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크리스마스, 악령

여전히 저는 유령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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𝐓𝐞𝐱𝐭

메리 크리스마스, 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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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여러 축일이 있으나 신의 생일만큼 귀한 것은 없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그날을 성탄절이라 부른다.

스트리아-온의 성탄절은 거리 정화 경찰들의 감시가 해이했다. 슬럼을 전전하는 프로타들을 새끼 밴 바퀴벌레 취급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이던 안타고들도 이날만큼은 흥에 겨워 윤기가 반지르르한 빵조각을 거리 곳곳에 던지곤 했다. 교회에서는 체호툼의 심부름꾼들이 울리는 신성한 종소리가 들렸다. 거리 곳곳에 눈이 은전을 쌓아둔 더미처럼 소복이 쌓였으며, 안타고의 자제들은 빨간 리본을 예쁘게 묶은 선물상자를 품에 안고 환히 웃곤 했다.

어린 킨센트는 매해 성탄절이면 저들끼리 가족 안부를 묻는 경찰들을 피해 중심가 가까이 걸었다. 비록 그에게 앞날이 존재함을 알려주는 달력 따위는 없었으나, 살을 에는 추위를 견디기가 막막할 즈음 평소 한산한 거리가 왁자지껄한 인파로 가득 여물면, 그날이 푸석한 밀가루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는 날임을 알고 있었다.

1

그 당시 베르우아즈의 중심가에는 아치 형태의 입구에 상아로 조각한 천사와 그리폰 장식물을 곱게 얹은 바로크 양식의 교회가 있었다. 교회 앞을 기점으로 15m 정도 걸으면 거리 한가운데 전나무가 세워져 있는데, 수직으로 약 12m 높이인 전나무는 오직 성탄절에만 중심가에 모습을 드러냈다. 안타고들은 그 전나무를 ‘크리스마스 트리’라 부르며 나무 앞에 옹기종기 모이곤 했다. 또한 안타고들은 저마다 눈알만 한 꼬마전구를 손에 쥐고 트리 가지에 전구를 걸기도 했다. 이른 아침부터 전구를 하나둘 매단 트리는 밤중이면 그 빛이 쏟아져 장엄한 풍채가 되어 있었다. 거리에 즐비한 상점들이 황금빛 조명을 반딧불이 떼처럼 켜 두어도 거리 가운데 우뚝 선 트리만이 주역을 맡았다. 그것은 성탄절에 찾아오는 귀빈과 같았다.

킨센트, 퍽 세련된 그 이름보다는 불청객과 천민과 들개 새끼 따위 질 낮고 변변찮은 멸칭으로 불리던 소년도, 거리 정화 예정지로 점 찍혀 안타고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골목 어귀에 앉아 점 하나처럼 보이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바라보곤 했었다. 멀리서 본 트리는 온갖 빛이 한 지점에 몰려 오팔 색이 흐르는 덩어리나 다름없었다. 그것은 킨센트가 움켜쥐고 싶을 만큼 탐이 났다.

그래서 킨센트는 매일 트리의 빛을 쥐는 상상을 했다. 손안에서 반짝이는 전구들을 부수고 일그러트리는 상상. 트리에 매달린 빛을 하나하나 죽여내어서 온 거리의 흥을 깨는 상상을 했다. 슬럼의 누군가가 가죽만 남은 팔로 바닥을 기며 동냥하든 뭐하든 샴페인 거품을 서로의 얼굴에 흩뿌리고 놀던 성인聖人과 성인成人들의 이목을 잡아끌고 싶었다. 즐거워 보이는 모든 이들이 이쪽을 쳐다보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부서진 유리 조각으로 그들의 자제들을 수십 번 찌르고 싶었다. 복 받은 또래들이 두 뺨 위에 눈물을 펑펑 흘려내면,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주지 않는다던 산타는, 드디어 킨센트에게만 선물을 안겨 주겠지. 그런 통쾌한 생각으로 킨센트는 히죽거렸다.

그때쯤 머리 위로 축축한 감각을 느꼈던 것 같다. 차가운 물이 목덜미를 타고 해진 옷 안으로 흘러들었다. 킨센트는 미간을 찡그린 채 고개를 쳐들었고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광경을 보았다. 언제나 눈은 비보다 딱딱하다. 그것은 비와 달리 보름 넘게나 사라지지 않았다. 수명이 긴 추위가 거리에 한 겹씩 쌓여 갔다. 눈 내리는 것을 볼 때면 소년답게 히죽거리던 미소가 금세 새파랗게 질리곤 했다.

아, 그랬지.

킨센트가 성탄절에 가진 인식은 항상 최악이었다.

 

2

매해 성탄절이 끝나갈 적. 곧 왕국을 달구었던 흥이 저 알아서 식어버릴 즈음에 킨센트는 경찰들을 피해 뛰었다. 어느 단란한 가족이 집 밖에 묶어둔 반려견의 주둥이에 쥐여준 소시지를 가로챈 채였다. 그 미열이 남은 소시지를 손에 꼭 쥐고 슬럼까지 도망쳤다. 마침내 얄팍한 신문지 한 장을 깐 반 평짜리 거점에 이르면 차갑게 굳은 소시지 끝을 입술 안으로 밀어 넣었다. 소시지는 허기진 배에 넣기에도 지나치게 짜고 맛대가리가 없었다. 억지로 그것을 베어 물었다. 중간 정도 질겅거릴 즈음이면 속눈썹 아래로 눈물이 맺혔다. 눈물은 천천히 얼어붙어 얇은 고드름이 되곤 했다. 그대로 표정마저 얼어버릴까 두려우면 차라리 웃었다.

그렇게 조촐한 식사를 마치면 두 손을 모으고 신을 부르짖었다.

― 신이시여. 어린 양 좀 잘해주면 어디 덧나세요? 왜 그쪽 생일에도 이렇게 꼬여 계세요?

이렇듯 킨센트가 금이 간 벽에 기대앉아 신에게 말을 걸 때, 만약 불행하게도 그 거리에 사람이 남아 있다면, 킨센트는 언제나 똑같은 대사를 얼굴만 다른 이에게서 들어야만 했다.

― 얌마, 꼬맹아. 신 같은 게 있다면 우리가 왜 이 꼴이겠어?

그때는 성탄절 행사가 열린 거리에서 주웠는지 빨간 고깔모자를 쓴 남자가 시비를 걸었다. 킨센트는 그에게 중지를 치켜든 뒤, 다시 눈을 감고 기도에 집중했다.

― 신이시여. 개좆같은 신이시여.

― 말좆은 되어야 신 노릇 하지 않겠냐!

― 그쪽이 뭘 아세요? 닥치라고요!

결국 킨센트는 눈을 부라리고 남자와 실속 없이 대거리했다. 서로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는 욕설이 오갔다. 남자는 머잖아 혀를 차며 투박한 손으로 고깔모자를 꾹 눌러쓰고 자리를 떠났다. 대거리가 일단락되면 킨센트는 다시 기도했었다.

― 그쪽 욕 좀 했다고 저도 욕 처먹게 만드시다뇨? 저어기 교회의 성자들이 우리네 신은 쪼잔하지 않다고 입에 꿀칠을 하던데…….

사실 믿음의 대상보다는 상상친구 취급이지만,

이러나저러나 킨센트에게는 신이 필요했다. 전지전능하고 오만하여 사람 목숨으로 체스를 즐기는 신이. 그런 전능한 놈팽이께서 지정해준 운명이어야 이런 삶도 그럭저럭 받아들일 만할 테니까…….

그러므로 킨센트는 자신이야말로 이 나라에서 신을 가장 신실하게 믿는다고 생각했다.

 

3

결국 성탄절의 추억이라고 기억난 것들이 시린 손을 입에 넣어 건조한 입바람을 불던 시절뿐이라니.

현재에 이르러 킨센트는 생각한다. 여전히 성탄절은 최악이라고. 구세군 종소리가 캐럴과 섞여 오는 이날이면, 아무리 고급 원단을 쓴 코트를 내려다보아도 어릴 적의 누더기를 걸친 기분이 들었다. 물론 궁핍했던 시절은 유년 시절뿐이다. 그 당시 성탄절마다 자기 모멸감을 느꼈다고 해서 오늘날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킨센트가 성탄절에 몸서리칠 수밖에 없는 까닭은 호화스러운 비단으로 제작한 영대를 쇄골 부근에 걸쳤던 체호툼 무리 때문이다.

신의 뜻을 귀천에 따라 전하던 그들이 떠올랐다. 자선하라 외치며 연주해댔던 그들의 구세군 종소리가. 그 종소리가 킨센트 자신에 대한 조롱에 불과한 것만 같았다. 아직도 킨센트는 거리의 새빨간 냄비들이 신의 이름으로 참수당한 목 아래의 피를 굳힌 조형물처럼 보였다. 종교 혐오? 구태여 정의하자면 스트리아-온의 국교 혐오다. 그중에서도 썩어빠진 위정자들의 행태 때문이다. 그들은 표방하는 가치가 선임에도 왜 약자를 보듬지 않았는가. 목놓아 찾는 이가 신임에도 어찌하여 그가 빚은 생명 중 하나인 킨센트를 천대했는가.

“그 빌어먹을 위선자 놈들은 어째 후일의 이국땅에서도 스러지지 않고 맥을 잇는답니까?”

킨센트는 구세군 냄비를 지나친 즉시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네? 신이시여! 제 말을 쳐 듣고 계시긴 합니까? 젠장할, 내가 더 성실히 기도했잖아요!”

킨센트가 양팔을 브이자로 벌리고 서서 보도 위에 무릎을 꿇고 신을 부르짖었다. “홍수 한 번 더 안 내십니까? 혹시 신적인 차원의 방치 플레이인지요?” 성경 공부 열심히 했네. 행인들이 독실한 신자를 향해 눈길을 던지며 지나친다.

킨센트는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중심가를 향해 걷는다. 이곳은 화려함으로 견주면 스트리아-온의 중심가와 다를 바 없는 한국의 거리다. 화려한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빈곤도 공존하고. 그렇다면 이곳도 킨센트의 고국처럼 만만찮게 가증스러운 거리겠지.

킨센트는 생각했다. 차라리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 할인가 샴페인에 취하는 날이라 부른다면 자신도 크리스마스를 퍽 사랑하는 인간일지 모른다고. 하지만 원나잇 상대와 입술을 부대끼며 러브호텔에 몸을 뉘는 인간들이 기념하는 성탄聖誕이라니. 신의 위상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는가? 킨센트는 자신이 이 세계에서 누구보다 신을 똑바로 인식한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킨센트로서는 도통 화려함에 고무된 성탄절을 용납할 수 없음이다. 결국 킨센트는 중심가의 약 9m 길이 트리를 흘겨보고는, 앞머리 아래로 새어 들어와 눈을 시리게 만드는 꼬마전구의 빛으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인류의 가장 화려한 꼴값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군요.”

 

4

인류가 환호하는 기념일마다 킨센트는 도통 할 일이 없다. 이는 할로윈, 망자의 날, 크리스마스, 새해,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 이름을 잊어버린 브라질의 어느 축제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현상인데, 인류 전체에게 소외당한 기분이라 축약할 수 있겠다. 왜 킨센트는 전 인류의 축일마다 비련한 아웃사이더가 되고 마는가.

인류가 아니라서?

이후 이어지는 논리를 생각하다간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청년층 자살률에 기여하고 싶어지니 관두었다.

여하간 킨센트는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거리를 전전하고 있다. 현재는 카페에서 두 시간쯤 축내고 나와 따뜻한 노란빛의 조명이 환한 공예품 가게를 방문한 참이다.

킨센트는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진열한 매대를 훑어보았다. 금방이라도 남의 집 굴뚝에 안착할 듯 새끼줄에 꽉 매달린 산타클로스 인형과, 작은 선물상자를 달아 만든 트리 조각품, 눈송이를 매단 드림캐처. 킨센트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하품하며 그들을 지나쳤다. 그러다 문득 주먹만 한 스노볼에 시선이 닿았다.

스노볼 안엔 크리스마스 모자를 쓰고 웃는 소년 인형과 전나무, 주위로 솔방울 두어 개가 떨어진 낡은 오두막이 들어 있다. 미적인 조예가 그리 깊지 못한 킨센트가 보기에도 배치가 부자연스러웠다. 실험작인 모양이다. 공방 손님이 만들었거나. 이런 걸 판답시고 내놓아도 괜찮은 건가. 그럼에도 킨센트는 그 스노볼 앞에 서서 그것을 한참 바라보았다. 산타클로스도 보호자도 없이 멀뚱멀뚱 서 있는 소년 인형의 발치에 스티로폼 서릿발이 얌전히 가라앉아 있다. 킨센트가 스노볼을 들어 흔들자, 눈발이 유리 벽에 부딪히며 휘몰아친다. 속없이 웃는 소년이 이젠 자기 크리스마스 모자를 붙잡으며 비명을 내지를 것처럼 상상되었다. 킨센트는 결국 스노볼의 눈발이 가라앉길 기다린 후 신용카드를 꺼내 그 세상을 사 갔다. 그리고 스노볼을 한 손에 얌전히 올린 채 걸었다. 스노볼 안의 소년이 겁먹지 않도록 걸음을 늦추었다.

킨센트는 소년을 데리고 중심가의 트리 가까이에 섰다. 트리 아래로 꾸려진 선물상자 장식과 트리를 두른 굵직한 전구들, 꼭대기에 달린 별까지 시선을 옮겼다. 스노볼의 고도를 높여 소년 또한 트리를 잘 볼 수 있도록 했다.

가까운 곳에서 아이가 칭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저 형두 저러구 노는데 왜 나는 인형 안 사줘.”

문득 킨센트는 높이 들어 올린 스노볼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아이의 떽떽거리는 목소리가 마치 스노볼 속 소년의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가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를 향해 원망하는 것처럼. 킨센트는 이내 스노볼을 반대로 돌려 소년과 눈을 맞추었다. 스티로폼 눈발이 다시금 휘날린다.

소년이 입을 연다.

“우와, 저 케이크 사 주세요!” 아이가 또 쫑알댄 것뿐이다.

“…그럴까요?”

킨센트는 무심코 답하였다.

 

5

순백색 생크림을 바른 고구마 시트. 꼴에 크리스마스 기념이라고 리스 모양 초콜릿과 ‘Merry Christmas’라는 푯말이 박힌, 4만 2천 원짜리 수제 케이크……. 킨센트는 케이크 박스의 손잡이를 힘주어 쥐고 빵집에서 나오는 순간 멈추었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킨센트는 차츰 다른 손에 쥔 스노볼을 바라본다. 스노볼 안에서 히죽 웃는 듯한 소년을 노려보며,

“젠장, 이럴 생각 없었습니다! 귀하 때문에……!”

또 성질을 부린다. 당연히 소년은 그를 위로하지 않는다. 소년은 스노볼 안에서 솟구치는 눈발을 견디는 것만도 힘들 것이다. 킨센트는 몇 초간 소년을 노려보고는 한숨을 쉬며 스노볼을 얌전히 품에 안고 인파로 섞여 들었다.

크리스마스 거리는 캐롤과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떠들썩했다. 구세군 냄비로부터는 다소 멀어져 있었다. 한데 어째서 종소리가 귓가에 떠도는 것만 같을까. 킨센트가 귀를 후빈다. 그 안을 손톱으로 긁어내면서.

사실 킨센트는 크리스마스의 희희낙락한 분위기가 싫지 않다. 크리스마스 특유의 로맨틱한 낭만은 그 또한 알고 있다. 어느 만일에서는 이날에 고아원 아이들과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멋진 파티를 열기도 했다. 그리 따지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크리스마스가 최악의 사건만을 욱여넣은 건 아니다. 청년일 시절엔 분명 사교계 인사들과 꽤 근사한 무도회를 즐겼다……. 오늘도 비슷하다. 혼자 청승맞게 방구석에서 포크로 떠먹을 미래야 어쨌든 손에는 디저트가 들려 있다. 일기예보에서는 오늘 밤 눈이 온다고 했는데, 킨센트는 이제 그 성가신 눈을 빗자루로 쓸어내거나 염화칼슘을 뿌리거나 하면 인생에서 치워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산타클로스는 여전히 과묵하지만 킨센트는 그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선물을 쥘 돈이 있다. 귀족네들의 전유물이던 따뜻한 칠면조 요리도 얼마든지 제 손으로 차릴 수 있다. 모든 여건이 썩 나쁘지 않다. 나쁘지 않은데.

“좋지도 않아요.”

눈치 빠른 그쪽이라면 눈치챘을지 모르지만. 답은 이미 초장에 나와 있었다.

“나쁘지 않은 것과 좋은 것은 다르죠.” 이렇게 독백하여도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고. “전자는 견딜 만하다는 뜻이고 후자는 즐길 만하다는 겁니다.” 인파에 몸을 파묻어도 붙잡아줄 이 하나 없다. 행인들은 저마다 케이크를 들거나 친구에게 전화 걸어 푸념하며 킨센트를 지나친다. “제가 바란 건 후자입니다.” 케이크는 예상대로 홀로 먹게 될 것이며. 누군가를 초빙해 먹는다 해도 그리 들뜨지는 않을 터였다. “오늘날 저는 어린 제가 희망 한 점 그리었던 미래 속입니다만.”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싶다. “결국 미래란 것도 소망하는 대로 쥘 수는 없군요.” 비단 로맨스 감정을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크리스마스가 오기까지 함께했던, 그리고 이날 이후까지 손을 잡아줄 사람과 사랑하고 싶다. “그토록, 그토록 바랐는데 말이에요.”

다시는 이날에 불청객 취급당하지 않겠다고요.

 

 

Commsion by ©HANON

“여전히 저는 유령처럼…….”

신성한 날에 속이 울렁이는 것으로 보아 악령일지도 모르고…….

“뭐, 이미 오래전에 죽었으니까요.” 자조적인 웃음을 냈다.

유령은 곧 횡단보도 앞에 멈추어 선다. 건너편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동안, 킨센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로수 나뭇가지들이 얼기설기 매여 하늘을 가리는 풍경이 영락없는 그물처럼 보였다. 밤하늘에서 그물망이 내려오는 듯했다. 포박 당하기를 한 치 앞에 둔 것처럼. 숨통이 조여 온다. 킨센트가 한차례 날숨을 뱉어내자 허연 입김이 나뭇가지에 뻗었다. 후……. 다시 숨을 들이마시려 하니 킨센트의 열린 입술 속으로 눈송이들이 굴러와 폐를 적셨다. 그는 순간 한기에 기침하며 몸을 떨었다. 시렸다. 아마도 가슴이. 심장이 박동할 때마다 사용되어서는 안 될 부위를 억지로 써대는 것처럼 시큰거렸다. 킨센트의 시선이 중앙선에 닿는다.

“오랜만에 차도에 뛰어드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그때 신호등에 파란불이 들어왔다.

“참나. 환대하지도 않으시면서 왜 살려 놓는 겁니까?”

유령은 인파와 조금 떨어져 횡단보도를 건넌다. 다만 스노볼 속 소년만은 흔들리지 않도록 그를 받친 손에 신경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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