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EJ (1)
서점 주인과 이야기하는 빈도가 늘었다. 며칠 전부터.
아침 운동을 위해 시내의 공원까지 조깅을 하고 돌아오면 그의 서점은 대부분 열려있곤 했다. 아침 시간대라 손님이 있는 모습은 거의 보지 못했지만, 주인만큼은 카운터 너머에서 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유리문 너머로 시선이 마주치면 서점 안으로 들어간다. 살갗에 닿는 에어컨 바람이 서늘하니 기분이 좋다. 대화의 주제는, 이야기를 자주 나누게 된 이후로 한정하자면, 변함이 없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작가 선생에 대해 늘상 의견을 주고받았다.
"작가님이 머리를 다듬으신 게 지난 주 금요일. 저희 서점에서 나가시는 길에 이발소를 들렀다 가신 것 같으니까, 저녁 즈음이네요."
도진의 일과는 불규칙적인 듯 규칙적이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서점에 와서 글을 쓰다가 잡담을 나누다가 한다. 지난 주 금요일도 그런 날들 중 하나였고, 이레귤러한 요소를 하나 꼽자면, 그 날은 서점 주인이 재고 정리로 조금 바빴다는 것이다.
"그래도, 작가님은 여기서 말을 그렇게 많이 하시는 편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그는 도진을 아주 약간 방치했다.
'슬슬 날이 덥네.'
도진이 문득 떠올랐다는 얼굴로 말했다. 서점 주인, 현은 적당한 말로 받아주었다.
'더워졌죠. 비도 오고. 습도 때문에 에어컨도 틀었다니까요.'
그러자 그는 살짝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머리라도 자를까?'
한창 장부를 정리하던 현은 손을 멈출 수 없었다. 시선도 떼기 어려웠다고 한다.
'아 좋죠. 저도 더 길면 자르려고요.'
물론 도화가 알기로 그가 최근 들어 머리를 자른 적은 없다.
'이발하고 가야겠다.'
이 부근에서, 현은 겨우 장부에서 시선을 떼어냈다. 카운터가 비스듬하게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있던 도진은 흐리게 웃고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자르시려고?'
그 웃음을 보고 현은 시선을 도로 장부로 돌렸다.
'그러게.'
그리고, 도진은 이후 문제의 발언을 내뱉는다.
잡지에 의뢰받은 원고를 다 썼으니까, 너한테 먼저 보여주고 싶다, 라고.
당시의, 바빴던 현은 그 발언을 그다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거 영광이네요. 프린트해서 보여주시는 거예요? 라며 순수하게 기뻐했다. 뇌가 처리할 정보가 많으면 판단력이 오히려 둔해진다는 방증이 아닐까.
"새 글을 나한테 먼저 보여주실 리가 없는데."
현은 그렇게 말하고 애써 웃었다.
추리소설가 서도진의 데뷔작이자 히트작 『보랏빛 심해』는 당시 신생 출판사였던 A 출판에서 출간되었다. 문예에는 영 관심이 없는 도화는 제목이나 겨우 들어본 작품이지만 현의 말로 미루어 보아 대단한 판매량을 올린 건 확실해뵌다.
사실, 『보랏빛 심해』의 초고는 대중에게 읽힐 수 있을 만한 게 아니었다고 한다. 거칠다 못해 원시적인 필력은 둘째치고, 망가지고 무너진 문장이 너무 많아 평범한 독자들이라면 내용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때문에 이름 좀 있는 출판사들은 그의 투고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A 출판은 사정이 좀 달랐다. A 출판은 소설 플랫폼을 표방하고 있긴 했지만, 정작 출간할 만한 작품을 고르지 못해 이도저도 못하고 있었다. 그 때 A 출판에 다니고 있던 편집자 윤필규가 도진의 투고작을 읽었고, 이건 문장만 어떻게 다듬는다면 어떤 독자든 매료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소설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필규의 요청을 들은 사장이자 편집장은 도진에게 연락했지만 그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 사장이 당황하던 차에 필규는 발빠르게 원고 수정 작업에 손을 대 버렸고, 결국 도진과 연락이 닿은 건 원고의 7할을 수정한 이후의 일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작가님한테 편집자였던 윤필규는 최초의 독자이자 동업자...... 수준이죠. 지금도 작가님은 모든 소설의 초고를 윤필규한테 보여주고 있어요. 그새 작가님도 실력이 더 느셔서, 걔가 손을 대는 일은 좀 줄었다고 하지만요."
실제로 독자들 사이에선 그의 문체가 조금이지만 바뀌었다는 여론이 있다는 모양이다.
도화로서는 아주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이쪽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니 어쩔 수 없긴 하다.
"내가 묻고 싶은 건, 결국 작가 양반이 이중인격이냐는 거야."
현은 택배 박스에서 참치캔인지 뭔지 모를 고양이 음식을 하나하나 꺼내며 대답했다.
"그러게요. 저도 정신과 의사는 아니라서."
"경향이라는 게 있을 거 아니야."
"경향이라...... 잘 모르겠어요."
납작하고 둥근 캔이 다섯 개씩 여섯 줄 쌓였다. 카운터는 완전히 포화 상태다.
"그게 다중인격인지, 아니면 단순한 보호 기제일지."
"보호 기제?"
"작가님이 저러시는 걸 전에도 한 번 본 적 있거든요."
도화가 이 도시로 이사오기 전의 일이다. 윤필규가 모종의 사건에 휘말려 의식불명에 빠졌다. 도진은 그 사실을 알고 정신에 큰 충격을 받은 건지, 필규의 병상 앞에서 대단히 무감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진지하게...... 벌벌 떨던 윤서천 쪽이 더 멀쩡해 보였지."
필규가 의식을 찾을 때까지 도진은 쭉 그런 상태였다. 하여튼 현실을 보고 있는 눈이 아니었다. 가만히 앉아 혼잣말을 하다가, 누군가 뭘 하는 거냐고 물어보면 한 쪽 귀에 끼고 있었던 무선 이어폰을 보여줬다. 전화를 하고 있었다고 거짓말을 한 거다.
"거짓말을 꾸밀 정신이 있다는 건, 일단 자기가 남한테 이상하게 보인다는 걸 자각하고 있다는 거 아냐."
"그렇게 되죠."
"흐음...... 이거 어렵네."
그런 상태일 때면 도진의 돌발행동은 무척 심해졌다, 라고 현은 이야기했다. 상세한 예시는 들어주지 않았다.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거 아냐?"
"한 달 전에 다녀오셨어요. 정기 검진으로."
도화는 그쪽의 진료 프로세스를 잘 알지 못한다. 아직 상담 때가 아니라 치료를 못 받으려니 할 뿐이다. 문예와 마음의 병이라. 내 인생에 이렇게까지 안 맞는 남자가 있을 수 있나.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오늘도 대화는 끊겼다. 애매한 작별인사를 남기고 도화는 서점을 뒤로 했다.
서점에서 아파트까지는 외길이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다. 늘상 피우는 던힐을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내 라이터로 지져본다. 씁쓸하고 묵직한 바디감은 언제 피워도 질리지를 않는다.
두 대를 느리게 피우면 아파트 정문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오늘은 정문 너머에 누군가 서 있었다.
차를 좀 태워주시지 않을래요, 라고, 서도진은 이야기했다.
"차, 차요?"
"갑자기 어디 갈 일이 생겼는데, 여긴 택시도 안 잡히고 해서."
평소보다 단정한 말투다. 뒷말을 전혀 끌지 않는다.
지나치게 이질적이라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이 아침에 밖에 나와 계신 건 처음 보네요."
지금은 아침 9시 반이다.
"아, 도화 씨 집에 갔었는데, 안 계신 거 같아서요."
"그래서, 무작정 여기에 서 있었어?"
"차도 주차장에 있고 하니까 멀리 나간 건 아니시겠지, 싶었죠."
"아하."
세 개피 째의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들었다.
눈앞의 작가는 나를 관찰하고 있다.
도화는 그렇게 자각했다. 틀림없다.
"어디 가시려고?"
"어디였더라...... 무슨, 디지털 단지였는데."
"가산 디지털 단지?"
"아, 맞아요. 역시 잘 아시네요."
역시? 이건 또 무슨 뜻을 내포한 건가.
"근데, 아, 잘, 모르겠네, 역시."
도화의 얼굴을 향해 고정되어 있던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래도, 음, 그쪽으로 가면, 그 사람이, 어떻게든, 네."
시원하게 깎인 머리가 후덥지근한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린다.
하지만 도화는 오히려, 오한이랄 게 순간 들어서.
초여름부터 납량특집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고 생각하고야 만 것이었다.
결국 도진이 약속을 마친 후 점심을 사는 것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지금 서울까지 가면 한 시간 좀 덜 걸릴텐데. 약속이 길지 않은가봐? 라는 도화의 물음에 도진은,
"삼십 분 정도면 충분할 거예요."
라며 여전히 단정한 어조로 대답해주었다.
조수석에 그를 태우고 차에 시동을 건다. 붉은색 애마는 평소와 같이 눈을 번쩍 떴다.
"도화 씨 차에는 처음 타 보네요."
귀신을 태우고 운전을 하는 기분이다. 도진은 보통 저런 사교용 멘트를 치지 않는다.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곤 차를 출발시켰다. 차 하나 없는 도로가 두 사람을 반긴다. 정문을 넘어, 서점을 지나, 이발소를 지나, 편의점을 지나. 불과 몇십 분 전까지 헉헉대며 올랐던 비스듬한 언덕을 내려간다. 시내로 진입해서, 다른 고속도로로 빠진다. 평일 아침의 도로는 한산하다 못해 텅 비었다.
차내는 고요하다. 도화는 그에게 말을 붙여봐야 하나 고민한다.
아침의 대화를 떠올린다. 그 서점 주인은 내 차에 작가 양반이 타고 있는 걸 보았을까. 만약 보았다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를 병원에 데려가고 있다고 생각할까.
"머리 다친 건 괜찮아요?"
도진은 일전 아파트 뒷산에서 심하게 굴렀다. 머리를 땅에 부딪혀서 잠시 의식을 잃었었는데, 이후 서점 주인이 그를 병원까지 데리고 간 모양이었다. 가벼운 뇌진탕이라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단다.
조수석의 작가는 조금 웃었다. 큭, 하고, 다물린 입술 사이로 탄성을 뱉었다.
그 반응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도화는 또다시 한기를 느꼈다.
"네, 괜찮아요. 머리에 피가 찬 것도 아니니까."
찬 거 아닌가? 다시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
"정말 괜찮아요."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도화는 앞으로 남은 오십 분 남짓한 경로가 심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근데, 운전수로 쓸 사람은 나 말고 더 있지 않나?"
"현이?"
"꽤 친해 보이시던데."
"음, 확실히."
"아파트 앞에서 기약 없이 날 기다릴 바엔... 서점까지 가서 차 태워달라고 하는 게 빠르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러자 도진은 고개를 돌렸다. 운전석을 바라보고 있다. 끈적한 시선이 제 옆얼굴에 들러붙는다. 정말이지 유쾌하지 못한 기분이라, 도화는 부러 동영상 사이트에서 보았던 웃긴 영상을 떠올린다. 액체괴물을 핸들에 넓게 펴발라 먼지를 제거하는 상품을 생각해낸다. 봤을 땐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재미가 전혀 없다. 내가 핸들이 된 기분이다.
"도화 씨는 좋은 사람이니까요."
천천히 내뱉는 그 말이 꼭 다른 나라의 언어 같다. 그 정도로 이질감이 짙다. 인터넷 방송의 후원 메시지를 대신 읽어주는 음성을 닮았다.
"당신,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알고 있잖아."
저도 모르게 말투가 뾰족해졌다. 내뱉고 나서야 도화는 조금 후회했지만, 도진은 기분이 상한 내색이 전혀 없다.
"기밀유지조항 같은 게 있지 않아요?"
"기밀 유지는 의뢰에나 하는 거고. 이건 의뢰라기보단 그냥 심부름이지."
도진은 또 한 번 웃는다. 이쪽을 보고 웃는다.
"그래도, 도화 씨는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도화는 그제야 가장 중요한 것을 묻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굴... 만나러 가는 거예요?"
사이드미러를 흘긴다. 백미러를 흘긴다. 계기판의 속도계를 확인한다. 기름은 아직 충분한 양이 남았다.
"친구."
"당신 면허 없는 걸 모르는 친군가?"
"알고 있을 걸요?"
"센스가 없네. 그럼 그쪽이 이쪽으로 왔어야지."
"그게, 안 되는 사람이라서."
"그 사람도 면허가 없나?"
"아뇨, 있어요."
비어나오려는 한숨을 애써 참는다.
말이 영 앞뒤가 맞질 않는다. 사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뱉고 있는 게 아닐까. 친구를 만난다는 것도, 그 친구가 면허가 있다는 것도, 전부 거짓말인게 아닐까.
전부 꾸며낸 말이라고 한다면, 거짓말이라고 한다면, 이 사람은 왜 가산동에 가고 싶어하는 걸까.
서점 주인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
서도진은, 그런 상태가 되면 상당히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동네를 잘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 충동적으로 타지에 갈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도진은 이제 이쪽을 바라보지 않고 있다.
조용하다.
말수가, 줄었다.
평소의 그처럼.
조수석의 창가에 몸을 살짝 기대어서, 앞유리에 지나쳐가는 풍경을 관망하다가.
앙다물었던 입술을 천천히 떼어낸다.
"약속 끝나고, 점심...... 사 드린다고 했죠."
스키드 마크처럼 길게 끌리는 말끝.
"계속 옆에 있어주실 수 있어요?"
도진은 힘없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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