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이면 이 폭풍이 멎게 될까요?
[번외] 레인저 시오레의 시점.
시오레의 휴가 기간 동안 있었던 일 ~ 휴가 이후의 일을 기록했습니다.
주말 오전의 타워 오브 해븐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경건하고 정숙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따금 부모를 따라왔다가 추모탑 내의 무거운 기류에 싫증을 느낀 어린이들의 충동적인 놀이 행동이 고요함을 곧잘 깨뜨리곤 하였다. 이들의 강한 생명력에 본능적으로 이끌려 고개를 내미는 야생 불켜미나 램프라를 멀리 쫓아보낼 때마다 허공에서 터지는 포켓몬의 기술은 그보다 더 큰 소음을 불러일으켰으나, 이 또한 망자들의 혼이 잠든 장소에서는 흔한 일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이에 대한 불평을 내지는 않았다.
시오레는 비석들 너머로 황급히 숨는 야생 불켜미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제 뒤에서 울망거리는 눈빛을 쏘아 올리고 있는 아이에게 상냥히 웃어주었다.
“이제 엄마랑 아빠한테 돌아가야지요. 여기에는 자는 포켓몬들이 많아서, 그렇게 막 뛰어다니고 있으면 방해를 받은 포켓몬들이 이놈 하고 일어나요.”
“누나네 워글 멋지다! 트레이너예요?”
‘응!’하는 대답을 예상했던 시오레는 제 사고의 범위를 살짝 벗어난 대답에 움찔했다가 금방 태연함을 가장하며 고개를 저었다.
“트레이너는 아니지만, 포켓몬들과 함께 하는 사람이에요.”
아이는 까치발을 들고 워글의 부리를 만져보다가 입을 부루퉁히 내밀었다.
“에에, 거짓말. 포켓몬을 데리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트레이너라고 아빠가 말씀하셨는걸요.”
아마 ‘모든 트레이너들은 포켓몬을 데리고 있다’는 명제가 조금 비틀린 듯한데. 시오레는 제게 뒤이어 쏟아지는 해맑은 질문 세례―’어떻게 해야 트레이너가 될 수 있어요? 나도 누나처럼 강한 트레이너가 되고 싶어요! 포켓몬들은 어떻게 만나요? 이 워글도 누나가 직접 잡은 거예요?’―에 더불어 아이의 과한 관심을 받게 된 워글의 난처함 가득한 눈빛을 어떻게 해결해주면 좋을 지 한참을 고심해야 했다.
시오레와 워글의 수난은 아이의 부모님이 부리나케 달려오고 나서야 끝날 수 있었다. 그들은‘아들을 지켜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듬뿍 남긴 후 아이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떠났으며, 시오레는 제게 손을 마구 흔들어 작별 인사를 보내는 아이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준 뒤에야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시오레는 깃털이 헝클어져 시무룩해하는 워글을 달래서 볼 안에 돌려넣은 후 어느 비석의 앞에 앉는다.
“…오늘로 벌써 나흘 째네.”
시오레는 비석 바로 밑에 놓인 액자를 골똘한 자세로 들여다보았다. 사진 속에는 밝은 웃음을 짓고 있는 과거의 자신과 늠름하게 웃고 있는 리자몽의 모습이 나란히 담겨 있었다. 트레이너 스쿨에서 처음 만났던 친구,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동고동락했던 사이였기에 언제까지나 제 옆에 남아줄 줄로 알았던 옛 파트너였다.
“집에서 잔소리 듣는 것보단 여기가 훨씬 조용하고 편해서 자꾸 오게 되는걸. 이해해 줄 거지?”
시오레는 돌아올 대답이 없을 줄을 뻔히 알면서도 넉살 좋게 말을 건넸다. 우울한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는 추모탑을 날마다 드나드는 이유 중 일부는 제 부모님의 간섭형 잔소리로부터 탈출하기 위함이었다. 휴가를 받고 본가에 돌아온 이래로 그들이 ‘레인저 일 그만두고 꽃집으로 돌아오라’는 요지의 대화문을 트려 할 때마다, 시오레는 바깥 산책하러 나간다는 핑계를 대며 타워 오브 해븐으로 도망쳐 나오곤 했다. 탑의 관리인은 이곳을 제 방처럼 드나드는 시오레를 알아보고 바로 들여보내 주었으며, 그 덕에 시오레는 포켓몬들의 묘지가 정말로 자신의 방인 마냥 편안하게 상주할 수 있었다.
비석 앞에서 한참을 앉아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오늘 그가 탑에 들어온 이후 정확히 열다섯 번째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또 누군가가 소원의 종을 울렸구나, 시오레는 머릿속을 텅 비운 채 비석의 첨단 부분을 쓰다듬으며 탑 내부까지 은은히 퍼지는 종소리를 들었다. 워낙에 자주 손길을 준 탓에 비석의 가장자리가 약간 매끈했다. 그 애는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을 참 좋아했는데, 비석이 조금 닳았다고 투정을 부리지는 않겠지. '그나저나, 종소리를 자장가처럼 듣고 있으려나?' 그는 리자몽에게 직접 물어보지 못해 아쉽다는 생각을 언뜻 떠올리고 나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옥상에 잠깐 다녀올게." 시오레는 작은 속삭임을 남기고 탑의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밟았다.
계단의 끝에 있는 출입문을 열어젖히자 축축하고 싸한 공기가 밀려들어 왔다. 이는 추모탑의 꼭대기에 몰려드는 구름 탓일 터였다. 비가 곧잘 내리는 7번 도로에 위치한 이상은 어쩔 도리 없는 기상 현상이었다. 시오레는 자욱한 안개를 바라보면서 '워글에게 안개제거를 진작 가르쳤어야 했는데,' 따위의 말을 중얼거리고는 시야에 흐릿하게 들어오는 소원의 종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정작 종의 바로 앞에 다다르고 나서부터는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손을 뻗어서 이 종을 울리기만 하면 되는데. 머뭇거리는 손가락에 망설이는 감정이 가득 묻어나왔다. 복수심과 분노로 점철된 내 마음 때문에 종소리가 오염되어 버렸으면 어쩌지. 리자몽이 그런 내 종소리를 듣고 불편해하면 어쩌지. 시오레는 종의 차가운 표면에 손가락이 닿게 되자 화들짝 놀라 팔을 얼른 거두고 말았다. 근거 없이 떠올랐던 자신감은 진작에 사라지고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소원의 종을 멍하니 올려다보던 시오레는 실소를 터뜨렸다. 언제나 똑같은 상황, 그리고 항상 비슷한 내용의 겁에 질려버리곤 했는데, 오늘도 어김이 없어서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도 비참하고 한심스러웠다.
"리자몽, 미안해. 오늘도 자장가 못 들려주겠어."
시오레는 사방에서 날카롭게 휘몰아치는 바람결에 곱아든 손가락들을 꾹 접었다. 어쩐지 먹먹해진 귓가를 손으로 감싸고 뒤돌아설 무렵이다.
“흠, 여기서 이러고 있었구만.”
시오레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어!’ 하는 소리를 내뱉은 직후 입을 틀어막았다가, 리더 레인저의 물끄러미 쳐다보는 시선을 마주하고 더듬거리는 인사말을 건넸다.
“…어, 어. 안녕하세요, 미란다 씨. 여기까진 어쩐 일로….”
리더는 눈썹을 치켜뜨더니 사뭇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다 비슷한 목적으로 방문하는 거지. 오늘이 옛 파트너 기일이라서 여기까지 왔다.”
“아….”
리더한테도 옛 파트너가 있었구나. 말문이 막힌 시오레가 입을 벙긋거리는 사이 리더는 종을 힐긋 눈짓해 보였다.
“울리지 않을테냐?”
시오레는 퍼뜩 정신이 들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저는 됐어요. 미란다 씨가 차례 가져가세요.”
“음? 네가 울리는 소리를 못 들은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리던 리더는 ‘뭐, 됐다.’하고 중얼거리며 소원의 종 앞으로 다가갔다. 시오레는 숨을 죽이고 그의 손끝에서 울려 퍼지는 여운 깊은 종소리를 귀담아들었다. 정작 종을 울린 본인은 무덤덤한 눈길로 하늘을 올려다볼 뿐이었지만, 시오레는 이만한 음향을 낼 수 있는 그가 존경스러운 한편 부럽다고 여겼다. 좀처럼 사그라들 줄을 모르던 소리는 주변의 온 하늘에 울려 퍼진 뒤에야 구름 속으로 차츰 가라앉았다.
“정말로 안 울릴 거냐? 여기까지 올라온 걸음수에 대한 보람은 가지고 내려가야지.”
시오레는 그에게 어떤 대답을 돌려줘야 할 지 고민했지만 이렇다 할 구실이 떠오르지 않아 결국 자신의 사유를 털어놓게 되었다.
“…못 울리겠어요, 제가 울릴 땐 미란다 씨만큼 멋진 소리가 나지 않을까 봐….”
때마침 가깝고도 먼 곳에서 대기를 가르고 날아오르는 비행기의 엔진 소음이 시오레의 목소리를 집어삼켰다. 어릴 적에 자주 들어서 지긋지긋하고 익숙하게 여겼던 소리가 오늘만큼 반갑게 느껴지기는 또 처음이었다. 조금만 더 일찍 이륙했더라면 제가 부끄러워하는 속마음을 털어놓은 걸 무효로 돌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쓸데없는 원망까지 함께 떠올라버렸다. 리더는 팔짱을 끼고 소리가 완전히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주변이 다시 잠잠해지자 이쪽의 계단참에 앉으라는 턱짓을 해 보였다. 제자리에서 주춤대고 있던 시오레는 이내 계단의 구석자리에 조심스레 걸터앉았고, 리더가 그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나란히 소원의 종으로 통하는 길목을 막는 형태가 만들어졌다. 리더는 이다음에 올라올 추모객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구시렁대는 소리를 내기만 했다.
“아이고, 삭신이 다 쑤시네. 여하간 마음 좀 잘 다스리라고 시간을 줬는데도 별 소득이 없는 모양이군?”
리더 특유의 쟁쟁하고 직설적인 화법은 듣는 이로 하여금 싸한 기분이 들도록 만들곤 했지만, 가끔은 얼어붙은 의식을 가차 없이 깨트려주는 순기능을 하기도 했다. 지금이 딱 그랬다. 시오레는 얼얼해진 뺨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제 곁에 앉은 사람을 바라보았다. 리더는 턱을 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가 문제인지 읊어 봐."
그 짤막한 요구를 들은 시오레가 멍하니 중얼거린다.
“…아직도 그 애들이 꿈에 나타나요. 유리병에 갇히고, 딱딱한 모습으로 굳어버린 포켓몬들이요. 조금만 더 빨리 미션에 들어갔다면, 전부 살아서 나올 수 있었는데.”
'받아야 할 목숨값이 훌쩍 늘어나 버려서 제가 이를 모두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시오레는 시큰하게 쑤시는 눈가를 꾹 누르며 혼잣말처럼 외웠다. 가벼운 침묵이 흐르고, 리더가 제 앞머리를 느릿하게 쓸어올리더니 지금껏 앞만 바라보던 시선을 시오레에게로 향했다.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고요한 눈길에 어리둥절해져 있으려니 그 눈빛과 닮은 목소리가 차가운 공기를 건너뛰어 다가왔다.
“네 손으로 구하지 못한 대상에 미련을 갖기보다는 네 앞에 있는 대상에 더욱 신경을 쏟아야 한다고 내가 예전에 말해주지 않았던가?”
시오레는 그의 시선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한차례 미약하게 끄덕거린다. 견습 레인저 시절에 포켓몬 헌터의 밀렵 현장을 저지하러 갔을 때 미션을 겨우 성공시킨 후 들었던 내용이었다. '마음속에 새겨둬야지,' 하는 생각을 하긴 했어도 비슷한 상황을 반복해서 겪을 때마다면 희생이 생긴 데 대한 씁쓸함에 의해 덧없이 흐릿해지곤 했는데, 그 감정들이 지금까지도 발목을 잡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니, 정말로 모르는 게 아니라 사실은 외면하고 있는 게 아니었을까?' 시오레가 상념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리더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눈앞에서 대상을 잃는 게 얼마나 많은 후회를 갖게 하는지는 너 자신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그 일을 몸소 겪었던 입장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봐라. 목숨빚을 갚겠다는 의지 외에 무엇을 다짐했어야 했는지.”
느닷없이 찔린 정곡에 눈앞이 새하얘지는 착각이 들었다. 시오레는 고개를 번쩍 쳐들었지만 리더가 던진 질문에 답을 쉽게 꺼낼 수가 없었다. 목소리를 내기 위해 벌어졌던 입술이 힘없이 다물린다. 부하 직원을 잠자코 바라보던 리더는 주머니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막대사탕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무릇 소중한 것을 잃게 되면 당연히 그에 대한 한을 갖게 마련이지. 그리고 이건 겪어본 사람들만 아는 감정이야. 한데 요즘 널 가만히 보고 있자면 그 한에 실컷 휘둘리고 있는 것 같더니만, 그러다 네 감정에 스스로 집어 삼켜질라.”
시오레는 그에게서 받아든 막대사탕을 뚫어져라 내려다보았다. 복수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레인저의 길을 걷겠다며 동기에게 큰소리를 쳤던 교육생 시절 자신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타인의 감정을 곧잘 파악하고 이해하는 파동사가 시오레를 바라본 시야는 어땠을 지 문득 궁금해졌다. '리안이 그때 던졌던, ‘복수를 끝낸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의 본질이 여기에 있었던 걸까. 리더의 말대로 내가 그 감정들에 헛되이 짓눌릴까 걱정이 되어 다른 곳에도 시선을 분산시키게끔 하려고?' 이 짐작이 비약일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어도, 시오레는 아직 안개 속을 헤매고 있는 기분이었다. 결국 그의 입술 새로 흘러나오는 것은 표지판의 위치를 찾는 문장이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어요…. 감이 잡히는 것 같아도 돌이켜보면 그게 또 아니라서.”
리더는 다른 막대사탕을 꺼내서 포장 비닐을 훌러덩 벗겨내고 알맹이 부분을 깨물었다.
“네가 처음 꺼냈던 문제의 요지로 돌아가 볼까.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당연히 동족혐오 좀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런 건 구조 활동을 벌이는 것과는 완전히 별개로 두어야 할 감정이다. 분노와 두려움 따위의 것들은 판단력을 쉽게 흐려버리고 침착함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지. 네가 구해야 할, 그리고 능히 구해낼 수 있는 생존자마저 놓칠 수 있다는 의미다.”
‘참 단순한 이론 아니냐?’ 시오레는 리더의 잇새로 사탕이 조금씩 깎여가는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추위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지라 어떤 말이든 더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종을 울리러 올라오는 추모객들조차 없어서, 출입문을 잠시 향했던 시선은 다시금 리더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리더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구조대상이 생존해 있음에 감사를 느끼고 최선을 다해 구해내라. 죽은 자에게는 슬픔을 바치고 그의 존재를 기억할 것을 약속하되 그의 죽음에 미련을 갖지 마라. 과거와 똑같은 희생이 생기지 않도록 현재를 철저히 감시하고 경계하라. 이로써 생명을 지켜낼 수 있다고 하지. 다른 녀석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음, 이건 내가 알 바 아니고.”
탑의 정상을 흐르는 대기가 어느덧 구름을 갈라내고 틈을 만들어, 그 너머로 궐수시티의 전경이 희미하게 보였다. 머리 위에서 흐릿하게 내리던 햇빛이 대기의 틈새로 여러 줌의 흰색 실을 던졌다. 리더는 빛을 머금어 반짝거리는 샛노란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네 레인저 파일에 기록되어 있는 성향들 말이다, 시오레. 네 신중함과 빠른 판단력은 인사 담당자들이 특히 눈독 들일 만한 요소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좋겠다. 듣자 하니 현장이 그 모양 그 꼴이 났는데도 거기 있던 인원들 중 네가 제일 냉정했다면서?”
시오레는 이 뜬금없는 칭찬에 눈을 맹하니 깜박이다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냉정했던가? 그 지하실에서? 내가?' 눈앞이 하도 빙글빙글 돌아서 그 순간의 자신이 어떤 상태였는지 기억해내기가 어렵기만 했다. 리더는 시오레의 표정을 가만히 쳐다보더니 별안간 그의 등을 팡팡 소리가 나도록 두드렸다. 아, 아프다. 등이 얼얼했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혼비백산해진 두 사람을 제일 먼저 진정시키고 피구조자가 문제없이 이송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고 하더군. 동료들마저 정신이 나갈 듯한 절망 속에서도 너만큼은 냉정을 잃지 않았다는 얘기 아니냐? 그것 봐라, 너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어.”
시오레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얼른 눈물을 훔쳤다. 가슴이 뭉클해져서 우는 게 절대 아니었다. 옆에 앉아 계시던 리더 레인저께서 물리적 다독임을 가하시는 바람에 충격이 커서 이렇다. 시오레는 자기암시를 거는 한편으로 간신히 미소 비슷한 것을 입가에 떠올려 보였다.
“때리지 않고 그냥 말씀만 해주셔도 됐는데요.”
굳이 상기해보자면 자신이 피구조자와 가장 객관적인 입장에 놓여 있어서 그나마 냉정을 지킬 수 있었지 않나 싶다. 시오레의 담백한 투정에 당연히 역정 비슷한 꾸중이 돌아왔다.
“알아들었으면 감사합니다, 해도 모자랄 판에 말대꾸를 하는구나. 나이 반백이 되어가는 판에 찬 바닥에 앉아서 힘들게 상담해줬건만 내 아무래도 부하 직원을 잘못 들인 모양이다.”
결국 시오레는 사회성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시정할게요, 죄송해요, 감사합니다.’ 리더는 뒤늦은 인사를 듣고 팽하니 고개를 돌렸다.
“되었다. 용건 마저 보고 어서 내려가자.”
까득까득 하고 사탕이 잘게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오레는 그 소리에 살포시 웃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투덜거리면서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는 리더를 뒤로 하고, 그는 소원의 종 앞으로 차분히 다가가 서서 그 거대한 형태를 올려다보았다. '정말로 괜찮을까.' 시오레는 이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했지만 방금의 상담 덕분에 적어도 한 번쯤 시도해 볼 정도의 용기를 갖출 수 있었다. 이윽고 그는 타종을 위한 밧줄을 힘차게 잡아당겨서 오랫동안 마음속에 가둬두었던 기원을 하늘로 해방했다. 그것은 빛이 바래지 않고 맑은 소리를 냈으며, 그 청아함이 가슴을 시리게 만들어 종을 직접 울린 사람마저도 넋을 잃도록 했다. 하염없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시오레의 등 뒤에서 호탕하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하하, 거봐. 너처럼 젊은 녀석들이 주눅 들 필요는 전혀 없단 말이지.”
리더는 선뜻 뒤돌지 못하는 시오레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준 후 돌려세웠다. 시오레는 여 보라는 것처럼 까딱이는 리더의 눈썹 모양을 보고 헤픈 웃음을 흘렸다.
“이게… 되는 거였군요.”
“그럼 그게 당연히 되는 일이지, 안 되겠냐. 이제 내려가자. 춥다.”
리더는 가벼운 핀잔을 던지고 시오레의 등을 꾹꾹 밀어서 탑 내부로 통하는 출입문으로 걸어가게 했다. 시오레가 울렸던 종소리는 아직도 긴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그것을 듣는 시오레의 입가에서도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내 자장가가 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는걸.'
“그러고 보면 리안은 잘 지내고 있을까요?”
리자몽의 묘에 들러 나중에 다시 오겠다는 작별 인사를 남기고, 나선형 계단을 따라서 추모탑을 내려가고 있는 길에 문득 떠올라서 물어본 말이었다. 리안이 의식불명이라는 요원의 문안을 간다길래 꽃다발을 한아름 안기고 보내준 때가 며칠 전. 그날 밤에 '깨어났대.'라는 쌈박한 문자를 받고 일이 잘 풀렸구나 싶어서 축하메시지를 잔뜩 보내주고 '남은 휴가 잘 지내다 오라'고 인사를 나눈 이후 오간 소식이 없었다. 리더는 눈동자를 한 바퀴 굴리고 선선히 대답해준다.
“걔 말이냐? 너 외박 나간 다음날에 그 경찰 친구 병문안을 한번 더 가더니만 얼굴이 활짝 펴서 돌아오더군. 엊그제는 별을 같이 구경하러 간다고 한바탕 법석을 떨더니 밤이 늦어서 기지에 들어왔지.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따로 묻지는 않았다만, 여태 잘 먹고 잘 자고 있으니까 괜찮겠거니 하고 있다.”
굳이 ‘누구와 별 구경을 갔다고요?’라고 되묻지 않아도 동기의 동행인을 맥락으로 파악해 낸 시오레는 눈을 느릿느릿 깜박거렸다.
“오… … 잘 지낸다니 다행이네요.”
“…아무튼 그렇다. 걔 걱정이걸랑 말고 남은 기간 동안 잘 쉬고 와라.”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는 시오레를 두고 리더는 한숨을 나직이 쉬다가, 문득 다른 주제를 떠올렸다는 듯이 그를 휙 돌아보았다.
“그건 그렇고 네 지망 말이다. 앞으로는 어떻게 할 참이냐? 계속 잠입 위주로 갈 테야?”
시오레는 갑작스러운 화제 변경에 멍하니 눈을 끔벅거리다 어물어물 대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일단 구조로 바꿀 의향은 있는데, 그게…. 아직 일이 다 끝난 것 같지 않아서요.”
변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하지만 지난번에 발견했던 지하 실험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이에 직감이 ‘뭔가가 더 있다’고 외쳐대는 중이었다. 시오레의 정수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리더는 대뜸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시오레가 놀란 이어롤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자, 리더는 뭐 문제라도 있냐는 듯이 히죽거리는 눈웃음을 남겼다.
“알았다. 일단 구조 미션 위주로 활동하겠다는 뜻으로 알고 있겠다만, 유니온이나 국제경찰 쪽에서 무슨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널 바로 연계해 주도록 하지. 오랜만에 누구 좀 들들 볶는 재미 깨나 보겠구먼.”
리더는 추모탑의 분위기에는 영 어울리지 않는 웃음, 즉 심술궂게 껄껄 웃는 목소리를 냈다. 시오레는 그를 따라 웃는 대신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미란다 씨, 저희 꽃집 VIP 회원으로 만들어 드릴까요?”
“꽤 혹하는 내용이지만 됐다. 대신 나중에 나 은퇴하고 나서 사진전 열게 되면 관람권이나 사라.”
리더는 손사래를 치며 타워 오브 해븐의 바깥으로 먼저 나가버렸다. 시오레는 그 뒷모습을 보다가 탑 관리인에게 인사를 남기고 서둘러 리더를 따라나섰다. 리더는 휴가를 마저 즐기다 오라고 말했지만, 이제 고향에서 볼 일도 다 끝난 마당에 본가에서 가족들의 성화를 받아주기도 귀찮았다. 오늘 밤 레인저 기지로 돌아가면 동기를 구워삶아서 이야기나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만만했다. 시오레는 리더가 건넸던 막대사탕의 포장을 풀어내고 사탕을 입에 물었다. 단단하게 굳은 표면에서는 노멜열매의 새콤한 맛이 녹아 나왔다.
월말이 가까워진 시기에 두 레인저들은 조기 승급식을 진행했다. 말이 거창해서 승급식이지, 실제로는 리더 레인저가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 레인저 데이터를 바꿔주는 정도에서 그친 이벤트였다. 레인저 학교를 갓 졸업하여 견습 레인저가 되고, 견습을 단 상태에서 미션을 최소 3개 이상 성공적으로 완료하면 바로 B랭크 레인저가 되며, 여기에서 보통 1년 내지 2년 정도 경력을 쌓은 뒤에 A랭크 레인저로서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때로는 소속된 기지의 리더 레인저가 재량으로 내린 판단에 따라 A랭크 배지를 비교적 일찍 달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리안과 시오레가 바로 이런 케이스였다.
“너희들이 이 기지에 배정된 지 반년이 조금 안됐는데 벌써 A랭크를 달았다. 좀 이른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만큼 너희가 우수한 태도로 임해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니 자부심을 가져도 괜찮아. 아무렴, 근무 초기부터 그 고생을 했던 걸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아는데 감히 이견을 낼 녀석은 없겠지.”
리더는 여느 때와 같이 책상 앞에 비딱한 자세로 앉아서 심드렁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A랭크부터가 진짜로 시작이라는 말도 있으니 승진했다고 괜히 들떠있지 마라. 월급도 올랐다지만 미션의 난이도도 그만큼 늘어날 테고… 어차피 신입 때부터 애먼 고생을 한 너희가 딱히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 것 같지만, 내가 은퇴할 때까진 쭉 지켜보고 있을 거야.”
격려인지 으름장인지, 리더가 책상 건너편을 향해 서슬 퍼런 낯을 던지자 시오레와 리안은 서로에게 질세라 고개를 정신없이 끄덕거렸다. 리더는 두 레인저의 각 잡힌 태도를 보며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무언가 더 떠올랐는지 ‘그렇지,’ 하는 소리를 냈다.
“이건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기념 파티 벌이다 취해서 사고 치지 말고. 내 아는 케이스들 중에 술집에서 민간인과 싸움이 붙었다가 직위 해제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거든. 뭐… 너희라면 그럴 일은 없겠지만, 사람 일이란 게 어디서 어떻게 흘러갈 지 모르니 경각심 가지라는 의미에서 알려주는 거다.”
그는 순진하게 눈을 끔벅거리는 레인저들을 쳐다보며 피식 새는 웃음소리를 내곤 손을 휘휘 저어 보였다.
“잔소리 겸 잡담은 여기까지. 따로 질문들 없지? 그럼 볼일들 보러 해산해.”
시오레와 리안은 해산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리더의 사무실을 잽싸게 빠져나왔다. 시오레는 손부채질로 이마의 식은땀을 식히고 있다가, 리안이 좀처럼 멍한 얼굴에서 풀려나지 않는 것을 보고 자신에게 부치던 바람을 그쪽으로 보내주었다. 리안은 퍼뜩 정신이 든 표정을 지었다.
“…어. 고마워.”
“미란다 씨 기백 언제 봐도 익숙해지질 않아, 그렇지?”
리더의 사무실은 이미 복도 저편으로 멀어졌지만, 시오레는 누가 들을까 봐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고 소곤소곤 말한다. 리안은 푸스스 웃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리안에게 웃음기가 많아진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시오레는 그 이유를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언가를 캐묻는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시간 널널하면 퇴근 후에 뇌문시티에 놀러 갈래? 내가 분위기 되게 괜찮은 칵테일 바를 알고 있는데, 승진 기념으로 같이 마시러 가보는 건 어때? 마침 입장권도 얻었거든.”
왼쪽 귓불의 피어싱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리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치만 리더가.”
“미란다 씨 말씀은 술 마시다 사고 치지 말라는 의미였지, 아예 술파티를 벌이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었어.”
시오레는 그의 맹한 표정을 보고 파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아~. 너한테까지 마시란 강요는 하지 않을게. 같이 가주기만 해줘, 응? 혼자 쓸쓸히 앉아있는 것보다는 둘이 있는 게 낫잖아.”
"그, 그거야 그렇긴 한데. 나도 오늘 무슨 입장권을 받아버려서... 사실 너한테 같이 가자고 하려고 했거든."
시오레의 기세에 밀리나 싶었던 리안이 중얼중얼 말하며 종이를 꺼내보였다. 시오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동기가 내민 것을 들여다보다 별안간 '어!'하는 소리를 냈다.
"그래, 이거야! 내가 가자는 칵테일 바가 바로 여기라고. 입장권이 비싼 편이라 선뜻 구하기가 힘든데, 니스 요원이 지난 번에 도와준 거 고맙다면서 나한테 이걸 보내준거 있지. 너도 그 사람한테서 받은 거야?"
"아니." 리안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스펜 요원이 보내줬어."
미묘하게 상기된 표정으로 종이의 테두리를 만지작대던 리안은 흠칫 놀라서 시오레를 바라보았다.
"... ...와우."
"그, 그런 사이 아냐. 오해 마."
"응? 나 아무런 말도 안했는데?"
시오레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자신에게서 시선을 피하려고 애쓰는 동기를 실컷 구경하고 나서 적당히 끝내기로 했다. 그는 리안의 등을 힘껏 두드려주고는 신나게 어깨동무를 걸었다.
"같은 입장권을 받았으니 더 잘 됐네! 자자, 빨리 가자. 내가 특별히 사복 근사한 거 빌려줄게."
"... ...아파, 시오레... ..."
동기의 우는 소리가 처량했지만 시오레는 마냥 기분이 좋아져서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기숙사동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퍽 가벼웠다.
뇌문시티의 휘황찬란한 밤거리는 봄축제를 즐기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과 그들의 포켓몬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밤나들이를 나온 연인들의 다정한 속삭임, 그 사이로 호객 행위를 하는 노점상의 목소리가 들리고, 도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유원지로부터 즐거운 비명들이 밤공기를 타고 아스라이 전달되기도 했다. 행복하고 설레는 감정들이 평소보다도 드높게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시오레는 거리의 들뜬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서 표정이 한껏 말랑해져 있는 동기를 이끌고 어느 골목에 자리한 칵테일 바의 안으로 들어섰다. 거리의 열기를 몰아내는 산뜻한 공기를 맞게 된 리안이 눈을 몽롱하게 깜박거리는 동안, 시오레는 카운터에 서 있는 점원에게 척척 다가가 말을 건넨다.
“두 명 입장할게요. 오늘 무대에는 몇 팀이 오나요?”
그들이 내민 입장권을 확인한 점원은 어떤 리스트를 들춰보고는 친절한 대답을 돌려주었다.
“오늘은 열 팀이 오는데, 이미 세 팀이 지나갔네요. 이쪽으로 와 주세요.”
인지도가 알음알음 있는 장소였기 때문에 입장권을 소지했어도 빨리 도착하지 않는 이상은 자리를 차지하기가 힘들었다. 시오레와 리안이 도착한 시간대 또한 대부분의 테이블이 그들보다 먼저 방문한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은은한 조명이 깔린 널찍한 공간 안에서 조용히 건배를 외는 사람들과 내달의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 그리고 추억을 회고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들이 한데 섞여 조용하지도 시끄럽지도 않은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가게에서 마련한 공연용 소무대에 가끔 아마추어 악단들이 올라와서 배경음을 더해주기도 하였다. 그들은 작은 무대가 잘 보이는 테이블로 안내를 받았고, 시오레는 점원이 남기고 간 메뉴판을 집어 들며 흥얼대듯 말했다.
“분위기 좋지? 여기서 아마추어 밴드들이 공연을 하기도 하는데, 연주를 들으러 오는 손님들도 꽤 많아.”
현란한 동작으로 셰이커를 흔드는 바텐더 타격귀의 모습을 넋놓고 구경하던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오레는 그가 가게 내부를 느긋하게 둘러볼 수 있도록 여유를 주는 한편으로 메뉴판의 그림을 눈으로 훑어보다가 미리 찜해두었던 항목을 찾아내고 리안의 팔뚝을 톡톡 건드린다.
“뭐 마실 거야?”
“진저 에일.”
듣기로는 쉽게 취하는 체질이라던가? 동기는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무알코올 음료를 골랐다. 점원이 그들의 주문을 받아 가고 생겨난 간극 동안 시오레는 주변의 다른 손님들과 더불어 이야기꽃을 피워내기도 했다.
“아, 너 그 귀걸이 예쁘다. 어디서 구한 거야? 일하는 동안에는 다른 걸 착용하고 있길래 지금 알아봤네.”
리안의 왼쪽 귀에 달린 금빛 귀걸이가 유독 눈에 띄어 그렇게 물어보니, 그는 제 귓가에 손을 가져다 댔다가 금방 떼며 웃었다.
“옛날에 동생이랑 나눠 가졌던 거야. 여기저기 뛰어다니다가 어디에 걸려서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 미션 중에는 다른 걸 끼고 있었어. 귀 막힌 거 다시 뚫기 힘들더라고.”
“오호라. 동생 일은 뭔가 잘 풀린 모양이네. 제법 보람찬 휴가를 보내고 왔구나?”
'그래서 못본 새 저렇게 여유가 많아진 얼굴이 된 걸까?' 이전에는 곧잘 우중충하게 가라앉곤 했던 표정이 꽤 줄어들어 있었다. 리안은 어깨를 슬그머니 으쓱해 보이고 나서 질문을 되돌려주었다.
“너야말로 휴가 잘 지내고 왔어? 안색이 밝아 보이더라. 원래는 이것보다 일찍 물어보려고 했는데….”
‘내가 물어볼 틈을 주질 않더라고.’ 리안은 그 의미를 담아서 시오레를 빤히 바라보았고, 시오레는 미안한 감정을 담은 브이자를 그려 보였다.
“옛날 친구 만나고 왔어. 그동안 들려주지 못했던 자장가를 들려주니 무척 좋아하던걸.”
리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 말을 듣다가 시오레의 어깨 한쪽을 텁 감쌌다. 그 모양이 뜻밖에도 기특하고 귀엽게 보인 나머지 시오레는 웃음을 상쾌하게 터뜨리고 말았다. ‘푸하하!’ 두 레인저들이 테이블에서 웃고 떠드는 동안 그들이 주문했던 음료가 전달되었다. 시오레는 푸른색 일색인 칵테일을 홀짝 마셔보고는 혀끝을 물들이는 진한 단맛에 기분 좋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살 맛이 나는 것 같았다.
“…그랬더니 아빠가 뭐랬는 줄 알아? 레인저 일은 위험해서 여자가 고를 만한 직업이 아니라고, 조신하게 몸을 사릴 줄 알아야 한다고, 그렇게 봄날 머드나기처럼 행동하면 나중에 시집도 못 간다고, 허, 참, 요즘 시대에 '여자라면~ 조신해야지~ 안 그럼 결혼도 못해~’ 따위 통념이 먹히겠냐고! 내가 머드나기한테 미안하지도 않느냐고 따지니까 나더러 버릇없다고 호통치는 거 있지?”
그리고는 어느 새 미묘하게 흥분한 어조로 대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가정사에 대한 하소연이긴 했지만 휴가 동안 은근히 쌓인 것도 많아서 어쩔 수 없이 기분을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시오레는 제 언행을 그렇게 합리화하며, 진저 에일을 옆으로 밀어두고 잔잔한 표정으로 듣고 있는 리안에게 불쑥 질문을 던졌다.
“리안, 어떻게 생각해? 내 말이 틀렸다고 봐? 내가 버릇이 없어 보여?”
그는 뜬금없이 날아오는 말에도 머뭇대는 기색없이 바로 답했다.
“시오레 말이 백 번 맞아. 세상에 태어났으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야지, 남이 만들어준 틀은 인생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감옥이나 다름없잖아. 나라도 시오레처럼 말했을걸.”
“…역시 그렇지? 내 마음 알아주는 거 역시 리안 밖에 없다니까~.”
길게 생각하지 않고 명료하게 대답해주는 동기가 대견하고 고마워서 어깨동무를 하고 한가득 포옹을 해 주니, 시오레의 얼굴에 뺨이 눌린 리안이 웅얼웅얼 목소리를 꺼낸다.
“근데 시오레, 너 조금 취했다…. 물 좀 마실래?”
“물? 으음…. 역시 좀 들어갔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하는 말인데 아무래도 취한 게 맞겠지…? 그럼 부탁할게.”
포옹을 풀어주자 리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나서 곧장 얼음물을 대령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혼자서 열을 올리느라 리안한테는 조금 부담이 갔을지도 모르겠네, 같이 분위기 즐기러 온 거였는데.' 어쩐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 시오레는 찬물로 속을 식히면서 소리 없는 한숨을 쉬었다.
잠시간의 휴식을 가질 무렵 소무대에서 연주를 끝낸 아홉 번째 팀이 내려가고, 이어서 마지막 순번의 팀이 우르르 올라갔다. 시오레는 취기가 가시기를 기다리면서 새로운 팀이 자리를 잡고 저마다의 악기를 조율하는 모습을 무념무상하게 지켜보았다. 그들이 관중들의 교묘한 관심과 은근한 시선을 받으며 연주를 시작할 때쯤, 시오레는 멤버들을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기타리스트와 베이시스트, 드러머 3인조에, 기타리스트가 보컬을 겸하고 베이시스트가 코러스를 같이 맡았나 보다. 드러머는 레파르다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는데, 신들린 수준으로 스틱을 휘두르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누가 리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오레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곡이라 더욱 관심이 동하기도 했는데,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가 감미롭고 가사의 내용도 마음을 울려서 참 듣기 좋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노래를 자체적으로 작사하고 작곡한 모양이네. 굉장한걸? 그러고 보니 저기 중 몇 명은, 음, 얼굴이 좀 익숙해 보이는 것도 같고…? 그러니까 기타를 들고 있는 두 사람인데, 베이시스트 쪽은 약간 긴가민가 하는 정도이지만 기타리스트 쪽이, 그러니까 꽤 가까운 과거에 만나서 직접 대화까지 했던 것 같은… 그런….'
“어… 리안?”
고개를 흘끔 돌려보니 동기는 무대 쪽으로 시선을 한참 내다꽂고 있는 중이었다. 정확히는 베이시스트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눈빛에 어찌나 열이 들어갔는지 상대방의 얼굴에 구멍이 뚫리지 않을까 옆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걱정할 정도였다. 시오레와 리안의 눈이 스치듯 마주쳤다.
“…알고 있었어?”
‘저 사람들이 저런 활동도 하는 줄 알고 있었어?’ 시오레의 물음은 상당히 축약되어 있었지만 리안은 그 뜻을 용케 알아들었다. 비스듬히 아래로 기울어지나 싶던 눈동자가 도로 시오레를 향하며 눈꺼풀을 깜박인다.
“그렇구나... 알고 있었구나...”
“...어쩌다 보니.”
'같은 그룹의 두 명이서 값 나가는 티켓을 그냥 줬다는 부분에서 눈치챘어야 했나.' 요상하게 배신감이 들어서 중얼거리고 있으려니, 무대 아래의 관중을 둘러보고 있던 베이시스트가 이쪽 테이블에 앉아있는 이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것마저 아주 잠시였고, 그는 부드러운 눈미소를 짓고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연주로 되돌아갔다.
‘우와….’
저 베이시스트가 그때 구출해냈던 요원과 동일 인물인지도 처음에는 잘 몰랐다. '몸을 잘 회복했다고 리안에게 듣기는 했어도 저렇게까지 말쑥해졌을 줄이야. 아, 무대 위라 특별히 꼼꼼하게 단장하고 나와서일 수도 있겠네.' 시오레는 골똘히 생각에 잠기며 턱을 괴었다가 문득 리안의 얼굴을 보고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리안, 너 역시 저 사람 좋아하지.”
“…응? 어? 뭐라고?”
리안은 내용물을 쏟을 뻔한 컵을 겨우 붙들고 시오레를 동그란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그냥 친하게 지내던 지인이랑 놀러 나갔을 뿐인 걸.’
궐수시티에서 레인저 기지로 돌아오자마자 동기를 붙잡고 모험담을 들려달라고 요구하자 제게 주장했던 내용이 위와 같았는데, 제 앞에서 아무리 둘러대려고 애를 써봤자 소용없다. 아까 기지에서도 '그런 사이 아니다'라며 박박 우기더니만, 지금 이렇게나 당황해서 긍정도 부정도 못하는 꼴이 딱 확인사살 당했음을 알려주는 셈이다.
“네 눈에 독케일 무리가 모여들겠더라고.” 한마디를 추가하니 귀까지 새빨개졌다.
“우리 동기… 인간을 한참 서먹해하던 게 바로 엊그제였는데 이제는 누굴 좋아할 줄도 아네.”
괜히 뭉클한 척 냅킨을 눈가에 대고 쓱 문지르는 시늉을 하니 거의 죽어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오레… ….”
시오레는 히죽이 웃는 입을 손으로 가리며 마지막 후렴구에 귀를 기울이는 체했다. 지금 동기를 놀리는 건 시기가 좋지 않으니 마음에 여유를 되찾을 수 있도록 잠시 내버려 두기로 했다. 리안은 이제 아예 체념한 표정으로 의자에서 흘러내릴 듯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무대는 모두 파했고, 다음 손님을 위해 테이블을 비워주어야 할 때가 되어서 계산을 치르고 가게를 나서려던 참이다. 시오레와 리안은 점원이 내민 쪽지를 받아들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요, 이게?”
“무대 맨 마지막에 오르셨던 분들이 아까 전 나가시면서 남기고 간 거예요. 8번 테이블 분들께 이걸 전해달라시더라고요.”
시오레는 고개를 한차례 갸우뚱하고는 점원에게 감사 인사를 남기고 동기의 손을 붙잡았다. 리안은 그 손에 이끌려 가게 바깥으로 나오며 물었다.
“뭐라고 쓰여 있는데?”
시오레는 간판 조명에 종이를 비추어 그 안에 쓰인 문장을 읽어주었다.
“이 건물의 뒤편에 있는 골목에서 두 분을 뵙겠습니다...... 그러니까 국제경찰 대 레인저로 만나자는 것 같은데.”
그는 부채질하듯 종이를 팔락거리며 동기를 돌아보았다. ‘어쩔래?’하고 묻는 눈빛에 리안은 평상시의 태연함을 되찾고 짧게 답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흠…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시오레는 아직 취기가 남아 기분 좋게 흥얼거리며, 동기와 팔짱을 낀 채로 건물을 빙 돌아서 바로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이게 소문으로만 듣던 국제경찰의 비밀스러운 접촉이라는 거구나, 시오레는 트레이너 시절에 아주 가끔 들었던 소문들을 떠올리며 상대적으로 어두운 골목을 둘러보았다. 협소한 공간에 세워진 차량 외에는 통행의 흔적도 없거니와, 골목과 밀접해 있는 건물들은 방문자들의 인기척으로 왁자지껄했으니 남몰래 밀담을 나누기에는 적합한 장소같았다. 리안이 아무런 반응 없이 평온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걸 보면 확실했다.
'괜찮은 장소를 골랐네, 제법인걸. 이런 데서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나.'
시오레는 혹시 몰라서 꺼내두었던 워글의 몬스터볼을 도로 품속에 집어넣고 앞을 바라보았다. 한 남성이 골목길에 외따로 떨어진 가로등 밑에 홀로 서서 손짓을 해 보였다. 그럼 나머지 둘은 저 차량 안에서 대기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레인저 시오레, 그리고 레인저 리안. 갑작스러운 요청에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시간 되셨는지요?”
리안은 시오레의 눈치를 보고는 끼고 있던 팔짱을 은근슬쩍 풀었다. 아뿔싸. 어쨌든 그 덕분에 시오레는 남은 취기마저 싹 깨뜨려버리고 멀쩡한 음색으로 대꾸할 수 있었다.
“네, 그 쪽은 아스펜 요원 맞죠? 회복 잘 되신 것 같아 다행이네요.”
의례적인 인사말에 상대는 온화하게 웃으며 고맙다는 답을 남기고, 그 이상의 사담을 건너뛰어서 본론으로 들어갔다.
“먼저 이 자리를 제안한 이유부터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희가 긴 시간을 들여서 어떤 밀매 조직을 뒤쫓아왔다는 사실은 여러분께서도 잘 알고 계시지요?”
군말이 없는 태도가 마음에 들어서 선뜻 고개를 끄덕여주었더니 뒤 문장이 금방 이어진다.
“제가 그 곳을 벗어난 이후 지난 며칠간은 잠적을 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만, 최근 조직 측에서 불법 도구의 밀거래를 시도하려는 흔적을 잡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거래 당일에 현장을 급습하려 하는데, 저희 외에도 다른 전문가 분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거래 현장에는 밀렵된 포켓몬들도 다수 개체 나오게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우리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거야?”
잠자코 그 말을 듣고 있던 리안이 톡 던지듯이 물었고, 바통을 이어받은 시오레가 질문을 얹었다.
“그 거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어떤 자들인지도 알고 싶은데요.”
아스펜은 거듭된 질문을 유연하게 받아넘겼다.
“상세한 내용은 추후에 따로 전달드리겠습니다. 당장은 여러분처럼 우수한 레인저들의 능력이 요구될 만큼 중대한 사안이라는 점만을 알려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요주의 인물이 현장에 출현할 것이라는 암묵적인 예고겠지. 답변에 만족한 시오레는 리안의 안색을 훔쳐보고는, 그의 표정에 흐뭇한 감정이 희미하게나마 묻어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방긋 웃었다.
“그럼 우릴 여기서 만난 김에 미리 말을 해두고 싶었다~ 이거네요. 우리를 기억해줘서 고마워요.”
미션을 수락하는 최종 결정권은 리더 레인저에게 있다지만, 방금 자리가 예약된 참이니 미션을 놓칠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걸 두고 지인 찬스라고 하던가?'
“그럼 두 분께서 승낙하신 것으로 알고 협조에 미리 감사드리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건은 여기까지인데… 혹시 질문 사항이 있으신지요?”
리안이 손을 절반가량 들어 올렸다.
“지금까지 말해 준 것과는 관련이 없지만 갑자기 궁금해졌어. 이렇게 길거리 위에서 중요한 내용을 막 일러줘도 괜찮은 거야? 항상 하던 방식으로 레인저 측에 의뢰를 남겨도 우리가 잘 받아올 텐데.”
리안의 톡 튀는 질문은 매번 훔쳐듣는 재미가 있었다. 아스펜은 훤히 드러난 이마 뒤쪽으로 머리칼을 쓸어넘기는 행동을 취하다가 그의 물음을 듣고 빙그레 웃었다.
“저희는 본디 외부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면 이런 게릴라식 만남을 자주 사용하곤 합니다. 남이 예측할 수 없는 만큼 적의 허를 찌르기 쉽다… 는 의도가 숨어있다나요. 그리고… 제 은인이신 두 분께 개인적으로도 감사를 표하고 싶었습니다.”
리안은 곧장 뚱한 표정을 지었고, 시오레는 제자리에서 펄쩍 뛰며 질색했다.
“아우, 그건 됐어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낯 간지럽게 그러지 마요.”
시오레의 말에 동그랗게 뜨였던 눈이 천천히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레인저 리안과 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앞으로는 여러분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시오레는 동기의 어깨가 크게 움찔거리는 것을 못본 척하며 고개를 까닥거렸다.
“그럼 그 쪽 소식 기다리고 있을게요. 나중에 봐요~.”
아스펜 요원은 공손한 인사를 남기고는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는 차량으로 걸어가 버렸다. 시오레는 붉은 후미등이 골목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빛이 완전히 사라졌을 무렵에도 여전히 자세가 굳어 있는 리안을 향해 고개를 휙 돌렸다.
“레인저 리안과 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시오레가 요원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리안을 빤히 바라보자, 그는 시선을 필사적으로 피해내며 궁시렁거렸다.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니잖아.”
“언제부터 좋아했는지만 알려주라. 응? 그럼 이다음부턴 아무 말 안 할게.”
남의 연애사를 듣는 것만큼 즐거운 건 또 없었지만 이것도 적당한 선을 유지해야 했기에 건넨 제안이었다. 리안은 고심에 빠진 듯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가, 이윽고 땅이 꺼지도록 무거운 한숨을 푹 내쉬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제일 처음에 만나자마자... 였던 것 같아.”
시오레는 입을 딱 벌렸다.
"세상에...... 그럼 첫눈에 반했었다는 얘기야?"
모르긴 몰라도 수년치 짝사랑을 해 왔다는 의미나 다름없어서, 시오레는 문득 측은함을 느끼고 동기의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다.
“힘들면 나한테 말해. 연애 상담은 자신 없지만 듣는 건 잘하는 편이거든.”
리안은 금세 울적해진 얼굴로 시오레를 응시하고는 골목의 출구 방향으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생각해 볼게.”
…동기가 이렇게 기운이 빠져버리면 뇌문시티까지 먼 걸음을 한 보람도 없는데! 시오레는 그의 뒤를 금방 따라잡으며 재잘댔다.
“잉어킹빵이나 대포무노빵 먹으러 갈래? 바로 근처에 포장마차 거리가 있거든. 일단 먹고 나서 나중 일을 생각해보는 거야.”
다행스럽게도, 리안은 이것마저 생각이 없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시오레는 동기를 끌고 재빠른 발걸음으로 시가지의 불빛을 향해서 걸었다.
"... ...참, 시오레. 나 부탁이 있는데."
"응? 뭐든 말해 봐. ...내가 들어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터덜거리는 발걸음으로 길을 한참 걷던 리안이 답지 않은 말을 불쑥 꺼내자, 시오레는 적극적인 동작으로 동기에게 붙어서며 응답했다. 리안은 짧은 침묵을 놓고 자신의 속을 텄다.
"이번 주말에 타워 오브 해븐에 꽃을 들고 가려고 하거든. 조문할 땐 어떤 꽃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려줬으면 해서."
시오레는 이 뜻밖의 말을 듣고 눈을 잠시 깜박거렸다. 시오레가 알고 있는 한 자신의 동기가 최근에 상실을 겪은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리안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겪었던 상실인걸까. 시오레는 유추를 금방 멈추고 리안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아무 말 안 하기로 약속했으니까.' 자고로 소중한 동료의 사생활에 과도한 간섭은 피해야 하는 법이다.
"숙소로 돌아가면 추천 목록 뽑아줄게. 그대신 우리집에서 꽃 사주는 걸로."
리안은 시오레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이내 미약하게 웃었다. '이제야 웃는구나.' 시오레의 눈썹이 만족스럽게 휘었다.
"리안, 역시 넌 웃을 때가 가장 예뻐."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