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 그 외

[코라호손] 시선의 끝

* 아이코라 x 호손

* 약 4050여자

아이코라는 호손의 시선을 따라가려는 시도를 여러 번 해보았다. 그는 차분하게 한 자리에서 목표를 응시하며 때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직접 상대를 쫓고 싸우는 쪽에 익숙했다. 케이드의 말대로, 안 그런 듯 불같이 타오르는 부분이 강한 건 아이코라였다. 그런 성향 때문에 그는 제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자 번번이 호손의 눈동자가 훑는 끝을 따라가려 시도해보았다. 그가 아는 중 제일 가까운 저격수는 고개만 돌려도 보이는 자리에 있는 호손이었으니까.

 

시작은 그래서였다. 하지만 아이코라에게 호손의 시선은 늘 수수께끼였고 어느새 저격수처럼 인내심을 길러보자는 가벼운 마음을 호손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호기심으로 바꾸어 놓았다. 탑에 서서 수호자들을 위해 길드네 낚시네 이런저런 부분을 살피면서도 결국 눈은, 그 차분하면서도 매섭고 명확한 눈은 최후의 도시와 아이코라는 알 수 없는 곳을 향한다.

 

결국 아이코라는 직접 호손에게 물어보기를 택했다. 그는 직접 상대를 상대하는 쪽이 익숙했고, 얼굴에 떠오른 지혜의 둥근 원들을 반짝이는 이는 늘 자신의 좋은 대화 상대였으니까.

 

“호손.”

“응? 무슨 일 있어? 케이드 잡아 올 거면 루이스 데려가고.”

 

난간을 가볍게 짚고 내려오는 이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도 대번에 거리를 좁힌 호손이 다가와 선다. 아이코라는 자신을 올곧게 향한 눈을 바라보다가 목을 가다듬었다.

 

“무얼 그리 보고 있나 해서.”

“석양. 내일까진 날이 맑겠어. 그리고 오늘 우주선이 좀 적길래 무슨 일 있나 생각하고 있었지. 관찰까진 아니고.”

“수호자의 일까지 확인하고 있었나?”

“뭐 어때, 내가 못 할 일도 아니잖아.”

“아, 그런 의미가 아닐세, 호손. 내 말은-”

“알아, 아이코라. 선봉대에 직접 연관된 일까지 걱정할 건 아니라는 거지? 자발라도 그런 말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뭐라 대답했냐면, 호손이 키득키득 웃었다.

 

“그건 민간인들 중 꽤 많은 이들이 예전부터 보고, 궁금해하고, 염려하고, 깊이 생각하던 거야. 특별한 게 아니고, 전전긍긍할 일도 아니야.”

 

한 걸음 내딛은 호손이 멀리 해가 지는 위 천천히 짙은 푸른 빛이 덮여가는 하늘을 향해 가볍게 손을 내민다. 마치 황금기의 춤이라도 되는 듯 유려하게 움직이다 손바닥을 아래로 한 채 도시 위를 한 바퀴 돌아온 손이 판초 아래로 돌아간다.

 

“그렇지, 아이코라? 우리는 하늘과 땅의 지평선을 바라보고 살아. 수호자들은 그 너머를 보느라 막상 선명한 건 놓치는 것 같지만. 아니면 수면 아래의 달 같은 거에 시선을 뺏기잖아.”

 

수면 아래의 달. 어찌 보면 우주에 잠긴 별들처럼 낭만적이고 고혹적이나 그 실체는 빛 뒤에 무엇을 감추었는지 알 수 없는. 호손의 표현은 온갖 고운 색과 고요함으로 위장한 위험들에 대한 수호자들의 다소 무분별한 접근에 꽤 잘 어울렸다. 아이코라가 늘 뒷짐을 서서 한 걸음 떨어진 거리를 유지하는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다가간 호손은 난간에 팔꿈치를 걸치고 다소 비뚤어진 자세로 숙여 기대어 섰다. 판초 아래 살짝 부푼 머리에서 흘러나온 머리카락 몇 가닥이 이마를 스치고 혹은 나부낀다. 도시를 향하는 눈에는 석양이 담기겠지만, 아이코라가 부르면 돌아보며 빛이 꺼지리라. 문득 올라온 이유 모를 아쉬움을 삼키고 물었다.

 

“그래서 늘 도시를 바라보고 있나?”

“나?”

 

기운 몸이 부드럽게 펴지고 돌아서 아이코라를 향한다. 예상대로 해가 담기지 않은 눈은 맑은 물처럼 반짝인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문득 가슴이 답답해져 뒷짐 진 손을 풀어 오른쪽 손목을 가볍게 문질렀다. 이어 끄덕이는 데에 고개를 조금 기울인 호손이 어깨를 으쓱 들었다가 놓는다.

 

“영감은 첨예한 전장을 가까이 살피는 쪽이 익숙해서, 나랑은 좀 달라.”

“데브림은 간격과 상관없이 훌륭한 저격수지. 하지만 내가 묻는 건 그대의 일이야.”

“어, 그래. 난 모든 걸 넓게 바라보는 게 편해. 루이스의 시야까지 빌리면 내게 닿는 것들이 훨씬 많아지고 또렷해져.”

“루이스까지?”

“매는 똑똑해, 당신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주 많은 걸 보여주지.”

 

나한테 많은 걸 전해주는 건 당신과 비슷하네. 장난스레 웃는다. 휘어진 눈꺼풀에 가려진 눈동자가 아쉽기도, 그만큼 자신을 향해 드러나는 웃음이 달갑기도 하다.

 

“그래서 아이코라, 관찰은 끝났어?”

“관찰?”

“저격수는 남의 시선에도 꽤 예민하거든. 내가 타겟이 되는 건 꽤 간만이라 신선했지만.”

 

후드를 넘겨 머리를 드러낸 호손이 아이코라를 향해 눈을 가늘게 뜨고 웃는다. 퍽 앙증맞아 보이는 앞니의 끝이 입술 사이에서 하얗게 드러난다. 저도 모르게 크게 뜬 눈으로 호손을 바라보던 아이코라는 몇 초 뒤에야 아, 라는 무의미한 탄성과 함께 느슨하게 풀린 표정을 가다듬으려 시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기 좋기 실패했다. 결국 아이코라도 호손을 향해 웃었다.

 

“미안하군.”

“괜찮아. 당신이 하는 건데,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

 

그제야 동의 없는 응시가 상대에게 불쾌하게 닿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어쩐지 자신은 호손에 대해서는 오감이나 이성이 느리게, 혹은 지나치게 빠르게 반응하는 것 같다.

 

“무얼 바라보는지 궁금해서.”

“아까 한 말 그대로네.”

 

웃음이 가라앉아도 여전히 부드러운 얼굴이 천천히 눈을 깜빡인다.

“난 그렇게 한 자리에서 무언가를, 혹은 넓은 부분을 정찰하는 것보단 내가 직접 움직이는 편을 선호하거든. 물론 정보를 취합하거나 자리를 지키는 데에 문제는 없지만.”

“알 것 같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점점 줄어드는데 내 인내심은 갈수록 짧아지는 느낌이라 조금 초조했던 것 같아. 그대 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방법을 항시 알고 싶었어.”

“진작에 물어보지 그랬어. 당신이 물어보면 내가 안 도와줄까봐? 그런 걸로 불안해하기에는 일을 너무 많이 시키지 않았어?”

 

할 말을 잃은 아이코라가 두어 번 헛기침하자 호손이 즐겁게 소리 내 웃었다. 작은 공기 방울처럼 귓가에서 퐁 퐁 터지는 것 같단 생각에 입을 가렸던 손을 틀어 열이 올라오려는 볼을 가려야 했다.

 

“그런데 아이코라, 한 가지 알아야 할 게 있었어.”

“무엇이지?”

“저격수가 한 대상을 오래 쳐다보다가 그 대상을 사랑하게 되어서 일에 실패한 경우가 꽤 있거든.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이 아닌 마음에 담아버리는 거야.”

 

맑은 웃음을 거둔 호손이 아이코라를 향해 눈을 반짝인다. 조금 발그레해져 쓰다듬으면 따스할 뺨과 바람에 아낌없이 내어준 흘러나온 몇 가닥의 머리카락, 자신을 향해 올곧게 쏟아지는 시선. 아이코라는 조금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당신은 어때? 아이코라. 눈에만 담았어?”

 

퍽 당돌하게 들리는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제 생각에 제 행동은 그저 궁금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궁금한 마음조차 그저 바라보기 위한 핑계였다면? 아니었다 하여도 바라보면서 정말로 자신이 그리 변한 것이라면? 지금 이 거리에서 유독 선명하게 느껴지는 호손의 모든 부분이 반짝이게 보이는 모든 순간이, 호손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면. 복잡한 상념이 엉켜 어지럽다. 그러다 여전히 맑은 눈으로 바라보는 호손과 시선을 마주했을 때, 아이코라는 깨끗하게 지워진 머리에 단 하나 남은 답을 말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그건 실패한 것 같아.”

 

호손이 환한 미소를 띄운다.

 

“나도 그래.”

 

굳어버린 아이코라를 본 호손의 미소가 손 뒤에 가려진다. 하지만 다른 수호자들이 쳐다볼 만큼 평소보다 훨씬 높게 터지는 웃음에 조금씩 긴장이 풀린다. 한 걸음 다가갔다. 호손은 아이코라를 저지하지도, 그렇다고 맞이하지도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난 당신이 보기 훨씬 전부터 당신을 관찰했거든.”

“우리가 시선의 끝에서, 서로를? 함께?”

“그래.”

 

둘은 비슷한 결로 소리를 낮춰 웃었다. 아이코라가 다가가기 전 호손이 먼저 움직였다. 제 품에 거의 부딪히듯 뛰어든 몸에서 턱, 소리가 난다. 저도 모르게 품에 뿌듯하게 안긴 이를 끌어안은 아이코라는 곧이어 호손의 몸에서 희미하게 울리는 박동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굉장히 빠른 속도의, 제 목 아래에 애교처럼 비벼오는 얼굴에서 느껴지는 열에 어울릴 법한 그 두근거림.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다행이야, 나도 당신도. 나도 틀리지 않았고, 당신도 부정하지 않았어.”

아이코라가 호손이 응시하는 곳을 명확히 알지 못 한 건 어쩌면 아이코라 자신에게 향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제 허리를 끌어안은 팔에 힘이 가득 들어간다. 아이코라는 자신만만해 보이던 이에게서 느껴진 안도에 고개를 조금 숙여 이마에 입술을 대는 것으로 대답했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