거든. 싫다고 대답하면 이번에 써는 건 네 팔이 아니라 목이 될 거야."

그날을 기점으로, 시형의 인생은 말 그대로 판이 뒤집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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