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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54-6124

1982년 12월 7일. 아샤 마히르바는 자신의 가족을 부양해야 할 의무를 완전히 저버렸다. 아스토츠카에 영광은 가져다 두지 못할망정 돈에 눈이 멀어 조국을 배반하고 비리금을 받아 반란분자를 조국에 들였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다. 갇힐 예정이었다. 조사관 에르네스쯔는 아샤 마히르바의 집 문을 정중하게 세 번 노크한 후, 또랑한 목소리를 목청 울려 내뱉었다. 여권 통과 한 번 당 고작 다섯 장 받는 조국의 충실한 자, 아샤 마히르바는 천 장의 돈에 눈이 멀어 이 신성한 땅을 비안전구역으로 만들었다. 조국을 배반한 죄. 사상의 감염을 감춘 죄. 우리의 모든 안전을 뒤흔든 죄. 그 죄는 사실상 무기징역이며 언젠가 창살 아래에서 병에 의해서든 곪아서 내장이 뒤틀려서든 죽는 것으로 갚아야 하리라. 에르네스쯔는 자신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열리지 않는 문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신념을 저버린 자라 하더라도 이 말엔 겁이라도 먹어서 응답하기 마련이었는데-

조사관은 자물쇠 기능 따윈 없는 문 손잡이를 돌려 연다. 철문이 열린다. 문 안쪽에 마구 박혀있던 찌라시들을 보며 혀를 찬 에르네스쯔는 몇 초도 안 되어 사태를 파악한다. 장판이 뜯긴 집. 유리를 온통 점령한 사진과 미치광이 메모들. 열린 서랍과 텅 비어버린 서류 상자 따위. 황급하게 몸 돌려 나가려고 한 에르네스쯔 조사관은 문 안쪽을 먹어치운- 다닥거리게 붙은 찌라시가 아스토츠카의 빳빳한 깃털을 꺾이게 묘사한 금지 행위-감히 시도한 자가 근 40년 동안 없었던 국가 체제의 망조를 의미하는 징조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배반자를 국외나 타지로 인도한 브로커 취급을 받아 근 시일 내에 아샤 마히르바에게 예정됐던 감옥 문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것도.

чужестране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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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샤 마히르바의 인적 사항 서류에는 에이허브 아스츠토겐이라는 친척이 보호자 이름으로 올라가 있다. 반대 또한 마찬가지이다. 8년 전 병원 및 공공기관에서 서류 작성 시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보호자 란에 올릴 수 있도록 동포법-제 12조에 맞춰 서류를 작성했으며 이는 반 년 만에 승인이 됐다. 그러므로 조사관들은 불쌍한 에르네스쯔가 감옥에 영원히 처박히기 전에 아스츠토겐의 뿌리부터 추적하고자 했다. 그러다 보니 아스츠토겐이라는 성씨는 그저 조합한 글자이며, 애너그램으로 치환해도 별 의미는 나오지 않는 허상의 성씨임이 밝혀졌다. 에이허브라는 사람의 적은 아스토츠카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친척이라고 논해진 아샤 마히르바는? -마히르바 또한. 조사관들은 서류 더미에 파묻혀 절망했다. 이 말은 즉, 이렇게도 해석이 가능하다.

몇십 년 전 부터 해당 국가에 소속되어 있던 에이허브 아스츠토겐과 그의 친척인 아샤 마히르바는 아스토츠카의 참된 국민이 아니며, 그들은 모종의 방식으로 국가에 들어온 후 그곳을 고향 삼은 사람처럼 살아왔다. 직업을 가지고, 집을 얻어, 복지금을 지원받으면서. 국민이 아닌 자가 돈을 얻어 간 것이다. 이는 동포법 제 1조, 모든 아스토츠카의 사람들은 보호를 받으며 그 외의 타국 사람들은 아스토츠카의 사람에 비해 더 낮은 보호를 받아야만 한다는 규칙을 완전히 어기는 사례가 되어버린다. 에르네스쯔 조사관이 백골이 되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 당시의 모든 사람들이 끌려 나와 저 위에 달려버릴 것이다. 누가 중얼거렸다. 이게 가짜라는 사실만 밝히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왜, 생각해보게. 이 사실을 가짜로만 만들 수 있다면 허위 신고로 추적되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말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아샤는 마히르바라는 성씨와 아스츠토겐이라는 이름을 고르는 곳에 꼬박 사흘이 걸렸다. 그 사이 에이허브에겐 저어기, 직업이나 구할 수 있도록 돌아다니며 그 연륜 있는 얼굴을 보여주고 다니라고 삿대질이나 했다. 성을 만든 뒤에는 쉬웠다. 오래된 서류 관리인의 잃어버린 아내의 유품, 서류 참고인이 도심에서 놓쳐버린 어린 강아지 덩어리 등등을 대가로 '호의'를 받아냈다. 구두닦이 소년 톨튼은 아샤에게 다섯 장을 받고 관리인의 가방을 흔드는 척하다가 강아지가 놓쳐지도록 유도했으며, 한참 강박적일 정도로 꼼꼼한 서류 관리인에게 시달린 비서에게 가서 잠깐 '골탕 먹이고 싶지 않냐'라는 말로 협력을 요청했다. 아무리 폐쇄된 국가라 하더라도 그 개인의 국민성 또한 억압되진 않는다.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과 말에는 차이가 있으며, 후자의 경우엔 모두가 혀 잘릴 것을 두려워해 쉬이 뱉지 않는단 점에서- 아샤는 자유롭게 그들의 욕망을 자극할 수 있었다. 꼬박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만들어진 신분증과 재발급 날짜 서류, 신분증 잃어버린 서류나 이제서야 여권을 만들고자 하는 기타 등등의 시도들이 기록된 상담 서류 봉투는 옷장 깊은 곳, 검은 상자 안에 담겼다.

그날은 스튜를 먹는 날이었다. 어업에 종사하는 에이허브를 위해 아샤는 바닷가의 집에 주택 청약을 신청해, 석달 전부터 입주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한동안 바빠서 제대로 나오지도 못하다가, 이제야 제 친척이 제대로 일을 잡아 함께 정육점에서 고기도 사고, 마트에서 야채도 이것저것 사서 안정적인 앞날을 기원하는 의식 어쩌구 저쩌구...

"그래서 이건 도대체 뭘 하자는 시나리오지, 아샤?"

"에이허브, 너는 우리가 처한 상황이 위급하다는 걸 모르는 감이 있어."

"스튜에 왜 돼지고기랑 닭고기가 둘 다 들어가 있는 걸 보면서 물었다만."

"흠. 그건 답하기 어려운 건이야."

"요 녀석이."

"하지만 돼지고기랑 닭고기를 둘 다 넣든 말든, 이 스튜가 우리의 첫 안정적인 날을 상징한다는 사실은 변치 않아."

"또 핵심론인지 뭔지 하는 걸 들먹일 셈이군."

"난 과정을 믿지 않으니까."

고기의 잡내를 잡아주기 위해 넣은 월계수 잎을 집게로 휘적거리며 잡아 쓰레기통에 넣은 후 식사는 시작된다. 뭉개진 토마토 덩어리와 포슬포슬하게 익은 감자를 후후 불어 식힌 후 입에 넣는 순간이나 고깃덩어리를 굳이 포크로 찢어 먹는 것들. 깨작거리지 말고 넉넉하게 먹으라는 에이허브의 꾸중에도 불구하고 아샤는 한 시간 반 넘게 식사를 했으며, 그 사이 제 앞에서 떠나지 않은 에이허브에게 기어코 이 인근의 해역에서는 어떤 물고기들이 잡히는지에 대한 설명을 40분가량 연속으로 듣게 됐다. 따뜻한 물과 차가운 물이 만나는 지역에선 바람이 자주 불어 배를 고정하기가 어렵다는 바닷사람의 조언과 실상 가보니 건너편 나라와 닿을 수도 있다고 군함이 돌아다니는 것을 마주한 것들. 잘게 찢은 돼지의 뒷다리 살이 포크에 찍힌다. 흐물거린 양파조각 묻어나는 것을 입에 넣어 오물거리며, 아샤는 생각한다. 이 나라는 오래 있지 못하겠어. 으레 독이 든 항아리는 외부의 침입을 막지만, 속에서 쉬이 곪아버릴 수도 있으니.

직업을 얻을 수 있겠냐며 콧바람이나 치던 에이허브의 말 그대로, 아샤 마히르바는 이곳저곳에서 돈을 긁어왔다. 상담, 소매치기, 자잘한 이야기를 통한 대가. 어딜 가든 '사상범'이 할 법한 말은 자극적이기에 돈을 대가로 타인의 뇌에 좋은 양념을 칠 수 있다는 아샤의 말에 에이허브는 한숨이나 쉬며 그물이나 정리하러 가곤 했다. 몇몇 특수한 그물 같은 건 집 안의 창고에 따로 놓여있었으며, 그곳을 뒤적거리기 위해선 필수로 벽장 문을 열어야 했다.

벽장.

오동나무에 라벤더 줄기가 음각된 나무 벽장.

누가 봐도 잡동사니만 쌓아둔 것 같은 곳을 들추면 오랜 시간 모아온 금품과 이백 장 정도의 여유금이 모여있었다. 검소함을 주장하는 국가에서 사치는 곧 반동분자의 죄이므로 전당포에 맡기는 자살시도는 하지 않았으나 한 번 만지고 상태를 보곤 하는 에이허브였다. 보다 정확히는, 문 손잡이라곤 잠금 하나 없이 가냘프게 있어 스스로의 몸도 지킬 시도를 할 수 없는 허술한 아파트에서 '혹여나 모를 불미스러운 일'을 막기 위해 형태를 확인하며 바뀐 부분은 없나 점검하곤 했다. 이는 아샤가 함부로 시도하지 못하는 동작 중 하나였다. 아무리 젊고 영특한, 세기의 천재라 하더라도 긴 시간이 깎아 만든 정교한 조각은 단숨에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에 도달하기 위해선 몇 년이나 걸리리라. 분명 가까워지는 것 같음에도 영원히 닿지 않을 평행선의 거리감. 괜히 박탈감 느껴 투정을 부릴까 걱정되어 아샤는 에이허브가 창고 안으로 들어갈 적이면, 감히 열린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설령 녹은 쇳내음이나 기름칠의 향, 달칵이는 나무 걸쇠 소리가 실은 탄창을 열었다 닫는 음임을 알았다 하더라도. 자신이 주저하는 순간을 틈타서 결단을 내릴 수 있는이라고 아샤는 믿었다.

사상범은 어딜 가든 무서운 존재이다. 그것이 국가를 무너트릴 만한 이념을 주장하고 체제의 압박적인 형태에 대해 규탄을 하는 자가 이론으로 똘똘 뭉친 자라면, 더더욱이. 아샤는 가끔 이 세상이, 이 나라가, 이 도시와 이 마을, 옆집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에이허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문을 열어둠에도 그 호기심 대마왕-유치한 표현, 하지만 쓴 적이 한참 전인 단어-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 참 무신경하다고. 참 그 애 답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 폭력의 V도 받아내지 않을 애를 위해 각종 밀수품을 더 밑단에 쌓아두곤 했다.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말 따위가 아니다. 오롯이 행동과 동작만이 사람을 살리고 놓친다고 에이허브는 믿었다.

그 와중에, 이 발칙한 아샤는 에이허브가 몸을 돌려 나올 적이면 그물의 갈퀴가 나무에 긁히는 소리 듣고 냉큼 거실 소파에 앉아 책 읽는 척을 하곤 했으나 각자의 완전 범죄가 목격자 없이 성취되곤 했다. 에이허브는 금방 비린내 날 것임에 뻔한 손이란 핑계로 거뭇한 탄창의 기름을 비누로 문질러 닦아냈다.

이 집에 있는 비누는 늘 라벤더 향. 레몬은 비린 향을 씻어내기에 적격이나 그런 것들은 까짓것 파피요트를 조리할 때에나 보고 싶다는 아샤의 의견에 의해 기각됐다. 그리고 또, 유리창에 잘 걸린 양치 꽂이는 각자 것의 구분에 용이하니 추가하고. 이빨 관리를 열심히 해야 한다며 꽂아둔 치간칫솔에 치실까지. 유리창을 밀면 보이는 서랍엔 수건이 각진 채로 고르게 놓여있으며 가벼운 로션 정도가 자리를 잡고 있다. 오래간만에 사람이 제대로 사는 집이라고 멋대로 이것저것 모아 규칙을 만든 장소. 에이허브는 그것이 기가 찼음과 동시에 안쓰러움을 느꼈다. 애는 자란다. 어른보다 더 오래 살아간다. 한창 늙어서 끝에 선 자신과는 다른 세상을 살아갈텐데, 자신과 아샤는 같은 환경을 공유했다. 이 길은 명백하게 지저분한 길이다. 범죄적인 측면은 둘째 치더라도 사람이 빛을 보고 살아가질 않는다. 한 가지 목적에 미쳐서 그것만 파고드는 인생. 그것만큼 생을 소모하는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샤 마히르바와 에이허브 아스츠토겐은 생활 반경을 공유했다. 이 너른 대륙과 넓은 세계에서 유일한 타인으로 존재했다.


마히르바는 성실한 검사원이었다. 조국의 안전을 수호하는 가장 큰 관문 중 하나인 여권 검사소에서 일하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긴장한 기색이 없었으며, 희게 변해버린 머리카락은 어떠한 사연이 있음을 지레짐작하게끔 만들었다. 끝이 짧은 손톱이 종이를 함부로 긁지 않고 도도독, 지나가는 모습엔 그야말로 일을 하기에 최적화된 모습이라고 조사관 몇몇은 떠들어댔다. 의자가 낮은 탓에 높이를 맞추고자 직접 방석이나 도구를 가져와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에도 덧대고, 보다 확실히 작업할 수 있도록 사무실 내에 도구나 기물을 두며 최적화된 환경을 만드는 것엔 누가 올해의 감사패는 저 신입이 받게 될 거라고 했다.

우리는 유리창 안에 진열된 물건을 구경만 할 뿐, 실제로 구매하지 않는다. 보는 것이 감상이 되어 구매로 이어지는 자들은 소수의 특권자들만 누릴 수 있는 사치에 가까웠다. 그러므로 모든 조사관은 겉을 중시했고 속을 뒤집어낼 줄 몰랐다. 고작 사람 벗겨대서 앞뒤 확인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고로 마히르바가 가끔 사람들이 지나갈 적마다 탁자를 두드리는 소리가 습관이거나 종이를 헤아리는 버릇이라 생각했으며, 그 까만 피부 위에 가끔 보이곤 하던 것들이 점이라고만 여겼다. 폭신할 터인 베개가 안정적이게 마히르바를 바치고 있는 것 조차 의심하지 않았다. 조사관들은 그 모든 공간을 뒤집고 나서야 자신들에게 내려질 것은 거짓으로 인한 안온이 아닌, 진실에 의한 처벌임을 자각했다. 정보는 이러하다.

: 폭신한 쿠션 안쪽엔 원형 테이프와 암호문 해독기가 존재했다. 글자와 알파벳에 맞춰 틀을 끼워두면 진실한 문장이 드러났다. 그는 반란군과 내통 중이었다. 종이 위에 단체를 상징하는 태양빛이 박혀있었으므로 조사관들은 어디 도망갈 틈도 찾지 못한 채로- 배반자를 놓아준 협력자들로 조성됐다. 의자 아래에는 딱딱, 하고 탁자를 두드리는 음에 맞춰 기록이 되는 소형 1차형 기록기가 보존되어 있었다. 소통은 언제나 이루어지고 있었다. 등불 아래만 보더니 등불 윗면에 먼지가 쌓였을 것이라곤 감히 생각도 못 한 것이다. 그렇게 1982년 12월 19일, 근 5년간의 조사관들은 전원 구속당한 뒤 강도 높은 심문 후에, 6할 정도만 무사히 걸어나왔다. 그 중에서 3할은 또 조사관이길 포기할 정도로 심문의 후유증이 심했다.

결론. 아샤 마히르바와 에이허브 아스츠토겐은 더는 신성한 아스토츠카에 살지 않게 됐다. 그 뒤에 딸린 수많은 목숨들의 이름은 열 줄을 넘어가므로 기재를 생략하겠다.


1982년 12월 7일. 아샤 마히르바는 자신의 가족을 부양해야 할 의무를 완전히 저버렸다. 아스토츠카에 영광은 가져다 주지지 못할망정 돈에 눈이 멀어 조국을 배반하고 비리금을 받아 반란분자를 조국에 들였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다. 갇힐 예정이었다. 그러므로 12월 5일 날 에이허브에게 옆집의 마튼 부부가 자신들의 지갑에 1000장의 돈이 들어왔음을 알게 됐으므로 법적인 절차에 따라 자신들은 12월 7일에 구속될 거라고 말을 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각자 짐을 정리했다. 장판을 뜯어내는 사이엔 에이허브가 작살 정돈을 한답시고 주변에 미리 언질을 줬으며, 옷장을 털어내는 사이엔 아샤가 여유롭게 샤워를 마쳤다. 마지막 날인 만큼 때깔이라도 좋으랍시고, 윤기나게 제 몸을 정돈했다. 침대는 하나 정도만 운용하면 되는 일이니 같이 삐걱대는 스프링을 지닌 매트리스 위에 누워 숙면했다. 다음 날은 기상 시간이 1시간 정도 일렀다. 에이허브가 전날 밤에 주변에 언질 줬던 것처럼 이번엔 긴 항해를 갈 것이기에, 짐을 실어두고자 그 말라빠지고 가느다란 사무원- 아샤 또한 동행하게 된 것이다. 시간이 남은 몇몇 이웃들은 제 일처럼 배 위로 짐 나르는 것을 도왔다. 작살이나 그물 종류를 보며 참 다양하기도 하지 묻고, 아샤는 옆에서 툴툴거리듯 '굳이 여러 해역에서 물고기를 잡겠다는 건 무슨 헛생각인지 이해가 어려워.' 말을 뱉었다. 에이허브는 '네가 그러니 물렁해빠졌다 못해 목표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것'이라며 힐난했다.

이웃이 도와준 마지막 짐은 집 앞에 놓인 거대한 박스 하나였다. 거대한 것들과 다르게 약간 가볍고, 조금 움직이는 감이 있는 것을 보고 무슨 귀중품이 들었냐고 에이허브에게 누가 물었으나 그는 눈을 부라려 뜨며 무슨 헛소릴 지껄이냐고 화만 냈다. 그러고보니 아샤는? 일 갔겠지. 걘 성실하니까. 에이허브에게 인사는 했고? 한 것 같은데. 이봐, 에이허브. 자네 아샤에게 잘 다녀오겠다고 말은- 하, 참 저 늙은이! 소리 잘 들리면서 괜히 기만 세서는. 벌써 출항했네, 그래. 잘 다녀오게, 에이허브!

파도가 친다. 바람이 몰려온다. 국가에서 지정한 해역 너머로 배의 끝이 물을 갈라낸다. 이불과 방석으로 잘 지어진- 거대한 박스 안의 둥지에서 아샤는 책을 펄럭거리며 읽는다. 에이허브는 갑판에 잠깐 나서서 배의 상태를 점검하다가, 다시 돌아와 선로를 수정하고 오래된 바다 기록서를 손수 수정한다. 항법에 맞춰 안전한 노선을 탔을 즈음 점심 식사를 한다. 혹시나 모르니 첫 끼 부터 기름진 참치 부위를 꺼내 아삭아삭, 약간 언 것을 혀로 녹여 나눠먹는다. 파피요트에만 쓸 터인 레몬을 조각내서 기름진 맛을 잡으며 휴식을 만끽한다.

아스토츠카의 사람들은 영영토록 모를 것이다. 뺨에 박힌 점들은 실은 주근깨로, 빛이 잘 들지 않는 아스토츠카에선 생길 수도 없는 것. 자세히 보면 갈라진 살들은 해풍을 오래 마주해 생긴 것. 탁자를 두드려도 선명한 소리가 나는 것은 손톱을 잘 깎아서가 아니라, 하도 무언갈 쥐고 폈기를 반복했기에 손가락 끝 자체가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 이런 성질들로 인해 에이허브는 아샤가 뱃사람이 됐음을 알고 책임지고 있음을. 그 자그마한 손을 주름지고 딱딱한 곳에 끼워 맞춰도 말랑한 구석 없이 잘 맞아 떨어지는것이 마치 블럭과도 같아 둘이 쉬이 결별하지 않음을.

파도가 친다. 바람이 몰려온다. 국가가 지정한 해역 안쪽으로 배의 모터가 물을 밀어내며 전진한다. 새로운 유랑의 시간이다. 바다에서 태어난 사람 바다에서 죽지만, 육지에서 태어난 사람 또한 바다에서 죽을 수는 없기에. 만에 하나라는 가정을 두면서. 바다가 된 육지 사람에 대한 처우는 아직 결정하지 못한 순간들을 뒤로 한 채로. 한 번 더 정착을 준비한다.

추신. 조사관 에르네스쯔는 반역자와 적극적인 내통을 한 혐의로 국민 보호법 제 16항에 따라 사형을 선고받았다. 날은 12월 20일. 배정된 방 번호는 91854-6124호. 그렇게 이야기 하나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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