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리테일] 맥베스 HL 드림
KU님 커미션, 23.08.21 작업물
졸려. 일어나야 하는데. 오늘 무슨 요일이지? 그러니까…… 아, 휴일인가?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의식 속에서 생각을 굴리던 헤르미아는 슬그머니 눈을 뜬다. 햇살이 쨍쨍 비치는 걸 보니 아침이 밝은지 한참 된 것 같지만, 헤르미아의 시선을 붙잡은 건 햇볕이 아니다. 같은 침대에 누워있는 맥베스의 얼굴을 마주친 헤르미아는 속으로 감탄한다. 언제봐도 잘생겼어. 헤르미아는 맥베스의 품으로 파고들면서 햇살을 피한다. 맥베스는 작은 숨소리와 함께 슬그머니 눈을 떴다.
"……헤르미아."
"안녕, 맥베스. 잘 잤어?"
맥베스는 헤르미아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춰주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다. 그의 시선은 창가에서 내리쬐는 햇살 쪽으로 기울어졌다가 다시 돌아온다.
"안 일어나도 돼?"
"오늘 휴일이야. 좀 늦게 일어난다고 해서 문제 될 거 하나 없는 날."
"그렇구나."
품 안의 연인을 놓아줄 이유를 찾지 못한 맥베스는 팔을 들어 헤르미아를 더 깊게 끌어안는다. 헤르미아는 단단한 팔에 편안히 기대면서 다시 눈을 감는다. 휴일의 시작은 좀 느긋해도 상관없겠지, 라는 생각에 힘입어 두 사람은 쨍쨍한 햇살을 뒤로하고 다시금 잠에 빠진다.
달콤한 늦잠에 빠진 두 사람은 그로부터 한 시간 정도가 더 지나서야 침대에서 일어난다. 시계는 늦은 오전을 가리키고 있다. 애초 일찍 일어나고 열심히 일하는 게 버릇이 된 사업가는 휴일이라 해도 오후까지 늑장을 부리는 일이 드물었다. 더욱이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보낼 수 있는 행복한 휴일을 잠으로만 때우기는 아깝지 않겠는가. 헤르미아는 침대에서 일어나서 개운하게 기지개를 켠다. 하루의 시작이 좋다.
"맥베스, 더 안 자도 되겠어?"
"응. 기껏 생긴 휴일인데 잠으로 때우기는 아까우니까."
"그건 그래. 요새는 바쁘답시고 주말에도 내리 일했으니까……."
오늘 하루는 온전히 맥베스랑 보내야지. 헤르미아는 속으로 결심하듯 다짐한다. 맥베스는 주먹을 불끈 쥐는 연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오늘은 정말 드물게 생긴 휴일이라는 걸 떠올려내고 입을 연다.
"헤르미아, 밖에 나가서 데이트라도 할까?"
"오, 우리 통했네. 나도 그러자고 할 생각이었거든."
헤르미아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승낙을 표한다. 헤르미아와 함께 온전히 보낼 수 있는 시간이 하루뿐이라는 건 좀 아쉽지만. 그만큼 밀도 있게 보내야지. 맥베스는 헤르미아가 나갈 준비를 하는 동안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연인과 보내는 완벽한 하루를 위해서 머리를 굴렸다.
…
"와, 오늘 날씨 진짜 좋다. 곧 여름이라서 그런가? 날씨도 적당히 따뜻하고."
헤르미아는 맥베스의 팔짱을 끼고 걸으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적당히 따뜻한 기온과 심하지 않은 인파. 느긋하게 거니는 행동을 하늘이 축복하는 듯한 날씨다. 맥베스는 바람에 휘날린 헤르미아의 머리칼을 손끝으로 정리해주면서 말한다.
"그러게. 바깥으로 나오기를 잘했네."
햇살 아래서 보니까 더 예쁘다. 속내를 굳이 입 밖으로 표현하지 않은 맥베스는 헤르미아를 가만히 바라본다. 고요한 시선에 익숙해진 헤르미아는 슬그머니 미소를 띤다.
"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
"그럼 그냥 좋아서 보는 거야?"
"응."
맥베스는 헤르미아가 왜 바라보느냐고 물을 때마다 그냥 좋아서, 라고 답하고는 했다. 널 보고 있으면 가슴 한편이 따뜻해지고, 기분도 포근해지고, 널 영원히 내 눈 안에 박제해두고 싶다는 심정을 굳이 표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헤르미아는 맥베스의 시선 안에 들어있는 다정과 행복을 충분히 인지하고 기뻐하고는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고맙다는 말로 답한 헤르미아는 맥베스의 팔을 부드럽게 잡아끌었다.
"우리 식사하러 가자! 내가 미리 봐둔 맛집이 있어."
…
사업가는 책상 위에서 고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기저기 발로 뛰는 것도 만만치 않게 중요하다고 했던가. 헤르미아는 거래처 상대와 함께 식사하기 좋은 레스토랑을 꿰고 있는 편이었고, 이는 대접받는 기분을 내기에는 탁월한 선택지가 된다는 뜻이었다.
"와, 진짜 맛있다."
"맛있지? 맥베스 마음에도 들 것 같아서 잘 기억해뒀어. 저번에 거래처 상대가 추천해준 집인데, 새로 생겼는데도 손님이 많았거든. 알고 보니까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주방장이 독립해서 연 가게라고 하더라고."
헤르미아는 늘 자신이 경험했던 좋은 것을 맥베스와 공유하고자 했다. 맥베스의 일상 하나하나를 전부 희극의 갈피로 삼겠다는 듯이. 맥베스는 헤르미아가 자신을 곁에 두겠다고 결정한 후에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지 않았다. 유명한 어둠의 길드의 범죄자 출신이라는 과거마저 떠안고 사랑하겠다는 강단과 결단을, 절대 꺾이지 않는 다정함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겠는가.
"맥베스, 무슨 생각해?"
"……네가 대단하다는 생각?"
"뭐? 갑자기? 식사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어?"
"꼭 식사뿐만이 아니라……."
맥베스는 눈을 빛내면서 말을 기다리는 연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 맑은 눈동자가 자신을 향할 때마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별 이유 없이도 행복하다는 감각을 이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냥, 다?"
상세히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대충 얼버무리는 듯한 대답이 되어버리고 말았으나 헤르미아는 그마저도 나쁘지 않다는 것처럼 생긋 웃는다.
"뭐야, 싱겁게."
식사가 마음에 든 거라면 여기, 후식도 먹어. 넉넉하게 시켰으니까. 연이어 나온 후식을 맛보면서 주변을 차근차근 둘러보다 맥베스에게 시선을 고정한 헤르미아는 부드럽게 미소지은 입을 열었다.
"맥베스, 같이 나오니까 좋다. 요즘에는 데이트가 너무 뜸했잖아."
"네가 바빴으니까 어쩔 수 없지. 일의 수요가 늘어나는 철이라며?"
"맞아. 여름이 오기 전에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게 많아서……. 그래도 주말은 맥베스를 위해서 비워두고 싶었는데."
헤르미아는 사업가다. 일주일에 하루를 비우는 게 어렵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정한다. 헤르미아는 유능했으니까. 유능할수록 찾는 사람은 자연히 많아지는 법이다. 유명한 길드에 고액 의뢰가 몰리는 것과 같은 이치로.
"무리해서 시간을 비우지는 않아도 돼."
"무리라니. 나는 맥베스랑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비우려는 거야."
"그래도……."
사장님이 범죄자를 애인이랍시고 꿰찬 다음부터 일의 속도가 안 난다 같은 소리가 들려오는 꼴을 볼 수는 없었다. 헤르미아에게 도움은 못 될지언정 방해가 될 수는 없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얘기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줄 테니까."
"말이라도 고마워. 하지만 맥베스를 내 멋대로 부려먹을 수는 없지."
"왜? 나는 부려먹어도 되는데."
맥베스가 자신의 도움이 되고 싶어 한다는 걸 모르지 않는 헤르미아가 어떻게 설명해야 납득하기 편할까 고민하면서 후식을 잘게 잘라 입으로 넣으면서 말한다.
"공적인 문제에 가까운데, 마도사 길드가 사업체와 협력관계를 맺는 걸 너무 쉽게 생각하면 안 되니까 그래. 내가 길드 이름을 빌려서 일을 처리하는 건 괜찮지만, 길드원 하나를 사업체의 수족처럼 부리는 건 다른 문제라서……."
헤르미아는 사업 관련한 분야에는 의사가 확실한 편이었기 때문에 때때로 맥베스의 도움을 에둘러 거절하고는 했다. 연인으로서의 헤르미아도, 사업가로서의 헤르미아도 지켜주고 싶은 맥베스는 큰 반대 없이 수긍했다. 맥베스에게 이해해줘서 고맙다고 말한 헤르미아는 문득 깨달은 것처럼 이마를 짚는다.
"아! 데이트 나왔는데 또 일 이야기 하고 있네. 나 완전 일벌레인가 봐."
"유능한 사장님인 거지. 원래 꼭대기에 앉아있는 사람은 생각이 많아지기 마련이잖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덧 후식 접시가 비워지고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아주 조금 기울었다. 시간을 확인한 헤르미아는 맥베스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한다.
"이만 갈까? 내가 너랑 꼭 해보고 싶었던 거 있어. 언젠가 맥베스와 데이트한다면 저건 꼭 해봐야지, 라고 했던 거!"
…
맥베스는 헤르미아와 함께라면 다소 엉뚱한 일에 휘말려도, 하다못해 위험천만한 일이 닥쳐도 어떻게든 헤쳐나갈 의지가 생기고는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맹세컨대 단 한 번도 예상해본 적 없다.
"와아아악!!"
"헤르미아, 브레이크!"
"아까부터 누르고 있는데 안 들어!!"
마력으로 운용되는 보트가 바다 위를 질주한다. 저 멀리 부둣가에 서 있는 관리인이 확성 마법을 이용해 뭐라뭐라 이야기하는 것 같았지만, 엄청난 엔진음과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 때문에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다음 코스는 뱃놀이야! 라고 말하며 마력 보트 체험장에 도착한 것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보통 이런 레저 스포츠는 마법과는 연이 없는 일반인들에게나 즐거운 유흥거리라는 사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헤르미아가 하고 싶다는데 한 번쯤 해보지 못할 이유도 없으니. 페달을 밟을 때마다 보트에 충전된 마력이 소진되어 가속하게 된다는 설명도 완벽하게 이해했다. 하지만 미리 충전된 마력 말고 우리 마력을 조금 불어넣으면 더 빨리 달릴 수 있지 않을까 여겼던 호기심이 문제가 되었다. 그냥 조금, 진짜 조금 마력을 흘려 넣었을 뿐인데 먹으면 안 될 것은 먹었다는 것처럼 마력 보트가 미친 듯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헤르미아와 맥베스의 마력은 일반인 체험용으로 만들어진 마력 엔진이 감당하기에는 과한 수준이었다는 것을 간과한 탓이었다.
"꺄아아악! 이러다 바다 한가운데까지 나가겠어!"
과한 마력이 충전된 보트는 바다 위를 질주하다 못해 잘 있어라, 마그놀리아! 같은 느낌으로 수평선을 향해 돌진한다. 어느덧 부둣가가 희미한 점으로 보이기 시작했음을 깨달은 맥베스는 핸들을 부술 기세로 쥐고 있는 헤르미아의 손 위를 덮어 잡으면서 말한다.
"부술까."
"뭐?!"
"엔진을 부수면 멈추지 않을까."
"아니! 아니아니, 진정해봐. 맥베스!"
엔진이 가속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조금 당황한 듯 보여도 내리 침착함을 유지하던 맥베스가 다짜고짜 강경책을 내놓자마자 오히려 헤르미아는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부수면 멈추기는 하겠지만! 그렇긴 하겠지만! 그랬다간 바다 위에서 떠다니는 조난자가 되고 말아! 차라리, 차라리…!"
재빨리 머리를 굴리던 헤르미아는 문득 사업에 운용할 수 있을까 싶어서 취미 삼아 읽었던 마력 운용 엔진 설비에 대한 안내문을 떠올린다. 마력으로 운용하는 장비에 과부하가 걸릴 경우, 대부분 기능이 정지한다는 원리를 기억해낸다!
"마력을! 마력을 쏟아붓는 거야!"
애매한 마력으로 깔짝거려서 폭주하는 것 같으니 차라리 엔진이 감당할 수 없는 과부하를 걸면 멈춰버릴지도 몰라!
"그러니까 맥베스! 과부하를 걸자!!"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정말 육지가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서 구조를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맥베스는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대로 엔진을 향해 확실하게 마력을 불어넣었다. 나한테 뭘 먹인 거야 이 자식들아 같은 말이라도 뱉어내는 것처럼 검은 연기를 펑펑 뿜어댄 마력 보트는 불길한 엔진음을 내면서 멈췄다. 위기에서 벗어난 맥베스와 헤르미아는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보트가 멈춰버렸으니 이제 자력으로 육지로 돌아갈 방도가 사라졌다는 간단한 사실을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아주 조금의 시간이 더 흐른 뒤였다.
…
"보트 타고 다른 대륙으로 건너가는 줄 알았네……. 미안, 맥베스. 내가 괜히 보트를 타자고 해서."
"아냐. 나름대로 스릴 있었어."
교훈도 얻었다. 마력으로 운용하는 엔진의 경우에는 섣불리 외부 마력을 주입하지 말 것. 한바탕 몰아친 소란을 이겨내고 바다 위에서 고립되어버린 두 사람은 마법을 써서 상황을 벗어나는 대신 망가뜨려 버린 보트의 변상을 위해 얌전히 구조를 기다렸다. 다른 보트가 두 사람의 보트를 끌고 해변으로 돌아올 때쯤에는 이미 밤이 되어있었고, 노발대발하는 관리인에게 뱃값을 더블로 얹어준 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어쩌다 보니 정말 잊지 못할 데이트를 즐겨버렸다. 다른 건 몰라도 일단 스릴만큼은 무조건 순위권이다.
"스릴은…… 있었지. 솔직히 말하자면 속도감은 정말 재밌었는데."
헤르미아가 슬그머니 웃음 짓는 모습을 보면서 맥베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어쩐지 조금 당황하기는 했어도 무서워하는 것 같지는 않더라."
"에이, 엄청 강한 마도사가 지금 내 곁에 있는데 고작해야 보트 좀 고장 났다고 떨겠어? 내가 데이트를 망친 것 같아서 그게 좀 미안해서 그렇지."
"아냐,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나는 너랑 하는 거라면 대륙 횡단이라도 좋아. 그렇게 말하는 맥베스를 두고 헤르미아는 손을 가볍게 내젓는다.
"보트를 타고 대륙 횡단을 하는 건 좀 그렇잖아. 그건 안 괜찮다고 해도 되는데."
"하지만 정말 괜찮은걸. 너랑 함께라면."
진지하게 답하는 맥베스를 보면서 헤르미아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해도 수용할 것이라는 점을 새삼스레 깨달으며 그의 품에 기댄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뱃놀이는 망쳐버렸지만, 데이트 마무리는 제대로 해보자."
…
두 사람이 마지막 데이트 코스로 점찍은 곳은 마그놀리아 시외에 있는 언덕 위였다. 밤이 완전히 깊어지면 해변에서 불꽃놀이를 터뜨리는 사람들도 있어서 밤 산책하기에는 딱 좋은 곳이었다. 소박하기 짝이 없는 코스였지만, 겉치레가 없을수록 곁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게 되었으니. 풀밭 위에 편안하게 앉은 맥베스와 헤르미아는 서로에게 기댄 채로 저 멀리서 야경을 비추는 바다를 바라본다.
"아, 재밌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데이트……라기에는 좀 문제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나오니까 좋다."
"나도 좋았어. 재미도 있었고."
"다음 데이트도 빨리했으면 좋겠다. 아직 오늘 데이트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런 생각이 먼저 드네."
해맑게 웃어 보이는 헤르미아의 표정에 야경 빛이 은은하게 비친다. 티 없이 맑은 미소를 보면서 맥베스의 시선이 다시 길어진다.
"……휴일에 따로 나오는 게 피곤하지는 않아?"
"뭐? 전혀! 맥베스랑 노는 게 피곤할 리가 없잖아."
"그래도 내내 열심히 일하니까 푹 쉬고 싶은 날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좀 들어서. 헤르미아, 너는 시간이 날 때마다 나한테 내어주잖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아?"
맥베스가 솔직담백한 심정을 쏟아놓자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헤르미아는 맥베스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춘다. 놀란 맥베스의 눈이 커지자 헤르미아는 여유롭게 싱긋 웃어 보인다.
"혼자만의 시간은 이미 많이 가져봤는걸."
네가 내 곁에 남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을 기다렸는데. 이제 그런 건 필요 없어.
"항상 곁에 있고 싶어. 그러니까 그런 생각 안 해도 돼."
단언하는 헤르미아를 보면서 맥베스는 저도 모르게 서로 틀어졌던 긴 시간을 떠올리고 만다. 이렇게 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음에도 결국 제 곁에서 남아 삶을 희극으로 뒤바꿔준 사람. 생을 모두 바쳐 사랑해도 부족한 사람. 맥베스는 헤르미아의 뺨에 부드럽게 손을 올린다. 그 손길의 뜻을 이해한 헤르미아는 가볍게 눈을 감았고, 맥베스는 헤르미아의 입술에 입을 맞물렸다. 눈부신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는 와중에 보드라운 살결이 서로 맞물린다. 이 순간을 선물해준 상대에 대한 경이를 담은 키스.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떨어진 맥베스는 입매를 보기 좋게 빼어 올리면서 말한다.
"나머지는 집에 가서 할까?"
헤르미아는 부끄럽다는 것처럼 웃어 보였으나 맥베스에게 낀 팔짱을 빼지 않으면서 어깨를 기댄다.
"그럼, 좋아. 오늘 내 시간은 온전히 네 거니까."
두 사람은 밤을 축복하는 듯한 불꽃을 오래간 지켜보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도 두 사람은 같은 침대에서 함께 누워 평화를 맛본다. 내일도, 모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영 이어지길 바라는 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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