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마감 글 커미션' 완성본

1차 창작, 자캐 로그

실님님 커미션, 23.08.16 작업물

에덴 선배가 쓰러졌다. 원체 병약한 사람이지만 이번에는 업무 도중에 쓰러졌다고 한다. 심장이 바닥을 뚫고 추락하는 기분에 업무도 다 때려치우고 의무실로 향했다. 최근에 일이 많이 몰렸다더니, 도와주겠냐고 물어도 한사코 괜찮다고 거절하는 모습을 그냥 넘기지 말았어야 했다.

"팀장, 이거 정말 과로인 거 맞아? 열이 아주 펄펄 끓는데?"

"프랭크, 난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지금 선배 이마가 불덩이인데."

에덴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프랭크의 손을 잡아 진정시키려고 했으나, 프랭크는 그저 에덴의 손을 마주 잡을 뿐. 전혀 진정하지 못하고 세르게이에게 따졌다.

"또 술 처먹고 진단 잘못 내린 거 아니야?"

"의무실 팀장의 진단을 무시하는 거냐. 이거 과로 맞아. 과로가 원인이 된 신경성 몸살이지. 꼬마 도련님처럼 병약한 사람은 과로로도 열이 끓을 수 있어."

의무실 팀장인 세르게이는 에덴의 팔에 라인을 잡고 해열제를 투여하면서 답한다. 프랭크는 저 얇은 팔에 꽂힌 굵은 라인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 와중에 주사를 놓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저 입을 다문다. 프랭크의 얼굴색이 좋지 않자 에덴의 옆에서 바이털을 측정하던 랑게누아가 말을 덧붙인다.

"괜찮아요, 프랭크 씨. 과로라면 큰일 없이 지나갈 거예요."

"선배는 최근에 독감도 앓았는데 또 앓아누웠으니까 걱정돼서 그렇지. 네 치유 능력으로는 어떻게 안 돼?"

"물론 치유는 해드릴 거예요. 하지만 피로 누적으로 생긴 신경성 질병이라면 제 능력이 즉효성 있게 들지는 않아요. 제 능력은 피로해소보다 상흔 복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까. 지금 에덴 팀장님께 필요한 건 안정이에요. 그러니까 너무 초조해하지 마시고 마음 놓으세요."

"그렇구나. 들었지, 프랭크? 난 정말 괜찮, 콜록! 콜록콜록!"

"선배! 괜찮아요? 아니, 이거 봐. 몸살이라는 사람이 기침은 왜 하는데? 역시 뭔가 골병이 든 거 아니야?"

"아니, 이건 그냥 사레에 들려서……."

에덴은 자신의 고통을 최대한 별 것 아닌 듯 치부하려 했고, 프랭크는 에덴의 사소한 행동에도 가슴을 졸였다. 안 그래도 연약한 팔뚝에 라인을 꽂아 넣고 심지어는 산소포화도 기계까지 다는 것은 뭔가 문제가 생겨도 단단히 생겼다는 뜻 아니야?

점차 심각해지는 프랭크의 표정을 눈치챈 에덴은 최대한 멀쩡한 표정을 지으려 했으나, 골을 지끈지끈 울리는 통증과 온몸에 오르는 오한 탓에 쉽지 않았다. 춥지도 않은 실내에서 계속 떨리는 손끝을 그러쥐고, 에덴은 목에 걸린 기침을 억지로 삼켜낸 채 웃는다.

"프랭크, 난 정말 괜찮아. 그러니까 그만 일하러 가도 돼."

"아니, 선배가 이 지경이 됐는데 제가 어떻게 일을 해요!"

"네가 나 때문에 일하지 못한다면 나는 마음이 아플 거야."

에덴이 자신의 마음을 들먹이며 돌아갈 것을 부탁하자 프랭크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그 꼴을 똑똑히 지켜보던 세르게이는 픽 웃음을 지으면서 굳이 말을 덧붙인다.

"꼬마 도련님 말이 맞아. 표정 풀고 이만 돌아 가. 걱정된다는 건 알겠지만 네가 그렇게 있어봤자 도움 되는 건 하나도 없다? 라인 잡을 때 방해만 되고. 걸리적거리고."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압니다. 내가 선배 옆에 있어도 해줄 수 있는 건 없다는 거. 고작해야 손 좀 잡아주거나 이마 닦아주는 것밖에 못 하겠죠."

"너보다 랑게누아가 손 잡아주는 게 더 도움 된다는 것도 알지? 너한테는 치유 능력이 없잖아."

"그렇게 신경을 박박 긁어야 성질이 풀리겠습니까? 예?"

두 사람의 언성이 슬슬 높아지자 에덴은 안절부절하며 두 사람을 말려야 하나 고민한다. 그 모습이 보이지도 않는지, 세르게이는 늘 그렇듯이 실실 웃으면서 의무실 책상 한구석에 세워둔 술병을 기울이기 위해 고개를 젖힌다. 프랭크는 손을 뻗어 술병을 빼앗아 버린다.

"뭐야?"

"환자를 앞에 두고 술꾼 짓은 좀 자제하시죠."

"에이, 뭐. 나 술꾼인 건 꼬마 도련님도 알고 랑게누아도 아는데 뭐."

"술에 취해서 선배 팔에 주사 잘못 찌르기라도 하면 제가 팀장 눈을 찌를지도 모르니까 하는 소리입니다."

"어이쿠, 무서워라."

한낱 팀원이 내뱉는 발언치고는 꽤 불손한 말까지 오가자 상황을 두고 보기 힘들었던 에덴이 후들거리는 몸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랑게누아가 에덴의 어깨를 가볍게 내리누르면서 대신 제지한다.

"저기요~ 세르게이 팀장님, 프랭크 씨? 의무실에서 싸움은 금물! 환자 안정에 안 좋아요."

살포시 웃는 표정의 랑게누아가 부드러운 어투로 경고하자 세르게이는 적당히 하겠다는 것처럼 손을 두어 번 내젓는다.

"그래그래, 안 그래도 연약한 꼬마 도련님 안정에 방해가 되면 안 되지. 프랭크? 할 말 있으면 의무반 밖으로 나와라."

"바라던 바입니다."

"예……? 자, 잠깐만! 프랭크, 싸우면 안 돼!"

침대 위에 눕혀진 에덴은 두 사람의 형형한 분위기를 다시금 말리려고 했으나 프랭크는 태연하게 손을 들어 누워있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선배는 걱정하지 말고 누워있어요. 제가 술꾼 주정뱅이한테 당할 사람은 아니잖아요."

"어휴, 너 내가 팀장인 것도 잊어먹은 모양이다?"

프랭크와 세르게이는 끝까지 티격대면서 의무반을 나선다. 의무반 문이 닫히는 순간, 에덴의 당혹한 얼굴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의무반 바깥으로 나온 세르게이는 문이 닫히는 것까지 확인하고 입을 연다.

"그래서, 계속 의무실에 있을 예정이냐?"

팀장에게 뱉은 불손한 어투를 지적당할 줄 알았던 프랭크는 예상 외의 질문에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힌다. 세르게이는 대답이나 하라는 것처럼 귀찮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머리를 벅벅 긁었고 프랭크는 슬그머니 한 걸음 떨어지면서 답한다.

"맘 같아선 그러고 싶습니다."

"아서라, 아서. 네가 여기 있어봤자 짐밖에 더 돼?"

저 인간이 진짜, 말을 해도 꼭. 이번에는 프랭크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찌푸려졌으나 세르게이는 도리어 웃음을 거두지 않는다.

"뭐, 그렇게 걱정되면 여기서 죽치고 있지 말고 꼬마 도련님에게 도움 되는 일을 하든가."

"도움 되는 일이라뇨?"

"설마 진짜 몰라서 묻는 건 아니지? 어휴, 꼬마 도련님은 이런 놈이 뭐가 좋다고……."

"팀장이 지금 절 놀려 먹을 생각이라는 건 아주 똑똑히 알겠습니다만."

"그러니까 내 말은, 꼬마 도련님이 쓰러진 상황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잖아. 꼬마 도련님은 팀장이지. 팀장이 빠지면 업무 공백이 꽤 커. 여기까진 알고 있지?"

프랭크는 어렵지 않게 고개를 끄덕인다. 에덴 선배는 늘 병약한 몸을 이끌고 어떻게든 1인분 이상을 하겠다고 발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뛰어다녔으니까. 그럼 당연히 에덴 선배가 빠졌을 때, 어디에서든 공백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에덴 선배는 팀원도 아니고 팀장이니까 더더욱.

"지금 프랭크, 네가 할 수 있는 건 꼬마 도련님 옆에서 험악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는 게 아니야. 꼬마 도련님이 일어났을 때 또 과로로 쓰러지지 않도록 업무를 밀리지 않게 해주는 게 더 중요하지."

"……듣고 보니 일리가 있군요."

업무는 에덴 선배가 쓰러져 있는 상황을 기다려주지 않으니, 시시각각 처리할 일은 쌓여만 갈 것이다. 그럼 에덴 선배가 쾌차하더라도 또 과로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선배는 늘 그렇듯이 내색하지 않은 채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붙이겠지. 그렇게 된다면 선배는 또 쓰러질 때까지 과로할 것이다. 말 그대로 악순환.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애인의 부담조차 덜어주지 못하는 무능한 짝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프랭크는 침상에 누워서 자신을 진정시키려고 애쓰던 에덴을 떠올린다. 가히 미인이라 말해도 부족할 정도로 곱상한 얼굴이 병환으로 찡그려진 채, 가쁜 숨을 내쉬던 애달픈 모습을. 프랭크는 생각한다. 선배가 평생 아프지 않게 만들어줄 수는 없어도, 적어도 덜 아프게 만들어주고 싶다고.

"알겠습니다. 팀장 말대로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하죠."

"좋은 생각이야. 나도 꼬마 도련님이 과로로 쓰러지는 건 그만 보고 싶으니까 네가 좀 도와줘라."

"……근데 당신은 팀장이니까, 당신도 선배의 업무를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난 바빠. 의무실에 쌓여있는 업무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

"손에 들린 술병은 좀 내려두고 말하죠? 이 술꾼 돌팔이 의사 팀장."

 

 

"그러니까…… 내가 이해한 게 맞나? 천하의 프랭크가 고개를 숙이고 도움을 요청하는 날도 다 있네."

"어디까지나 선배를 위해서야. 너…… 아니, 팀장도 평소에 선배하고 서로 자주 돕잖아."

"물론 그건 그렇지."

선배에게 가중된 업무를 덜기 위해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백업팀이다. 기록팀 팀장인 에덴 선배가 가장 자주 도움을 청하는 사람은 단연코 백업팀 팀장인 아세라 시드버였기 때문에.

"메이소넷은 많이 아파?"

"과로래. 과로가 원인인 신경성 몸살. 원체 병약해서 더 크게 앓는 것 같다고 하더라."

"걱정이네."

자칫 성의 없게 보일 수 있는 단순한 한 마디 속에는 충분한 걱정이 녹아있었다. 원체 말수가 적은 아세라는 필요 없는 말은 잘 붙이지 않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연이어 나온 말은 조금 의외의 것이었다.

"근데, 내가 메이소넷을 아끼는 것과는 별개로 요즘 진짜 바쁘거든. 백업팀 일만 해도 장난 아니야. 기록팀 일, 더군다나 팀장의 일을 분업할 만큼 여유 있지 않아."

"……뭐?"

"도와주기 힘들 것 같다는 소리야."

거절의 의사가 나올 줄은 몰랐던 프랭크가 순간 말을 잃은 사이, 백업팀 한구석에서 뚝딱뚝딱 무기를 손보던 자비에가 아세라의 말을 거든다.

"아세라 말이 맞아. 요즘 진짜 바쁜 거 너도 알잖아? 며칠 전에 도심에서 범람한 괴물들 때문에 수습할 게 산더미야. 아마 대부분 부서가 똑같은 상태일 텐데? 정비해야 할 것도 많고, 수리해야 할 것도 많고, 새로 개조해야 할 것도 많아. 에덴이 쓰러진 건 안타깝지만 지금 우리 코도 석자라서."

최근 도심에서 괴물이 범람했다는 사실은 프랭크도 알고 있었다. 훈련팀 소속인 프랭크도 괴물 제압 일선에 나섰으니까. 다시 생각해보니 그 일 때문에 업무가 몰아쳐서 에덴 선배가 쓰러진 걸 수도 있겠네. 그건 미처 고려하지 못했는데.

"아니, 그래도……! 선배에게 쏟아지는 업무를 그대로 뒀다간 선배가 병상에서 일어났을 때 또 과로하고 말 거야. 그럼 공석은 더 길어지겠지. 그 일은 막아야 하지 않아?"

"하아…….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네. 아이고, 머리야……."

"바쁜 시기라는 건 알지만 이럴 때일수록 힘을 합쳐야지. 원래 동료끼리는 서로 돕는 거잖아. 안 그래?"

아세라의 미간이 곤란을 담고 찡그려진다. 모질게 안 된다고 거절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프랭크는 머리를 굴린다. 아세라도 에덴 선배를 아낀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동안 쌓아온 정에 기대어, 프랭크는 초강수를 내놓는다.

"내가 도울 일 있으면 뭐든지 도울 테니까. 그냥 수족처럼 부려도 돼. 선배가 일어날 때까지는."

"……엥? 진짜?"

프랭크가 유능하다는 사실은 회사 내의 모든 인재가 다 안다. 다만 그가 원체 오만하고 머리 회전이 빨라서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일은 쉽게 순종하지 않는다는 게 고질적인 문제일 뿐. 그런데 그 프랭크가, 자신의 입으로 수족처럼 부려달라 말한다. 손 하나라도 아쉬운 팀장 입장에서는 거절할 수 없는 달콤한 제안이었다.

"……어휴,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거절할 수도 없고."

"그럼 도와주는 거지?"

"그래, 알았다. 지금 쌓여가는 문제는 결국 메이소넷의 일이니까. 만약 너한테 할당되는 일이라면 안 들어줬을 텐데."

"저기, 그런 말은 좀 본인이 없는 곳에서 하면 안 될까."

"네가 분명히 말했다? 수족처럼 부려도 된다고."

아세라의 다갈빛 눈동자가 알 수 없는 함의를 담고 반짝 빛난다. 그럼에도 프랭크는 일이 많아봤자 뭐 얼마나 많겠어? 평소보다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이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하지. 선배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최선을 다해서 도울 테니까 협조 좀 해줘."

"메이소넷은 팀원이 아니라 팀장이니까 일이 꽤 많을 텐데. 정말 괜찮겠어?"

"당연하지. 각오는 되어있어. 선배가 또 과로해서 쓰러지는 꼴을 보느니 그냥 내가 좀 고달픈 게 나아."

"좋아. 그럼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을 알려줄게."

 

 

에덴 선배의 업무 덜어주기 작전 1단계, 팀장의 부재로 인해서 기록팀에서 올라와야 할 서류가 꽉 막혀있으니 그것부터 해결할 것. 기록팀에 방문해서 서류를 확인하고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건 해결하고, 다른 팀장에게 인계할 건 인계하기.

아세라의 말에 따라 프랭크는 가장 먼저 기록팀으로 향했다. 안 그래도 팀장이 쓰러졌단 소식에 놀라 자빠졌을 것 같은데. 일도 밀려가기 시작하면 말단 애들은 아주 혼란스럽겠지. 프랭크는 아직 팀장급이 아니었으나, 기록팀에 있는 말단보다는 고참이었기 때문에 분명 도울 일이 있을 것이다. 프랭크는 기록팀 사무실에 도착한 후, 당당하게 문을 열어젖혔다.

"나 왔다."

"엇, 누구……. 앗! 프랭크 선배님!"

문 근처에서 산더미 같은 서류를 들고 움직이던 시이나와 프랭크의 눈이 마주친다. 연이어서 눈에 띄는 것은 책상과 소파 테이블까지 가득 채운 파일철과 서류 묶음들, 그 앞에서 망연하게 서 있는 기록팀 팀원…… 아이텔과 판테온. 딱 보기에도 업무가 심각하게 밀려있음을 눈치챈 프랭크가 시이나의 팔에서 서류 반절 이상을 대신 들어주며 묻는다.

"너희 지금 업무 많이 밀렸지?"

"네! 아니, 그보다 팀장님 쓰러졌다면서요? 어떻게 된 거예요, 선배!"

수다스러운 성향의 시이나는 서류의 무게 때문에 부들거리던 팔이 좀 살만해지자마자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쓰러진 팀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아이텔과 판테온의 시선도 프랭크를 향했다.

"과로란다. 과로 몸살. 절대 안정하지 않으면 다시 일어나도 또 쓰러질 거래."

"헉! 정말요? 하긴 최근에 엄청 바쁘기는 했죠. 팀장님이 쓰러졌단 소식에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게다가 팀장님이 원래 엄살을 잘 안 부리시잖아요. 그래서 워낙 걱정되기도 하고, 보러 가고 싶기도 한데 보시다시피 일이 너무 많이 밀려서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어요!"

시이나의 수다가 끝나자 서류 일부분을 들춰보던 판테온이 슬그머니 말을 붙인다.

"팀장님은 의무실에 계시나요? 저도 보러 가고 싶은데. 팀장님의 아픈 얼굴……. 아파서 헐떡대는 얼굴……. 끄악!!"

환자 대상으로 못 할 말을 지껄이는 판테온의 주둥이가 순식간에 막힌다. 곁에 서 있던 아이텔은 표정 변화 없이 들고 있던 수첩으로 판테온의 머리를 후려친 다음, 판테온의 억울하다는 눈빛을 깡그리 무시한 채 수첩에 필담을 적는다.

'팀장님의 상태는 많이 안 좋은가요?'

"아……. 일단 랑게누아가 최선을 다해서 돌봐주고 있어. 썩 믿음직스럽지 못한 세르게이 팀장도 곁을 지키고 있고. 의무팀에서 내가 할 일은 없다고 하더라."

이럴 때만큼은 자신이 치유 능력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원망스럽다는 이야기는 덧붙이지 않았다. 팀장이 부재한 상황에서 기껏 등장한 선배가 약한 소리를 해봤자 도움 될 일은 하나도 없었으니.

"아무튼, 너희 지금 일 장난 아니게 밀렸지?"

"어머, 그럼요! 팀장님이 평소에 이렇게 많은 일을 하시는지 정말 상상도 못 했지 뭐예요! 저 정말 팀장님한테 잘 해드려야겠어요. 이걸 언제 다 해치우나 싶다니까요? 다른 팀도 완전 바쁜 시기라서 뭐라고 지원을 청하기도 죄송하고……."

팀 내 사무실 안을 빼곡하게 채운 서류들을 돌아보면서 프랭크는 결연하게 선언한다.

"내가 너희 도와주려고 왔다."

"헉!! 저, 정말요?!"

순식간에 팀원 세 명의 눈빛이 구세주를 만나기라도 한 듯 반짝인다. 프랭크는 바로 백업팀에서 전달받은 상황을 읊는다.

"백업팀에서 말해준 건데, 팀장이 앓아누웠기 때문인지 기록팀에서 올라와야 할 서류도, 내려가야 할 서류도 꽉 막혀있다고 들었어. 말단끼리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은 일부에 불과할 테니까 내 선에서 해결해줄 수 있는 건 해결할 거야. 불만 없지?"

"없습니다! 오히려 머리 박고 감사하고 싶어요!"

"좋아. 그럼 선배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자고."

프랭크는 기록팀 팀원들보다 조금 이르게 입사한 짬밥을 살려서 진두지휘를 시작한다. 이 심각한 상황에서 가장 먼저 손대야 할 부분은…….

"우선 서류를 분류해야 해. 이렇게 쌓여있으면 처리할 서류의 우선순위를 알기가 쉽지 않잖아. 우선 처리 기한이 급한 서류, 급하지 않은 서류로 분류해. 두 종류로 나뉜 서류는 다시 중요한 서류, 중요하지 않은 서류로 분류하고. 총 네 종류의 서류 뭉치가 나오게 되는 거야. 여기까지 이해 안 되는 사람?"

프랭크는 천천히 시이나, 아이텔, 판테온의 얼굴을 돌아본다. 이해하지 못한 기색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마저 말을 잇는다.

"네 종류의 서류 뭉치 중, 중요하고 급한 서류부터 확인 시작한다. 기록팀 내부에서만 해결해야 할 서류가 있고, 기록팀 바깥으로 넘겨야 하는 서류가 있을 거야. 중요도와 긴급도가 파악된 서류를 다시 내부 외부 서류로 분류하면서, 파생되는 업무가 있으면 여기 칠판에 적는 거다. 이해했지?"

프랭크는 꽤 오래 에덴과 함께 지내면서 서당 개 풍월 읊듯이 팀장 업무를 어깨너머로 보고 배웠다. 사무실 안에 쌓여가는 서류를 망연히 바라보고만 있던 팀원들은 프랭크의 설명을 들은 이후에야 돌파구를 찾았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기록팀 바깥으로 넘겨야 하는 서류는 전부 나한테 넘겨. 너희 짬에 다른 팀까지 가서 결재를 받아내느니 차라리 내가 움직이는 게 나으니까."

모든 일의 시작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분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너희들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선배가 돌아왔을 때 안심할 수 있을 거 아니야. 그러니까 힘내자. 에덴 선배가 돌아올 때까지.

 

 

일의 우선순위와 중심을 잡아주는 선배가 등장하자 기록팀의 일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됐다. 애초 기록팀 팀원들도 놀기만 하는 치들은 아니니까. 팀장에게 할당된 일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그동안 곁에서 배운 게 없지 않은 팀원들은 프랭크의 지시를 일사불란하게 따라주었다. 쌓인 업무가 워낙 방대해서 한나절이 꼬박 걸리기는 했지만. 당장 급한 일을 추려내는 건 성공했으니까 기록팀에서 할 일은 끝냈다. 프랭크는 각 팀으로 전달해야 할 서류를 두 손 가득 안고, 분석팀으로 향한다.

에덴 선배의 업무 덜어주기 작전 2단계, 분석팀과 기록팀이 협업하여 만들어 낸 괴물 특성 샘플의 경과를 기록하고 각 부서에 이관할 것. 아까의 업무와는 달리 이번 업무는 오로지 기록팀 팀장에게 할당된 일이었으나, 특성 샘플의 경과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일이야 프랭크도 할 수 있었다. 이번 업무는 서류 산더미를 해결하는 것보다야 덜 걸리겠지 예상하며 프랭크는 분석팀 문을 팔꿈치로 열어젖힌다.

"팀장, 나 왔습니다."

"아니, 이게 누구람. 프랭크구나. 여긴 어쩐 일이냐."

나이가 지긋하지도 않으면서 어르신 같은 말투를 사용하는 프랭크의 옛 팀장, 톰 페이튼이 인사를 건넨다. 프랭크는 손에 들린 서류 뭉치 하나를 테이블에 내려놓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기록팀에서 분석팀으로 건네는 서류입니다. 이번에 발생한 괴물 범람 사건 기록이 대부분이에요."

"음? 이걸 왜 네가 가져오는 거니?"

"에덴 선배가 쓰러져서 기록팀 일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에덴이 쓰러져?"

분석팀 모두의 시선이 프랭크를 향한다. 안 그래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기라 에덴의 병력이 분석팀까지 전달되지 않았음을 깨달은 프랭크가 간결하게 말한다.

"과로 몸살이랍니다. 기록팀 팀장의 부재로 업무가 막혀있거든요. 그래서 좀 돕기로 했습니다."

"과로 몸살이라……. 에덴의 상태는 좀 괜찮은 거냐."

"푹 쉬면 나아질 거라고는 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일이 마무리된다면 병문안이라도 가봐야겠구나."

빈말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분석팀 팀장 책상에 쌓여있는 서류의 양만 보면 과연 에덴 선배가 일어날 때까지 짬이 날까 싶었다. 타 부서 팀원에게 보이는 것만 저 정도의 분량이라면 실상 그들에게 주어진 업무는 훨씬 많을 터인데.

"저번에 있었던 괴물 범람 사건 때문에 분석팀에서도 일이 넘쳐나는 중인가 봅니다."

"물론. 싸웠던 괴물들의 형태나 약점, 특이점을 전부 분석하고 분류해야 하니 머리가 다 빠질 지경이란다."

"백업팀에서 분석팀으로 가면 괴물 특성 샘플이 있을 거라고 했는데, 그것도 완성 전입니까?"

"아직 완성 전이란다. 그건 왜 묻는 거니?"

"완성 전입니까? 그 샘플의 경과를 기록하려고 왔는데요."

"흠? 그 업무도 할당받은 게냐? 그건 본디 팀장 업무일 터인데."

"에덴 선배의 병력이 과로인 만큼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돕기로 했거든요. 월권에 대해서는 아세라…… 아니, 백업팀 팀장이 허락해주었습니다."

그 말에 톰은 무언가 생각에 빠진 듯이 잠시간 말이 없었다. 프랭크가 의아하게 고개를 기울이면서 무어라 말을 덧붙이려던 찰나, 톰은 특유의 웃음을 지으면서 입을 연다

"그건 팀장 권한에서 해결되어야 하는 일이니, 내가 맡으마."

"예…? 하지만, 분석팀 일만 해도……."

"많이 바쁘단다. 하지만 에덴을 위해서 조금 더 짬을 내는 건 어렵지 않단다. 그러니 너는 다른 일을 도우러 가려무나. 기록팀 팀장 대리로서 일하고 있는 것이라면 샘플 관찰보다 중요한 일이 많을 거란다."

그 말대로였다. 아직 백업팀에서 지시받은 업무 중 절반도 끝내지 못했고, 기록팀에서 가져온 서류도 중요하고 급한 서류뿐. 절반 이상의 서류를 둘러보지도 못한 채 길을 나섰다. 앞으로의 일을 순조롭게 해결하려면 어떻게든 시간을 남겨서 기록팀의 일을 도우러 가야 한다. 더군다나 프랭크도 노는 사람이 아니다. 오늘은 제 몫의 업무를 전부 끝내뒀기 때문에 기록팀의 일을 종일 도울 수 있다지만, 내일부터는 제 업무를 우선 처리한 다음에 기록팀을 도와야 하는 이중고를 넘어야 한다. 그렇기에 프랭크는 여러 번 거절을 붙이지 않고 그저 고개를 숙여 보인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오호, 네가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구나."

"에덴 선배를 위해서라면 고개 같은 건 얼마든지 숙일 수 있습니다."

"마음이 갸륵하구나. 에덴을 돕고 싶어서 결정한 일이니 너무 마음 쓰지 말고, 힘내도록 하려무나."

 

 

최근 일어난 괴물 범람 사건으로 가장 바쁠 팀 중 하나가 분석팀일 텐데. 그 와중에도 기록팀에게 할당된 업무 일부를 다른 누구도 아닌 분석팀 팀장이 부담해주겠다 했으니 프랭크는 한숨 놓을 수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발 빠지게 돌아다니더라도 일개 팀원이 해결할 수 있는 일과 팀장 권한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천지 차이니까. 괴물 특성 샘플에 대한 경과는 톰 팀장을 믿도록 하고, 다음 일을 할 차례다.

에덴 선배의 업무 덜어주기 작전 3단계, 오늘 시행되는 공식 훈련의 성과를 기록하고 훈련을 진행한 팀원의 부서로 전송할 것. 기록팀에서 보통 이런 일까지 하는군. 에덴 선배가 그동안 잠잘 새도 없이 뛰어다니던 이유가 조금은 이해된다.

"어라? 왜 메이소넷이 안 오고 천둥벌거숭이 프랭크가 온 거야?"

훈련장에서 쭉쭉 몸을 풀며 대기를 타고 있던 노아가 프랭크를 발견한다. 덩달아서, 역시 훈련 준비를 하고 있던 아처 또한 의아한 낯을 띄운다.

"훈련 관찰하려고 왔어? 오만방자한 프랭크가 남의 훈련을 보러 오는 날도 있네. 구경하면서 ‘아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같은 소리 지껄일 거면 그냥 싸게싸게 돌아가라?"

"하, 진짜 입담하고는. 내가 너희들 훈련을 보러 왔겠냐? 그게 아니고, 오늘은 기록팀 대리로 온 거야. 에덴이 쓰러졌거든."

"뭐?!"

버럭 소리를 지르며 놀라는 노아와 아무 말 없이 안광이 사라진 아처를 보면서 프랭크는 오늘만 해도 여러 번 설명한 사정을 간략하게 요약하여 전달한다. 기록팀 팀장이 과로 몸살로 쓰러져서 대리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해 들은 노아와 아처의 얼굴에 근심이 서린다.

"어우씨, 이게 무슨 염병할 노릇이람? 천사 같은 메이소넷이 과로 몸살이라니. 병문안이라도 가 봐야 하나? 최근에 일이 좆 빠질 만큼 많았나?"

"야, 네 눈앞에 있는 내가 바로 에덴 선배 애인이거든? 내가 버젓이 듣고 있는데 ‘좆 빠진다’가 뭐냐, ‘좆 빠진다’가."

"많긴 많았지. 도심에서 괴물 무리가 출몰하는 바람에 난리도 아니었잖아."

"저기? 너희들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노아와 아처는 프랭크를 거의 무시하면서 에덴의 안부를 걱정했다. 프랭크는 눈앞에 있는 놈들을 싹 다 갈아엎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으나 그랬다간 앞으로의 업무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었으므로 심호흡하면서 진정했다. 눈물겨운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아는 말을 전혀 고르지 않은 어투로 프랭크에게 묻는다.

"메이소넷은 좀 어때? 염병천병할 정도로 아프대? 그 고운 입에서 드디어 욕지거리가 나오려나?"

"안 나왔어. 치유를 쓰면서 경과를 지켜보는 중이야."

"의무반에서도 쌔빠지게 구르고 있겠네. 팀장급 인사가 과로로 쓰러졌으니까. 어휴, 그러니까 좀 진작에 워라벨 존중해줬으면 좀 좋아? 꼭 좆이 빠진 이후에야 어이쿠 이게 빠져버렸네 하면서 다시 처붙이려 한다니까. 멍청하게."

"하아……. 너희랑 좆 이야기하려고 온 거 아니니까 그쯤해라, 제발."

"아, 맞다. 네가 오늘 기록팀 대리라고?"

"그래. 공식 훈련을 기록하고 보고하는 것도 기록팀의 일이라며? 이 정도 일은 팀장이 아니라 팀원이 맡아도 되지 않나?"

프랭크의 말이 물음표로 끝나자 아처는 차분하게 공식 훈련 기록 업무에 관해서 설명을 덧붙인다.

"단순한 훈련 기록이라면 팀원 선에서 해결해도 되는데, 공식 훈련은 각 팀원의 능력 임계치나 활용법, 장단점까지 분석해서 보고서에 올려야 해서 눈썰미 좋은 에덴 팀장이 맡고는 했어."

"뭐? 그냥 기록하면 되는 게 아니야?"

"응. 공식 훈련이 괜히 공식 훈련이겠어?"

"하아…….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겠네."

역으로 프랭크의 얼굴에 근심이 실리자, 노아가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밝게 웃으면서 답한다.

"나 존나 좋은 생각났어."

"전혀 아닐 것 같은데."

"아오, 씨발아. 들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너한테도 도움되는 말이니까 좀 들어."

하, 진짜 쥐어팰까……. 하는 충동을 억누르고 프랭크는 노아를 돌아본다. 노아는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한다.

"원래 본인의 능력은 본인이 가장 잘 아는 법이잖아. 능력 분석과 활용법 고찰이라면 지겨울 정도로 하고 있으니까, 보고서 작성 정도는 우리가 해도 될 것 같은데?"

노아가 허락을 구하는 것처럼 아처를 돌아보았으나, 아처는 기꺼이 동의한다는 것처럼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제 업무가 아닌 일을 할당받겠다는 말이었음에도, 두 사람의 얼굴에는 조금의 불만도 보이지 않았다. 아처는 프랭크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면서 말을 붙인다.

"그냥 기록만 열심히 해줘. 훈련 기록만 우리에게 넘겨주면 오늘치 훈련 보고서는 우리 둘이 협업해서 작성해 올릴게."

"정말? 괜찮겠어? 너희 몫이 아닌 보고서를 작성하다간 퇴근이 늦어질 수도 있어."

노아와 아처는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답한다.

"에덴 팀장을 위한 일인데, 그 정도는 괜찮아."

 

 

일을 떠넘기는 모양새가 될까 봐 프랭크는 공식 훈련을 지켜보면서 최대한 분석을 덧붙이려고 했으나, 생장하는 식물과 경화된 신체가 맞부딪히면서 풀내음이 많이 난다는 점 외의 감상을 남기지 못했다. 에덴 선배는 이 정도 호흡의 훈련을 지켜보면서 분석까지 덧붙인단 말이야? 새삼스레 선배가 대단하게 보이네. 프랭크는 어쩔 수 없이 훈련 분석을 포기하고 두 사람에게 보고서를 인계했다. 그래도 두 사람이 일을 돕겠다고 해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시간이 넉넉하다면 프랭크는 고집을 부려서라도 보고서를 스스로 작성했겠지만, 이미 백업팀, 기록팀, 분석팀을 거친 하루는 어느덧 밤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내일은 내일의 업무가 떠오르는 법. 오늘치의 업무는 최대한 자정이 가기 전에 끝내야 내일이 편할 것이다. 그래도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은 턱에, 아세라가 프랭크에게 제안한 업무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드디어 마지막. 에덴 선배의 업무 덜어주기 작전 4단계. 지휘팀에 가서 에덴이 일어날 때까지만 기록팀에 할당되는 업무량을 줄여달라고 협상할 것. 아무리 업무를 빨리 쳐내더라도 지휘팀에서 인계되는 업무량이 많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딱 에덴 선배가 충분히 휴식할 때까지만 지휘팀에서 편의를 봐준다면, 기록팀은 물론이고 프랭크도 업무를 조금 더 상세하게 살필 수 있을 것이다. 프랭크는 지휘팀에 전달할 모든 서류를 한 손에 그러쥔 채로 지휘팀 사무실로 들어섰다. 사무실 안에는 지휘팀 팀장인 맥심 푸가초프와 심문팀 팀장인 아담 포드가 함께 있었다.

"프랭크 씨? 이 시간에 여긴 무슨 일이죠?"

"기록팀 대리로서, 기록팀에서 지휘팀으로 인계하는 오늘치 결재 서류를 전달하기 위해 왔어."

맥심은 기록팀의 서류를 가져온 프랭크를 보고 놀라지 않았다. 다름 아닌 지휘팀 팀장은 에덴 선배가 쓰러졌다는 사실을 모를 수 없으니까.

"기록팀 대리라……. 쓰러진 에덴 팀장님을 대신해서 대타를 맡은 건가요?"

"응. 에덴 선배의 과로 몸살이라고 해서. 팀장이 일어난 이후에 업무가 밀려있으면 또 과로하게 될 테니 부담을 덜어주자고 생각했지."

프랭크의 간단한 사정 설명을 듣고 감탄한 사람은 아담이었다. 아담은 칭찬하듯 두어 번 손뼉을 치면서 말을 이었다.

"이야, 팀장 일이 만만치는 않았을 텐데 이걸 하루 만에 정리해왔다고? 대단한데. 프랭크 너는 팀장 일을 인수인계받은 적도 없지 않나?"

"그건 그렇지만. 다른 부서분들도 꽤 많이 도와줘서…… 나름 수월했어."

이 회사 내에서 에덴 선배에게 척을 진 사람은 없으니까. 수많은 사람이 스스로 손을 내어주어 에덴의 부담을 덜어줬으리란 가정이 맥심의 머리에서도 스친 것인지, 어째 그의 표정에는 거의 티가 나지 않는 미소가 걸린다.

"수고했네요. 오늘치 전달 서류는 이게 전부인가요?"

"전부야. 하지만 전달할 사안은 남았지."

"뭐죠?"

프랭크는 이곳에 방문한 가장 중요한 사실을 읊기 위해 한 차례 호흡을 가다듬고 단호하게 말한다.

"에덴 선배가 병상에서 일어날 때까지, 기록팀에게 할당되는 업무를 조금 줄여줘."

당돌한 제안에 맥심의 미간이 미약하게 찌푸려진다. 팀원 하나의 일을 분산시켜달라는 것도 아니고, 팀 전체에 할당되는 일을 줄여달라니. 그 말의 무게를 조금 더 생생히 이해하는 사람은 프랭크가 아니라 아담과 맥심이다. 회사는 하나의 유기체다. 더더욱 하나의 목적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연대 조직이라면, 하나의 팀이 부담하고 있는 하중은 절대 가볍지 않다. 팀 하나의 업무 편중을 줄여달라는 말은 그 팀의 하중을 다른 팀에게 할당해줬으면 좋겠다는 뜻. 프랭크도 자신의 제안이 영 가볍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기에 협상 수를 하나 더 둔다.

"에덴 선배가 일어나기 전까지,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 할 테니까. 물론 내 업무도 게을리하지 않을 거야."

"프랭크 씨, 이미 알겠지만 당신은 팀원이고 에덴 씨는 팀장이에요. 심지어 두 사람은 부서도 다르고요. 에덴 팀장의 일을 프랭크 씨가 완전히 부담할 수는 없어요. 이 사실은 프랭크 씨도 아실 텐데?"

"알아."

"그런데도."

"그런데도, 나는 오늘 백업팀의 업무를 분산해서 해결했고, 기록팀의 밀린 서류를 분류 정리해서 업무의 물꼬를 텄어. 분석팀에서는 괴물 특성 샘플 경과 관찰보고서를 작성했고, 공식 훈련 경과보고서도 완료했지. 각 팀에 인계해야 할 서류 중 가장 중요하고 급한 것들을 전달하는 동시에."

프랭크가 가져온 서류가 업무의 전부라고 생각한 맥심은 못내 놀랐다. 하루 만에 그 일을 전부 해냈다고? 후임 팀장도 아니고, 타 부서 팀원이? 기록팀 팀장의 업무는 쉽사리 분산될 하중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아담 또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 침묵을 지키던 프랭크는 다시 입을 연다.

"물론 내가 혼자 하지는 않았지. 나 혼자 모든 업무를 처리하려 했다면 일의 절반도 끝내지 못했을 걸."

의무팀에서는 에덴 선배의 곁을 지키는 대신 업무 가중을 분산하라고 조언해줬고, 백업팀에서는 내가 손댈 수 있는 업무를 가르쳐줬으며, 기록팀의 팀원들은 다짜고짜 나타난 타 부서 선배의 지시를 신속하게 따라줬어. 분석팀 팀장은 특성 샘플 보고서를 도맡았고, 하다못해 일개 팀원에 불과한 노아와 아처는 자신의 업무가 아닌 훈련 보고서를 작성해주겠다고 나섰지.

"회사 내에 수많은 사람이 날 도와주었기 때문에 해낸 거야. 선배의…… 에덴 팀장의 공석도 그런 방식으로 채워나가면 되지 않겠어?"

그게 동료이자, 한 팀이라는 거잖아.

결연하게 단언하는 프랭크의 답변에, 맥심은 미미하게 품고 있던 언짢음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회사 전체의 목적을 통합하고 지휘하는 맥심이, 한 팀의 중요성을. 누군가를 돕는다는 감정을. 불편함을 감수하는 전우애를. 그리하여 결국 하나의 목적으로 향하는 공동체 의식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드물게도 맥심은 말을 잃었고, 침묵을 깬 사람은 아담이었다.

"이야……. 맥심,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안 들어줄 수도 없지 않겠어? 프랭크, 너 많이 컸다. 이제 슬슬 팀장 해도 되겠어."

아담은 돌려 말하는 것 없이 프랭크의 의견에 동의한다. 기어이 맥심은 프랭크의 제안을 모질게 거절하지 못한 채 희미하게 웃는다. 그를 잘 모르는 누군가가 본다면 냉소라 착각할 정도의 희박한 미소를 보인다.

"말이 아주 청산유수로군요. 한 팀을 운운하는 팀원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지휘팀이라는 부서명이 울겠어요."

"그렇다면……."

"지휘팀 팀장으로서, 허가합니다. 기록팀 팀장의 공석은 프랭크 씨 주도하에 각 부서에서 분산해서 채우죠."

"고마워!"

프랭크는 답지 않게 깍듯이 감사를 표한다. 다른 팀이 조금 더 업무를 부담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허가한 이유는, 맥심이 온전히 냉소적이기만 한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 자리의 모두가 알았다.

"안 그래도 바쁜 시기라서 팀장 하나의 빈자리가 커요. 하지만 오늘처럼만 한다면 업무 공백 없이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프랭크 씨, 오늘부터 아주 바빠질 거예요. 지치지 않을 자신 있나요?"

"그럼. 에덴 선배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어렵지 않아."

"캬~ 역시 사랑의 힘이란."

굳이 사족을 덧붙이는 아담을 슬그머니 흘기기도 전에, 덧붙인 사족을 미워할 수도 없는 말이 흘러나온다.

"우리는 한 팀이니까 서로 도와야 한다는 말에 좀 감동했어. 다름 아닌 프랭크가! 그 오만한 프랭크가 한 팀의 중요성을 강조할 줄이야. 너, 우리를 동료라고 생각하고는 있었구나?"

"당연하지. 동료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진작 때려치웠어."

"아하하! 그건 맞는 말이네. 혹시라도 팀장 권한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심문팀으로 와라.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전적으로 도와줄게."

"정말? 고마워."

"고맙긴 뭘. 네가 에덴을 그렇게 아껴주니까 나야말로 고맙지."

프랭크는 아담의 시선 아래서 자신이 모르는 에덴의 과거가 지나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프랭크가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에, 맥심은 서류를 내려두고는 간략하게 고한다.

"오늘 고생했어요. 내일도 열심히 움직여야 하니까 이만 들어가 봐요. 에덴을 돕겠다는 당신이 쓰러지면 면목이 없을 테니까."

 

 

종일 회사를 돌아보면서 느낀 사실이 하나 있다. 에덴은 정말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 수많은 사람이 에덴을 도왔다. 설령 자신이 쓰러졌어도 같은 일이 일어났을까? 장담할 수 없었다. 모든 일의 시작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분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프랭크는 기록팀 팀원들에게 당당하게 읊었던 말의 위력을 새삼스레 실감한다. 모든 일을 혼자 할 수는 없어. 하지만 도움을 청하는 일은 어렵지 않지. 선배를 위해서라면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일 수도 있어요. 도움을 청하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더라고요.

과로에 지친 에덴은 프랭크가 전하고픈 말을 듣지 못할 테지만, 그럼에도 프랭크는 에덴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선배의 눈을 바라보고 오늘 정말 고생했다는 말을 듣는다면 최고겠으나 그런 건 선배가 깨어난 이후로 미뤄도 되니까. 잠든 선배에게 당신이 돌아올 길은 제가 잘 닦아놓을 테니까 편히 쉬라고 속삭이고 싶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동료들을 조금 더 믿어도 된다고. 이곳에는 당신을 무리시키고 싶은 사람이 없다고. 선배는 선배 그 자체로 사랑받고 있다고 말해주기 위해서 프랭크는 발걸음을 서둘러 의무반으로 향했다. 프랭크는 의무반에 도착하여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젖히고 침상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발견한다.

침상에 누워있던 에덴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사실과 그 주변에 흩뿌려진 핏자국들을.

 

 

에덴 선배가 사라졌다. 그것도 핏자국과 함께.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다는 게 바로 이런 기분인가 싶었다. 다급하게 의무반을 둘러봤으나 침대 근처에 흩뿌려진 피를 제외하고는 세르게이 팀장도, 랑게누아도 보이지 않았다. 대체 무슨 상황인데? 무슨 일이 벌어진 건데? 몰아치는 혼란 속에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던 순간, 막 문을 열고 들어오던 세르게이 팀장하고 마주친다.

"팀장!!"

"어, 프랭크냐? 여긴 어쩐 일이야?"

"어쩐 일?! 그게 지금 할 소리야? 에덴 선배 어딨어?!"

"꼬마 도련님? 그야 당연히 침대 위에……."

시선을 의무반 쪽으로 옮긴 세르게이 팀장의 표정이 확연하게 굳는다. 그 모습을 보고 확신한다. 아, 이 인간 상황 파악을 전혀 못 했어!

"뭐야, 이거 왜 이래? 꼬마 도련님 어디 갔어?"

"그건 내가 할 말이라고!"

의무반 안쪽으로 들어서서 핏자국을 만져본 세르게이는 인상을 찌푸린다.

"조금 말라가는데. 랑게누아는 어디 갔어?"

"랑게누아? 내가 왔을 때는 없었는데?"

"뭐? 그럴 리가. 내가 분명 랑게누아한테 자리 좀 지켜달라고……."

말을 이어가던 세르게이가 문득 무언가 깨달은 듯 핏자국을 내려다본다. 연이어서 비어버린 침상, 덜렁거리는 링거 바늘, 텅 빈 의무반을 둘러보던 세르게이는 침음을 흘린다.

"……이거 일 났군."

"뭐? 뭔데?"

"프랭크, 하나만 묻자. 방금 울렸던 경보, 너도 들었냐?"

"경보? 그게 무슨 소리야?"

"회사에 문제 생겼을 때 울리는 위험경보 있잖아. 나는 그걸 듣고 의무반 바깥으로 향한 건데, 너도 들었냐고 묻잖아."

위험경보라니. 프랭크는 당당하게 고개를 젓는다. 회사 내 위험 상황을 알리는 경보는 무조건 귀청이 떨어질 기세로 강하게 울리고는 했다. 그런 게 울렸다면 아무리 프랭크가 일에 정신이 팔렸더라도 듣지 못했을 리가 없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오늘 내내 경보는 울리지도 않았다고."

"하아……. 진짜냐?"

세르게이의 표정이 확연하게 굳어진다. 왜 갑자기 경보 이야기를 꺼내는지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 프랭크가 더 추궁하려는 순간, 세르게이가 입을 연다.

"아무래도 유인당한 모양인데."

"유인?"

"30분쯤 전에 의무반에 경보가 울렸어. 나하고 랑게누아 둘 다 들었기 때문에 술에 취해서 헛걸 들었다는 말은 하지 말고. 나는 본부에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해서 랑게누아를 두고 지휘팀으로 올라갔는데……. 지휘팀에 가보니까 지금 너하고 똑같은 반응을 보이잖아. 경보 같은 건 울린 적 없다고."

이어지는 설명을 듣고서야 프랭크의 뇌리에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이 스친다.

"……환청? 환청 이능력자가 왔다 갔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그런 것 같아. 그게 아니라면 나랑 랑게누아가 둘 다 착각했을 리가 없지. 지금 여기 랑게누아가 없는 걸 보니까 비슷한 상황을 겪고 의무반 바깥으로 향했거나, 그게 아니라면……."

말을 이어가던 세르게이는 1분 1초를 낭비할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드물게도 진지한 낯으로 말한다.

"아무튼,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얼른 지휘팀 팀장한테 보고해! 환청 능력자가 왔다 간 것 같다는 이야기 빼먹지 말아라?!"

 

 

사라진 에덴 선배도, 의무실에 뿌려진 핏자국도 단순 해프닝으로 끝났다면 좋았겠지만. 회사 전체를 뒤져봐도 에덴 선배의 행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정황상 세르게이 팀장이 환청에 홀려 자리를 비운 사이에 누군가가 에덴 선배를 빼돌렸을 가능성이 대두되는 사이, 회사 안 구석진 복도에서 랑게누아가 기절한 채로 발견된다. 정신을 되찾은 랑게누아가 ‘경보를 듣고 지휘팀으로 향하던 순간에 괴한의 습격을 받고 정신을 잃었다’라고 증언하자 그 길로 회사 전체의 팀장이 지휘팀으로 소집된다.

팀장들이 일을 팽개치고 지휘팀으로 집합하는 사이, 분석팀 출신의 사이코메트리 아룬스가 의무실에 들러 손으로 읽어낸 정보를 지휘팀으로 전송한다. 에덴 선배는 가면을 쓴 괴한 두 명에게 납치당했으며, 저항이 없는 것을 보았을 때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끌려간 것 같다는 정보는 순식간에 회사 전체를 뒤집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휘팀에 집결한 팀장들을 보면서 맥심이 침착하게 말문을 연다.

"다들 들으셨겠지만, 의무반에서 요양하던 에덴 팀장이 사라졌습니다. 분석팀의 사이코메트리가 확언해준 바에 따르면 납치사건임이 확실합니다."

당연하게도 팀장들의 얼굴에 긴장감과 적대감이 서린다. 본부에 침입해서 팀장을 데려갈 정도라면 보통내기가 아닌 것은 물론이고 의무반 인원 전체를 홀려서 자리를 비우게 만든 행동은 다분히 계획적이고 치밀하다. 심각한 낯으로 팔짱을 낀 톰이 침음을 흘린다.

"문제로구나……. 안 그래도 팀장 하나가 비어서 업무 공백이 생긴 틈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고 봐야 할지."

"아마 그럴걸. 나하고 랑게누아가 둘 다 환청에 걸렸으니까 대놓고 노린 것 같은데."

감각 이상을 일으키는 이능력자는 상대하기 까다롭다. 에덴을 납치해간 무리 중 이능력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수색대를 편성해도 같은 능력에 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 하지만 위험요소만을 바라본 채 발만 동동 구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에덴은 현재 앓고 있다. 절대적 요양이 필요한 상태에서 무리하는 바람에 병마가 더 심해지기라도 한다면 안 그래도 병약한 에덴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납치사건인 만큼 최대한 빠르게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모든 팀장님이 동의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리에 모인 팀장들은 무언으로 수긍한다. 에덴은 그들의 소중한 동료, 납치당한 상황이 명백한 상황에서 업무 따위가 중요할 리 없다. 어떤 놈들인지는 몰라도 에덴을 훔쳐 간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주겠다는 분노만이 가득할 뿐.

"현 사건을 위기대응 2단계로 설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각 팀에서는 에덴 팀장을 찾기 위한 수색대를 선발해주세요. 최대한 무력에 집중된 인원으로 부탁드립니다."

에덴 팀장을 납치해간다는 것이 우리에게 대체 어떤 의미인지, 톡톡히 깨닫게 해줍시다.

 

 

에덴 수색대가 편성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든 팀장이 일의 심각성을 인지했고, 일개 팀원들도 사태가 촉박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안다. 팀장이 납치당했다는 것은 곧 회사의 팔다리 하나가 잘려나갔다는 뜻. 장기전으로 들어갈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회사 측이다. 각 팀에서 가장 무력이 강한 이들이 수색대로 선발되고, 선발되지 못한 인원들은 자신들에게 부담된 업무를 제자리에서 해결해 나간다.

분석팀의 사이코메트리와 백업팀의 기계 조종사가 협업하여 회사 근처의 길거리, CCTV, 교통정보를 샅샅이 분석해낸 결과, 에덴을 납치해간 놈들의 본거지인 폐공장을 찾아내는 데 한나절이 걸리지 않았다. 수색과 추적이 이어지는 동안, 에덴을 납치해간 놈들을 향해 이를 박박 갈던 프랭크가 폐공장을 발견하자마자 다짜고짜 쳐들어갈 기세가 되어버린 것을 톰 팀장이 막아낸다.

"팀장! 확실하다며? 저기 선배가 있는 게 확실하다며? 그럼 당장 돌격해야지 왜 꾸물거리는 건데?!"

"프랭크, 초조한 것은 알겠다만 일단 좀 진정하려무나. 에덴이 납치당한 상태에서 정면으로 돌파해봤자 도움 될 것은 하나도 없어. 저쪽에서 에덴을 인질로 잡는다면 어쩔 테냐. 순순히 무기를 내려두고 꽁무니 빠지게 도망가는 꼴을 두고 보기라도 할 생각이냐."

"그럼 어떡하라고! 여기서 계속 지켜보기라도 하겠다는 소리야?"

"설마. 의무반의 시선을 돌렸듯이, 우리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으로 가보자꾸나."

폐공장 내부 인원이 얼마나 밀집해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돌입하는 것은 자살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프랭크는 초조함을 감출 수 없었다. 선배가 납치당한 지 무려 한나절. 프랭크의 인내심이 극에 달했다는 것을 눈치챈 톰은 재빠르게 전략을 브리핑한다.

자, 저놈들이 에덴을 양동작전으로 빼간 만큼 이쪽도 똑같은 작전으로 대응하자꾸나. 나와 소린, 미네르바, 에옐린처럼 눈에 띄는 이능을 가진 사람들은 앞문과 뒷문을 맡을게다. 소란을 일으켜서 폐공장 내부의 일당들이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거란다. 우리가 시선을 끄는 동안 프랭크를 비롯한 나머지 인원들은 폐공장을 집중적으로 수색해주렴. 상대측에 이능력자가 있으니, 무효화가 가능한 세드릭은 공장 전체를 범위 삼아서 능력을 사용할 것. 즉, 공장에 들어가는 순간 능력은 무효화된다. 그러니까 프랭크를 비롯한 돌격대들은 무기를 제대로 점검하도록 하고. 이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대가 당황하는 틈을 타서 제압할 것. 이해 안 가는 사람은 없을 거라 믿겠다. 자, 겁도 없이 에덴을 빼간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자꾸나.

 

 

프랭크, 나 또 너한테 폐가 되고 마는 걸까. 대체 어쩌다가 이런 상황이 된 거지.

"아, 형님. 고작해야 이 비실비실한 놈 하나로 돈 너끈히 얻을 수 있는 거 맞습니까?"

괴한 중 하나가 바닥에 쓰러진 에덴의 머리를 툭툭 두드린다. 두손 두발이 묶인 에덴은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앓는 소리를 낸다. 식지 않는 열 때문에 어지러운 와중에도 무언가 잘못되었음은 알 수 있다. 난 분명 의무반에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누구지. 나는 왜 묶여있고. 여긴 어디야? 어떻게든 의식을 붙잡으려 노력하는 에덴의 귀에 특정 단어가 꽂힌다.

"당연하지. 그놈은 메이소넷 가문이야. 아주 제대로 돈이 나올 구멍이라 이거지."

아, 납치구나. 에덴은 어렵지 않게 상황을 파악한다. 병약한 자신을 인질 삼아 가문에게 돈을 뜯어내겠다는 심산임을 깨닫고 헛웃음이 입가에 서린다. 바보들. 내가 가문에서 무슨 취급을 받는지 알지도 못하고.

"메이소넷이라면 돈은 충분히 나오겠네요. 이왕이면 손가락 하나쯤 잘라서 보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럼 협박이 제대로 먹힐 텐데."

"일단 기다려봐. 저쪽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본 다음에……."

납치범들이 팔자 좋게 이야기를 나누던 찰나, 공장 입구 측에서 쾅 하는 소리가 울린다. 무언가 무너지는 것 같기도 하고 폭발하는 것 같기도 한 소리에 에덴의 곁을 지키던 납치범들은 수런거린다.

"뭐야? 이게 무슨 소리야?"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 연이어서 다수의 비명이 울리는 것은 물론이고 아까보다 훨씬 거대한 소란이 쿵쿵거리며 공장 전체를 울린다. 지진 아니냐는 말이 나오던 순간, 방 안으로 웬 따까리 하나가 뛰어 들어오면서 다급하게 상황을 알린다.

"크, 큰일 났어요!"

"큰일 난 건 우리도 알아! 무슨 일인데?!"

"그, 뭔지 모르겠는 놈들이…! 갑자기 건물을 때려 부술 기세로 공격을 퍼붓고 있어요!"

"뭐야, 어떤 놈들이길래 그래? 혹시 짭새 아니야?"

"아니에요! 경찰차도 사이렌도 없는 걸 보니까 경찰은 아닌 모양이에요. 뭐가 목적인지도 얘기해주지 않고 그냥 애들 후드려 패고 있……!"

보고가 이어지던 도중, 방문이 쾅 열리면서 따까리를 방 한가운데로 거하게 날려버린다. 당혹한 사람들이 서로 두리번거리는 사이에 쇠파이프를 장착한 프랭크가 방안 쪽으로 성큼성큼 들어온다.

"아오……. 왜 이렇게 구석에 처박혀 있는 거야. 찾는 데 한참 걸렸잖아."

"네, 네놈은 뭐냐!!"

와글와글 몰려있는 괴한 무리 따위는 프랭크의 눈에 들지 않는다. 그의 눈은 오직 방 한구석에 손발이 묶인 채 헐떡거리는 에덴만을 비춘다. 한창 의무반에 누워서 쉬고 있어야 할 선배를 이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에 누워서 헐떡이게 만든 괴한들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프랭크의 이성에 불을 지핀다.

"내가 누구냐고 물었냐?"

그 순간, 프랭크의 눈에는 뵈는 것이 없었다. 쇠파이프를 일그러뜨릴 기세로 강하게 틀어쥔 프랭크는 냅다 달려들며 외친다.

"네놈들이 납치한 선배의 남친 되는 사람이다 어쩔래!"

능력 사용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프랭크가 무력으로 밀릴 일은 없었으므로, 그 후 방 바깥으로는 쇠파이프가 인간을 후드려 패는 소리와 처절한 비명만이 흘러나왔다.

 

 

폐공장에서 개미 떼처럼 나오던 인원들이 전부 정리될 때쯤, 프랭크는 자신의 겉옷으로 에덴을 돌돌 말아 소중하게 안고 복귀한다. 생채기 하나 없이 시선을 끄는 데 성공한 톰 팀장은 프랭크의 품에 안겨 잠든 에덴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어휴, 우리 기록팀 팀장이 이렇게 인기가 많아서 어떡한다니."

"볼 일 다 끝났어요. 얼른 돌아갑시다."

"다 해결된 거 맞는 거니?"

"그럼요. 선배 납치했던 놈들 다시 일어나지도 못하게 후드려 줬으니까 다시는 이런 짓 할 생각 못 할걸요."

"어째 팀장을 노린 놈들치고는……."

"허접하죠. 이거 회사 보안 문제 아닙니까? 의무반에서는 외부 인력의 이능력 사용 못 하게 해야 한다니까."

에덴을 납치해간 놈들이 아무리 계획적이고 치밀해봤자 열이 제대로 받은 회사 전체의 총공격을 버텨낼 리는 만무했다. 생채기 하나 없이 대응하는 데 성공한 소수 정예 돌격대는 진짜 폐허가 된 공장을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다. 복귀하는 내내, 에덴은 열기를 식히려는 것처럼 프랭크의 품을 파고들었고 프랭크는 그런 에덴의 머리를 조심히 쓸어주면서 보듬어 주었다. 차게 식은 손이 조금이라도 에덴의 열기를 빼앗아가기를 바라면서.

 

 

납치사건 같은 대형 사고가 터졌음에도 회사는 끝없이 움직인다. 단단한 조직일수록 외부 요인에 쉽게 영향을 받지 않으니. 납치 소동이 있었던 날로부터 이틀이 더 지나서야 의무실 침대 위에서 눈을 뜬 에덴은 전에 없이 개운한 기분으로 기지개를 켠다.

"으으……."

"아, 깼구먼. 꼬마 도련님."

"아, 세르게이 팀장님……."

"몸은 좀 어떠냐? 랑게누아가 힘 좀 써주던데."

에덴은 열에 홀려 제정신이 아닌 와중에도 자신을 세심하게 보살펴주던 랑게누아의 손길을 기억해낸다. 위험해졌으면 어쩌나 걱정했다던 팀장님들의 말투도, 우르르 몰려와 얼른 쾌차하라고 말해주던 기록팀 팀원들의 걱정 어린 시선도, 선배는 좀 쉬어야 하니까 저리 가라고 방어하던 프랭크의 얼굴도 생생히 떠오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에덴의 얼굴에는 어느덧 미소가 걸린다.

"어이구, 우리 꼬마 도련님 정말 다 나았나 보네. 이렇게 웃을 줄도 알고."

"죄송해요. 제가 폐를 좀 끼쳤죠."

"폐는 무슨. 그렇게 생각하지 마.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 알면 이 회사에서 복장 뒤집어질 사람이 한 트럭은 된다."

손을 휘적거리면서 다시 술병을 잡아든 세르게이는 회사 내선으로 연락을 한 번 돌리면서 고개를 까딱인다.

"얼마 안 있으면 프랭크가 올 테니까, 잘 자고 일어났다고 한마디 해줘라. 네가 미안하다고 말하면 더 미안해할 놈이라는 거 알잖아."

"그럼요. 그렇게 할게요."

"그놈 진짜 노력 많이 했다. 널 위해서 업무도 손수 분담하고, 납치당한 널 구하러 가겠다고 가장 먼저 튀어 나가고."

세르게이는 에덴이 앓는 동안 있었던 일을 가볍게 전달한다. 에덴은 흐릿한 의식 속에서 일어났던 상황이 단순한 꿈결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사이, 프랭크가 총알과 같은 기세로 의무반의 문을 열어젖히며 등장한다.

"선배애!!"

프랭크는 에덴을 냅다 품에 안는다. 에덴은 그 익숙한 온기를 마주 안아주면서 생긋 웃음 짓는다.

"미안……. 프랭크, 걱정했어?"

"미안해할 필요 전혀 없어요! 무사히 깨어나서 다행이에요.“

"나 때문에 고생했지?"

"아이, 사과하지 말라니까요. 선배. 전 정말 괜찮아요."

"세르게이 팀장님한테 다 들었어. 네가 날 위해서 일도 분담해주고 구하러 와주기도 했다고. 정말, 나는 너한테 도움만 받네."

미안해하는 기색이 가득한 에덴을 향해 프랭크는 고개를 휙휙 저어 보인다.

"아뇨. 저는 선배한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기뻐요. 선배가 잠깐 주저앉았을 때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 등을 봐주는 것, 그리고 지켜주는 것. 전부 다 제 기쁨이에요."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말아요. 정녕 미안하다면…….

"……뽀, 뽀뽀 한 번 해주시든가요."

답지 않게 쑥스러움을 타는 행동에 에덴은 기꺼이 프랭크의 뺨에 입을 맞춰준다. 그것 하나만으로 세상을 얻었다는 것처럼 웃는 프랭크는 에덴의 손을 붙잡고 몸을 일으킨다.

"다른 사람에게도 인사하러 가요. 회사의 수많은 사람이 전부, 에덴 선배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무사히 깨어난 걸 축하해요, 선배. 잘 돌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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