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노래> 샘플 페이지

<샘플> 인간의 노래

<인간의 노래> 샘플

1. 프랑켄슈타인

아이에게 제대로 다루지 못할 위험한 도구를 들려줄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이 창조한 생명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신에겐 더는 창조할 자격이 없어 그 자격을 압수해야 한다. 그런데 신의 권능을 어떻게 압수할 수 있을까? 이 땅에 깊고 넓게 뿌리 내린 종교에서 신의 도구는 말씀이었다.

그는 그것으로 태초의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하니, 그 입을 막으면 뜻대로 이루어질 그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지는 아무도 행하지 않아 알지 못했다. 다만 그러하다면 이미 창조되어 버린 생명은 어찌하면 좋을지 의문이었다. 그마저 생육하고 번성하지 못하도록 스스로 고사하면 신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을까. 행한 자는 피조물이었다.

괴물은 자신의 창조를 멈추는 피조물이었다. 그럴 수 있는 피조물이 흔치 않으니 괴물은 행운아인가? 그러나 그는 아이였던 적이 한 번도 없는 피조물이었다. 저 하늘의 신은 이 땅에 얼마나 많은 당신의 아이들이 고사하든 관심 없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그러니 이 중에 조물주를 벌하는 피조물이 있어도 그는 알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괴물은 그러한 피조물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조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 있었다.

그의 창조주, 프랑켄슈타인의 창조는 그의 주변 생명의 죽음에서 거듭나니 괴물이 그를 북극에 가둬버린 것은 피조물로서 그릇된 자신의 창조주에게 건 가장 효과적인 제약과 같았다. 인간이 없는 그곳에서 그는 더는 자신처럼 괴물이 되어야 하고 괴물이 되고야 마는 생명을 창조할 수 없을 터였다. 울리는 건 자기 메아리뿐인 그곳에서 프랑켄슈타인을 제외하면 어느 생명도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는 더는 무엇으로도 생명을 창조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도 남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 그 어떤 피조물이 자신의 조물주를 상대로 이런 승리를 얻을 수 있을까. 이런 처벌을 내릴 수 있을까.

그러나 프랑켄슈타인 또한 인간이었다. 동시에 인간이었다. 자신의 피조물에 복수 당하는 그는 자신의 패배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자신의 신에게 자신을 직접 보여주었다. 인간을 보여주며 외쳤다. 보라, 피조물이 창조주를 상대로 승리하는 광경을. 당신에겐 아주 작은 세상의 일이겠으나 이것이 바로 모의실험장의 결과이다.

당신도 언젠가 패배할 것이다.

당신의 피조물의 손에 의해서. 끝끝내 떨어질 것이다. 당신의 힘이 소용없는 곳으로. 절망할 것이다. 당신의 피조물이 겪었던 절망만큼. 흘린 눈물만큼. 내가 오만하다면 당신은 오만하지 않은가. 당신은 방관하지 않았는가.

이것은 당신을 겨냥한 묵시록이 될 것이고 저자는 인간이자 인간의 신이 될 것이니 그 이름은…….

2. 믿음

나 가진 것은 없으나 믿음으로 부유하다. 몸뚱어리뿐인 재산으로 내 상속자는 빈곤하겠으나 나는 빈 손을 맞잡아 기도를 외는 법은 가르칠 수 있었다. 나는 평생을 그리하였으니 소망이 내 손 안에 있었다. 이제 한평생 쥐고 있던 손을 풀어 네 머리 위에 안수하니 믿음을 놓은 손은 비어 있다.

믿음으로 너의 꿈속에 거할 나는 사랑을 당부하였다. 사랑이 너를 구했기 때문이었다. 사랑이 너에게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너는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다. 프로메테우스가 신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내어준 이유가 인간을 사랑했기 때문인 것처럼, 너 역시 그리해야 한다. 네가 열어버린 상자 속 가장 밑바닥에 있는 희망을 사랑해야 한다. 네가 가진 것은 사랑으로 이루어졌음을 기억하라. 빛나는 지성도, 꿈을 꾸고 이룰 수 있게 너를 구성하는 것들 모두 선물임을 알라. 그러니 네 곁에 있는 사람이 모두 에피메테우스처럼 느껴질지라도 너에겐 의무가 있다. 그들을 사랑할 의무가.


3. 관성

생각에도 관성이 있다. 어쩌면 육신보다도 더 심하게 관성을 따른다. 그는 돌아보았고, 마음을 더 얹고 말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그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하고 만 이상 기울어진 저울은, 생각은 가파르게 경사를 타 결론에 이르고 결정이 된다.

빅터를 데리고 나가. 그가 이곳에서 처음으로 내린 명령은 항명 없이 수행되었다. 혼자 남은 그는 죽은 자의 집에 들어가 집 안을 엉망으로 어지르기 시작했다. 황망한 손길에 쓰러진 가재도구를 다시 세울 겨를이 없었다. 탐색은 길어지고 밤은 그보다 더 짧았다. 남아 있는 것은 없었다.

그와 함께 남은 두 구의 시체는 결단을 종용한다. 네 개의 눈동자가 두 개의 눈동자를 응시하니 여기 여섯 개의 눈동자가 있었다. 너의 선택은 합리적일 것이다. 말하는 것은 세 개의 입. 아니, 그럴 리가 있나. 시체가 말을 할 리 있나.

미래엔 신체를 만들어서 쓰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그리 말했던 날이 그에게 있었다. 과도기를 위한 연구. 그게 필요한 이유를 말한 자도 그날에 함께 있었다. 먼 미래를 내다보자는 게 아니야. 지금 당장을 바꾸기 위해서지. 올려다본 그에겐 통찰력이 있었다.

지금 내가 이루지 못하는 이유를 미래로 돌리는 것은 간편한 변명이었다. 쌓이는 것은 패배감이었다. 왜 나는 도전하지 못하나? 왜 나는 뛰어들지 못하고 있나? 변명하기로 했으면 미래를 말하고 꿈을 논할 때 죄책감을 느끼지 말아야지, 왜 나는 패배자가 된 기분을 느끼고 있는가?

소문은 사실이었다. 그는 그자의 거대한 꿈 앞에 서서 그것을 올려다보았다. 바로 이게 그 미래야! 말을 하는 자는, 태양이었나?

꿈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미래가 가까움이라.

복음이 들렸고, 그는 고개를 들었다. 말하는 데는 입 하나면 충분하다. 깨달음이 뇌리를 스친다. 떠나지 않는다.


4. 초상

태초에 신은 자기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건 나의 형상이 아니다. 내가 아는 나의 형상이 아니야. 그럼 대체 누구의 형상인가? 돌아보니 앙리가 있었다. 그럼 이건 앙리의 형상인가? 앙리는 이런 형상이었는가? 그러나 이건 앙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알지 못하는 앙리는 이러했는가? 물어볼 수 없었다. 앙리는 죽었으니까. 돌아보면 앙리의 초상이 있을 뿐이었다.

5. 창의성

후회하는 자의 기도를 들은 신은 없었다. 그가 곧 신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드는 북극에 인간의 신이 홀로 놓였으니 이제 그는 자신이 인간임을 잊게 될 것이다. 인간은 잊히고 신만 남게 될 것이다. 그를 기억하는 인간은 모두 죽고 홀로 남겨졌기에.

인간을 만든 존재를 우리는 신이라고 불렀다. 생명을 창조하여 인간의 세계관을 만들고자 한 인간은 자신의 세계관에서 내쫓긴 신이 되고 말았다. 아, 그는 참으로 인간이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가 아닌가. 누가 이런 복수를 계획할 수 있을까.

이 계획, 발상, 인간이 자기들만의 것이라고 우기는 그것이 아닌가.

6. 인간성

괴물은 아이를 밀어 떨어뜨렸다. 괴물이 되기 위해선, 괴물 같은 복수를 하기 위해선 버려야 하는 인간성은 그날 누군가 참으로 선명하게 연상한 어떤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직 다 자라지 않았다. 자라면 인간 행세를 하게 될 것이었다.

복수를 가로막으며, 또는 복수를 변질시키며 어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제 앞에 서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괴물은 그것을 떨어뜨렸고, 다시 줍지 않았다. 줍지 않는 길을 선택하였다.


7. 인간의 노래

피조물은 아버지를 찾지 않았다. 프랑켄슈타인은 신처럼 생명을 창조하는 데 성공했으나 신이란 인간 사회의 부조리를 방관하는 대적자였다. 그의 피조물에도 프랑켄슈타인은 방관자이자 대적자였다. 피조물은 진정 자신이 겪어야 한 모든 부당함에 분노하였다. 따라서 그것은 횃불을 들었다. 그 순간 그는 그것에서 그가 되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신에게서 불을 훔쳐 인류에게 전해주었으나 그 또한 올림포스 신들에게 밀려난 티탄 신이었다.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는 그 이름을 가졌기에 이 땅에서 몰아내져야 한다. 다만 그는 자신의 이름대로 미래 하나는 정확히 보았다. 세상은 무너질 것이다. 인간의 횃불로.

횃불을 든 창조주의 그가 하늘을 가리켰다. 인간이 신을 가리키며 노래를 불렀다. 인간이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세상을 방관하는 신을 지목하는 이는 과연 인간이었다. 밑바닥에 선 인간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8. 절망

괴물은 진정 자신이 겪어야 한 모든 부당함에 분노하였다. 차라리 날 태워 죽여라.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 그러나 프랑켄슈타인의 모든 발언은 괴물의 분노를 지필 다음 장작을 가리키고 있었다. 넌 아직 가진 게 많이 있으나 그걸 또 잊고 있구나. 너는 오롯이 너만을 생각하는구나, 이기적인 인간아.

그는 목에 건 저주의 다음 세대였다. 이어졌으나 이어지지 않은, 전수하였으나 독립적인. 이전의 세대에서 이전의 방식으로는 이루지 못하였으니 그의 세대에선 그의 방식으로 행동해야 했다. 불과 폭력, 피로. 진정한 인간의 세계관을 위하여.

나는 불행하기에 악하다. 그러나 그것이 벌 받지 아니할 자격을 일컫는 것은 아님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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