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옆을 돌아보니
하신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슬금슬금 고개가 내려가더니 푹 꺾이기 직전 다시 번뜩 올라온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정도의 소설책을 한 손에 든 채 가만히 읽고 있던 아이나르는 어이없다는 눈으로 하신을 쳐다보았다. 왜 이렇게 불편한 자세로 졸고 있는 건지.
원래 성질같아선 그 답답한 꼴을 못보고 당장에 깨워 들어가서 자라고 등을 떠밀었을 아이나르였으나 오늘은 단순한 변덕이 들었다. 아이나르는 읽던 책에 책갈피를 끼워 조용히 내려놓고는 아예 몸을 하신쪽으로 틀어 본격적으로 그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몇 십 분 전의 저녁식사로 배가 불러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을까. 들리는 것이라고는 바람소리가 전부인 산 위 저택은 고요하기 짝이 없었으니 장작 타는 소리에 귀기울이다 졸음이 쏟아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온전히 세우지도 않고 숙이지도 않은 미묘한 각도의 고개가 웃음을 유발했다. 아이나르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잠시 숨을 크게 들이쉬어 웃음을 참고는 고개를 꺾어 하신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대부분 실눈인 채로 지내는 하신이었지만 이렇게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은 또 다르구나, 하는 감상이 스친다. 깨어있을 때는 눈동자가 잘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반면 지금은 일방적인 시선. 말그대로 '훔쳐보는' 중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하신이 번쩍 눈을 떠 서로 눈이 마주쳐도 "뭐, 왜." 따위의 대응을 할 아이나르였으므로. 그저 즐거울 따름이다.
새삼스레 긴 속눈썹이 눈에 들어왔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미세하게 떨리는 속눈썹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살금 손을 뻗어본다. 흔들림 없는 손끝이 하신의 속눈썹에 닿을듯 말듯 다가가자 저도모르게 건드리고 말았는지, 하신이 간지럽다는 듯 눈살을 미미하게 찌푸렸다. 하지만 아이나르는 당황하지 않고 느리게 손을 거두고는 그가 깨어나는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깼나?
-했지만 결국 다시금 졸음에 몸을 맡기고 휘청. 아이나르는 소리없이 짙은 미소를 머금고는 하신을 보기 위해 숙이고 있던 몸을 다시 원위치시켰다. 내려두었던 소설책을 다시 들어 펼치고, 소파에 등을 푹 기대고는 빈 손으로 하신의 머리를 감싸 끌어당겨 제 어깨에 붙였다.
“……?”
그 움직임엔 역시나 깰 수 밖에 없었는지. 가물가물한 눈을 뜨는 하신을 흘끗 내려다본 아이나르가 그의 머리칼을 가볍게 훑어주고는 나직한 목소리를 흘렸다.
“더 자.”
그리고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책갈피를 빼내고 팔랑- 책을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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