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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공포영화를 좋아해서 나는 자전거 타기를 배웠다      

하이틴 로맨스 / 2020년 작

소마 by 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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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겨울에 뜬금없이 자전거를 향한 집념이 생길 줄은 나도 몰랐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더 어렸을 때부터 열 살쯤까지 수없이 도전했고 매번 실패했다. 그 이후부터는 도전을 포기했다. 그래서 적당히 자신에게 얼버무렸던 것 같다. 에이, 자전거 좀 못 타면 어때.
 

그 도전엔 절실함이 없었다. 막연히 주변 또래를 보며 나도 자전거를 타긴 타야겠네, 하는 생각을 했고, 부모님 또한 자전거 정도는 탈 줄 알아야지, 하고 말했다. 그렇게 당연한 거였다. 그래서 나는 주말마다 자전거를 끌고 공원엘 갔고 내 아버지는 자전거 뒷부분을 잡아주곤 했다. 한 번도 성공한 적 없었다. 나는 자전거가 넘어져 다치는 걸 두려워했다. 아버지가 잡고 있던 손을 갑작스레 놓지 않을까 무서워서 온통 마음이 쏠려 정작 타는 데는 집중하지 못했다. 그래서 포기했다. 꼭 해야만 할 이유도 없는데, 못하는 걸 굳이 그렇게까지 해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체인을 풀고 킥 스탠드를 발로 치워냈다. 어림잡아 6년 만에 자전거 안장에 올라 보는 거다. 6년간 또 훌쩍 자라 이젠 성인용 자전거에 맞는 몸이 되었다. 바퀴는 괜찮은지, 브레이크는 어떤지, 안장은 어떻게 조절하는지…… 그런 걸 알고 점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혹시나 고장이라도 났다면? 어쩔 수 없다.
 

상태도 모르는 자전거에 몸을 맡기는 것만큼이나 오늘의 도전도 무모했다. 자전거를 끌고 길 앞에 선 건 집에서 22km 떨어진 동네에서였다. 그리고 지금 시각은 저녁 9시였다. 재깍재깍 집에 들어가는 성실한 중학생에겐 늦은 시각이었다. 다시 한번 되짚자면, 나는 자전거를 전혀 탈 줄 모르고, 6년 만에 자전거라는 걸 만져보고 있었다. 오늘 반드시 이걸 타고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내가 하는 일은 항상 그렇게 무작정 시작되었다. 이를테면 지금 내가 자전거를 타려고 분투하는 이유의, 맨 처음의 처음의 처음으로 돌아가도 비슷한 예가 떠오른다.
 

핸들과 브레이크를 가볍게 쥐어 보았다. 페달에 발을 올려놓자마자 휘청이며 오른쪽으로 몸이 쏟아졌다. 다리 사이로 쓰러지려 하는 자전거가 무겁다. 힘이 센 편은 아니니까. 애써 일으켜 다시 중앙에 오도록 놓았다. 왼발은 페달 위에 올려놓고, 오른발은 반쯤 걷는 듯 자전거를 끌고 무작정 나아갔다. 누군가 본다면 꼴사나울 것이다. 상관없었다. 여긴 집에서 22km 떨어진 동네이므로.
 
 

네가 공포영화를 좋아해서 나는 자전거 타기를 배웠다
 
 
 

이건 꽤, 사실은 상당히 충동적인 행위라는 점엔 동의한다. 시간은 늦었고 길도 잘 모른다. 중간에 자전거를 팽개치고 걷는다고 해도 돌아가기가 힘들다. 그러면 나는 어쩌다 이렇게 충동적인 결심을 실행하게 되었는지.
 

내가 자전거 타기를 배우는 이유는 네가 공포영화를 좋아해서다. 그리고 네가 다디단 케이크를 좋아해서, 카츠동을 좋아해서, 사람들과 말 섞고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조용히 음악 듣기를 좋아하는 소년이어서다. 아, 그리고 넌 강변에서 자전거를 타며 활짝 웃는 얼굴로 상쾌한 바람을 들이마시길 좋아한다. 정확히는 그렇다고 들었다. 어쨌든, 그 이유도 있다.
 

2km를 그렇게 가자 어기적어기적 걸어가는 괴생명체의 꼴을 좀 벗어나기 시작했다. 한쪽 발을 구르듯 도로 위에서 떼고 그 추진력으로 바퀴가 굴러가는 동안 중심을 잡기 시작했다. 대체로 몇 초 후면 중심을 잃었다. 악력도 세지 않은 팔로 도롯가의 한쪽 난간을 쥐어 가며 느릿느릿 나아갔다. 오른팔 근육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시간이 조금씩 늘었다.
 

다른 아이들의 대화에 흥미 없는 척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던 너의 바지 주머니에서 mp3에 연결되지 않은 채 빠져나온 이어폰 플러그를 발견한 것도 이유가 된다. 네 짝이 아니었다면 아마 몰랐을 거다. 그날은 네가 실수로 mp3를 집에 두고 왔고 언제나처럼 조용한 하루를 바란 날이었다. 너는 허세를 부리려던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어색하게 웃고 시선을 피하며 열심히 설명했다. 그날 네가 겉보기와 달리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고 허술한 구석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것도 이유다.
 

내리막길에서 양쪽 발을 페달에 올린 채 중심을 잡고 직진하는 데 성공했다. 비록 내리막의 끝에서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으며 왼발 끝을 디뎌 멈추어야 했지만. 굴러 내려오는 아주 짧은 순간 찬 바람이 미미한 쾌감과 함께 얼굴을 스쳤다. 이게 네가 말한 상쾌함이야? 나도 알고 싶어. 네가 느낀 감정, 네가 좋아하는 것, 너를 기쁘게 하는 것.
 
 
 

좀 더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해볼까. 너는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었지만 누구든 너에게 관심이 있었다. 아이들은 와글와글 시끄럽게 떠들면서도 멀찍이 떨어져 앉은 너를 눈여겨보고, 너에게 주의를 기울였다. 너는 그런 반응을 하나도 모른다는 듯 행동했다. 너를 몇 시간만 지켜보아도 네가 그러한 무조건적 호기심과 호의의 대상이 될 법하다는 걸 알게 된다. 너는 춤의 동작처럼 분명하고 우아한 몸짓을 지녔다. 이목이 쏠리면 조금 부끄러워했다. 말수가 적었지만 목소리가 맑고 가벼웠다. 무례하지 않고 말을 고를 줄 알았다. 하지만 가장 뚜렷한 원인이라면 역시 네 눈과 뺨과 입술과……,
 

잠깐 다른 생각을 하면 바로 휘우듬하게 쏠리며 위험해졌다. 생각에 빠지지 않아도 몇십 초 단위로 위기가 찾아왔다. 긴 바지를 입어 다행이었다. 짧은 바지였다면 발목이나 종아리 근처가 지금쯤 수없이 긁혀 있었을 텐데. 조금 전엔 고급으로 보이는 검은 승용차를 들이받을 뻔하기도 했다. 내가 아무리 무모하다지만 남의 차에 흠집을 내고 싶지는 않았다. 차를 들이받기 전에 핸들을 틀며 발을 뻗어 멈추었다. 동공이 확장되고 심장이 빠르게 쿵쿵거렸다. 이런 감각은 익숙했다. 공포와 사랑을 구분하지 못해 벌어지는 뇌의 착각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너와 마찬가지로 공포영화를 좋아했으나, 공포영화를 볼 때의 두근거림은 이 정도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내가 저 멋진 승용차나, 이렇게 닥쳐오는 신변과 재산에의 위험을 사랑하지는 않으니 이건 분명한 공포다. 그러면 다른 경우는? 
 

나는 너와 대화할 때 꼭 이만큼 두근거렸다. 체육 시간이 끝나고 계단을 뛰어 올라온 네 흐트러진 숨결 속에 섞인 미성을 들을 때. 탈탈 소음을 내며 돌아가는 교실 선풍기의 강풍 아래에서 얼굴을 공격하듯 휘날리는 흑갈색 머리를 넘기며 잊은 숙제에 대해 한탄할 때. (우리 자리는 운이 좋게도 선풍기 기둥 바로 옆이었으니까.) 말할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는 게 다 드러나는 얼굴로 고민하다가 수업 종이 치고서야 내키지 않는 걸 꾹 참으며 나에게 교과서 좀 보여줄 수 있냐고 속삭일 때. (난 눈치채고서도 일부러 네가 부탁하기 전까지는 묻지 않았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너와 대화할 때 벅차도록 기분이 좋았고 그만큼 네가 두려웠고, 너와의 대화가 두려웠다. 내 표정의 변화와 그걸 바라보는 너의 눈동자까지도. 그러니까 너와의 소통은 두려움을 감수하는 행위다. 내 언어가 예민한 너를 혹시나 거슬리게 할까 두렵고 다음 순간 내뱉은 말로 그다음 순간에는 쌀쌀맞은 사이가 될까 두렵다. 그렇다면 애정과 두려움은, 상통하는 게 아닌가?
 

지금도 나는 이렇게 몇십 초마다 출렁이는 심장을 감수하고 있다, 라는 생각과 함께 전봇대에 부딪히기 직전에 돌벽 쪽으로 기대며 멈추었다. 손등이 돌벽에 긁혀 피가 났다. 땅에 발을 디디지 않고 페달만을 굴러 나아가는 데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조금 우쭐했다. 방금 앞바퀴를 벽에 쿵 찧은 사람답지 못하게도. 약간의 자신감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아무튼, 너의 겉모습은 확실히 특별했다. 너의 눈과 뺨과 입술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그때까지 나는 너처럼 부드러운 선을 지닌 소년을 본 일이 없었다. 아마 너를 처음 본 다른 이들도 대부분 그랬을 것이다. 너는 하얗고 마른 몸을 가졌다. 사지가 길고 가늘다. 그건 네 움직임을 더욱 무용처럼 보이게 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언젠가 나는 등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있었는데, 햇살 아래서 흙모래가 이는 운동장을 뛰어가는 네 모습을 나비와 같다 생각했다. 눈을 찌르는 태양 빛 탓인지 꼭 환상같이 보여 몇 차례 눈을 깜빡이고 찡그렸다. 누구나 똑같이 입은 남색 체육복 반바지와 새하얀 티셔츠였는데 유독 너의 어깨 위에서는 빛의 조각들이 잘게 부서져 흩어졌다. 흰색과 태양광이 선사하는 의문의 조화인가 싶었지만 그런 현상은 오로지 너에게서만 목격되었다. 물론 그건 반대로 나 혼자만이 목격한 착란인지도 모른다. 
 

너의 얼굴은 또렷하고 세밀하게 조형되었다. 갸름한 얼굴의 꽤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눈에서, 얇고 선명하게 선을 그리는 쌍꺼풀과 속눈썹 아래로 보이는 검은 눈동자는 유독 빛이 맺혀 밝았다. 밤하늘처럼 새까만 눈동자에 별이 떠 있다는 표현은 너무 진부하니 생략해 본다. 어쩌면 우리가 앉은 자리 위에 형광등이 달려 있으니 단순히 그걸 반사했을지도 모르지만. 섬세한 골격은 단정하고 모난 데가 없으면서도 직선이 끼어들 때면 날카로웠다. 골격을 감싸며 매끄럽게 이어지는 뺨을 보면서는 쿡 찔러보고 싶게 말랑말랑하다고 생각했다. 볼살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닌데, 보드랍고 귀엽기보다는 사실 기민하고 영준해 보이는 얼굴인데, 나에겐 그랬다. 처마 같은 곡선 아래의 입술에 대해서라면 아마, 나뿐 아니라 모두가 동의할 텐데, 도톰하고 끝이 올라가 매력적인 입매를 지녔다. 
 

정리하자면 너는 아름답다. 타인의 시선을 한 번에 호의로 그러모아 잡아챌 만큼. 너를 앞에 두고 있지 않음에도 이렇게 상세한 묘사를 떠올릴 수 있는 까닭은 나 역시도 너의 모습을 지극히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두가 그랬다. 일시적인 호감을 얻는 데 외모만큼 유용한 것은 없다. 으레 눈에 띄는 외모를 지닌 아이들은 화제의 중심이 되었고 떠들썩한 무리에 둘러싸인 채 학교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너는 아니었다. 무슨 일이든 즉각 보답이 있어야 의욕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맘때의 아이들은 쉽게 시들해지기 마련인지라 반응 없는― 재미없는 일에 매달리지 못했다. 
 

너는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하고 시끄러운 교류를 꺼리는 사람이니까. 너는 질 낮은 농담을 듣거나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뚜렷하게 눈가를 찌푸렸고 또한 언어와 행동이 거칠지 않았다. 너는 웃는 얼굴을 쉬이 보여주지 않았지만 쑥스러운 듯한 미소를 종종 지었고 호흡이 얕게 끊어지는 작은 웃음소리를 흘릴 때면 눈이 휘어지며 손등으로 입을 가렸고 아주 가끔 크게 터뜨리듯 웃었다. 
 
 
 

일직선으로 곧고 길게 뻗은 강변도로를 보며 심호흡을 했다. 자전거 위에 올라타 대강 서툴게 끌고 다닌 지 몇십 분이 지나자 나는 자전거를 탈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잘 포장된 도로에서는 오히려 훨씬 쉽게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허벅지를 긴장시킨 채 힘을 주지 않고 설렁설렁 페달을 밟아도 앞으로 죽죽 나아갔다. 이것 봐, 할 수 있었어. 아무의 도움도 조언도 없이 했어. 이렇게 쉬운 거였고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어. 남들은 어린아이일 때 이미 성공했을 사소한 것이라 해도 나에게는 달랐다. 쌀쌀한 초겨울의 바람이 얼굴에 정면으로 맞부딪혔다. 신경을 곤두세운 탓에 등줄기에는 땀이 흘렀다. 아직 십몇 킬로미터가 남아 있었다. 
 

네가 공포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짝이 된 첫날이었다. 각자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짝과 이야기하라는 과제를 네가 기껍게 여길 리 없지만,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주어진 일에는 충실한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의자를 틀어 서로를 보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짝이 너였기 때문에 나는 꽤 기꺼웠다. 너와 대화할 기회를 얻는 아이는 많지 않았다. 너는 부담스러운 듯 입매를 말아 올린 채 눈꼬리는 내려뜨린 표정으로 (평소 네 눈 끝은 약간 올라가 있었다) 뭉개진 투정의 소리를 냈다. 
 

네 목소리에는 공기가 많이 섞여 있었다. 변성기 탓을 하더라도 고저가 퍽 불안정했다. 높은음의 목소리에 아슬아슬하게 문장이 걸렸다. 좀, 독특했다. 난 그게 제법 마음에 들었다. 말투도 꼭 그랬다. 위태롭게 말을 이어나가던 너의 언어에 어느새 들뜬 기색이 섞이는 걸 지켜보았다. 팽팽하게 땅겨진 얼굴의 근육이 생소하고 흥미로웠다. ‘너 열성적으로 말할 때 표정이 참 각양각색이다.’ 한참이나 지난 후에 그렇게 말했는데, 너는 딸꾹질 하듯 몸을 풀썩 흔들며 눈을 크게 떴다. 약간 부끄러운 듯 얼굴을 점점 붉히기도 했다. 
 
 
 

뒤통수에서 자전거 종소리가 울렸다. 성급하게 챙챙 울리는 소리에서 신경질적인 시선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 핸들을 이리저리 돌렸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갑작스레 동작을 바꾸자 균형이 흐트러지며 자전거가 갈피를 못 잡았다. 비켜주기엔 글렀지만 저 쪽은 적어도 나보다는 익숙하겠지. 씹어뱉는 낮은 욕지거리와 함께 검은 자전거가 쌩 하고 내 옆을 스쳐지나갔다. 경량패딩을 입은 아저씨의 멀어져가는 등을 바라보다가 멈춘 자전거 위에서 다시 자세를 잡고 페달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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