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치 가량의 기억 보존 결과서
결과 : 성공
개인적인 해석과 오독으로 이루어진 글임을 미리 알립니다. 커뮤니티 수위 등급 내의 글이 기술되어 있으나, 전반적으로 감정이 묻어나는 문장이 다수 있기에 열람 도중 불편함을 느끼실 경우 창을 나가는 것을 권합니다. 전달자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시대가 밝았음에도 기분이 석연치 않다. 두 번째와 서너번째의 조율사에게 이 시대를 넘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버린 알 하나는 다시 떠올라 해를 집어 먹으러 올 것이니 기록을 이어가야 한다. 책무가 끝나지 않았다. 목적은 이뤘으나, 더는 시대를 편집한다는 명명은 올바르게 남지 않는다. 1441번의 횟수에 스무하루 정도의 시간을 반복한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반복적이다 못해 학습된 것이라면 차라리 망막 안쪽과 뇌리 한 켠에 현상이 남아버리고 말지, 자잘하게 존재하는 오차와 숱한 변수들이 머리를 끄집어내다 못해 오류가 생겼다고 외치라고 독촉한다. 시끄러워! 너희 말고. 내가. 아니. 내가 여러 가지로 이루어진 존재는 아니고... 그건 대행자라고. *틈.* 아직 안 알려진 이야기였어? 그러면 말고. 잊어.
30261간의 기억 저장- 인간 형태 기록소
Mili - world. execute(me); (Key Ingredient ver.)
전달자는 자신의 신경 회로에 오작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불유쾌한 감정들이 속에서 밀려오다 가고, 한숨 한 번에 바닥으로 가라앉아버린다. 해일 일렁거리지 않는데 바다의 감각을 알고 모래가 사그라든 적 없는데 초원의 향기 알며 나비가 꽃가루 운반하는 걸 본 적 없는데 그 보드라운 촉감을 안다.
수리공의 말캉한 진흙이 손톱 사이에 끼었다가, 어김 없이 어두컴컴한 걸 모조리 먹어 치워 도자기로 남지 않게 된 순간, 손바닥 안을 찌르고 만 날카로운 면의 감각이 돋아난다. 품에 끌어안았던 직사각형 형태의 기록 장치가 점멸하며 작별이란 단어가 더는 보이지 않게 됐을 때- 홧김에 집어던졌다가 튄 파편이 이마에 떨어진 걸 떠올린다. 초롱이 으스러진 채로 남아 으스스한 소리 내긴 커녕, 턱 사이에 걸린 걸 끄집어내지도 못하고 온 몸으로 밀어 덩치를 깨우려고 한 감각이 등에 남는다. 대행자가 하나가 된단 한 번의 순간 들었던 이름을 잊지 않고자 어거지로 부품을 끌어모아 피부 위로 활자가 남게 했었고. 그래. 머리카락 가닥수로도 못 헤아릴 정도로 선장이 아이와 만나게 닳고 익숙한 길을 안내했고, 비록 하늘은 못 날았다 하더라도 날다가 추락한 사람을 품에 담은 채로 꿈을 꾸지 말아 달라고 속닥였다. 숱하게 흩어진 미래 속에서 기어코 네 낙관이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고 악담 퍼부었다가, 대뜸 어떤 날은 붙잡고 울면서 미안하다고 외쳤다. 바닷가를 가로지르는 바퀴의 소리가 마음에 들어, 100번 가량 결국 우리는 죽게 될 거라고 말 하지 못해 지니게 된 죄책감은 어떤 날 그래도 자기 말을 듣고자 하는 운전사의 얼굴을 보고 무뎌지기 시작했다. 늘 먹고 싶던 것이 달라지던 정비사는 하염없이 무리와 돌아왔고, 그러지 말아 달라고 간청까지 해본 적 있었으나 그 시간선은 생각보다 빨리 여물게 됐다. 가마의 품에 손아귀 집어넣어 생긴 흉을 고치지 않았다가 눈을 다시금 떴을 때 깔끔한 형태로 회의실에 있음을 알자마자 헛웃었다. 끊긴 세 가지 색 머리 끈 쥐고 뛰쳐나갔다가 빗발치는 총알에 다가가지도 못한 채로 마지막 조율을 눈꺼풀 안에 새기고, 미각을 잃은 자가 일어나지도 못한 채로 뭐라 중얼거리던 것을 귓바퀴에 한 땀 한 땀 수놓는다.
그래 오작동이다. 전달자는 이 모든 것이 오늘 일어난 것 처럼 느껴졌으니까. 몇 번이고 타자기를 쥐었다 놓으며 기록 할 상황을 살핀다. '다음'으로 기록을 넘긴다고 레버를 돌려도 아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파르르 떨리는 손은 공포로 인한 것이 아니라 익숙한 통증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 감히 서술하는 거지만, 이렇게 문장을 기워넣어 내 이야기 하고 있음에도 어떤 이유로, 어떤 맥락으로, 어떤 방향으로 내 숨이 이어지는지 당최 이해를 하지 못하겠기에
그래서,
그렇게 되어서,
청년은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갔다.
그에겐 집도 없고, 집도 없고, 있는 것은 활자 뿐이었으니,
이젠 무용해진 것을 붙잡고 있을 마음도, 기력도, 여유도, 일말의 믿음도 없었다.
청년은 쉰다.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눈을 감은 채로. 다닥, 다다닥, 활자를 천천히 엮어가고, 시럽을 조금씩 나눠 혀 끝에 붙인다. 달큰함이 익숙하고 낯설다. 발바닥을 문지르는 보송한 천의 감각이 기분 좋다. 포근하고, 어떤 따가운 것도 살갗을 아프게 하지 않을 것만 같다. 열린 천막 안으로 들어오는 서늘한 바람엔 모래가 몇 없다. 코 끝이 간질거리지 않으니, 기침 해서 적던 것을 날려버릴 일도 없다. 평화의 시대라고 하던가? 마구잡이로 떠드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달라질 거라고 외친다. 그러나 버섯 양식장만 남은 곳은 식량을 채워야 한다. 정확히는, 잃어버린 고향부터 되찾아 새롭게 쓰레기장의 이름을 되찾아야 하겠지.
살랑, 살랑, 살랑... 손가락 끝에 감각이 닿는다. 태초에 태양에게 이곳을 덮어내려고 한 자의 이름을 물어볼 걸 그랬나. 호명된다. 그래. 나 여기 있어. 눈? 그건 뜨고 싶지 않아. 외부와의 충격과 자극에서 가장 벗어나기 쉬운 건 암흑 속에 있는 거야. 그래. 검정에 차라리 있고 싶네. 광산의 입 안은 너무 어두워. 대행자의 눈을 빌리겠다고 하면 난 정말 혼나게 될 걸. 탐사자의 차체 아래? 거긴 정비사 전용 자리지. 아. 이건 지금 기록된 게 아니야? 그래. 그러면...
도대체 언제 부터가 내 기억인데?
... 모르겠어?
그래.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그러니 이만 나가줘.
잘 시간이야. 모두가 힘냈지. 나 하나 즈음 빠진다고 해서 큰일은 안 생겨.
기록하는 사람은, 슬슬 기록의 뒤안길로 빠질 차례지. 당연한 섭리야. 이건 '당위'라고...
손길이 닿는다. 누구의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참 다정했고, 따스했고, -어쩌면 비늘 감각이거나 차갑거나, 인간이 아닌 금속 형태였을 지도 모른다.-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투정 부리듯 말 속닥거렸다. 금방 일어날 거야. 그러니까 오늘은 쉬게 해줘. 알아. 안다니까는. 구축도 하고. 응? 응. 잔소리도 좀 할 거야. 여행도 가야 해. 집도 만들어야 하고. 아, 이름도 지어줘야 하지. 할 거 많... ... 그래. 난 내일을 살 거야.
이제 한 번 만 더 방해하기만 해봐. 물어버릴 거야.
그래. 잘 자, 전달자.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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