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남현 약속
마법사의 약속 피가로x아키라♂ 2차 연성 / 썰
2022년 10월, 입덕 초기에 1부 스토리와 피가로 가르시아 친애스만 읽고 쓴 글을 문장만 조금 다듬은 것이라서 원작 설정과 어긋나는 부분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거대한 재앙과의 싸움이 끝나고 원래 세계로 돌아오게 된 아키라가 마법사들과의 기억을 잊은 설정입니다.
잠에서 일어난 마사키 아키라는 낯선 천장을 보고 깜짝 놀랐어. 황급히 몸을 일으켰더니 옆에 있던 간호사가 깜짝 놀랐지. 미안하다 사과할 겨를도 없이 병실 안으로 사람들이 몰아닥쳤어. 그들의 말에 따르면 무려 1년이나 흘렀대. 아키라에겐 그저 하룻밤 지났을 뿐인데 말이야.
경찰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내내 아키라는 어안이 벙벙하기만 했어. 고양이에게 줄 밥을 사고 돌아가는 길이었고 유달리 큰 달을 봤고 엘리베이터에서 마지막 기억이 끊겼다. 이 말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지.
1년 동안 실종됐던 사람이 갑자기 돌아왔다는 소식은 아키라를 가만두지 않았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아키라를 두고 세상은 떠들썩했지. 심지어 본인도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기억 못하고 있으니 별별 이야기가 돌았어. 자작극 아니냐. 실종된 동안 겪은 일들을 자기 방어를 위해 뇌가 지워버린 거 아니냐 등등. 어찌나 심한지 아키라가 다칠 게 걱정된 가족들이 당장 짐 싸들고 돌아오라 성화여서 아키라는 자취방을 정리하고 본가로 내려가게 됐어.
본가로 돌아온 뒤에는 가족들의 걱정에 마음 편히 외출하는 일도 어려워졌지. 아키라에겐 기억이 없지만 1년 동안 실종됐다고 하니 가족들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해. 아키라도 가족들의 걱정하는 마음을 머리로는 이해했어. 하지만 그 1년 동안의 기억이 누군가 깔끔하게 오려낸 것처럼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아키라한테는 꽤나 불편한 상황이었어.
예전 같았으면 일상적으로 지나갔을 일들에 주변 사람들이 모두 과잉반응을 보였지. 잠을 설쳐서 컨디션이 조금만 나빠져도 주변인들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아키라를 달래려고 노력했어.
아키라는 소중한 사람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기억을 되찾고 싶어졌어. 기억을 찾으려 노력하는 아키라를 본 가족들은 얼마나 끔찍했으면 잊어버렸겠냐며 모르는 게 낫다고 말렸지만 아키라는 계속 모르는 상태로 있고 싶지 않았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으면서 어쩐지 계속 '소중한 기억'을 잊어버렸다는 마음이 들었거든.
그러나 가족들에 의해 타의적 은둔형 외톨이가 된 아키라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 가족들 눈을 피해 밖에 나가는 일부터 불가능했으니까. 그래서 자신의 소지품 중 가지고 있던 기억에 없는 물건들부터 살피기로 했어. 딱 좋은 게 있었지. 사람들에게 발견됐을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아름다운 푸른 빛깔을 띈 회색 돌이.
아키라는 푸른 빛깔을 띈 회색 돌을 찬찬히 구경했어. 경찰 조사 결과 보석이 아니라고 밝혀졌지만 일반 돌이라고 보기엔 너무 예쁘게 생긴 돌이었어. 나는 이걸 어디에서 얻은 걸까. 고양이들에게 줄 간식을 사고 달 사진을 찍은 뒤에 엘리베이터에 탄 기억까진 뚜렷해. 하지만 돌을 주운 기억은 어디에도 없었어.
이런 아름다운 돌을 주웠다면 분명히 기억에 남을 텐데 천천히 기억을 되짚어봐도 떠오르는 게 하나도 없었어. 그래서 아키라는 이 돌에 기억을 찾을 실마리가 있을 거라고 확신했어. 깨끗하게 지워진 1년 동안의 기억과 연관있을 테니까.
그렇게 믿고 최면 치료도 꾸준히 받아봤지만 야속하게도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어. 영원히 이 돌의 행방을 알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절로 한숨이 나왔지. 아키라는 한숨을 푹 내쉬고 손에 쥐고 있던 돌을 가슴 위에 올려놓았어.
나는 왜 이 돌에 집착하는 걸까? 잃어버린 기억과 유일하게 연관있어보이는 매개체라서? 아무도 답 해줄 수 없을 생각을 하며 아키라는 돌을 손가락으로 살살 쓰다듬었어. 그간의 경험으로 쉽게 깨지는 성질이 아니라는 걸 아는데도 어쩐지 이 돌을 만지고 있을 때면 소중하게 대해야 된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매워서 험하게 대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
경찰이 조사하겠다고 가져갔을 때는 자기도 모르게 빼앗아가지 말라고 외쳤을 정도로 아키라는 이 돌에 집착하고 있었어.
정말 미친 사람이나 할 법한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키라는 가슴 위에 돌을 올려놓고 이따금 말을 걸곤 했어. 너는 어디에서 왔어? 왜 내 곁에 있어? 가족들이 돌을 상대로 혼잣말을 하는 아키라를 보며 걱정하는 걸 아는데도 자기도 모르게 말을 걸곤 했어. 하지만 돌이 대답을 할 수 있을리 없잖아? 답은 돌아오지 않고 방은 적막하기만 했어. 그래도 아키라는 계속 말을 걸었지.
돌에게 말을 걸고 있으면 어쩐지 마음이 따듯해졌거든.
사실 말을 걸지 않아도 가슴 위에 돌을 올려놓고 있는 것만으로도 불안하던 마음이 안정됐어. 심장 위에 돌을 놓고 있으면 본인의 심장 소리가 돌에게 옮겨붙을지도 모른다는 다소 허무맹랑한 생각도 들었지. 체온이 옮겨붙어 약간 따듯해진 돌을 손에 쥘 때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외로움과 공허감이 해소되는 것도 좋았어.
그러나 가족들이 보기엔 영 미친 사람이었어. 그래서 가족들은 아키라를 밖으로 끌어냈어. 예전에는 밖에 나갔다가 또 없어질까봐 걱정이라며 옭아매놓고 이렇게 놔두면 자식이 미쳐버릴지도, 아니 이미 미쳤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한 모양이었지. 아키라는 이리저리 휘둘리는 상황이 썩 달갑지 않았지만 집에만 있는 건 답답했던 차라 돌과 함께 산책을 다니며 점차 바깥 출입을 늘렸어.
예전에는 남자 혼자 들어가기엔 문턱이 높아보인다는 이유로 발걸음을 돌렸을 디저트 가게에 들어가 홍차와 디저트를 즐기는 시간이 늘었어. 노트에 필기할 일이 많이 줄어들어 잘 들리지 않게 된 문방구를 기웃거리다가 무심코 다이어리 매대에 진열된 판타지 디자인 다이어리를 구매해버리는 일도 생겼지.
전부 예전의 아키라였으면 하지 않았을 일들이었어. 하지만 낯설지 않았지. 오히려 익숙하고 좋았어.
꼭 기억에는 남지 못한 1년의 시간이 영향력을 과시하는 것 같았어. 잊지 말라고 호소하는 것처럼.
그렇게 지내기를 반년. 아키라는 갑자기 바다에 가고 싶어졌어. 아니 가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어. 그래서 가족들에게 말하지도 않고 밤 늦은 시간에 기차를 탔어. 굉장히 충동적인 행동이었지. 덕분에 아키라의 수중에 있는 건 카드와 돌뿐이었어. 이래선 죽으러 간다고 가족들이 오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지. 하지만 아키라는 돌아가지 않았어. 어쩐지 오늘이 아니면 안될 것 같았거든.
아무도 없는 적막한 바다를 구경하며 달빛에 의지해 모래사장을 걷던 아키라는 충동적으로 바다 안으로 걸어 들어갔어. 겨울에 가까운 계절에 밤이라는 특성이 더해진 바닷물은 몹시 차가웠어. 오금이 저릴 정도였지. 그래도 아키라는 추위를 참고 묵묵히 계속 걸었어. 그러나 바닷물이 아키라를 밀어내는 것처럼 일정 구간 이상으로는 나아갈 수 없었어. 하지만 아키라는 포기하지 않았어. 바다 안으로 들어가면 뭔가 알 수 있을 것 같았어.
떨어진 체온에 아키라의 몸이 이상증세를 보일 때쯤 아키라의 억지를 이기지 못하겠다는 듯 물의 저항력이 약해졌지. 동시에 아키라의 셔츠 주머니에 소중하게 들어있던 돌이 물에 풍덩 빠졌어. 아키라는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고 상체는 물에 담구지도 않았는데도 돌이 풍덩 빠지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
아키라는 추위를 무시하고 돌을 찾았어. 돌은 반짝반짝 달빛을 받으며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지. 아키라는 서둘러 돌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어. 하지만 야속하게도 돌은 아키라의 손에 잡혀주지 않았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아키라는 본인의 몸이 이제 수면 밖에선 보이지 않는 것도 모른 채 계속 돌을 쫓아 물 안으로 들어갔어.
겨우 돌을 찾아내 손에 쥐었지만 숨이 모자라 의식이 아득해졌지. 의식이 흐려져서 착각한걸까? 아키라의 손에는 돌 밖에 없는데 꼭 누가 손을 맞잡고 있는 것 같았어.
"현자님은 정말… 막무가내구나."
분명 처음 듣는데도 익숙한 목소리가 작게 속삭이는 말에 아키라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어.
"피가로."
아키라는 모르는 이름을 입으로 뱉었어. 아키라의 반응에 눈 앞의 남자는 다정하게 웃으면서 아키라의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치며 입을 맞췄어. 호흡을 옮겨준 걸까? 숨을 쉬는 게 편해졌지. 아키라는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남자는 매정하게도 입맞춤이 끝나자마자 아키라를 물 밖으로 내보냈어.
“나와의 약속을 지켜줘.”
까만 바다 바닥에 홀로 남은 남자는 아키라가 물 위로 사라지는 걸 보며 속삭였어.
모래사장 위에서 숨을 몰아쉬며 기침을 하던 아키라는 정신이 들자마자 손을 살폈어. 다행히 돌은 아키라의 손에 있었지.
다시 한 번 피가로라는 이름의 남자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을 원동력으로 아키라는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재촉했어. 몇 번이고 넘어져가며 아키라는 바다를 향해 달렸어. 그러나 겨우 닿은 바다는 아키라가 들어오는 걸 허락하지 않았어. 아키라가 물에 들어올 수 없도록 상냥하게 밀어내던 전과 달리 이젠 아키라가 물에 닿는 걸 아예 허락하지 않았어.
왈칵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한채로 아키라는 원망을 내뱉었어. 스스로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
야속한 바다는 대답을 돌려주지 않았어. 그저 환청처럼 약속이란 말만 반복할 뿐. 사실 바다가 말한 것도 아닐 거야. 아키라가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겠지.
'현자님, 내가 죽으면 나를 먹어주지 않을래?'
거대한 재앙과의 싸움 전날 밤, 피가로와 침대에서 나눈 이야기가 생각난 아키라는 울면서 돌을 입에 넣고 삼켰어.
그게 그에게 아키라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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