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마감 글 커미션' 완성본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빅터 HL 드림

곤듀님 커미션, 23.08.16 작업물

빅터는 지난 삶 동안 생명은 창조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이고도 도전적인 난제보다 난해한 물음은 없을 거라 판단했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여인으로부터 입안이 바싹 타오르는 질문을 듣기 전까지는.

"키스해 본 적 있어요?"

빅터는 가문도 외모도 능력도 타고난 탓에 사교계에서 무릇 나쁘지 않은 반려 후보로서 거론되고는 했다. 그가 시체에 미쳤다는 소문을 견딘 채 생의 반절쯤은 내어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여인들이 없지 않았던지라, 상호 간 호감에 따라 으레 따라오는 단계적인 신체 접촉을 여러 번 경험해보았다. 하지만 현재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이전 관계의 편력을 읊어주는 건 적절치 못한 처사다. 빅터는 사랑의 세레나데보다 포탄의 분진이, 애정 담긴 포옹보다 경직된 시체가 익숙한 사람이었음에도 제게 내어진 질문에 섣불리 답을 했다가는 여인의 심경을 거스르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어떻게 해야 눈에 보이는 거짓을 읊지 않으면서도 상대의 심정을 짓밟지 않을 것인지 고민하다 보면 절로 침묵이 길어진다. 잠시간의 적막만으로도 답을 얻어낸 여인은 설핏 웃으면서 답한다.

"그냥 한 번 물어본 건데 뭘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요."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어."

"빅터가 연애 경험이 다분한 건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거든요. 아, 참. 혹시 오해할까 봐 말하는데 나는 키스해본 적 없어요. 근데 궁금하긴 해요."

키스하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들었거든요. 뭐, 종소리가 울린다느니 사탕 맛이 난다느니 하는 거창한 대서사시의 일부 같은 비유 있잖아요. 아, 나는 오직 이 순간만을 위하여 평생 산소를 탐하였노라 같은 대사가 어울릴 법한 감상들.

"실제로 그래요? 저는 겪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빅터는 다시금 말을 잃는다. 다른 사람과의 키스가 어땠느냐고 묻는 그의 여인은 악의 하나 없는 표정으로 눈에 총기를 빛낸다. 단순 그를 놀리고자 하는 의도였더라면 장난을 거두어달라는 말로 얼버무렸을 텐데, 그녀는 진심으로 그의 감상이 궁금해하고 있었다. 빅터는 그녀 앞에서 예전에 취한 여인과의 입맞춤이 어떠하였는지 고하고 싶지 않았다. 빅터는 눈앞의 그녀를 제외한 여인의 손등에 입을 맞추고, 작고 여린 체구를 품 안에 가두고, 낯선 입술을 탐하며 호흡을 맞물리는 동안 단 한 번도 설렘 비슷한 감정의 격랑을 겪어본 적이 없었으며 오직 정해진 수순을 밟고 있을 뿐이라는 의무 비슷한 책임만을 느꼈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여성과 감정을 나눈다는 건 오직 책무만으로 이루어진 과정이라 여겼다. 애틋한 감정을 토양으로 삼은 맞물림은 분명 이제껏 겪어온 경험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리라. 이를 직감적으로 가늠한 순간 빅터는 다분히 충동적으로 입을 연다.

"직접 경험해보겠어?"

빅터는 아슬아슬하게 모서리에 걸쳐진 귀중품을 어루만지는 손길로 그녀의 머리칼을 귀 옆으로 쓸어내리고 뺨을 감싼다. 일종의 허가 비슷한 의례와도 같이 빅터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여인과 눈을 맞춘다. 이번에 말을 잃은 쪽은 그녀였으며, 약간의 적막 이후 맑은 총기를 빛내는 눈동자가 눈꺼풀 안으로 사라진다. 묵언의 허락을 받아낸 빅터는 조심히 고개를 틀어 그녀와 입을 맞물린다. 촉촉하고 말랑한 피부가 맞물리자마자 빅터는 귓가에서 심맥이 고동치는 감각을 느낀다. 심장으로부터 온몸을 휘도는 혈류가 정상 체온보다 더한 열기를 퍼 나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신경세포 하나하나가 곤두선다. 널뛰는 심장은 맞물린 호흡을 조금 더 가쁘게 만들었음에도 빅터는 멈추지 않는다. 부드러운 살결을 밀어젖혀서 조금 더 촉촉한 점막을 입안 깊숙이 탐하고, 숨결 하나하나의 갈피를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움직인다. 그 모든 순간에 혹여 그녀의 뺨에 닿은 제 손가락에서 제멋대로 날뛰는 고동이 생생히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고작해야 입술이 맞닿고 호흡을 나누었을 뿐인데,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지는 듯하다. 몰아치는 감정을 한껏 쏟아내지도 못하고 그저 살결을 조금 얽다가 떨어진 빅터의 낯은 여태 보지 못한 색채로 얼룩져있었다.

"……어때?"

익히 들어온 바와 같이, 비슷한가. 그녀는 빅터의 얼굴에 미처 갈무리하지 못한 긴장이 서려 있음을 인지한다. 빅터에게 여성 편력이 여럿 존재할 것이라 확신한 그녀는 마치 숫동정처럼 어쩔 줄 모르는 그를 보며 생긋 웃음 짓는다.

"빅터, 왜 이렇게 긴장한 표정이에요? 저보다 빅터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요?"

빅터는 당신과 입을 맞추는 행위에 긴장을 더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라는 말을 미처 건네지 못한다. 수많은 경험이 우습게도 여인과 입을 맞추며 지금처럼 떨어본 적이 없다. 이는 흡사 새로운 대지를 탐험하는 모험가의 경이와도 같아서 여태껏 맛보지 못한 차원의 감각이라는 것을 감히 당신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이전에는 그저 상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너무 다급하지 않게, 또 너무 느긋하지 않게 움직이는 행위에만 집중했을 뿐. 그저 살결이 맞부딪히는 감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감상만 남았던 것과는 달리, 입을 맞추기 직전에도 직후에도 제멋대로 널뛰고만 있는 심장을 어찌 진정시켜야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전쟁통의 총탄 아래서도, 상관에게 자신의 신념을 설파하면서도, 하다못해 신선한 시체들 사이에서 잠을 청하는 날에도 이처럼 긴장하지 않았다. 빅터의 침묵이 길어지자, 그녀는 여전히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빅터의 목덜미에 손을 얹는다. 당혹한 빅터가 무어라 말을 얹기도 전에 그녀의 입술이 열린다.

"들어본 것들과 비슷한지 아닌지, 잠깐이라서 잘 모르겠어요. 한 번만 더 해보면 안 될까요?"

딱 한 번만 더 입 맞춰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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