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7 스카이폴

20240317

여 모 여인(a.k.a 하나)의 추천 아닌 추천으로 평생 관심 없던 시리즈 영화에 입문했다.

사실 입문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다. 내가 이 뒤에 007 시리즈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어야 입문이 아닌가?

007 카지노로얄도 추천을 받았으니 언젠가 볼 수도 있지만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 그래도 어쨌든 입문이라고 말하겠다.

내가 가지고 있던 007 스카이폴에 대한 사전 지식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음)

007 시리즈의 주인공은 제임스 본드고 개짱멋있는 첩보요원이다.

내가 고등학교 때 너무나 사랑하던 아티스트 중 한 명인 아델의 노래가 영화에 사용됐다.

김연아 쇼트 프로그램에서 음악을 들었다. (그 전에도 땅다당당~을 이곳저곳에서 듣긴 했지만 007 테마라고 인식한 건 이때임)

여 여인은 어떻게 아델의 스카이폴을 좋아하면서 영화 스카이폴을 안 볼 수 있냐며 경악했다.

007 영화의 정수라는 말에… 그리고 쿠팡플레이에 있다는 말에(이 말의 영향이 80% 정도 됐다. 결제한 이상 본전은 뽑아야 했기에) 보기로 결심했다.

시작하자마자 제임스 본드는 죽었다. 정확히는 보통이라면 죽었어야 할 상황을 겪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선율의 시작… 이 영화에서 단 두 번 들을 수 있는(적어도 내가 캐치한 횟수는 그렇다) 스카이폴의 인트로가 나왔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음악이지만 여전히 좋았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장면과 어울리기도 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제임스 본드는 살았고, 어딘지 모를 섬에서 누군지 모를 여자와 섹스한다(이 남자는 영화 초반 한 시간 동안 세 명의 여자와 세 번의 섹스를 한다). 술을 마시고, 뭔진 몰라도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여러모로 낡고 닳은 중년 남성이 망가지는 과정으로 그려졌다. 그런 와중에 MI6 본부가 테러를 당하고 블라블라… 갑자기 런던으로 돌아가 ‘제가 뭔가 보여드림’을 시전한다.

정당하지 않은 절차를 통해 다시 요원으로 복귀한 제임스 본드는 나쁜놈을 잡으러 상하이로 떠난다. 왜 상하이일까. 아무래도 감독은 아시아에 대한 환상?이 있는 듯 하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상하이, 마카오는 서양 영화에서 주로 보여지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대충 화려하고, 뭔가 향락적인 분위기? 겉으론 화려하지만 뒤는 구린, 뭐 그런 흔한 모습을 답습한다. 실제로 그러한 내용이 영화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보면 안다. 배경은 상하이고 마카오가 되지만 동양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부유해 보이는 인물들은 서양인이고, 인상에 남는 동양인 여성들은 금발에 일자뱅 칼단발 헤어스타일을 하곤 카지노에서 칩을 교환하고, 칵테일을 말고 있었다. 참 웃기더라.

어쨌든 그러는 동안 제임스 본드는 직장동료(이브 머니페니. 내가 놓친 줄 알았는데 이름을 영화 다 끝날 때가 되어서야 알려줬다)와 섹스하고, 그 다음날 처음 만난, 나쁜놈 대빵의 여자랑도 섹스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 세 번의 섹스는 영화 시작 후 1시간 9분 이내에 이루어졌다. 첩보요원이 이렇게 여자를 밝혀도 되나 싶었다.

나쁜놈 대빵의 여자를 따라 나쁜놈 대빵의 나와바리에 입성한 제임스 본드… 결국 네 번의 섹스까지 해버리나 싶었으나 섹스는 결렬되고 나쁜놈의 여자는 죽어버린다. 이게 다 지 때문인데 눈 하나 깜짝 안하더라. 나만 부들거렸던 것 같다. 이런걸 냉장고 속의 여자라고 하지 않나…

여차저차 나쁜놈 대빵(이제 이 영화에 나쁜놈은 이놈 뿐이므로 그냥 나쁜놈이라 하겠다)은 잡히지만… 사실 그건 다 나쁜놈의 계획이었지롱? 탈출할거지롱? 목표는 MI6 대빵이지롱? 어머니 아들이 지금 만나러 갑니다 ㅋㅋ 딱대~ 라는 전개로 흘러간다. 여기서 MI6의 대빵은 장년의 여성으로 에이전트 한 명의 목숨보다는 (에이전트 다수의 목숨이 달린)임무의 성공을 우선으로 하는, 대쪽같은 전체주의자의 면모를 가진 사람이다. 그의 명령으로 제임스 본드가 죽을 고비를 겪었으나, 제임스 본드가 안미안하세요?ㅋ라고 해도 어쩔티비?를 실천하는 모습이 내게 큰 감명을 주었다. 나쁜놈은 굉장한 마더콤으로 이 국장을 엄마라 부르며 본인의 타겟으로 삼는다. 엄마가 내 인생을 망쳤다나 뭐라나, 참으로 남자다운 사유가 아닐 수 없다.

탈출한 나쁜놈이 엄마의 사회생활에 난입해서 쑥대밭을 만들고, 쑥대밭에서 탈출한 제임스 본드와 국장은 ‘나쁜놈 꽁무니 쫓기’에서 ‘나쁜놈 유인하기’로 작전을 변경한다. 이 대목에서 두 사람의 대화가 인상깊다. -내가 미끼냐? -그럼 안됨? -알빠노. 간결히 표현하자면 이렇다. 그렇게 둘은 개간지나는(하지만 승차감은 구린) 애스턴 마틴을 끌고 스코틀랜드로 떠난다. 이거 가능한가? 런던에서 스코틀랜드까지 얼마나 걸리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상식으로는 한반도 종단보다 멀지 않을까 싶었다.

스코틀랜드에서 헤밍위이를 닮은 할아버지가 샷건을 장착한 채 파티에 합류하고, 나쁜놈의 용병부대가 몰려오며 영화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인간적으로 수는 맞춰서 싸워야 하지 않나. 자기 편 우르르 끌고온 나쁜놈의 가오가 결국 사망선고를 받는 순간이었다. 심지어 나쁜놈은 선발대에 있지도 않다. 죽여도 죽여도 튀어나오는 선발대를 처치했나? 싶은 순간, 무장헬기가 등장한다. 사망한 가오를 관짝에서 꺼내 두 번 죽였다. 그리고 헬기에서 또다시 나쁜놈의 졸개들이 쏟아져 나왔다. 메탈슬러그 같았다. 그렇게 가오는 세 번의 사망을 맞이했다.

국장님과 헤밍웨이 할아버지는 먼저 뒷길로 빠져나오고, 저러다 나쁜놈한테 다 들키겠네… 하는 순간에 역시나 들키고 만다. 하지만 우리의 제임스 본드. 두 사람의 엄호에 돌입하지만… 그 앞을 가로막은 것은 이게 몇 센티나 될지 의심스러운 얼음판이다. 몇 걸음 떼니 와작 거리는게 불안하다 싶었는데, 기어코 그 위에 두 명이 올라가더니 총까지 갈기며 제임스 본드의 2차 입수가 시작된다. 내 기억으로는 이때 스카이폴(음악)이 깔렸던 것 같다. 제임스 본드가 나쁜놈 따까리에게 논개 작전을 펼쳤구나! 라고 생각한 순간 보인 수중의 모습은, 아뿔싸 따까리가 제임스 본드에게 백초크를 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굳세어라 제임스 본드. 곧이어 제임스 본드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고 비엘만 스파이럴 같은 자세로 따까리에게 복수를 마친다.

그러는 사이 제임스 본드의 홈그라운드(말그대로 Home이다. 마당에는 그의 부모님의 묘비가 있다)에 진입하는 나쁜놈. 국장에게 다가서는 나쁜놈을 제지하려던 헤밍웨이 할아버지에게 꾸짖을 탕을 시전한다. 할아버지를 꿔다놓은 보릿자루로 만들어놓고는 마더콤을 마음껏 발산한다. 엄마 다쳤어? 누가 그랬어(니 따까리다)? 흑흑 엄마 미워 그러니까 나랑 같이 죽자. 이 역시 참으로 남자다운 모습이다.

죽여줘 잉잉 하는 나쁜놈은 갑자기 아가리를 쩍 벌리며 그토록 사랑하는 엄마에게서 떨어진다. 우리의 제임스 본드가 수렁의 바스티안 평타를 날린 것이다. 가오는 없지만 목숨은 질긴 나쁜놈은 등짝에 칼을 심어놓고도 몸을 돌려 몇 걸음이나 걷는 좀비 같은 행적을 뽐내며 수명을 다한다. 그리고 엄마도 결국 아들을 따라간다(두 사람은 모자 관계가 아니다). 중간에 국장님이 너무 좋은데, 서사를 위해 죽는 편이 아름다울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진짜 죽으니 ‘않되’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러쿵저러쿵, 나쁜놈은 죽었고 상사도 죽었다. 제임스 본드에게는 새 상사가 생겼고, 테스트 모든 항목 불합격이라는 과거는 지워진 채 완벽하게 복직한다.

내게 있어 007 스카이폴이 가지는 몇 개의 의미가 있다. 스카이폴(음악)에 대한 더 깊은 이해, 새로산 에어팟 맥스의 영화 음향 표현 확인, 찐따남(여기선 벤 휘쇼가 맡은 Q를 지칭한다)은 아름답다는 진리의 확고화.

이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 듯 했던 여 여인의 말처럼 영화 자체는 수작이였다. 음악이 아름다웠고 벤 휘쇼가 아름다웠다. 제임스 본드가 1시간 9분 만에 세 명의 여자와 떡을 치지만 않았다면 이 영화의 거의 모든 부분이 마음에 들었을 것 같다.

이미 여 여인은 내가 이 영화의 중반부를 볼 때부터 카톡으로 나의 실시간 반응을 지켜봤지만, 글을 좋아하는 여자니까 이런 후기를 남겨도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최근에 책, 영화에 의식적으로 관심을 가지면서 리뷰글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고, 007 스카이폴은 내게 좋은 계기가 되어주었다. 이런 식으로 다른 책과 영화에 대한 기록도 차근차근 남겨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