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국 샘플] 고3도 그네를 타나요
24년 1월 작업물
[가비지타임] 드림 : J X Y
#소꿉친구 #친구이상_연인미만 #풋풋한
발렌타인데이. 그것은 J한테 있어서 너무나도 귀찮고, 의미도 잘 모르겠고, 짜증 나는 일이 평소의 배로 생기는. 따지자면 '혐오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이벤트 중 하나였다. 이름도 얼굴도 잘 모르는 여자아이들이 좋아한다는 말을 입에 담으며 자신에게 초콜릿을 건네는 걸 보면, 좋아한다는 감정을 자기 좋을 대로 가져다 붙이는 그 알량한 마음에 신물이 났다. 그러니까 이런 이벤트는 가능하면 없는 게 백배는 낫다. …라고,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그랬던 J는 지금, 2월을 맞이해 대형마트 코너의 한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발렌타인데이 특별 코너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작은 크기의 바구니에 초콜릿이 가득 들어있고, 그 위에 눈웃음이 귀여운 강아지 인형이 앉아있는 선물 세트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Y를 닮은 것 같은데. 아무리 바라보아도 강아지 인형의 미소는 Y가 웃을 때 짓는 다정한 웃음과 쏙 닮아 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선물을 주고받는 건가. 인간관계에는 영 익숙하지 못한 그였지만, 어쩐지 지금은 남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줄곧 Y에게 제대로 된 선물을 주지 못했다. 물론 Y와는 선물을 주고받아야 관계가 이어지는 빈 껍데기 같은 사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실체가 존재하는 선물 같은 것으론 다 표현하지 못할 만큼, 서로를 향한 유대감과 신뢰감이 마음 깊은 곳에 뚜렷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Y는 선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지, 자신에게 많은 것을 선물해 주었다. 작게는 운동이 끝난 뒤 사준 음료수부터 크게는 경기 전의 응원 부적까지. Y에게 받은 것들을 세고 있자면 끝이 없을 정도였다. 그에 비해 자신이 Y에게 무언가를 선물해 준 횟수는... 한 손가락으로도 쉽게 셀 수 있었다.
…어라, 나 혹시…. 약간, 쓰레기인가? 갑작스럽게 위기감이 몰려들며 초조해졌다. 당연하지만 무언가를 선물해 주지 않았다고 해서 Y가 자신을 싫어하게 될 일은 없을 것이란 걸, 알고는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Y에게까지 남들 대하듯 매정하게 대해야 하는 이유가 되진 않았다. 게다가, 의외로…. 선물해주면 좋아할지도 모르고. 약간의 계산을 끝마친 뒤, J는 줄곧 노려보고 있던 바구니를 손에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소꿉친구의 장점 하나. 그것은 서로 사는 집이 가깝다는 것이었다. 소꿉친구의 장점 둘.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고 해도 서로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외출을 감행할 만한 우정이 존재했다. 소꿉친구의 장점 셋. 상대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누구보다도 빨리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소꿉친구의 장점을 모두 갖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J와 Y였다.
약속 장소인 놀이터에 도착한 Y는 약속 상대가 아직 오지 않은 것을 깨닫고 놀이터에 놓인 그네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꺼내 자신의 소중한 소꿉친구와 나눈 메시지를 다시 한번 곱씹어보았다. 이 시간에 갑자기 놀이터로 나와달라니, 역시 J에게 무언가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걸까….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한 마음이 쌓여만 갔지만, J가 도착하기 전까지 그의 진의는 알 수 없었다.
Y가 바라보는 J는, 여러모로 겉만 커버린 아이 같았다.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 걸 어리숙한 행동이라고 판단하고, 자신을 절벽까지 밀어붙이는 것에 도가 튼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미성숙한 모습 속에 상처받은 누군가를 위해 그 사람의 곁에 있어 줄 수 있는 다정함과 순수함을 갖고 있었으니까. 홀로 내버려둘 수 없다고, Y는 줄곧 그를 보면서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J가…. 지금 당장 만나고 싶다며 연락을 해오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하잖아! 그녀가 아는 J는 솔직하게 남을 의지할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었기에, 더더욱 이 '지금 당장 만나고 싶다'는 말이 무겁게 들렸다. …농구나 진로에 관련된 일이면 어쩌지. 그럼 어떻게 달래줘야 하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만약 J에게 상처를 줘버린다면 어쩌지….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났다. …아니야! J가 믿는 나라면, 분명 잘 위로해 줄 수 있을 거야! 떨리는 양손을 꼬옥 붙잡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기다림 끝에, J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져 오는 게 들렸다. 앞으로의 대화가 걱정되어 떨리는 마음과, 기다리던 사람을 드디어 만난다는 기쁨에. Y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최대한 웃는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그렇게 Y가 마주한 J는. …뜬금없이 사랑스러운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Y가 그네에 앉아있다가 일어서서, 그 상태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었다. J의 그 언밸런스한 모습에 그만, 그녀는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으니까.
"J…? …그건 뭐야?"
"선물."
J가 Y에게 가까이 다가와 그녀의 무릎에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여러모로 당황스러웠지만, 그가 들고 온 바구니 자체는 그녀의 마음에 쏙 들었다! 발렌타인을 기념해 깜찍하게 제작되어 인형까지 붙어있는 점이 사랑스럽고, 무엇보다도 J가 자신을 생각해 가져와 준 선물이라는 점이 기뻤다.
"이거 어디서 난 거야?"
"아까 마트에서 샀어. …너 주려고."
마트에서 샀어, 그 짤막한 한마디가 Y의 머릿속에서 계속 되풀이되었다. J가, 나를 주려고, 이걸 직접 샀다고? 습득한 단어들을 늘어놓고 상황을 정리하려 노력했지만, 너무나도 자신이 아는 J와 동떨어진 모습에…. 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너, 내가 아는 J 맞아?"
"…싫으면 반품할 테니까, 내놔."
J가 인상을 쓰며 퉁명스럽게 한쪽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귀는, 살짝 달아올라 있었다. 그 모습에 살짝, 웃음이 나왔다. …다행이다, 내가 아는 J가 맞구나. 장난스레 웃으며 바구니를 꼭 끌어안았다.
"헤헤, 반품은 안 할래! 마음에 들었거든."
"그럼 다행이고."
J가 슬쩍 웃어 보이고는, 그녀의 옆자리에 놓인 그네에 앉았다.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이 조금씩 그네를 움직이며 대화를 이어 나간다.
"그런데, 무슨 일 있었어? 갑자기 선물을 다 하고! 내가 알던 J가 맞나 놀랐다니까!"
"내가 너한테 선물을 하는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해?"
"아하하, 물론 그런 건 아니지만!"
J가 Y의 옆모습을 빤히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나는 계속, 너한테 받기만 했던 것 같아서."
작은 목소리였지만, J의 바로 옆자리에 있던 Y에게는 그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Y가 그네를 움직이던 걸 멈추고 J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빙그레 웃으며 그네를 세차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J야. 그건…. 내가 할 말이야!"
Y가 J를 만난 뒤로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변하지 않는 것들 중에서도, 앞으로도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을 하나 꼽으라면. 그 한 가지는 분명 너와의 인연이겠지. 어린 시절에도 너와 탔던 그네를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지금에서도 너와 탈 수 있는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이 인연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두 사람은 남몰래, 하지만 서로만은 알 수 있게. 밤하늘에 소원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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