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

가내 아스타브 관계의 시작? 뭐 비스무리 한 거...

BG3 by 김야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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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타리온의 시점으로, 가내 타브를 바라보는 여러 장면들이 나열된 글입니다.

-1막까지 진행한 상태에서 작성한 글이기에, 이후 내용에 나오는 설정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아스타리온이 뱀파이어인 것을 들키기 이전의 시점입니다.


“누구야?”


조그맣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한층 더 몸을 구겼다. 어둠을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만 살짝 뿌려놓으면 아무리 실력 좋은 소서러라도 잠결에는 알아차리지 못할 테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야영지 근처 강가에 서있는 제 동료를 눈만 가늘게 떠서 바라봤다. 이 야심한 밤에 무얼 하나, 작고 작은 호기심에 불이 지펴진 순간이었다.



“… 그래서, 나보고 의식에 쓰이는 저 신상을 훔쳐달라, 그런 말이지?”

아마 평범한 어른이라면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바로 잔소리했을 거다. 어떤 상황이어도 도둑질은 나쁜 행동이다, 어쩌구 저쩌구… 야영지에 있을 어떤 마법사나, 발광의 검? 변경의 검? 뭐 그런 사람들을 저격하는 말은 아니고. 하지만 이 무리의 우두머리 정도 되는 하프엘프께서는 꽤나 진중하게 어린 티플링의 얘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마치 어른과 어른의 대화를 해주는 것처럼. 어린 애들은 그런 걸 좋아하긴 하지. 어른이 자신을 동등하게 대해주는 거. 그래서 나는 그가 어린아이를 대하는 방법을 알고 있고, 그것이 많은 아이들을 만나본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 이 상황을 꽤나 즐겁게 여기고 있다는 것도. 허, 드로우 하프엘프가 말이야. 그 모습이 조금 웃겨서 하! 하고 작게 코웃음을 치면 그는 소리에 맞춰 이쪽을 돌아본다. 왜 그러냐 말하는 것 같은 눈을 하고, 어떻게 할까? 하고 꼭 다른 이들의 의견을 또 묻는다. 기스양키의 전사는 이런 거 할 시간에 기스양키가 머무르는 곳을 찾아가야 해, 라며 그들만의 욕을 내뱉고, 샤의 신도께서는 늘 별 상관없다는듯 어깨나 으쓱이며 있을 게 훤하다. -하지만 아마 속으론 꽤나 즐겁게 생각했을걸? 샤 말고 다른 신한테는 적개심이 강한 신도니까. 1,000 야영 물자만큼 확신한다.- 나는 어떻게 답했냐고? 그야 당연히 훔쳐야지! 의식 따위 엿이나 먹으라지. 알 게 뭐야. 꽤나 재미있는 이벤트일 것 같단 말이야. 그렇게 우리의 의견을 물어본 그는 호쾌하게 웃으며 몰이라는 어린 티플링에게 손을 내밀고, 이렇게 말했다. 그거 팔고 번 돈, 절반은 내 거다.

아, 웃겨. 생각 이상으로 마음에 드는 답이다.


어린 티플링들이 한곳에 뭉쳐있었다. 순수함을 내세워 도둑질이나 하는 간사한 꼬맹이들… 이쪽도 한 손버릇 하지만, 저 녀석들은 신수가 훤하다. 이 숲에 사는 놈들은 다 속고 사는 건가? 저… 그래, 저 눈동자에 속아 넘어가는 게 분명하다. 나와 레이젤, 그리고 섀도하트는 비슷한 생각이라도 하는 건지 그렇고 그런 눈으로 티플링 꼬맹이 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쪽 나이를 다 합하면 300살은 거뜬히 나오겠지만… 그래도 얄밉고 짜증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저런 놈들한테 당했다는 아주 작은 쪽팔림이란 감정 탓에 더더욱 열이 뻗친다고. 하지만 나이조차 알지 못하는 우리의 바보 같은 하프엘프께서는 우리와는 다른 눈으로 그 티플링들을 바라보고있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웃고는 있지만, 어딘가 우울한 감정이 묻어나오는 쓴웃음이었다. 대체 지금 상황의, 어느 부분에서 저런 것들이 나오는 거지? … 그러고 보니 게일 그 녀석, 꽤 쓸만한 마법 도구를 받았던 거 같은데. 그중에 남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반지도 있었던 거 같고. 밤 동안 그거라도 훔쳐서 써볼까.


하, 영 괜찮은 것들이 없다. 게다가 이 근방은 저 빌어먹을 드루이드 자식들의 시선이 닿는 숲이라 아무거나 사냥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요즈음에 배부를 정도로 ‘괜찮은 식사'를 한 적이 손에 꼽히는 거 같은데… 아쉬운 마음에 허기진 배를 잠시 내려다보고 다시 야영지로 돌아오는 걸음에는 힘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이러다간… 올챙이한테 잡아먹히기 이전에 내가 굶어 죽겠어. 오늘이야말로 ‘그' 방법을 써야 할 것 같다. 힘이 없던 걸음에 의식적으로 기척을 죽이고, 소리조차 내지 않으며 야영지로 돌아갔다. … 레이젤은… 맛은 궁금하지만, 함부로 건들기가 조금 그렇단 말이지. 여차하다 깨우기라도 하면 그 순간 바로 나는 말뚝이 박힐 게 뻔하다. 섀도하트도 비슷해. 아직 나에 대한 의심도 있는 것 같으니 아직은 아니다. 게일이나 윌 저 녀석들은… 아마 눈 뜨자마자 질색하며 경멸하는 눈으로 바라볼 텐데, 그것도 나름 자극적이지만 오늘만큼은 적당히 넘어가고 싶었다. -그리고 게일한테서 반지도 하나 훔치기도 했고. 피까지 훔쳐 가면 조금 “불쌍" 하잖냐.-  카를라크는… … 무리다. 패스. 그러니 남은 건 딱 한 명뿐이다. 적당히 똘똘하지만, 이상하리만큼 무르고, 그 와중에 돈 욕심, 음식 욕심은 또 있어서 사리사욕 채우는 거에 거리낌이 없는… 조금 이상한 드로우 하프 엘프 한 명말이다. 들키더라도 불쌍한 척 조금 해주면, 아니면 내가 먹지도 못하는 것들을 나눠주는 척이라도 하면 기분 풀릴 것 같잖아.

그런 바보를 향해 기척을 죽인 채 근처로 다가가, 훤히 드러나는 목과 쇄골을 눈으로 훑고, 입맛을 다신다. 꽤나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죽은 쥐랑은 전혀 다른 맛이 나겠지. 정말이지,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다. ‘식사' 라는 행위에 두근거림을 느끼게 됐다니! 올챙이 덕에 그 썩을 카사도어의 눈에서 벗어나 이런 짓을 해볼 수 있다니!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상체를 숙이는 순간,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 곧 깰 거 같다.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잠깐의 뒤척거림이 아니라 몸이 파르르 떨리는 것마저 느껴졌으니까. … 젠장, 작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서둘러 제 침낭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그 모습을 들킨 것은 아닌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꿈이라도 꾼 모양이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꿈을. 아무런 말도 없이 호흡만 하는 시간이 긴 것을 보면 대강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부스럭부스럭 움직이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이어서는 저벅저벅, 걷는 소리가 들리고, 작게 무어라 중얼거리는 것도 들려왔는데… 가만 들어보니 죄다 욕이었다. 시부럴… 하고, 웬 시장 아저씨가 내뱉을 거 같은 구수한 욕. 평소엔 욕은 물론이고, 거친 단어는 입에 담은 적이 별로 없었기에 -물론 ‘할복할까?’ 같은 표현은 쓰지만, 과격한 것과 거친 것은 다른 느낌이다.-  거기서 나오는 괴리감에 무심코 작은 웃음소리를 내고 말았다.


“누구야?” 

작게 들려오는 목소리로 그가 짧은 시간에 참 멀리도 걸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빨리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으려나. 애써 잠든 척을 하다가 다시 걸어 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나도 몸을 일으켜 그 뒤를 쫓아가 봤다. 어쩌면 둘이 따로 있는 것이 식사를 하기에 더 좋은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어쩌면 이것도 써볼 수 있을지도.  바지 주머니에 있는 생각 탐지 반지를 다시금 확인해 보며 드는 생각이었다.

어둠을 얕게 깔아놓은 것을 유지한 채로 그의 뒤를 쫓다 보면, 강의 끝에 도달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강의 시작점. 물줄기가 크게 쏟아지는 그 부근 말이다. 그제야 알아차렸다. 강줄기를 따라 거슬러 올라왔구나, 하고. 그리고 그것이 다분히 의도된 행동이었다는 것 또한. 아직도 잠이 덜 깬 것인지 졸려 보이는 눈을 한 채로, 자갈과 돌이 가득한 거친 길을 멈칫거리는 행동 없이, 오롯이 직진만 하며 걸어 나가는 것은 확실한 목표지점이 있기에 가능한 걸 테니까. 성냥처럼 작은 불이었던 제 호기심이 어느새 횃불만 해졌음을 느꼈다. 만지작거리기만 하던 반지를 조심스레 제 새끼손가락에 끼우고, 눈을 크게 뜨고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 뭐야 이거, 왜 아무것도 안 들려? 마법사 녀석 말대로라면 보통은 끼우자마자 주변 사람의 생각이 느껴진다고, 그 정도로 강력한 마법이 담겨있는 반지라 했는데. 혹시 그 녀석이 먼저 써버려서 효과가 다 했나? 하, 기운 빠져. 짜증이 나서 반지를 빼려던 그 순간에 가녀린 목소리 한줄기가 들렸다. 그래, 가녀리다. 평상시 듣던 것과는 전혀 다른, 낮에 보여주었던 호쾌한 웃음과는 전혀 다른… 이 강가에 있는 젖은 돌만큼이나 축축한 목소리가.

‘그때도 이랬어야 했나.’

축축하지만 고저 없이, 애써 잔잔하게 흘려보내려는 듯한 머릿속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봤다.

‘차라리, 차라리 밖으로 내보냈으면. 그랬다면 너희는…’

‘... 너희도, 몰이나 매티스만큼 자랐을 텐데.’


하, 티 나지 않게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내뱉은 헛웃음은 제가 뿌린 어둠 안에서만 맴돌았다. 낮부터 봐왔던 것들이 맞물렸고, 그와 동시에 내 마음 안에서 지펴졌던 횃불은 다시 성냥불 크기만큼 줄어들었다. 입맛도 사라졌다. 저 축축하다 못해 눅눅한 목소리를 뚫고 등 뒤로 몰래 다가가 목을 물어도, 강물 섞인 밍밍한 핏물 맛만 느껴질 게 훤하다. 결국 오늘의 식사는 포기한 채로, 반지의 효과가 다 할 때까지 지켜보기나 할 생각으로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또 정적이 흘렀다. 아무런 생각도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손을 움직여 손바닥만 한 돌을 움켜쥐고, 주변을 정리하더니 그런 돌들을 하나씩 쌓아 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하나, 둘, 셋. … 일곱. 총 일곱 개의 돌로 탑을 쌓았다. 돌을 하나 더 집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빼려고 하지도 않았다. 거기서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앞서 들렸던 마음속으로 말한 ‘너희'는 일곱 명일 것이란 거다.

… 뭔가 알고 싶지 않은 것들만 알게 되고, 배는 여전히 고프고.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밤을 보낸 것 같다. 허기진 배를 가볍게 문지르고 있으면 어느새 몸을 일으켜 다시 야영지로 돌아가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그제야 그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아까 전 눅눅한 목소리를 낸 자가 이 하프엘프일 거라고는 예상조차 할 수 없는… 평상시 그대로의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아직 남아있는 마음속 성냥불은, 조금 더 유지 해봐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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