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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기의 방법론

크레페 찻@chat_owo 커미션

KKN5 by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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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하라는 그와 자신 사이에 그인 선을 세어봤다. 그려진 선은 더없이 많았고, 나오하라에게는 넘을 수 있는 것보다 넘을 수 없는 것이 더 많다. 나오하라는 그 사실에 새롭게 절망하기보다는 그저 그 선을 한 번 쓸어봤다. 내가 알 수 없는 당신, 내가 몰라야 할 당신. 그의 전부를 알아도 자신은 그를 좋아할 수 있을까? 아마 필경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좋아하는 이는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나오하라는 아니었다. 그는 상단주의 자제답게 재고 따지는 데에 꽤 능숙했다. 그러니 지금도 제 감정에 앞서 그에게 고백하는 것보다 그저 그를 임무라는 형태로 불러내길 택하고 있지 않은가.

 

나오하라는 자신이 만약 불의 나라 상단주의 자식이 아니라 나뭇잎 마을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본 적 있다.

 

전쟁은 장난이 아니니 어머니는 물론이고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셨을 수도 있지. 어쩌면 자신이 일찌감치 죽었을 수도 있겠다. 아마 자신은 몸을 쓰는 데에 크게 재능이 없으니 닌자로는 대성하지 못했을 거고, 혹은 아예 닌자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를 더 가까이 볼 수 있었겠지. 제가 모르는 그의 과거를 알고, 어쩌면 그와 대화를 몇 번 더 해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그를 볼 수 없었겠지. 마을 안에서 그의 위치를 알면, 자신은 그의 의뢰인이 되지 못했을 테고, 제멋대로인 자신의 부름에 그가 응해주지 않았을 테니까.

나오하라는 그 사실에 괜히 자신이 하는 일을 한 번 되짚었다. 지금 하는 일. 그러니까 하타케 카카시라는 고급 인력을 단지 자신이 보고 싶다는 이유로 불러내는 일 말이다. 그것이 그를 화나게 했는가? 아마 아닐 테다. 그는 자신에게 화를 낼 만큼 관심 있지 않았다. 모욕적이지도 않았겠지. 내 감정을 알고 있을 테니까. 어쩌면 조금은 귀찮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가 대답할 수 없는 감정을 계속해서 마주해야 하니.

 

기실 나오하라는 그의 감정에 대해 꽤 정확하게 추측하고 있었다. 그것이 상단주의 후계자로서 키운 눈치 덕분일지, 좋아하는 이를 향한 기민한 감각 덕분일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오하라는 제 감정이 보답받을 리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오래 간직해온 소녀의 순정은 좀 집요한 구석이 있어서, 나오하라는 이 감정을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자신을 싫어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면 모를까.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오하라는 하타케 카카시라는 인간이 자신을 싫어하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나오하라는 선을 재고 따지는 것에 능했고, 그의 역린을 밟지 않고 현상을 유지하는 것에는 자신 있었다. 사랑에 빠진 이가 하는 일치고는 퍽 소심하였으나, 나오하라는 이것을 제 장점으로 여겼다. 적어도 그와의 관계에서는.

 

내일, 그가 올 것이다. 그러면 그가 크게 관심 없는 다과를 차려 그에게 대접하겠지. 아예 대접조차 못할 수 있겠지만, 그는 어지간하면 나오하라와의 다과 시간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가 받아줄 수 있는 만큼의 일. 딱 차 한잔의 시간. 나오하라는 그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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