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

야마타이 사냥꾼 0

조각조각 by 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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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이 찢어진 사이로 기어이 몸을 욱여넣어 빠져나가는 짐승을 보면서 타이치는 생각했다. 분명 녀석에게 혼이 날 거라고. 넘어진 몸을 일으켜 짐승을 따라가면서도 타이치는 자신의 이름을 호되게 부를 목소리에 대해 생각했다. 타이치, 똑바로 안 할래? 그리고 또 뭐라고 할까. 매번 이런 식일 거냐고 단순하게 추궁 할까, 아니면 늘 하던 대로 힘이 있어 봤자 쓸 줄 모르냐고 비아냥거릴까.

거리의 사람들이 짐승을 보고 지르는 비명에 생각은 오래 가지 못한다. 다리에 힘을 주고 순식간에 땅을 박차고 달려들면서 너덜너덜한 다리 쪽을 노렸다. 첫 공격이 빗나가는 바람에 완전히 끊어 놓지 못한 다리다. 재생력이 뛰어나지 않아서 그래도 적당히 발을 묶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질긴 성격이었는지 기어이 도망을 쳤다. 예상대로 반응이 느린 다리에 날을 박아 넣자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이 짐승에게서 새어나왔다. 짐승이 발을 딛고 선 땅은 벌써 검게 오염되고 있었고 공포에 질려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다. 타이치는 제게 휘둘러지는 발길을 뛰어올라 피하면서 오염이 번지는 속도를 가늠했다. 덩치가 크지 않고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이대로 더 피해 없이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다시 틈으로 밀어 넣고 그 안에서 끝내는 것이지만 혼자서 그런 식의 몰이사냥은 무리였다.

무차별적으로 휘둘러 가해지는 공격을 받아칠 때마다 피 같은 검은 것이 얼굴에 튀어 따끔거렸다. 잘린 다리에서 끈적하게 쏟아지는 것이 땅에 닿을 때마다 악취가 났다. 악취가 코를 찌르고 검은 오염이 번지는 것이 눈에 보일 때마다 마음이 급해졌다. 사냥꾼인 자신과 다르게 사람들은 오염에 닿으면 혼부터 썩는다. 오염의 경계에서 넘어지는 사람을 보면서 타이치는 단숨에 짐승의 목을 자르기 위해 몸을 던졌다. 그리고 날에 닿는 살덩이 같은 것을 느끼면서 그 경계에 푸른 결정들이 박히는 것을 본다.

목이 잘리면서 뿜어져 나오던 검은 액체가 순식간에 푸르게 얼었다가 물처럼 맑게 녹아 얼굴 위로 떨어졌다. 타이치가 젖은 머리와 얼굴을 손으로 털어내며 돌아본 곳에는 야마토가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한 손은 유려하게 휘두르며 오염과 땅의 경계 사이에 결정을 박아 넣고 있었다.

“위험하게 한눈팔래?”

“처음부터 같이 왔으면 좋았잖아.”

“너 또 틈 제대로 안 닫았지.”

“…… 제대로 닫은 것 같은데.”

“제대로 닫았는데 겨우 이런 짐승이 어떻게 찢고 나와?”

타이치가 손을 털어 들고 있던 검을 집어넣자 야마토가 다가왔다. 익숙하지만 매번 매서운 잔소리에 타이치가 볼을 긁적였다. 검은 오염 위에 선 야마토가 손가락을 부딪쳐 소리를 내자 경계에 박힌 결정들이 물처럼 찰랑이는 소리를 내며 녹아 오염을 쓸어낸다. 검게 물들었던 땅이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코끝에 남았던 악취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할 일은 다 했다는 듯 등을 돌려 걸어가는 야마토의 옆으로 타이치가 붙어 섰다.

“타케루 만난다더니 일찍 왔다?”

“마침 근처였어. 그냥 갈까 했는데 기운이 너인 것 같아서 왔다, 왜. 너라면 분명 온통 오염 시켜 놓고 씻어낸다면서 다 태워버릴 테니까.”

“다 안 태우거든? 조절할 줄 알아.”

“숲 하나 다 태운 게 지난주잖아. 빨리 잊어서 좋겠다, 너는.”

“그건 네가 하도 집중 안 되게 뭐라고 하니까…….”

“내 탓하지 마. 나는 네가 짜증 나게 굴어도 숲 하나는 안 날려 먹어.”

타이치는 결국 입을 닫았다. 몸을 쓰는 것은 자신 있었지만 그런 종류의 주술을 다루는 것은 타이치에게는 전혀 다른 일이었다. 그리고 야마토는 그런 것을 잘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곧잘 필요한 것을 만들어 냈고 적재적소에 이용할 줄 알았다. 오염을 씻어내는 능력은 물론이고 주술로 짐승과 사람을 제압하고 제 손에 올려놓은 것처럼 부릴 줄도 알았다. 오염을 씻어내는 것은 사냥꾼의 기본 중 하나였지만 타이치는 그런 것에 약했다. 차라리 위험한 짐승이랑 부딪치는 게 낫지. 백 번을 생각해도 자신은 검을 휘두르는 일이 더 적성에 맞았다. 그렇다고 자신과 짝인 야마토가 검술을 아주 못하냐고 하면 또 그것도 아니었는데……. 어쨌든 신체적 능력에 대해서는 타이치가 훨씬 월등했다. 타이치는 그거면 됐다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작게 사과했다. 미안.

“연습 좀 해. 나 없으면 어쩔래.”

“하거든?! 어려워서 그래. 누구나 너처럼 타고 나는 건 아니네요, 이시다 씨.”

“나라고 처음부터 잘 했으려고.”

그랬던 것 같은데. 타이치는 야마토를 처음 봤던 날을 생각했다. 작은 손에 온통 뜻 모를 글자가 새겨져 있던 소년은 시끄럽다며 제 입을 닫게 했었다. 말 그대로 말이다. 정말로 입을 열 수 없어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에게 혼이 나 주술을 풀어주면서도 야마토는 사과 한마디 안 했다.

“처리반 곧 올 테니까 저녁 같이 먹을래? 또 집에 가서 대충 먹지 말고.”

“어, 어쩐 일로 저녁 시간을 내어 준대. 나 그래도 오늘 잘했나 봐.”

“아, 그냥 집에 가라.”

“미안. 야키소바 먹자. 같이 먹어 주세요, 야마토 님.”

능글맞게 매달리는 타이치를 빤히 보던 야마토가 못 말린다는 듯 웃었다.


오래 전부터 혼자 가지고 놀던 그뭔씹 자기만족 세계관 얌타로 이식하기 1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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