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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그리고 소나기.

관계라는 것은 한 사람이 힘을 쓴다 하여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장 저울도 중간에 있는 뼈대를 축 삼아 좌우로 흔들리며 수평을 맞추고자 노력한다. 아니면 눈금을 읽는 자에게 무게의 값이나 차이점 정도를 유의미하게 제공하거나. 세상 만물이 실로 그렇다. 저울의 놋쇠그릇이 계속 눌린 채로 있다면 언젠가 녹이 슬어버릴테고. 사용감이 없는 스프링은 기름칠을 주기적으로 해주지 않는담 금방 삐걱거리며 불유쾌한 소릴 제공할 것이다. 인간 또한 그렇다. 욕심을 덜어내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면 어항 속의 재앙 조각 하나 보는 것과 다를 바가 무엇 있겠는가. 감정을 가득 담아 퍼부어내면 상대가 그릇이나 항아리지 하나의 인격체겠는가. 그리하여 우리는 눈금과 무게 추를 상시 조율하는 방법을 택하며 저울이 망가지지 않도록 보완하는 수 밖에 남지 않는다. 그러나 저울이 대체로 존재하고 규명된 모든 것에 통용되는 단 하나의 절대적인 것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인격체마다 한 개씩 놓인 것이라, (왜. 사냥꾼 한 명 마다 한 개의 재앙을 소지하는 것을 권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서로가 각자의 저울을 설명하며 차이점을 메꿔나가야 한다. 이렇게 보편적인 인과율과 형태라는 것은 타인의 다음 행동을 예측토록 돕는다. 왼 발을 뻗으면 오른 발이 앞으로 나간다. 두 번째 손가락을 뻗으면 열 여섯 번째 신경계통이 반응한다. 녹슨 향이 나면 세척을 해 몸 안쪽에 생겨나고 있을 오류를 합산해야 한다. 뭐 이렇고 저런 식으로 말이다. 종과 형태에 때란 변수나 다른 점에 대한 질문은 받지 않겠다.

아샤는 기후나 주거 환경 같은 외적인 영향에 별 토를 달지 않는 인간이었다. 사람이 적당히 먹고 잘 수 있는 환경만 성립된다면 그곳이 설령 무덤가 옆이라 하더라도 발 뻗고 잘 수 있었다. 묘비와 묘비 사이의 간격을 지키게 된 풍습으로 인해 이리저리 굴러도 부딪힐 건이 생각보다 더 적다는 사실을 아는가... 는 넘기고. 광활한 모래를 10년에 한 번씩은 길게 적셔 녹음과 생목숨을 반비례 등식 따라 조절하던 계절이 끝났다. 태양이 진 곳에 영광이 놓이게 된 것이다. (진부한 문장이야! 아샤는 생각했다.) 변화에 맞춰 집을 떠난 그는 새로운 고향을 만들어내야 했다. 그리워할 수 있는 곳. 사람이 묶여 살아 숨을 쉴 수 있는 곳. 1440번의 반복 끝에 지친 자신이 천막 안에서 곯아떨어진 채로 쉬고 있을 때. 그때 제 뺨을 만지는 사람이 안심하고 발을 딛을 수 있는 바닥재. 적당한 자극과 눈을 감으면 풍경이 연상되도록 하여 스트레스를 절감할 수 있는 주변 환경까지. 그렇게 모래와 바다, 그리고 인근의 자그마한 마을이 맞닿은 어느 축에 길다란 첨탑을 올려두었다. 하나하나 돌을 골라 주머니에 담아 쌓아올린 그곳은 하나의 성벽을 모방했다. 아니면 누군가의 고향을 본땄거나. 하여간 비유를 들자고 한다면 무엇이든 되고 또 무엇이든 될 수 없는 구조였다. 외피만 보면 몇몇 구역이 천으로 덮여있어 도통 입구가 어디인지 싶을 정도의 설계. 들어가기 위해선 벽을 기어 올라가거나, 저 맨 꼭대기의 열린 창구로 쏘아져 들어가야만 했다. 날개와 글라이더 정도로 바람을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치들에게 이는 어떠한 장애물도 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자신이 보아둔 내부와는 다른 풍경을 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메베는 감상에 젖곤 했다. 정확히는 기억에 먹혀 굳은 석상처럼 굴었다. 닿는다 하여 황금으로 만든 기적적인 손길이나 노려본다 하여 돌로 변하는 재능은 제게 없으니 필히 날씨가 그렇게 빚어둔 것이리라. 방향을 잃은 동물이 나침반 들어 확인할 생각 못하고 우회했다가 방황한다. 나무 판자 위에 찍힌 물줄기가 내놓아진 감정 같았다. 습기로 인해 마르지 않는 나무 판자를 보며 바닥이 울어 오르겠다 싶었다. 그 생각을 하면서 마른 천을 꺼내왔다. 이번 여름에 잘 덮고 자려고 맑은 태양 빛 아래에서 말려두던 것이 언 자의 몸을 감싸게 둘러준다. 아샤는 이리 오라는 가벼운 말만 뱉으며 손가락에 엉키는 물기를 털어내주었다. 아주 긴 비가 이어지리라. 겉에 묶어둔 천이 어쩌면 너무 물에 젖어 무거워진 나머지 바닥으로 떨어질 정도로. 그렇다면 보수를 해야겠어. 그 이전에 식량이 충분한 상황인지 확인도 해야 할테고. 아샤는 메베를 끌어안았다. 마룻바닥을 적시는 물방울 소리가 잦아들 때 까지.


걸음마 부터 시작하는 아이를 대하는 법은 모른다. 받아본 적 없는 것을 안다고 논하며 행위할 수는 없다. 전달자, 라는 수식은 여러 사람들이 직업이 아닌 이름 자체를 온전히 가진 채로 성인이 되고자 함을 아는 시대에서 힘을 잃었다. 연장선상으로 그가 뱉는 앎과 모름은 유의미한 가치를 지니지 않게 됐다. 모두가 새로이 구축해나가는 세상에서 기록자가 할 일은 모든 걸 담아 엮을 뿐. 역사가 소실되지 않도록 보관할 뿐 이상도 이하도 해낼 수 없었으므로. 도피성 수면이다. 수첩 위에 적힌 메베의 상태에 대한 나열은 이 한 단어를 명확히 알리고 있었다. 식사라는 열량 섭취의 행위만 다 한 후 금방 까무룩. 하고  푹신한 곳에 몸 눕혀 눈 감는 것이 도피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측 창문을 열어두면 그 날은 하루종일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닫은 후 모래나 마을 쪽 창문 열어 바람 통하게 하면 그나마 움직이며 책과 이불 사이를 유영하는 애벌레 시늉을 해댔다. 꾸물거리다 못해 날개도 축 쳐진 채로 바닥을 긁고 있으니 깃을 밤과 아침마다 빗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러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망치를 드는 것이었다. 조각가로 산 적이 없지만 방법은 알기에 언어라는 망치와 부름이란 못을 들어 상대의 머리 한 켠에 붙인 후 힘 주어 내리쳤다. 꿈을 깨트리는 것이다. 아샤는 가닥이 풀려 흩날리는 실을 뒤쫓는 사람을 말리지 않았다. 그러나 메베. 네가 잡아야 할 것이 그게 아니라 내 손임을 잊지는 말아야지. 

하루에 세 번 시간 맞춰 식사를 한다. 아침에는 과일. 점심에는 희멀건 죽이나 따뜻한, 혹은 미지근한 액체류. 저녁에는 질겅거리며 씹어 삼킬 수 있는 맛이 나는 음식. 또 식사를 한 후에 바로 누우면 속이 상한다는 것을 이유 삼아 손에 손 잡고 첨탑 아래로 내려갔다. 자기가 글라이더를 쓰기엔 허리가 찌뿌둥하니 모래라도 밟으며 움직이고 싶다고 제안했다. (몹시 일리 있는 제안이었다. 메베는 어제도 몸을 반 접은, 아주 허리에 좋지 못한 자세로 4시간 동안 책을 읽었으니까. 그러다 부러지지 않을까 싶을 때 일어나기까지 했으니...) 적당한 운동과 더불어 태양빛을 피부로 마주했다 싶을 즈음엔 개인 시간을 보내라 했다. 이 첨탑은 두 사람에 맞춰 구성된 곳인 만큼 한 사람이 자기 자신 만큼의 분량을 모조리 채우기란 까다로웠다. 합치거나 마주 들면 가벼워지는 것이 짐이라고 하지만 메베는 일을 손에서 강하게 쥔 채로 남이 보지도 못하게 했으니, 이런 번거로운 방법이 필수였다. 그러하다가 상대가 언어를  뱉고 그러며는 그것에 제 일이라는 것 마냥. 그것 만큼은 자신이 온전히 간섭해도 되는 영역인 것 마냥 (실제로도 그러했다. 그는 언어의 전달자로 평생을 살아왔으니까.) 입을 열고는 했다. 그래서 그 다음엔. 메베, 정말 그렇게 생각해? 너는 아직도 네가 그곳에 갇혀 있다고 착각을- 언어는 조각난다. 어순과 근원부터 헤아리기엔 아샤는 역사학자나 고고학자가 아니었으므로 상대의 기억에서 단편적인 형태만 유추해 질문을 쏘듯 던졌다. 

우리가 일기를 쓰고 무언갈 기록하는 것의 이유는 간단하다. 기억해야 하니까. 동시에 적음으로써 풀리거나 단정히 묶이는 것이 있다. 엉킨 지점이 어디인지 보다 명확하게 마주할 수 있다. 전달자는 1440번의 모든 기록을 기술한 사람인 만큼 모든 호위꾼의 다른점과 모든 호위꾼의 공통점에 대해 논할 수 있었다. 다른 점은 지나치게 많지만 공통점은 명확하게 한 점으로 모였다. 호위꾼을 돌아오는 법을 익혀야 했다. 떠나가서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유가 어떠한 목적성을 지닌 채로 돌아다녀야 함을 제대로 인지해야 했다. 너는 나와 함께 살아가야 하니까. 너는 그러기로 약속했어. 매번, 매해, 매 순간, 내 기대를 꺾지 않겠다고 하고선 늘 나보다 먼저. 혹은 조금 뒤늦게 눈을 감았지. 그러므로 너는, 넌-

너는 네 말을 지켜야 한다. 나와 함께 정체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일주일이 흘렀다. 아샤는 메베가 유리창에 달라붙는 물방울을 손가락으로 쫓는 걸 보며 새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곁으로 다가가 따뜻한 물이 담긴 그릇을 건네며 마시라고 종용한다. 꼬박 잘 받아 삼키는 걸 보며 한 번 발성 연습을 해보라고 하며 여러 옥타브와 방식으로 목 상태를 점검한다. 한 바퀴 돌라고 하거나, 날개를 크게 펼쳐 뒷구르기 해보라던가. 별의별 해괴한 요청까지 착실히 수행한 자는 불만을 토로하는 것 대신 바보같은 낯짝으로 아샤를 올려다보아서... 아샤는 곧바로 허리를 숙여 상대의 턱을 붙들었다. 잡아당겨 잠깐 드러난 열린 입에 제 입술을 맞댔다. 숨을 전달한다는 거창한 방식은 당연히 아니고. 이런 육체적인 수단을 통한 애정 표현을 주기엔 적당한 때라고 판단을 내렸다. 양쪽 입가와 이마까지 합해 총 네 번의 접촉 끝에 손에 들어간 힘을 풀었다. 일어나라고 타박을 준 후 새까만 타자기를 짚어 바닥을 톡톡 두드리며 이불이 깔린 층으로 이동했다. 메베의 얼빠지거나 바보 같은 말이 아래층 계단을 타고 올라온다.  비 뱉는 구름 사이의 빛을 담은 유리에 기가 차단 아샤의 얼굴이 담겼다가 상이 달라진다. 날개가 휙, 하고 지나가는 장면이 다음 씬. 그리고 컷.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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