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창작, 자캐 로그
소소님 커미션, 23.08.21 작업물
너무 조금 했나? 저녁밥으로는 양이 조금 적은 것 같은데. 빵이라도 좀 더 구워야 할까.
프라이팬 위에서 노릇노릇한 냄새를 풍기면서 익어가는 파스타는 2인분으로 나누기에는 애매하게 적었다. 애초 양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한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빵을 굽기 시작한다. 파스타와 빵, 나쁘지 않은 조합이자 언제나 성공하는 조합 아니던가. 예전에 파스타를 만들어주었을 때 환하게 밝아지던 연인의 모습을 떠올리고 이안은 손을 조금 더 서둘러서 놀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스타가 완성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띵 하고 올라오는 토스터를 보면서 타이밍을 잘 맞췄다고 자찬하며 저녁 테이블을 차린다. 파마산 치즈를 올린 토마토 파스타와 바질페스토를 올린 토스트가 차려진 식탁을 만족스럽게 바라본 이안은 입을 연다.
"저녁 다 차려졌어요! 어서 와서 먹어요."
자리에 앉아 기다린다. 그의 연인이 식탁으로 다가와서 오늘 저녁은 뭐냐고 묻는 순간을. 파스타가 차근차근 식어가는 동안, 이안은 포크를 들지 않고 기다린다. 꼬박 10분이 흐른 후에도 식탁 위에는 이안 혼자뿐이다. 이안은 아무 말 없이 포크를 들고 혼자만의 식사를 시작했으며 홀로 즐기는 만찬은 식사가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혼자 먹기에는 좀 과하게 차려진 식탁 위에 한 사람분의 식사만 비워진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이안은 푸드 커버를 이용해 파스타를 덮어둔다. 나중에 배고프면 먹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이안은 뒷정리를 시작한다. 식탁 위에 남겨진 1인분의 식사는 다음 날 이안이 저녁을 차릴 때까지 그대로 남아있었다.
…
"다녀왔어요."
이안은 긴 하루를 끝맺고 집안에 들어서면서 버릇처럼 인사를 입에 읊는다. 그의 연인이 어서 오라면서 맞아주는 순간을 기다렸으나 집안에는 인기척 하나 없는 적막만이 그득하다. 그는 집에 들어서서 모든 방의 문을 열어보고 이불 따위를 들춰보며 사람을 찾는다. 하지만 연인의 행적을 탐색하는 그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집안에는 사람이 생활하며 마땅히 남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이안은 집을 뒤집듯이 돌아본 후에야 곳곳에 켜둔 불을 끄고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선다. 따뜻한 물에 하루의 피로를 녹이기라도 할 것처럼 느긋하게 씻고 나온 이안은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닿아오는 감촉에 인상을 찌푸린다.
좀 춥네. 겨울 이불을 꺼내야 하나.
이안은 집안에서 운용하기 편한 옷을 갖춰 입고 아침에 정리한 형태 그대로 달라지지 않은 퀸사이즈 침대의 이불을 걷어낸다. 내일은 주말이니 느긋하게 이불빨래도 하고, 장도 좀 보고. 머릿속으로 계획을 하나하나 세우던 이안은 이불을 꺼내기 위해 옷장을 연다. 그가 옷장을 열자마자 안에서 희미한 담배 냄새가 밀려 나온다.
옷장에서 왜 이런 냄새가 나지?
의아함을 느낀 이안이 옷을 하나하나 뒤적이다가 낯선 향취의 출처를 잡아낸다. 딱 한 번 입고 그대로 옷걸이에 걸어 둔 검은 상복에서 흘러드는 향이다. 희미하게 매캐한 향의 정체가 담배 연기가 아니라 장례식장에서 피우는 향내라는 것을 깨달은 이안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옷장에서 상복을 꺼내 바닥에 내려두고 이불을 찾는다.
이불 빨래할 때 옷도 세탁해야겠네. 힘 좀 들 것 같은데 그냥 돈 주고 맡길까…….
그는 연인이 자주 몸을 눕히고는 했던 겨울 이불을 꺼내 펼친다. 보송보송해서 피부에 닿는 감촉이 좋다고 말했던가, 따뜻해서 누군가가 어루만져주는 것 같다고 말했던가. 이걸 펼쳐두면 벌써 겨울이 온 걸 실감한다면서 웃겠지. 이불을 갈아치울 때마다 너도 얼른 와서 누우라고 말하던 다정한 목소리가 생생하다. 연인 생각으로 입가에 웃음을 띤 이안은 침실에서 나가면서 바닥에 내팽개쳐진 상복을 대충 주워들어 의자 위에 걸쳐둔다. 이불 가지고 씨름했더니 피곤하다 못해 조금 출출한데 야식이라도 즐길까 생각해서 시작한 요리는 그날도 2인분으로 끝을 맺었다.
…
할인이나 특가 따위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피력하는 분위기 속에서 주말을 맞아 장을 나온 사람들의 부산함이 마트를 한가득 채운다. 홀로 나온 이안은 꿋꿋하게 카트를 밀면서 앞으로의 일주일을 버틸 식료품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연인과 자신의 기호에 따라 자주 취하는 메뉴와 그렇지 않은 메뉴를 분석하고 비교하여 필요한 식료품과 필요치 않은 물건을 분류한다. 할인하는 해산물을 볼 때는 그의 연인이 해산물 요리라면 환장을 하고 과식한 이후에야 등 좀 두드려달라고 말하던 모습이 떠오르고, 지난 일주일간 해산물을 이용해 요리한 적은 없었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혼자 먹기에는 좀 많은 양의 생새우를 담아내는 와중에도 이안의 손길에는 거침이 없다. 장을 본 다음에는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연인을 위해서 커피라도 하나 사가야 하나 고려한다. 그대로 장을 보고 돌아온 이안은 집안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에 다녀왔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조금 과한 양의 식료품이 냉장고를 차곡차곡 채우는 동안 다녀왔냐고 묻는 사람은 없었다.
적막하게 가라앉은 집안 분위기는 끊임없이 그를 고독으로 밀어내었으며 냉랭한 현실을 이용해 머리를 바싹 서게 했다. 세탁물에 연인의 옷가지가 섞이지 않게 된 지도 오래되었고, 현관에 놓인 연인의 신발은 각도가 틀어지지 않았다. 그가 말을 걸 때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고 애써 만든 식사를 즐겨주는 사람도 없으며 그는 밤이 될 때마다 차갑게 식은 이불 안으로 들어간다. 아침 햇살이 얼굴에 쏟아지는 순간에 곁에서 잠든 무언가를 품에 담는 날도 없으며, 살아 숨 쉬는 생명이란 오직 하나뿐이지만 그런 묵직한 공기 속에서도 그는 고독을 느끼지 않는다. 애초 현실을 흡수하지 않는데 무슨 타격을 받겠는가.
이안은 장례식장 한구석을 밤새워 지키는 동안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소식을 들은 순간은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장례식장까지 누구와 어떻게 도달했는지는 기억을 깔끔하게 도려내기라도 한 듯했다. 장례식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한 세세히 기억나지 않았으나 넋이 나가 울지도 못하는 그를 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혀를 차고는 했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더라. 이안은 핸드폰을 들어 비보를 받았던 날짜를 확인한 후에야 연인이 사라진 날이 언제인지 깨닫는다. 특별히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깔끔하게 사라진 기억은 누가 장난이라도 친 듯하다.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의 슬픔이나 비탄을 느끼면 실질적으로 기억력에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그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안은 책상 한편에 세워둔 액자 하나를 집는다.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살아있는 동안에는 닿을 수 없게 되어버린 연인을 바라본다. 여전히 이안은 울 수 없었다. 누군가의 빈 자리를 인지한다는 것은 때때로 강인한 의지가 필요하여, 빈자리를 버텨내는 것과는 별개의 인력이 필요하다. 이안은 아직 출발선에 서지도 못했다. 이제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으며 더 이상 2인분을 요리할 필요가 없고 모든 살림살이는 자신이 손대지 않는 이상 그대로며, 옷장 안에 개켜 있는 연인의 옷가지는 산 사람의 체취가 묻는 일 없이 계속 옷장 좀약 냄새가 배게 되리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다.
어쩌면 1년이 지나고, 또 몇 년이 지나서. 연인의 기일을 챙기는 날에도 이리 행동하게 될 것인가. 지금 느끼는 바로는 그저 연인의 사진을 챙기고 나가 데이트라도 하고 싶었다. 꽤 오래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하지 못했으니 함께 즐기자는 의미에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이안을 보면서 연인이 뭐라 말할 것인지조차도 머릿속에 잡히지 않았다. 그가 사랑하는 입은 여전히 저녁 식사 메뉴를 읊어야 하고, 다음 데이트 코스나 주말의 일과 따위를 운운하며 일상을 영위해야만 했다. 지금 닥치기에는 과히 빨랐던 끝맺음 따위 없어야만 했다.
"……오늘 저녁은 새우 구워 먹어요."
이안은 손에 들린 액자를 내려두고 곧 다가오는 저녁을 위해 앞치마를 둘러맨다. 번갈아 하던 요리가 이젠 제 몫이 되어 저녁마다 앞치마를 두르는 주제에 식탁 위에 두 사람 몫을 채우는 것을 그만두는 건 언제가 될지 까마득하다. 때를 가늠하지도 못할 정도로 어렴풋한 시기를 미리 앞서 고뇌할 만큼 단단하지 못했던 탓에, 이안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새우를 적당한 굽기로 요리하고 손수 껍질을 제거해서 연인 몫으로 내어진 접시 위에 올렸다. 아마 다음 날이 되도록 새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지만 아마 한동안, 이안은 사라져버린 연인을 위해 식사를 차리는 일을 그만두지 못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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