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만남 날조 (1)

메이s

ETC by 01
4
0
0

시작은 좋았다.

“저기요.”

상냥한 손길이다. 날이 좋았고, 바람은 적당히 선선했다. 민들레 홀씨가 뺨을 스쳐지나갔다. 조금 간지러웠다. 작은 몸체가 꼬리를 주욱 내빼며 중심을 잡는다. 발꿈치를 든 아우라 렌 개체가 제 귀에 작게 속삭였다.

“………어요.”

“…무어?”

상냥이 인파를 가르켰다.

“저 사람이, 방금 당신의 지갑을 훔쳐 달아났어요.”

휘휘. 민들레 홀씨와 함께.


이 화상아—————!!!!!!!!!”

쾅! 냥냥펀치가 루크의 정수리를 정통으로 강타했다. 방금 일격으로 루크의 눈엔 잠시 별이 돌았는데, 저 작은 몸에서 어떻게 저런 악력이 나오는 걸까… 같은 시답잖은 사색을 하기엔 충분했다. 큰 충격을 받으면 되려 침착해진다는 말은 진짜였다. 루크는 진심으로, 순수하게 궁금해졌다.

“그걸!”

짝!

“왜!”

짝!

“두 눈이 있는데!”

짝!

“잃어버리고!”

짝!

“난린데!!!!!!!”

쇄도하는 손찌검에 비명은 시작도 하지 못했다. 매서운 손길이 지나간 등짝이 파이자를 정통으로 맞은 것처럼 불타올랐다.

“라, 라샤. 진정하고 내 말을 잠시 들어주게에……. 나도 억울한지고, 피해자의 입장이 아니던가.”

“그래서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는 거야?! 어?”

자고로 모든 대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야 하는 법이지 않겠나. 오늘은 날이 참 좋았다네, 볕도 따뜻하고 가지 타고 불어오는 동풍이 갈증을 죄 해갈하는 것 같았지. 이리 좋은 오전에 어찌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까 예상할 수 있었을까… 싶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이 있다지? 만약 내게 손버릇 나쁜 자가 내 지갑을 훔쳐갔다 일러주는 아해가 없었다면, 난 지금까지도 내 지갑의 행방을 알 수 없었겠지. 애초에 유무를 알지 못하였을 테니까 말이야…….”

“잠깐, 뭐?”

리샤의 귀가 쫑긋였다. 간신히 분을 삭힌 이채가 다시금 불을 밝혔다. 1분 21초 전과의 차이라면, 그 원동력이 분노가 아닌 의심이었다는 점이다.

“응?”

루크의 귀가 기울었다. 작은 물음표가 떠올랐다.

“누가 귀띔해줬다고?”

“암, 상냥한 자의 도움을 받았지.”

“신시가지가 아무리 번잡한 시가지라고 해도, 그와 비례해서 치안이 나쁘지 않아. 오히려 쌍사당의 관리와 더불어 모험가들은 윤리 의식에 투철한 편이니… 타당한 행동이야. 그렇지만, 그렇지만! …왜 알려주기만 했을까? 좀도둑이 가로채고 도망가는 상황을 가만히 주시만 했다가, 완전히 인파 속으로 들어간 다음에야 루크에게 접근했다면, 너무 부자연스럽잖아.”

“리샤…… 그리 남의 호의를 의심해서야 쓰나.”

“합리적인 이유에 근거해서거든?! 누구 씨 같은 호구를 책임지기 위해선 필수 요건이거드은?!”

루크의 턱 끝까지 바투 붙은 귀가 매서웠다. 분명 폭신폭신한 감촉일 텐데 칼날처럼 서늘한 이 기분은 무얼까…… 간신히 거리감을 유지한 그가 두 손을 들어 보였다. 공격 의사가 없다는 표시다. 그러니 공격 금지.

“…무튼, 루크. 그 도와준 사람의 의상착의나 특징을 좀 말해 봐. 기억 안 난다고만 해 봐!”

새침하게 돌아선 리샤가 발을 굴렀다. 바닥을 일정한 박자로 두드리는 꼬리도 동조했다. 아, 삐졌군. 루크는 직감했다.

“키는 그대보다 좀 컸고… 그래, 이 정도 즈음. 질 좋은 로브로 머리까지 가리고 있었지만, 아우라 렌의 여성이었다네. 그 반짝이는 뿔이 입사와 반사는 확실하였으니까. 또, …으음, 한손 환술도구로 보아 환술사인 것 같다만, 손 끝에 베인 자국이 없었으니… 백마도사로 추정되네. 그리고……, 아.”

떠올랐다. 서늘한 예감이 뒷목을 스쳤다.

"아?"

“…장화가, 상당히 낡았었지.”

휘휘, 민들레 홀씨떼가 불어왔다.


툭, 거추장스러운 로브를 벗어던졌다. 이끼 가득한 동굴 속이라 그런지, 작은 소리조차 메아리로 울렸다.

어깨가 굳었다. 몸에도 안 맞는 남의 옷가지를 욱여넣느라 좀이 쑤셨다. 꽤 비쌌는데…, 아쉬운 마음이 컸다.

하지만, 짤랑. 무거운 주머니가 화답했다. 마치 자기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 같았다. 짤랑, 짤랑…. 소리가 다시 되돌아왔다.

“…그래, 옷은 또 사면 돼. 뺏은 것보다 더 비싸고, 더 딱 맞는 옷을 사면 되는 거잖아?”

—거잖아, 서늘한 메아리가 맞장구쳤다. 얀 메이는 언제나 옳았다. 메이는 생각했다. 그러니 이 허름한 셔츠와 남루한 바지를 하루 정도 더 인내할 수 있었다. 내일은 오늘 만난 멍청한 비에라처럼 좋은 옷을 입고 민들레 홀씨 속을 나뒹굴 테니까.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