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연재 작업물

균열 (上)

커미션 /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2차 창작

소마 by 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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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열 (上)

동네에 그런 사내는 없었다.

훌쩍 큰 키에 긴 코트를 걸친 가시처럼 마른 몸, 날렵한 얼굴선과 뺨에 살이 없어 도드라진 광대, 눈꺼풀을 껌뻑일 때마다 짙게 그림자가 지는 움푹한 눈. 마리안은 여기저기 해지고 낡아빠진 그 코트가 얼핏 보기와는 달리 고급 직물이란 걸 알았다. 박제를 맡기는 손님들은 당연히, 돈깨나 있었으므로, 보는 눈이 그 작은 애에게도 길러졌던 셈이다.

남자는 온몸이 꽁꽁 얼듯이 차게 식은 채, 담장 밑 그림자와 뒤엉켜 쓰러져 있었다. 창고로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이 어디서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 먹었다 한들 어린 여자아이의 힘으로는 도저히 옮길 수 없어 보였다. 망설임 끝에 정원사를 불렀고, 둘은 간신히 남자를 창고로 데려다 놓았다. 아무나 집에 들였다며 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친척 어른들께는 무작정 비밀로 해달라고 졸랐다. 정원사의 주름진 얼굴이 난감함으로 일그러졌다가, 마침내 느릿한 끄덕임과 함께 풀어졌다.

창고 안 낡은 소파 위로 남자의 몸이 조심스레 내려지고 마리안의 눈동자가 그의 얼굴을 훑었다. 환부는 퍽 심각해 보였다. 사냥 당한 동물들에게서도 상처는 수없이 보았으나, 이건 목숨이 붙어 있는 사람에게 난 상처가 아닌가. 치료가 시급했다. …… 의사를 부른다면 들킬지도 몰라. 하지만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잠시 갈등하고 있자 한동안 움직임이 없던 남자의 눈꺼풀이 마침내 떨렸다. 흐릿한 푸른 눈동자가 허공을 더듬다 마리안의 얼굴에 닿았을 때, 마리안은 숨을 들이켰다.

“의사를 불러올게요.” 재빨리 말하며 뒤돌자 죽은 듯 축 늘어져 있던 손가락들이 간신히 손목을 붙들었다.

“잠깐… 의사는…… 우선 부르지 말아줘.”

순간 망설임이 스쳤다. 하지만 이내, 남자는 눈을 깜빡이며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여자아이의 분홍빛 눈동자에 호기심과 기대, 그리고 어떤 결의 같은 것이 뒤섞이는 것을 보았다.

“그럼…… 제가 한번 살펴봐도 될까요?” 그 말은 질문이라기보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마리안은 조심스럽게 남자의 다리를 살폈다. 바지 아래로 보이는 살갗은 창백했고, 혹한에 노출되었던 듯 곳곳에 동상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깊고 날카로운 칼날이 살을 가르고 뼈에 닿았을 것이 분명했다. 깊고 날카로운 찢김 사이로 멍든 살이 보였다. 상처의 가장자리는 불규칙했고, 피부가 찢겨 들어간 흔적이 선명했다.

‘날이 짧고 두꺼운 무기로 강한 힘을 실어 찔렀을 거야. 아마도 다용도 단검 같은……’

상처 주변의 넓은 멍 자국을 보며 마리안은 공격자의 힘이 보통이 아니었음을 직감했다. 일반적인 사람의 힘으로는 이 정도의 손상을 입히기 어려웠다.

천을 자르는 소리가 조용한 창고에 울렸다. 바지 자락이 찢어지며 드러난 상처는 예상보다 끔찍했다. 붉은 피가 아직도 서서히 흘러나왔고, 상처 주변의 피부는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다. 마리안은 호기심 어린 얼굴로 상처를 살폈다. 작은 손가락이 상처 주변을 더듬었다. 조심스레 움직이는 그 손길에, 남자는 미세하게 몸을 떨었다.

“움직이지 마세요.”

어울리지 않게 단호한 목소리였다. 마리안은 옆에 놓인 낡은 서랍에서 소독제와 거즈를 꺼냈다. 병 뚜껑을 여는 소리와 벽난로가 탁탁 타는 소리만 들렸다. 마리안은 벽난로를 흘긋 보더니 불길을 조금 줄이고 창가로 다가갔다. 의자를 끌어다 놓고 올라서서 높은 곳에 위치한 창문을 활짝 열었다. 남자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마리안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남자의 다리에 헝겊을 문지르자 그는 날카로운 숨을 들이켰다. 소독이 끝나고 바늘에 실을 꿰었다. 어린아이의 손치고는 퍽 안정된 움직임이었다. 바늘이 살을 뚫고 들어갈 때마다 남자의 근육이 경련하고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한참이 지났다. 어느새 제법 눈빛이 또렷해진 남자가 와중에 입을 열었다. 낮은 음성과 함께 그의 몸이 약간 진동했다.

“사람 살을 꿰매는 게 꽤 능숙하군.”

마리안은 말도 하지 말라고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그만두고 대답했다.

“털가죽을 자주 꿰매거든요.”

알만 하다는 듯, 남자가 창고를 한 번 휙 둘러보았다. 고집스러운 푸른 눈동자가 창고 곳곳에 널린 박제들을 꼼꼼하게 살폈다. 움직이지 말라니까…… 투덜거림은 속으로만 삼켰다.

“일단은 됐어요.”

마리안은 조심스럽게 거즈를 상처 위에 올려놓고 붕대로 감쌌다. 일을 마치고 나서는 습관처럼 뒤로 물러나 자신의 ‘작업’을 살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칼과 바늘을 댄 적은 없는지라 한참 어설펐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당분간 움직이지 마세요. 상처가 벌어질 수 있어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마리안은 어째서인지 그 눈 안에 의문인지, 의심인지 모를 것이 잔뜩 어려 있다고 생각했다.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마리안이 물었다. 피부를 꿰맬 때의 진중함과 단호함은 자취를 감춘 듯, 명랑하고 해맑은 얼굴로 돌아온 소녀를 뚫어지게 보던 남자는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하면 돼.”

“성만요? 이름은요?”

“그냥…… 프랑켄슈타인 씨라고 부르면 돼.”

마리안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우선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창고 한쪽에 있던 담요를 가져와 남자에게 반쯤 덮어주었다.

"여기서 쉬세요. 밖에는 나가지 마시고요."

“이런 다리로는 어차피 나가지도 못해.”

‘프랑켄슈타인’이 힘없이 대꾸했다. 목소리에 어린 것이 농담인지 아닌지 분별하기 어려웠다. 가만히 소파에 늘어져 있는 남자의 표정에는 여전히 고통과 함께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정신이 반쯤 다른 곳에 쏠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야 그렇지만…… 옆동네에 전염병이 돈대요.”

“전염병?”​

남자의 지친 얼굴에 흥미, 혹은 긴장감이 비쳤다. 마치 그 단어가 무언가를 떠올리게 한 것처럼. 하지만 곧 그 표정도 사라지고, 고통으로 인한 낮은 신음 소리만 남았다.

“네. 죽어나간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던데요? 이쪽까지 옮겨올까 봐 다들 조심하고 있어요. 외부인은…… 받지도 않고요.”

마리안은 말끝을 흐리며 곁눈질로 그를 살폈다. 창고를 차지한 낯선 사람이 알려진다면 어른들은 평소였더라도 경을 쳤겠지만, 지금이라면 더더욱 문제가 될 일이었다.

“이쪽이라면?”

“베른이요.”

“최근에 베른 인근에 전염병이 돈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적어도……”

마리안은 뚝 끊긴 그의 말을 기다리며 빤히 바라보았다. 별안간 입을 꾹 다문 상대는 새삼스러운 듯, 천천히 마리안의 머리카락, 눈, 박제 연습으로 거칠어진 손까지 살폈다. 프랑켄슈타인이 침음성을 흘렸다.

“이름이 뭐니?”

“마리안이에요.”

남자는 고개를 홱 돌렸다. 잠시 방황하던 눈이 나무 탁자 위 신문을 향했다. 무심코 훑어본 기사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듯, 그의 손이 빠르게 종이를 낚아챘다. 눈알이 이리저리 굴러가며 움켜쥔 손 안의 활자를 좇았다. 그럴 리가, 남자가 낮게 중얼거렸다.

질문의 답을 들었을 때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은 확실히 이상했다고, 남자가 신문을 뒤적이는 동안 마리안이 생각했다. 처음 보는 사람의 이름을 들은 사람의 표정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친척 집 여기저기를 전전하며 비슷한 얼굴을 본 적이 있다. 아들의 소식을 기다리던 그 부인은 집으로 찾아온 군인들이 전해 준 수상쩍을 만큼 격식 있게 포장된 편지를 읽기 전부터 손을 떨다가, 읽은 후에는 그런 얼굴이 되었다. 아들은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리안은 또다른 친척의 집으로 보내졌다. 그랬던 기억이 있다.

그러니까 마리안은, 사람들의 얼굴을 읽는 데 조금은 능숙했다.

“이 신문 말이야,”

목이 탔는지 갈라진 목소리로 그가 물었다. 손에 힘을 주자 종이가 부스럭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언제 것이지?”

“어제요?”

마리안은 의아한 눈초리로 대답했다. 프랑켄슈타인이 허, 웃음을 터뜨렸다.

창백해진 그의 얼굴에는 단순한 공포와는 다른 무언가가 서려 있었다. 익숙함? 체념? 혹은 모종의 경외감. 영문 모를 감흥에 사로잡힌 남자의 눈동자가 이내 초점을 잃었다. 반쯤 벌어진 입가로 작게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마리안은 미간을 좁히며 프랑켄슈타인을 살폈다. 이상한 반응이었다. 어쩌면 불건전해 보이기까지 하는. 낯선 이의 집에 초대 받은 상처투성이의 수상한 손님. 마리안은 문득 괴담을 떠올렸다. 온갖 괴물이며 악령, 이 세상과 이 시간에 속하지 않는 존재들 중에는 주인의 허락이 있어야만 들어설 수 있는 것들이 있다지.

“안 좋은 기사라도 있어요? 표정이……."

남자는 그제야 아이의 시선을 의식한 듯 퍼뜩 고개를 들었다. 침착하게 자신을 관찰하는 눈을 마주하자 아까의 이질적인 감정은 눈 깜짝할 사이에 증발해버리고 없었다.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손을 내저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잠시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그런 게 아니야. …… 그저 전염병에 대한 기사를 보니 예전에 돌았던 병이 생각나서.”

“예전에요?”

“그래, 어릴 적에 겪은 일이 있거든.”

프랑켄슈타인의 입술이 움찔거렸다. 마리안의 눈에, 그건 다정함을 애써 흉내내는 것처럼 보였다.

기억 저편에서 오랜 세월을 뚫고 울려 퍼지는 비명 소리에 저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눈앞에 펼쳐진 건 희미한 불빛에 드러난 창백한 얼굴들, 으스스한 죽음의 기운을 풍기며 으르렁거리는 검은 그림자들. 어머니를 데려간 병, 미쳤다는 소문이 돌던 아버지와 마녀사냥으로 번진 광기, 촛농처럼 녹아내리는 저택을 집어삼킨 화마까지. 모든 광경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런데 바로 지금, 여기 낡은 창고로부터 채 두 시간도 되지 않는 거리에서 그 모든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추측이 사실이라면.

아, 그래.

이번은 또 어떤 시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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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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