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통신 - 첫번째

13챕을 보고 말았다

커블랙홀 by 초식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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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챕 스포 듬뿍.

그리고 날조날조날조.


치-익,

들리십니까?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여기는 연결이 그리 좋지가 않아요. 하지만 달리 말하면, 이 정도의 불편을 감수한다면 이런저런 뒷이야기들을 나누기에는 아주 적절한 곳이라는 의미가 되지요. 예를 들자면 아주 무시무시한 직장 상사에 대한 얘기라거나, 혹은 그런 사람이 있는 곳에 저를 밀어넣은 사람에 대한 얘기라거나 말이죠. 하하, 농담입니다. 설마 그들에게 전할 생각은 아니죠? 참아주세요. 저도 목숨은 부지하고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이런' 상태라고 해도 말이죠.

서두가 너무 길었군요. 이 안에서 통신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니 바로 오늘의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해요. 질문을 하나 드리죠.

어떤 지형에서도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형태의 의자를 만들어야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어떤 형태가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대개는 다리가 넷 달린 의자를 떠올릴 거예요. 아니면 아예 통짜로 아래가 다 막힌 일체형이거나요. 하지만 그런 의자들은 울퉁불퉁한 바닥면에 세워두면 안정성 없이 흔들리고 말죠. 한쪽이 뜨거나 하는 식으로요.

정답은 다리가 셋 달린 의자입니다. 어째서냐고 물으신다면, 3차원 공간 어디든 좋으니 점 3개를 찍어보라고 권하고 싶군요. 그 점 3개를 지나는 평면은 오직 하나, 유일합니다. 그러니 어디에서건, 어떤 상황에서건 안정적이죠.

맞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아채신 것 같네요.

점 3개로 이루어지는 도형, 삼각형. 그것도 아래쪽은 변, 위쪽은 점이 자리한 정방향의 삼각형.

안정성. 체계성. 논리. 규칙. 상승지향. 권력...

그래요. 아주 오래전부터 정방향의 삼각형은 절대적인 이성을 상징해왔죠.


낙원.

네. 저는 낙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동시에 낙원의 모순적인 부분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기도 해요.

이성을 신뢰하고,

옳은 판단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감정을 배제하고,

그리하여 최적의 답을 찾는다.

그렇게 얻고 축적한 지식을 모든 인류의 생존을 위해 사용한다.

하하, 너무 위-대하고 숭-고한 이야기 아닙니까? 장담컨대 자신의 후대가 이럴 줄은 쉘란 박사도 아마 몰랐을 겁니다. 그들은 필요한 얘기만 드러내죠.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지하를 적대하면서 지하가 가지고 있던 것을 빼앗아 낙원의 것으로 삼았죠. 도구론은 늘 좋은 핑계가 되어주지 않습니까? 하지만 실제로 그들을 움직이는 건... 사실, 두려움입니다. 뭐, 두려움은 감정 아닌가요? 낙원의 민낯은, 들춰보면 그리 고상한 것만도 아닙니다. 수단과 목적이 서로를 배반하고 내세우는 동기와 실제의 결과가 어긋나있어요. 모순적이죠.

이걸 어떻게 확신하냐고요?  

하하하... 당신이 그렇게 물으니 좀 어색하군요.

당신의 존재가 곧 증거이자,

이 일련의 사건에 대한 증명입니다. 국장님.

SHP-13. 당신도 어느정도 짐작하고 계시잖아요.

의식수정이 완료되지 않았는데 당신이 깨어난 사건 그 자체가 엄청난 변수였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그건 아마도-


아니,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지요. 꽤 긴 이야기가 될 테니까요.

아무튼 당신의 존재가 증거라는 말은 아주 중요하고,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부분입니다. 특히나 당신이 본격적으로 낙원에 스며들기로 결심한 지금으로서는요. 게다가 그들이 마련한 '규칙'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잘 대처하시리라 믿지만... 어쩌면 앞으로가 더 쉽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이번 BR-002에서 심각한 손해를 봤어요. 제 2 관측소의 붕괴에서 비롯된 나비효과가 그렇게까지 클 줄은 그들도 몰랐을 겁니다. 완전무결한 도구를 손에 넣었다고 안일했던만큼이나 그 도구를 잃었을 때에 취약해진 거겠죠. 그 결과 지하목자가 유해를 흡수하는 걸 막을 수 없었으니-.

아마도,

당신에 대한 집착은 더 심해질 겁니다.

역삼각형.

안정, 이성을 상징하는 정방향의 삼각형의 정반대라면 어떤 의미일지-.

그러니 부디 다음 통신이 연결될 때까지 잘 보중하시길.

곧 당신을 보러 갈 사람이 있을 겁니다. 네. 당신이 오래 기다렸을 바로 그 사람이요.

네? 하하하...

아, 이거 나중에 걸려서 한 대 맞는 거 아닌지 모르겠는데.

그...

에이 모르겠다!

나중에 한 마디 거들어주시깁니다?

그러니까 처음엔...

'이제 국장녀석이라고 하기엔 적절하지 않군. 아주 큰 일을 했어. 정말 인상적이야.' 라고 담담하게 평하더군요. 하지만 그간 봐 왔으니 알죠.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잘 걷다 멈추고 돌아보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입가에 걸린 미소가 뿌듯해보이면서도 어쩐지 씁쓸해보이는 까닭이 달리... 뭐가 있겠어요. 생긴 것만 보면 말로 홀려버릴 것 같은 사람이 이상하게 그런 쪽에선 제대로 표현하지 않는단 말이죠.

어흠, 그래서 제가 한 마디 던졌습니다.

'돌아가서-'

'돌아가서, 만나고 싶은 건가요?' 라고요.

'다음 기회에 하지.'

그 사람은 그렇게 답했습니다. 어쩌면 국장님으로선 서운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괜한 오지랖이지만 이 말은 덧붙여야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하기 전, 뭔가 말을 꺼내려다 말았던 걸 제가 봤다고요. 그리고 유예했을 뿐 부정한 건 아니니... 그 사람의 화법을 감안한다면 차라리 이렇게 해석해서 들어주시는 게 낫지 않을까 싶군요.

'돌아가고 싶고, 만나고 싶지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요.

하하하, 진심은 국장님이 더 잘 아실 것 같은데요.

당신이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동안..

당신을 지킨 건, 화원의 주인뿐만은 아니었어요.

당신에게 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정말로 당신이 잘못되었더라면 아마-

나중에, 만나면.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그 사람도 하고싶은 말이 많을 겁니다.

아, 이젠 정말 통신을 종료해야겠네요.

네? 아. 이제 그 코드네임은 폐기했습니다. 임무가 종료되었으니까요.

새로운 이름은, 어, 연결-, 상, 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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