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성

K=Potassium by KP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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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맥의 허리를 따라 난 포장도로를 굽이굽이 타고 오른다. 전방의 커브길을 주의하라는 네비게이션의 안내음이 연속해서 땡땡 울렸다. 조수석의 남자는 멀미라도 나는지 얼굴이 파리하다. 시트를 더럽히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희태는 무표정하게 핸들을 돌렸다. 안전벨트로 고정된 남자의 얄팍한 몸이 휘청였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모습을 곁눈질한다.

"어우, 여기가 이렇게 높았나?"

남자가 괴로운 목소리를 짜냈다.

"우리 천문대보다는 낮습니다."

희태가 굴곡 없는 말투로 응답했다.

"체감 상 두 배는 높은 거 같은데...... 우욱."

"이쪽은 오래된 도로라 터널이 얼마 없습니다."

즉, 직선 경로로 산을 뚫고 지나갈 수 없다. 등고선 같은 모양의 우회로를 돌고 돌아 간신히 산 하나를 넘으면 그 다음 산이 운전자를 기다리고 서 있다. 강원도를 가로지르는 태백산맥의 도로란 보통 이런 식이다.

아니, 도심으로 이동하려면 잘 닦인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방법도 없지는 않다. 실제로 두 사람 역시 강릉IC를 통과했던 이십여 분 전까지는 다차선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중간에 국도로 빠져 산길을 달리면서 대단한 멀미를 유발하게 되었지만.

손님을 태운 희태의 평범한 세단은 산중턱의 어느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나도 천문대 관장이나 하면서 유유자적하게 살고 싶다~"

"이쪽에 새 천문대가 세워지면 지원해보십시오."

"근데 막상 하라면 말이죠, 주변에 아무 것도 없어서 심심할 거 같아. 도쿄에 사는 게 훨씬 재밌을걸."

"그러면 도쿄에서 유유자적하게 사십시오."

"희태 씨도 도쿄에 있던 적이 있었죠?"

"......몇 년 전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왜 천문대에서 일하고 있어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아하하, 역시 늙었구나."

몇 년 전, 일본의 한 천문대에서 집단 살인사건이 있었다. 당시 모종의 이벤트를 위해 천문대에 모여있었던 학자들과 참관객들 대다수가 참변을 맞았다. 천문대가 불타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경찰이 도착했을 때 생존해있었던 이들은 고작 네 명. 경찰은 이들 안에 살인사건의 범인이 있을 것이라 예측했으나 전소된 천문대에서 증거를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용의자 네 명은 증거불충분으로 시시하게 풀려났다.

그리고 희태는 그 중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던 남자와 친분이 있었다.

희태는 벼랑 끝에 매달려 있었던 그의 손가락을 잘근잘근 짓밟아 연옥으로 빠뜨렸다.

천문대에서 사람을 죽인 건 분명 연옥에 떨어진 그의 소행일 것이다.

희태는 뒤늦게 자신의 과오를 깨달았다. 줄곧 평온하던 정신에 거대한 파문이 일었다. 자신의 이기적인 선택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래서, 세계를 돌아다니며 연구 활동을 이어가던 천재 방랑 학자 양희태는, 어느 순간 첩첩산중의 천문대에 틀어박혀 나름의 참회를 하기 시작했다.

희태에게 그 자신의 과오를 깨닫게 한 인물이, 지금 조수석에 앉아있는 천체물리학자, 강재진. 한국인이지만 일본의 모 기업 연구팀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재진은 올해로 마흔 여섯. 희태보다 네 살이 어리다. 이 정도 나이가 되면 '어리다'라는 표현보다는 '젊다'라는 표현을 쓰는 게 이치에 맞지만, 재진에게는 전자의 표현을 써도 크게 무리가 없어 보였다.

전체적으로 밝고 쾌활한 남자다. 말수도 상당하다. 천재는 과묵하다는 편견과 다르게, 모두가 인정하는 비상한 두뇌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가 지금 몸담고 있는 회사를 뛰쳐나온다면 분명 세계 곳곳의 연구소에서 러브콜이 들어오리라.

좋아하는 화제가 나오면 안 그래도 많은 말수가 더욱 많아진다. 지금까지의 데이터베이스를 종합해 봤을 때, 재진이 좋아하는 화제란 천체과학자의 그것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예외는 '총기' 정도일까. 그는 총기에 제법 해박한 듯 보였다. 슬쩍 캐물으니 (양희태란 인간은 교류에 서투르니 아마 '슬쩍'의 수준은 아니었으리라) 대학 시절 사격 동아리에 속해있었단다.

"왜, 사격을?"

대학교 동아리라면 좀 더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스포츠 동아리가 많을 텐데, 왜 굳이 움직임이 적은 사격을 골랐냐는 물음이다. 활달한 그의 성격과는 영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납득이 가는 것이, 그는 희태보다 근육이 없었다. 사마귀처럼 마르고 긴 몸은 작은 강풍에도 쉬이 날아갈 듯했다. 나이보다 조금 앳되어보이는 얼굴 역시 평생 공부만 하고 산 인종 특유의 희멀건 색채를 띠고 있다.

어쩌면 타고난 건강이 좋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간단한 예상을 찰나에 해냈다. 재진의 답변은 그 직후에 날아왔다.

"운동을 재밌어하긴 하는데, 공 갖고 뛰어놀기엔 폐가 허약해서~"

"총도 제법 무거운 물건 아닙니까?"

"으음, 공을 갖고 골대까지 달려야하는 축구나 농구랑 다르게, 총은 빨리 쏘고 거두면 그만이거든요."

희태는 사격을 해 본 적이 없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착실하게 학문의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법적 복무 기간이 끝나 있었다. 담당 교수의 권유로 뭔지 모를 서류를 몇 개 써냈던 기억만 두뇌 한구석에 파편화되어 남아있다. 아마 그 서류더미들이 군대로 향하는 길을 블록했으리라.

그렇다면 재진 역시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걸어왔을 것이었다. 결론이 명백했으므로 희태는 구태여 이 화제를 입에 담지 않았다.

국도에서 빠져 산 속으로 향하는 오솔길에 올라탔다. 포장이 된 듯 안 된 듯 상태가 좋지 않은 도로를 기어오른다. 재진은 이제 입을 꾹 다물었다. 슬슬 한계인지도 모른다. 내려올 때는 그에게 운전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하는 희태다.

십 분이 지나 세단이 목적지에 정차했다.

재진은 차가 서자마자 급하게 조수석에서 뛰어내렸다. 희태는 겉옷을 매만지며 흙먼지 이는 땅에 두 발을 딛는다.

"여기가 맞습니까?"

재진은 어느새 입술로 담배 한 개비를 짓이기고 있다. 괴로운 얼굴로 부싯돌 라이터를 몇 번 틱틱이다 겨우 불을 붙인다. 비흡연자인 희태는 그에게서 세 걸음 물러난다.

흡연자는 멋들어지게 연기를 뿜어내고 나서야 질문에 답했다.

"으, 울타리 보니까 맞는 거 같은데......"

두 사람은 눈앞의 공터로 시선을 돌렸다.

그야말로 공터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었다. 삼림으로 둘러싸인 숲속에 탄탄하게 다져진 흙바닥이 무의미하게 펼쳐져 있다. 군데군데 이름 모를 새파란 잡초가 뿌리를 내리고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흙의 지분이 훨씬 우세하다. 공지를 띄엄띄엄 둘러싼 목재 울타리만이, 과거 이곳에 무언가 존재했음을 은근하게 알린다. 본래 하얀색이었을 울타리는 세월의 풍파를 맞아 변색되고 무너졌다.

보편적인 단독주택 부지의 형상에서 주택만이 쏙 빠져버린 듯한, 어딘가 허망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땅이다.

재진은 연기를 흩뜨리며 공터 안쪽으로 걸어들어간다. 듬성듬성한 울타리가 그 부근에는 전무하다. 문이 달려있던 곳이 아닐까. 희태는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울타리는 그의 명치까지 왔다. 120cm가 좀 덜 될까.

"음, 맞아. 맞는 거 같아. 이쪽에 산장이 있었고, 이 앞은 앞뜰."

그렇게 양팔을 쭉 벌리며 설명해봤자 내가 볼 수 있는 건 없다. 희태는 떠오른 생각을 의식적으로 목구멍에서 원천차단한다.

"예정된 게 몇 층짜리 천문대라고요?"

입술에서 담배를 떼어내며 재진이 물었다. 벌써 절반 이상이 타들어갔다.

"삼 층."

"그럼 이 정도 면적이면 충분하지 않으려나? 상주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도 않을 거고. 주차 공간도 얼추...... 어디 보자, 희태 씨 차가 하나, 둘, 셋, 넷...... 많이 들어가네!"

"예, 괜찮겠군요."

재진은 빙글빙글 웃으며 새 담배를 꺼내들었다. 꽁초는 빈 담뱃갑에 넣어놓는 듯하다.

그가 불을 붙이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눈에 띄는 건 없었다.

뻐꾹대는 숲새 소리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일곱 번을 울리다가 사라졌다.

"아는 사람 땅이라고 하셨죠."

그리 말하며 희태는 외투 앞섶을 여민다. 쌀쌀하다. 가을의 눈을 지나고 있는 날씨다. 아직 낙엽을 떨어뜨리지 않은 나무들이 하루종일 응달을 만드는 산 속이니 평균 기온은 더욱 낮을 수밖에 없다.

재진은 입을 열고 풍성한 담배 연기를 내뱉는다. 엑토플라즘이 빠져나가는 모습과 비슷하다. 짙은 눈썹을 찡그리며 눈웃음을 짓는 옆얼굴을, 희태는 바라본다.

"아는 형이 산장 사장님이었어요. 이런 외진 곳에 있어도 성수기에는 만실이었댔나. 여행 명소 강릉이니까 그럴 만도 하지?"

"그런데, 어쩌다가 건물을."

헐었냐는 뒷말은 생략했다. 재진은 시선을 희태에게 주지 않은 채 눈꺼풀을 느리게 한 번 깜빡인다.

"하하, 오면서 큰 호텔 못 봤어요? 여기랑 가까운데 그쪽이 훨씬 접근성이 좋잖아. 뒤늦게 생긴 그 호텔에 손님을 죄다 뺏겼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렇습니까?"

"그렇게, 재정난으로."

두 손을 펼치곤 어깨를 으쓱한다. 희태는 별 쓸모가 없는 바디랭귀지의 의미를 무의식 범주에서 산술하여 본다.

"사업을 철수한 지 얼마나 됐죠?"

"으음, 건물을 헌 게 십이 년 전?"

희태는 그의 목소리의 파장이 미묘하게 달라졌음을 인지한다. 어디에서 기인한 변화일지 생각한다. 동시에 물음을 입 밖으로 꺼낸다.

"그 동안 이 땅은 팔리지 않은 겁니까?"

"여기에 달리 지을 건물이 없으니깐요. 접근성이 나쁘니 식당을 차릴 수도 없고, 잠자리만 제공하는 숙박업소를 짓자니 근처에 크고 좋은 호텔이 있고. 음, 굳이 건물을 올린다면 단기 거주용 별장이 어울리려나. 십이 년 동안 컨택은 전혀 없었지만......"

희태는 미세하게 움직이는 재진의 시선을 관찰한다.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담배 연기의 변화를 좇는다.

"산장에서 사고가 있었습니까?"

재진은 정곡을 찔린 얼굴로 입을 앙다물었다.

몇 초의 침묵. 그 사이를 메우는 흐릿한 유독성 기체.

재진은 전부 타들어간 두 개비 째의 담배를 빈 담뱃갑에 넣고,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내가 거짓말을 그렇게 못하나?"

"네."

"으음~"

짙은 눈썹이 팔자 모양으로 휘어졌다. 고개를 두어 번 흔드는가 싶더니, 또다시 한숨을 푹 내쉰다. 일련의 행동이 희태에게는 연극적으로 비춰졌다.

"이 땅 팔아주기로 약속했는데......"

"천문대를 세우는 데 치명적인 사고입니까?"

"아니이, 그런 건 아니죠. 지반이 약하다던가, 산사태 위험이 다분하다던가, 뭐 그런 건 아닌데."

"그런데 왜 숨기지?"

"사람의 마음에 치명적이랄까......"

희태는 자연스럽게 떠오른 가능성을 계측한다. 그 가능성이 미래의 천문대 직원들에게 끼칠 영향을 헤아린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휘둘리지 않을 괴담을 상상해낸다. 하지만 인간이란 때때로 부조리하고 감정적인 법이다.

"산장에서 인명사고가 있었습니까?"

"인명사고라면 인명사고죠. 사람이 죽었으니까......"

"사건입니까?"

"흐음, 이제 숨겨봐야 의미가 없겠어."

"살인사건?"

"네, 살인사건."

"피해자는?"

"음, 대학생들."

"들?"

"세 명이 죽었던가......"

"세 명?"

"세 명."

"연쇄 살인?"

"한정된 시간, 한정된 장소에서 세 명이 연달아 죽었으니 연쇄적인 살인이긴 하죠."

더 이상 감춰봤자 허사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재진은 시무룩한 얼굴로 이 땅에 얽힌 진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강원도 지자체에서 새로운 천문대를 건설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국내 연구원 사이에 퍼졌다. 일부 천문학자들의 친목용 웹사이트에서만 몇 번 거론되던 소문은 이윽고 다양한 공문으로 사실시 되었다.

연구시설에 가까운 연구용 천문대의 입지 조건은 제법 까다로운 편이다. 하지만 이번에 건설되는 천문대는 외부인의 관광을 허용하는 관광용 천문대로, 연구용 천문대보다는 그 입지 조건이 다소 느슨하다. 

국내 천문학자들은 인터넷 상에서 어느 부지가 건설에 알맞을지에 대해 비공식적인 토론을 벌였다. 수많은 스레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세워졌다. 희태가 근무하고 있는 별지기 천문대의 연구원들 역시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강원도라는 이 넓은 산지 어디에 천문대가 발을 비집고 들어올까. 일단 동해시는 아닐 것이었다. 별지기 천문대가 세워진 곳 외엔 적합한 부지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던 도중 한 네티즌이 토론에 끼어들었다. 닉네임은 프로키온, 지구에서 열세 번째로 먼 별.

그는 자신의 지인이 강릉 산골짜기에 유휴 부지를 갖고 있다는 말을 꺼냈다. 원래는 그곳에 산장을 지어 숙박업을 하고 있었는데, 재정 문제로 십여 년 전에 사업을 접었단다. 물론 자신도 그 산장에 가 보았었고, 지금 떠올려보니 지반도 튼튼하고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 게 천문대를 짓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라고.

토론회의 참가자들은 흥미를 보였다. 건물이 세워졌던 땅이라면 기본적인 지반 정리는 되었을 것이고,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 산골짜기라면 별을 보기에 무척 적합한 위치이기 때문이다. 

프로키온을 의심하는 의견 역시 있었다. 그런 외진 곳에 산장을 세우면 손님이 올 리 없지 않겠느냐는 반론이었다. 성격 안 좋은 연구자의 단순 어그로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먹이를 주지 말자는 의견은 새 천문대에 잔뜩 기대를 품은 타 연구자들의 환호에 묻혀 사라졌다.

프로키온은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듯했다. 조만간 한국에 갈 짬이 날 것 같으니 그 때 강릉에 가서 증거 사진을 찍어 오겠다며, 꽤나 당당한 어조로 스레드를 남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키온, 강재진은, 희태를 찾아왔다.

그것이 또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니었으므로, 희태는 우울한 눈빛을 슬쩍 내리깔기나 했다.

하지만 강릉의 산골짜기에 이르른 지금 눈을 내리깔고 있는 건, 재진.

희태는 가만히 그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기로 했다.

남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서 나쁠 건 없다.

그것은, 그가 순순히 받아들인 얼마 안 되는 교훈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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