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마이/27세조] 파자마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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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조용한 호텔 복도. 연보라색 구름무늬의 원피스 잠옷 위에 담요를 두른 채 우두커니 서 초인종을 누르자, 잠시 소란스러운 소리 후 문이 열린다. '어서 와, 레이쨩.'이라고 웃으며 나를 맞아준 하토리 씨는, 귀여운 병아리 무늬의 잠옷 차림이었다.


"... 잠옷이 상당히 귀엽네요."
"하하, 고마워. 레이쨩도 무척 귀엽네."


안으로 들어섰지만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파자마 파티 해본 적 있어?'라는 뜬금없는 하토리 씨의 LIME에 답장했을 뿐인데. 대체 내 휴일은 어떻게 안 건지 하토리 씨는 멋대로 약속을 잡아버렸다. 물론... 대신 원하는 정보를 준다는 말에 자신의 의지로 왔지만.

고작 파자마 파티를 위해 호텔 방을 두 개나 빌리다니. 대체 왜 갑자기 파자마 파티 같은걸 하는 걸까? 파티의 주최자인 하토리 씨를 흘겨보자 평소와 달리 머리를 풀고 있어서 그런지 분위기도 좀 달라 보인다. 호텔 방 조명 탓인가?


"응? 역시 나랑 단 둘이 좋았어?"
"그런 말은 단 한마디도 안 했어요."
"너무나도 뜨거운 시선이 느껴져서."

응, 역시 평소와 같은 하토리씨구나. 어쩐지 안심이 되는 기분으로 안쪽으로 향하자...


"이즈미...! 무사한 건가!"
"......"


핑크색 잠옷을 입어서 전신이 핑크색이 된 유이씨와, 빨간색과 초록색 체크무늬의 잠옷을 입은 아라키다씨가 있었다. 유이씨는 그렇다 치고, 아라키다씨는 상당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이 남자가 너에게 뭔가 했다면 내가 당장...!"
"조금 상처받네, '이 남자'라니... 레이쨩을 마중했을 뿐이야?"
"...보시다시피 멀쩡해요."
"......"



역시, 사전에 들은 대로 하토리 씨, 유이씨, 소세이씨, 키리시마 씨 27세의 네 사람이하는 파자마 파티였던 것 같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친해졌나 했는데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이 조합 정말 괜찮을까...?


"어라, 키리시마씨는요?"
"방에"


내 물음에 답한 아라키다씨의 시선이 한쪽 방문을 향한다. 그 시선을 따라가자마자... 방문이 열리고, 잠옷 바지만 입은 키리시마 씨가 나왔다.


"어이 하토리, 이거 사이즈가 작다고"
"!!"
"이즈미에게 뭘 보이는 거지!"
"응? 아~ 레이. 왔어?"


그래. 잠옷 바지만 입은 키리시마 씨의 상체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였다. 우와, 역시 운동을 해서인지 몸에 근육이... 아아니! 나도 모르게 빤히 쳐다볼 것 같은 기분에 서둘러 시선을 거두고 뒤늦게 키리시마 씨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 키리시마 군. 일단 방으로 들어가서 얘기할까?"
"아? 무슨 얘긴데"
"일단 들어가"


하토리 씨와 아라키다씨가 키리시마 씨를 방 안으로 데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휴우... 남자들만 있는 건 알았지만 특별히 걱정은 없는 멤버라고 생각했는데...


"이즈미, 역시 이 녀석들 사이에 네가 있는 건 너무 위험하다. 지금 당장 돌아가자."
"이제 막 왔는데요?"
"돌아가려면 지금 뿐이야. 자, 어서 네 방으로 가자!"
"왜 제 방에 유이씨가 가요!?"


다른 사람들이 돌아올 때까지 내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려는 유이씨를 말리면서, 나는 '유이씨와 단둘인 게 더 위험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 ◇

"이즈미, 다 마신 술병은 섞이지 않도록 나에게 주면 된다."
"아하하... 그냥 제가 버릴게요"


평소와 같은 유이씨를 무시한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맥주캔을 홀짝였다. 파자마 파티라고 해도, 잠옷을 입고 다 같이 앉아 술과 과자라니... 뭔가 학생 때처럼 놀러 온 것 같아 아련한 기분이 든다.

병아리 무늬 잠옷을 입은 하토리 씨. 핑크색 잠옷을 입은 유이씨.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키는 체크무늬 잠옷을 입은 아라키다씨. 그리고 단추가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 듯한 키리시마 씨의 강아지 무늬 잠옷... 에서 눈을 돌리고, 계속 궁금했던 것을 하토리 씨에게 물었다.


"그래서... 왜 파자마 파티인가요?"
"재밌을 것 같아서?"
"......"


상대가 하토리 씨니까, 설마 하고 어렴풋이 생각했던 이유는 정말로 그게 전부였던 것 같다. 표정 관리조차 잊고 어이없는 눈길로 하토리 씨를 바라보자, 가볍게 웃은 하토리 씨는 다른 말을 덧붙여 설명하기 시작했다.


"레이쨩은 카구라나 마키하고... 동갑끼리는 자주 놀잖아?"
"그렇게 자주는 아니지만요..."
"놀다가 같이 잔 적도 있고"
"네!? 무슨... 그런 적 없어요!"
"이즈미, 방금 그 말은 사실인 건가..."
"레이..."
"...... “
"아니에요!"


단번에 네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 쏠린다. '잠들었다고 해도 술 먹고 잠깐... 눈을 감은 것뿐'이라며 해명을 했지만. 소용없는 것 같다... 아침까지 푹 잠든 적도 있었지만, 여태 아무 일도 없었고.


"크윽, 앞으로는 전부 내가 동행하겠어. 수상한 남자들에게서 내가 지켜줄 테니 안심해"
"그래 레이, 나도 있으니까 안심하라고!"
"아하하, 누가 제일 수상한지는 모르겠네"
"......"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몰려오는 피곤함에 한숨을 내쉬고 있으면, '힘내...'라는 눈빛의 아라키다씨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아라키다씨는, 계속 말도 없고, 역시 이 사람도 억지로 끌려온 걸까 싶어 나도 '함께 힘내요...'라는 눈빛을 보냈다.

대화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신기할 정도로 각자 자기 할 말만 하고 있어도 의외로 즐겁고, 술도 맛있고, 나쁘지 않은 기분이라 조금은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피융'하는 소리와 함께 나의 이마에 뭔가 '딱'하고 날아왔다.


"... 윽!?"
"이즈미!? 습격인가!"


아픔을 느끼기도 전에 커다란 핑크색 덩어리가 된 유이씨가 나를 덮쳐온다. 그 몸에 밀려 바닥에 누우면, 방안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방금 정말로 뭐였지?


"어라? 내 단추..."
"... 진짜냐"
"풉... 아하하, 단추가. 레이쨩 이마에. 괜찮아?"
"단추? 이건가..."


유이씨가 나의 몸 위에서 집어낸 것은, 아까까지 키리시마 씨의 가슴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던 그 단추였다. 어떻게 이런, 만화 같은 일이... 그러니까 가, 가슴이 단추를 튕겨낸 거야? 뭐라 할 수 없는 감정에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는 동안, 하토리 씨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린다....... 저 사람 분명히 나중에 소문낼 거야.


"하하, 레이쨩. 역시 너무 재밌어... 아하하"
"이즈미한테서 비켜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무겁고."
"이 방에 있는 놈들은 전부 안심할 수 없군"
"미안, 레이. 괜찮냐?"


아라키다씨가 유이씨를 나의 위에서 치워주자(?) 이쪽으로 다가온 키리시마 씨가 사과를 한다. 문제는 내가 아직 누워있는 탓에 눈앞이 키리시마 씨의 가슴이 가득히 차서... 괘, 괜찮으니까! 제발 가슴 좀 치워주세요!! 눈 둘 곳을 찾지 못해 눈을 질끈 감은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렸다.


"엇, 우는 거야? 레, 레이. 그렇게 아팠어??"
"... 안 울어요..."
"키리시마...!"
"두 사람 다 그만하고, 레이쨩 먼저 일으켜주지 그래?"
"하아..."


또다시 소란스러워지는 방. 뭐라고 말하기도 지친 나는 그냥 이대로 잠들어 버리고 싶었다.

◇ ◇ ◇

잠옷을 입을 수 없게 된 키리시마 씨가 티셔츠를 입고 돌아오고, 그 단추에 맞은 나의 이마가 어느 정도 가라앉았을 때, 하토리 씨가 게임을 제안해 왔다.


"이럴 땐 역시 왕게임이지"
"왕 게임?"
"이즈미, 나에게 원하는 게 있다면 사양하지 않아도 돼"
"아니, 사양하게 해 주세요..."
"......"


다들 알코올이 들어가서 들떠있는지라, 게임에 거부감 없는 분위기였다. 제안했다고 해도 처음부터 할 생각이었는지, 우리들은 하토리 씨가 준비해 온 막대를 각자 하나씩 뽑았다.


"내가 왕이네?"
"운이 좋네, 키리시마 군"
"이즈미, 몇 번이지?"


내 번호를 보려는 유이씨에게서 막대를 숨기고 있으면, 키리시마 씨는 별 고민 없이 바로 숫자를 지정했다.


"1번이 4번 무릎에 앉기!"


휴. 키리시마 씨의 말을 듣자마자 우선 자신의 번호가 아닌 것에 안심했다. 잠깐,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남자인데. 그럼... 호기심에 누가 1번이고 4번인지 주위를 둘러보면, 하토리 씨와 아라키다씨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
"......"


표정은 어둡지만, 1번 아라키다씨가 순순히 4번 하토리 씨의 무릎 위에 앉았나? 싶더니 바로 일어났다. 두 사람에게 미안하지만 이거,... 조금 재밌을지도. 좋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신속히 다음 뽑기를 하자, 이번에는 유이씨가 왕이었다.


"좋았어. 이즈미, 몇 번이지?"
"말할 리 없잖아요"
"1번? 2번? 아니... 그 눈은 3번이군"
"...!"


어떻게 알았지? 내 눈을 들여다보며 숫자를 부르는 유이씨의 말에 동요해 버렸다. '그럼 3번이...'라고 말하는 유이씨의 말에 긴장하며 침을 꿀꺽 삼키면...


"나에게 머리카락을 몇 올 제출하도록"
"... 뭐?"
"그런 거로 되는 거냐?"
"아하하, 역시 유이군이네."


혹시나 하고 생각했지만, 이건 이거대로 당황스러운데. 떨떠름한 기분으로 유이씨에게 머리카락 몇 가닥을 뽑힌 나는, 어쩐지 당기는 두피를 문지르며 다음 막대를 뽑았다.


"... 내가 왕이다!"


방금 억울하게 머리카락을 빼앗겨서 그런지, 나는 기쁜 마음에 왕 표시를 보고 소리 높여 말해버렸다. 그런데 뭘 시키지? 뭘 해야 재밌을까... 하고 고민하고 있으면――


"레이쨩, 나는 1번이야"
"! 나는 3번이다 이즈미."
"어? 뭐야, 원래 말해도 되는 거야? 그럼 나는 4번!"
"...... 다 말하면 의미 없잖아-"


하토리 씨를 시작으로 한 명 한 명 자신의 번호를 말한다. 그럼 하토리 씨가 1번, 유이씨가 3번, 키리시마 씨가 4번이면 아라키다씨가 2번인 거구나... 그런데 이거 정말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건가?


"네가 말하는 건, 모든 들어줄게"
"이즈미, 이런 남자보다 나에게 부탁하도록 해"
"나도 뭐든 자신은 있으니까!"
"...... 아무 말도 안 할 거니까 쳐다보지 마."


내가 뭘 시킬 줄 알고, 아라키다씨를 제외한 한 명 한 명이 자신을 어필한다. 그래, 깊게 생각하지 말자. 나는 곧바로 생각난 것을 입 밖에 내었다.


"그럼, 1234 다 같이 3분 동안 손잡고 있기요."
"......"
"......"
"......"
"나는 왜..."


나는 잠시 조용해진 방 안에서 웃음을 참으며 남은 술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3분 후, 다음 판에서 내가 걸릴 걱정 없이 왕 게임은 자연스럽게 끝난 것이었다...

◇ ◇ ◇

왕 게임이 끝난 후 가만히 앉아 네 사람의 얘기를 듣고 있으니, 슬슬 피곤하다. 이대로 여기서 잠들면 안 되니까, 지금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나는 피곤함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표정의 하토리 씨에게 말을 꺼냈다.


"이제 자러 가면 안 되나요..."
"상관없지만... 끝나기 전에 가면 알지?"
"윽..."
"......"


편한 옷을 입고 있어서 그런가, 그냥 다 같이 노는 것 같아서 목적을 잊고 있었다. 지금 돌아가면 약속한 정보는 없다는 하토리 씨의 말에 오늘의 목적이 상기되어서, 나는 반쯤 일으켰던 몸을 다시 앉혀 담요를 무릎에 덮었다. 그러자 옆자리에 있는 아라키다씨에게서 안타까운 눈빛이 느껴졌다... 그런 아라키다씨도 지친 기색이라, 나도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그를 바라봤다.


"자, 빈 병 갖고 왔어"


마주 보고 있던 아라키다씨와 나 사이에 불쑥 파고든 병, 그리고 그 틈으로 자연스럽게 키리시마 씨가 앉았다. 응? 갑자기 나타난 병에 의문을 품고 있자, 이번에는 유이씨가 색을 알 수 없는 액체가 담긴 커다란 믹싱 볼을 가져왔다. 저거, 설마.


"후후, 무사히 역작이 완성되었다."
"그거 진짜 먹어도 괜찮은 거냐?"
"...... 하아"
"역시 유이군이네. 그럼 게임을 시작할까. "


빙글빙글. 눈앞에서 새까만 와인병이 돌아가는 것을 숨죽이고 바라본다. 서서히 속도가 멈춘 병 끝이 향한 것은... 아라키다씨였다. 다행이다.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으면, 아라키다씨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이 보였다.


"아라키다군이네, 축하해"
"여어, 축하해!"
"... 이게 축하할 일이냐"
"내가 질문하지."


첫 타자로 걸린 아라키다씨를 축하하는 동안, 진지한 표정의 유이씨가 아라키다씨를 노려본다.


"... 아까 이즈미와 눈빛으로 무슨 대화를 했지? 전부 실토해"
"뭐?"
"아, 그건 나도 궁금했어. 둘만의 비밀 신호라던가?"
"비밀 신호?"
"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렇죠, 아라키다씨!"
"......"


분명 질문을 받은 건 아라키다씨인데 왜 나까지, 당황한 나는 쓸데없는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간절히 아라키다씨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내 눈빛을 보고 잠시 아무 말 없던 아라키다씨는, 믹싱 볼을 들더니 수상한 액체를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헤에, 정말로 비밀 신호였어?"
"비밀 신호... 멋진데. 레이, 나중에 나한테도 알려줘"
"쳇... 이즈미에게 물어야겠군"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니까요!"


아라키다씨... 왜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지 않은 거예요?? 벌칙 음료를 들이켠 아라키다씨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하지만 별 신경 쓰지 않고 와인병을 돌리는 유이씨를 보며, 나는 속으로 '제발 나만 아니길!'이라고 빌고 빌었다.


"좋았어! 나다!"
"빗나갔군... 다음에는 이즈미 앞에서 멈추도록 속도를 조절해 봐야겠어"
"설마 계산하고 돌린 거예요....?"


내 말에 대답하지 않는 유이씨를 보며, 다음은 꼭 내가 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는 동안, 하토리 씨가 '이번에는 내가 질문할게'라고 말을 꺼냈다.


"키리시마 군, 이 안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뭘 그런 걸 묻는 거야, 당연히 있어!"
"하하, 시원시원하네"


키리시마 씨,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구나... 그 사실에 놀라면서도 '누굴까?'라는 생각이 자연히 들었다. 아니 잠깐, 잠깐만. 여기 있는 사람들은 나 빼고 전부 남자잖아. 그, 그럼 키리시마 씨는 설마.


"키리시마 씨, 설마, 나, 남자..."
"무슨 소리하는 거야? 레이 너야!"
"... 네!?"
"안돼, 이즈미는 못 준다!"
"아하하, 이제야 재밌네"
"........."


키리시마 씨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도 어이없는 생각이지만, 당연히 나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신 있게 답하는 키리시마 씨의 밝은 목소리에, 얼굴에 점점 열이 오른다. 어? 어??


"여기 레이를 싫어하는 녀석도 있어?"
"그렇네, 나도 좋아해. 그렇지 아라키다군?"
"... 날 끌어들이지 마"
"그럼 싫어해?"
"......."


뭐야, 그런 거였나... 상황이 파악되자, 온몸의 열이 훅 하고 날아가 버렸다. 단 번에 소란스러워진 방안. 유이씨가 나를 붙잡고 '이즈미, 너는 내 것이다'라며 소리치는 사이 하토리 씨가 돌린 와인병은, 내 앞에서 멈춰버렸다.


"드디어! 그럼 이제..."


하토리 씨, 일부러 내가 못 움직일 때 돌린 게 분명해! 그 결과를 본 유이씨가 눈을 빛내며 나를 향해 말하려 할때...키리시마 씨의 큰 목소리가 '내가 할게!'라며 그 목소리를 지워버렸다. 그 순간 안도했지만, 키리시마씨의 입에서 나온 질문에 그 생각은 바로 사라졌다.


"레이, 좋아하는 녀석 있어?"

"............"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정말 이상하지만 차라리 유이씨가 좋았을 것 같다. 조용해진 방 안에서, 8개의 눈동자가 나의 대답을 기다린다. 대답하지 못한 나는 결국, 믹싱 볼을 들고 수상한 액체를 삼켰다.

◇ ◇ ◇

"... 괜찮냐"
"아라키다씨야 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맛의 벌칙 음료는 넘길 때와 다르게 마신 후 청량감이 남아있었다. 이거, 진짜 술 맞지? 물어보고 싶어도 제조자인 유이씨는 이미 뻗어있는 상태였고, 질문에 전부 대답했지만 궁금하다며 마셔본 키리시마 씨는 화장실에 가서 돌아오지 않고 있다. 괜찮으려나... 나는 이 난장판 속에서도 한 번도 걸리지 않은 채 혼자 멀쩡한 하토리 씨를 바라보았다.


"... 이제 끝난 거 맞죠?"
"그렇네, 아쉽지만"
"그럼 가볼게요... 수고하셨습니다."
"잠깐, 방까지 데려다줄게"


몸을 일으키며 '바로 옆이니 괜찮아요'라고 하자, 하토리 씨는 사양하지 말라며 나의 담요를 집어 어깨에 걸쳐준다. 정말 매너는 좋다니까... 이런 점만 한결같은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나는 현관 쪽에 서 있는 아라키다씨에게도 '가볼게요'라며 하토리 씨와 방 밖으로 나섰다. 그런데――


"엇"
"아라키다군도 나오는 거야?"
"......"
"아, 이 애와 나를 둘만 두기 불안하니까?"
"... 그런 거 아냐"


두 사람의 대화에 할 말이 없어 묵묵히 복도를 거닐자 바로 옆인지라, 순식간에 나의 방 앞에 도착했다. 나는 '그럼 주무세요...'하고 방문을 열고 들어설 때, 하토리 씨가 무언가 떠올린 듯 말했다.


"아, 카드 키 두고와 버렸다"
"뭐?"
"그 반응은... 아라키다군도 안 가져온 것 같네."
"...... 현관 쪽에 꽂혀 있는 건 봤어."
"엇, 벨을 눌러보면..."


우리들은 다시 돌아가 문 앞의 벨을 눌러보았지만, 안에서는 그 누구도 나오지 않았다. 유이씨도 키리시마 씨도 잠든 걸까? 나는 벨소리로 깨워보려 유이씨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역시 받지 않았다.


"음... 어쩌지, 이렇게 늦은 시간에는 데스크도 응답 없을 텐데"
"하...... 진짜냐."
"그렇게 됐으니까 레이쨩, 같이 자도 될까?"
"네!?"
"복도에서 큰소리 내지 마―"
"아, 죄, 죄송합니다... 아니 그렇지만"
"뭐, 그럼 아라키다군과 라운지에서 밤이라도 새울까. 잠옷 차림이지만"
"........."


이거, 정말로 실수로 안 가져온 게 맞지?라는 의심이 스쳐 간다. 그래도 하토리 씨가 예약한 방이고, 침대도 두 개나 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을 나의 방으로 들였다.


"미안, 카드 키를 안 챙긴 건 정말 실수야. 설마 아라키다군이 나올 줄 몰랐으니까."
"......... 미안"
"아니, 아니에요... 제가 거실에서 잘 테니까, 두 분은 침실을 쓰세요."
"됐어, 내가 소파에서 잘게"
"그럴래? 그럼 나는 레이쨩 옆 침대인가."
"! 그건...... 안 돼"
"아라키다군도 침대? 좋아, 그럼 내가 레이쨩과 같이 잘게"
"왜 그런 얘기가 되나요!!"


피곤해.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대화를 듣고 있자 피곤이 몰려온다. 나는 일방적으로 '주무세요'라며 두 사람을 침실에 두고 나와 소파에 누워 담요를 덮었다. 소파도 생각보다 푹신함이 나쁘지 않아서, 나는 언제 잠든 지 모르게 푹 잠들 수 있었지만. 아침에 일어나자, 나는 아무도 없는 침실에 혼자 누워서 혼란스러워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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