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국 샘플] 네가 찍어준 마침표

23년 10월 작업물

1차 HL : Y X C / 3500자

#같은_학교 #선후배 #같이_나아가자 #무덤덤공 #병약수

완전히 방심했다. 그리 생각하며 이불을 양손으로 끌어올렸다. 추워... 지금은 점심시간, 창밖 너머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떠들썩하게 들려온다. 그에 비해 보건선생님조차 점심 때문에 자리를 비운 지금, C는 보건실에 혼자 남겨져있었다. 아무리 코를 훌쩍이고 기침을 한다고 한들, 자신을 지켜봐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에 비해 온순한 공기와 포근한 이불이 불편한 감각을 자아냈다. 혼자뿐인 보건실은 쓸쓸해서, 자연스럽게 옛날 생각이 났다.

어릴 적부터 잔병치레가 잦았던 나는, 아플 때면 내 방에서 혼자 누워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혼자 누워있을 때면, 집에서 조금 떨어진 도장에서의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숫자를 세는 소리, 목검을 휘두르는 소리, 아버지나 어머니의 훈계 소리 같은 것들을 들으며... 왜 나는 남들처럼 건강하지 못한 걸까, 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건강하게 태어났으면 좋았을텐데. 그랬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학교도 빠지지 않고, 방과후에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미하라 가의 훈련도 따라갈 수 있었을텐데. 스스로가 병약하다는 사실을 부끄럽고 죄스럽게 느낀다고 한들, 아픈 몸으로 할 수 있는 건 많이 없었다. 그저 눈을 감고 건강해진 자신을 망상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번에는 어떤 망상을 할까. 그래, 이번에는 학교 합숙에 참여하는 미하라 C를 망상해보는 거야.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잔뜩 섞여있는 합숙에 참여해 학년에 상관없이 친구를 만들어서...

"..."

어라, 누구지. 저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C양."

낮고 진중한, 어딘가 다정함이 섞인 목소리... 그 목소리에 나는 천천히 잠에서 깨어났다.

 


천천히 눈을 뜨자 Y 선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야구부에서 점심연습이 있었던건지 야구복을 입고 있는 Y 선배는, 역시 멋있었다. 내가 눈을 뜨자 Y 선배는 옆에 있던 간이의자를 끌어와 침대 앞에 앉았다. 

"...미안, 깨워버렸군."

"아니에요! 괜찮아요!! 하루종일 자느라 슬슬 지치던 참이었... 콜록, 콜록!"

몇 시간만에 목소리를 내자 갈라진 목소리와 함께 기침이 나왔다. 그런 내 모습에 Y 선배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괴로운 표정을 숨기고 급하게 미소를 지으며 괜찮은 척을 했지만, 선배의 표정은 여전히 걱정이 담긴 채였다. ...아아, Y 선배에게는 이런 아파보이는 모습, 보여주기 싫었는데. 잘 보이고 싶은 단 한 사람에게조차 잘 보일 수 없게 만드는 이 약해빠진 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Y 선배가 한참동안 제 손을 만지작거리다, 입을 열었다.

"C양, 오래 생각해봤는데. ...슬슬 아침 훈련은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네?"

아침 훈련. 그것은 합숙 때부터 이어져 온, 미하라 C를 강하게 단련시키기 위한 무츠미 Y의 훈련으로... Y 선배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시간이었다. 건강하게 몸을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Y 선배와 단둘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까. 그런 아침 훈련을 그만하는 게 좋겠다니.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보다 빠르게, 느낀 그대로의 생각이 튀어나왔다.

"...제가 뭔가, 잘못...한 걸까요? Y 선배는 설마 제가 싫어지신 건가요...!?"

"?! 왜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건가...?"

"그런 거잖아요! 이제 제가 싫어져서, 그래서 아침 훈련도 그만하자고...!"

아픈 말을 내뱉고 있으니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울먹거리며 Y 선배를 바라보니, 선배는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가만히 굳어있다 고개를 푹 숙이고는 사과하는 자세를 취했다.

"미안하다, 내가 설명이 짧았어. ...C양이 싫어진 건 절대 아니야. 그러니 일단, 내 말을 들어주겠나?"

내가 싫어진 게 아니라고? 그 한 마디에 방울방울 맺히던 눈물이 한 순간에 멎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고개를 끄덕이자 Y 선배의 설명이 이어졌다.

"슬슬 날이 추워졌으니 온도가 낮은 아침에는 훈련을 하지 않는 쪽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 뿐이다. 지금처럼 과하게 훈련을 했다가 C양이 감기에 걸려버리면, 그 편이 훨씬 좋지 않으니까."

"..."

"C양의 몸을 위해서니까, 이견은 없었으면 좋겠군."

그러니까 Y 선배는, 지금 나를 걱정해주고 있는 건가? Y 선배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졌고, 그 마음이 고마웠다. 하지만, 그렇지만... 차마 선배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채, 양손을 주먹쥔 채 작은 목소리를 냈다.

"...싫어요. 아침 훈련, 계속해요..."

"...어."

나의 말에 Y 선배는 당황한 것 같았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Y 선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유를 물어봐도 괜찮겠나?"

"...시간이 없단 말이에요."

벌써 계절은 겨울이었다. 곧 있으면 학년이 오르고, 그렇게 되면 Y 선배는 졸업해버린다. 선배가 졸업해버린다면 만날 기회는 줄어들테고, 그렇게 되면... 두 사람의 거리가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미래가 그려진다. 그렇게 되긴 싫어. Y 선배와 함께할 수 있는 얼마 안되는 소중한 시간을, 이렇게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 주먹쥔 손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어느새 나는 다시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 Y 선배가 양손을 뻗어 내 얼굴을 붙잡았다. 손에서 볼을 타고 따스한 감각이 전해져온다. 눈물 때문에 번진 시야 사이로 언제나와 다름없이 진중한 Y 선배의 얼굴이 보인다. 이윽고 서로가 눈을 마주한 순간, Y 선배가 이야기했다.

"C양, 조급해 할 필요는 없어."

"..."

"물론, C양 입장에서는 빠르게 몸을 단련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건강을 헤쳐가면서 몸을 단련시키는 건 의미가 없어. 그리고 무엇보다..."

Y 선배의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다. 하지만 눈빛은 흔들리지 않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졸업을 하더라도 C양과는 계속 만날 생각이니까. ...그러니까, 시간이 없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어? 졸업해도 만나주시는 거예요?"

이번에도 생각을 정리하기 전에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나의 말에 Y 선배는 가만히 굳어있다가,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로봇같은 딱딱한 동작으로 손을 거둔 채 고개를 떨구었다. 선배의 행동에 허둥지둥거리며 나의 말을 수습했다.

"아니, 만나기 싫다는 게 아니라! Y 선배가 만나주실 거라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어서...!"

"...어쩐지, 나 혼자 앞서나가고 있었던 것 같군..."

Y 선배가 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빨개진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런 선배의 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그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그렇구나, 앞으로도 Y 선배와 만날 기회는 잔뜩인 거구나. Y 선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사라져버리는 나의 망상 같은 게 아니구나. 나는 이제 더 이상, 다시 혼자가 될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Y 선배가 만진 내 볼에는, 여전히 따뜻한 감각이 남아있었다. 새삼스럽게 그 사실이 기쁘고, 행복했다.

여전히 부끄러워하고 있는 선배를 바라보며, 혼자서 팔짱을 꼈다. 그리고는 최대한 씩씩하고, 최대한 새침하게 말했다.

"...좋아요, 그럼 아침 훈련은 이제 그만하는 걸로 해요. 그 대신!"

"...그 대신?"

Y 선배가 제 얼굴에서 손을 거두고 나를 바라보았다. 선배와 눈을 맞춘 채,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는 주말에도 만나서 주말 훈련을 하기로 해요!"

당돌한 내 말에 Y 선배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다정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물론이다."

확신에 가득 찬 답변에, 나아가는 걸 망설이던 미하라 C의 과거에 마침표가 찍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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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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