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Dear. Arthur

1967. 07

일단 당신의 편지 속 이야기가 보여준 반전에 답장을 쓰는 지금까지도 감탄을 금치 않을 수가 없네요. 작가(Author)라니, 만약 이전에 동봉된 금화가 제 손에 있지 않다면 출판사에 기재할 만한 글이라고 칭찬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던진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이 하나로 정리되니 속 시원하면서도 조금 섭섭한 느낌도 드네요.

당신은 세계를 멋대로 만들고 포기했다고, 또 그 세계에 머물러서 세계를 파괴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오히려 잊혀져있던 세계를 끄집어내 준 건 당신이라고 생각해요. 이야기는 개연성을 요구하고, 개연성이 소모되면 그 세계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게 진실이라면, 당신이 무너져가는 그 세계를 구한 영웅이 맞지 않을까요? 세상에 수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기억되는 이야기는 몇 없다는 걸 우리는 알잖아요. 아무리 우리가 하고 싶은 말들을 담아 이야기해도 시간이 지나면 잊힐 수밖에 없어요. 심지어 작가 본인조차 기억 너머로 보낸 이야기가 얼마나 세상을 떠돌고 있을까요. 그럼에도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 만든 세계를 기억하고,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죄책감을 가지고, 또 이야기를 다시 만들어가기 위해서 멋진 모험까지 했잖아요. 그게 당신의 의지가 아닌 ‘환생트럭’ 이라는 우연한 계기로 인한 사건이었다고 해도요.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위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저만해도 제가 어릴 적에 쓴 글들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됐는지 하나도 모르겠는걸요. 나는 아서 당신이, 여전히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당신 이야기의 영웅이자, 진정한 의미의 작가니까요.

아, 그리고 당신의 저의 영웅이기도 해요. 이게 무슨 소리인지 지금부터 이야기하자면…. 음, 일단 당신이 저 몰래 그 친구들을 응원하고 있었다는 점은 뒤로 제쳐둘게요. 그러기엔 당신과 저, 둘 다 너무 큰일이 많았으니까요. 이전에 데리고 갔던 도넛 먹인 경찰 친구가 꽤 일을 잘해줘서 빠른 시일 내에 함께 본거지를 쳐들어갈 수 있게 됐어요. 수많은 경찰들이 그 지하실에 들이닥치고 사이비 교주만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바퀴벌레들이 사람을 피하듯 순식간에 흩어졌죠. 물론 대부분은 시도에 그쳐서 한 대씩 얻어맞고 금방 진압됐지만요. 하지만 그중에서도 교주라는 놈은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지 아주 날쌔게 뒷문으로 가더라고요. 다른 경찰들이 신도, 아니 이건 신에 대한 모욕이죠. 약쟁이들을 잡아들이는 동안 저는 지름길로 건물의 출구 쪽으로 달려 나갔어요. 지름길은 어떻게 알았냐고요? 처음 인터뷰한 공사장 인부들한테 부탁해서 건물 지도를 받아뒀었거든요. 사실 무슨 정신으로 뛰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 길이 유난히 선명하게 기억나더라고요. 제 생에 그렇게 간절하게 뛰어본 적이 있을까요. 자유와 인권을 위해 싸우는 이들을 이용한 사이비 교주를 향한 정의로운 기자로서의 사명감인지, 성과금 때문인지는 구별이 안 되지만 어느 쪽이든 뭐 어떤가요. 힘닿는 대로 뛰어 손을 뻗었고 그 사이비의 뒤를 잡는 순간, 그가 제게 총구를 겨눴어요.

탕,

큰 소리가 좁은 통로에 울려 퍼지고 저는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면 지금의 편지가 없었겠죠. 당신이 준 금화가 저 대신 총을 맞았고, 저는 갈비뼈가 부러질지언졍 그 사이비의 멱살을 놓지 않았죠. —이렇게까지 묘사하는 건 당신이 준 금화를 자랑하려고 하는 거예요. 원래 이렇게 제 업적을 늘어놓는 타입은 아니에요.— 밖에 대기하고 있던 경찰이 총성을 듣고 곧바로 찾아와 그 사이비를 체포하고 저는 병원으로 곧장 실려 갔어요. 총알을 완전히 피해 간 게 아니라 뼈가 부러지고 상처 난 곳이 있었지만,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적이라고 하더군요. 충분히 당신이 영웅이라고 할만하죠? 그 뒤로 바로 기사를 내야 한다는 집념하에 병실에서 글을 집필하고 성과금을 당신이 바라던 대로 잔뜩 받고서, 제 이야기는 당신의 이야기만큼 극적이진 않지만, 일단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답니다. 한동안 몸을 돌보다 겨우 퇴원해서 인제야 당신의 편지에 답장해요. 이곳에서는 두 달의 시간이 지났지만, 당신의 ‘쓰레기통’ 은 시간도, 공간도 모두 뒤죽박죽으로 섞어버리니 이번에는 당신이 답장을 기다리다 지치기 전에 이 편지를 전달해 줬으면 좋겠네요.

그래야 얼른 당신을 볼 수 있을 테니까요. 나의 세계에 와도 되냐고 물었죠? 그 문장을 보자마자 펜을 들지 않을 수 없었어요. 우리가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곁에 있다면 좋을까라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었나요. 당신이 만든 세계를 떠난다는 것은 조금 아쉬울지 몰라도, best friend가 있는 곳으로 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비록 내가 살고 있는 세계는 마법도 없는 재미없는 곳이고, 전쟁은 언제 끝날지 모르며, 이전에 신청한 출장 때문에 저는 전쟁터로 가게 되지만…. 나열하고 보니 당신 이곳에 와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래도 좋은 점을 말해보자면 우리에게 서로가 필요할 때 얼굴을 마주 볼 수 있고, 생각을 나누며 밤새 이야기할 수도 있겠죠. 특별한 기념일들을 바보 같은 분장을 하고 보내기도 하고, 아침에 커피 한잔과 스콘을 사서 여유로운 주말을 시작할 수도 있겠어요. 당신이 작가도, 영웅도 아닌 ‘아서’로 이곳에서 나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괜찮다면 나는 언제까지나 당신을 기다릴게요.

From. O‘Neill Aud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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