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청 - 역행자 확장판- 돈·시간·운명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는 7단계 인생 공략집

20240226~🚫

희대의 똥책을 소개한다.

이 책은 부정할 수 없는 개똥책이지만 내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부분도 있으므로 리뷰를 남긴다.

참고로 나는 개똥책을 완독하는 취미는 없어서 도중에 포기했고, 독서를 시작한 2월 26일로부터 6일 뒤인 3월 3일에 이 책을 다시 알라딘의 품에 돌려주었다. 합정점에서 만난 주인은 널 버렸으나 천호점에서 만날 주인은 널 마음에 들어하길 바란다. 아니 사실 영원히 안 팔려서 한 명의 희생자라도 줄기를 희망한다.

이 책을 산 경위는 다음과 같다. 2월 초중순 무렵부터 내 유튜브 알고리즘에 민음사TV가 출몰하기 시작했다. 해외문학팀 김민경님(내가 상관도 없는 남의 회사 직원 이름까지 알다니 세상 참 모를 일이다)의 책 추천 쇼츠를 시작으로 아주 오랜만에 ‘책’이라는 것에 대한 관심이 싹튼 것이다. 이 이유대로라면 나는 김민경님이 추천한 책을 구매하는 게 당연했으나, 어째서인지 그런 멀쩡한 선택지를 버리고 베스트셀러 랭킹이라는 극악무도한 자본주의 마케팅의 결실과 마주하고 있었다.

역행자라는 책이 내 시선을 끈 지점은 첫째가 북커버, 둘째는 돈•시간•운명이라는 단어들이였다. 자청(자수성가 청년의 줄임말이랜다)이라는 인간은 우선 스스로가 아닌 북커버 디자이너와 마케터에게 감사할 필요가 있다. 마침 내게 돈도 시간도 좋은 운명도 없었다는 사실에는 굳이 감사하지 않아도 된다.

어쨋든 상기한 이유들로 역행자라는 책은 며칠간 내 알라딘 장바구니에 있었다. 물론 다른 좋은 책들도 같이 들어있었다. 그것도 꽤 많이. 그럼에도 하필 이 책을 구매한 건 단지 2월 26일에 내 몸 상태가 안 좋았고, 파묘를 보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알라딘 합정점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내 알라딘 장바구니에 있던 20권 내외의 책을 전부 검색했고, 그 중 다섯 권을 발견해 구매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냥, 어쩌다 들어간 알라딘 매장에 이 책이 있어버렸다고. 그 뿐이였다.

나는 영화를 볼 때 그 어떤 사전 정보도 접하지 않은 백지 상태에서 감상을 하는 주의이므로, 책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포일러가 끔찍하게 싫기 때문이였다. 여기서 이 책이 내게 준 유일한 긍정적 영향을 발표한다. 책을 살 땐 잘 알아보고 사자. 책은 영화와 다르다.

영화는 개똥영화를 보더라도 적당히 아늑한 공간에서 두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권리로써 만 얼마 하는 티켓값의 가치를 다했다고 합리화가 가능하다. 심지어 나는 유플러스 VIP 혜택으로 달에 한 번, 연에 총 세 번 공짜로 CGV를 이용하고 있으니(1+1 혜택까지 합하면 총 12회가 된다) 더더욱 아쉬울 것이 없다. 영화가 쓰레기라도 나와서 잊으면 된다. 곧장 잊지는 못할테니 그 날 하루는 영화에 대한 욕을 하겠지만 좀 지나면 기억도 잘 안 날 것이다.

하지만 책을 잘못 사서, 개똥책을 사버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선 내 좁은 원룸에 142*195mm 판형의 400페이지, 600그램짜리 쓰레기가 자리를 잡게 된다. 내가 다달이 내는 임대료는 이렇게 내 의지와 상관없는 쓰레기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로 막심한 손해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집에 있는 동안, 때때로 집 밖에 있을 때에도 순간순간 내 집 안에서 약 66만 세제곱밀리미터의 공간을 차지한 그 쓰레기의 존재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개똥책은 한 명의 사람에게 공간적, 시간적 손해를 안겨주는 극악무도한 존재라는 사실을 주장한다.

그래서, 이 책이 왜 개똥쓰레기책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안할 수 없다. 말했다시피 나는 이 책을 읽기를 도중에 그만뒀고, 내가 읽지 않은 후반부에 굉장하고 위대한 내용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무시하고, 내가 읽은 절반 가량의 내용에 대해서만 리뷰한다.

자청이라는 사람은 본인을 자수성가 청년으로 칭한다. 학창시절 보잘 것 없던 자신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과정에 대해 쓴 책이다. 좋게 말하면 그렇고. 내가 이 책을 요약한다면, ‘루저찐따새끼였던 내가 이세계에선 몸짱위너백만장자인기남?!’ 이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글쓴이(작가라고 불러주기 아니꼬워서 쓰는 호칭이 맞다)의 남초커뮤적 성향이 짙은 글이 역했고,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말(책을 읽어라, 운동을 해라)을 하면서 자신의 말에 동의하지 못하는 인간은 자의식 과잉이라고 몰아가는 가스라이팅이 역했고, 자의식을 버리라는 주제에 글 전체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그의 자의식이 역했다. 실제로 몇몇 서점 사이트의 후기에는 나와 비슷한 의견들이 있기도 했다.

나는 찐따루저였지만 책 많이 읽고 성공했어~ 내 말대로 해야 너도 성공함~ 나처럼 성공하고 싶으면 자의식 버리고 내 말 들어야됨~ 자의식 안버려? 그래서 니가 성공 못하는거~ ㅋㅋ.

우습고 역겨운 책이였다.

실제로 내가 이 책을 읽은 기간은 이틀 내지 사흘(2월 26일이 끝나기 몇 분 전에 독서를 시작했으므로) 정도였고, 알라딘 천호점 직원에게 이 책을 넘겨준 3월 3일 전까지는 이 쓰레기 같은 책을 샀다는 후회, 검색조차 하지 않고, 그래서 글쓴이에 대한 도덕적 논란과 불호후기의 존재에 대해 무지한 채 결제해버린 스스로에 대한 자책을 시도때도 없이 느꼈다.

이 책이 내게 남겨준 건 7,700원의 알라딘 예치금과 3월 3일 천호점에서 쓸 수 있는 2,000원 할인쿠폰으로 산 조지 오웰의 책 두 권 및 박 회계사의 재무제표 분석법, 그리고 상기한 교훈이다.

부디 다른 사람들은 나 같은 짓을 범하지 않길… 똥책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혜안을 갖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