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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osed

K=Potassium by KP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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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은 여태 걸어왔던 길을 돌아가고 있었다.

지금은 모든 사람이 밤이라고 인식할 만한 시간.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이 도시는 기이할 정도로 조용하다. 차 하나 나다니지 않는 도로를 비추는 가로등, 홀로 점멸하는 교통 신호, 끄는 걸 잊은 네온사인만이 외로이 거리를 걷는 시민을 주시한다.

이런 시간이 될 때까지 어디에서 무얼 했냐고 묻는다면, 도진은 평소의 라이프 루틴을 착실하게 따랐다는 대답밖에 하지 못한다. 거주하고 있는 한 동짜리 아파트에서 십 여 분을 걸어 근처의 서점에 방문했던 것이다. 출근 시간도 퇴근 시간도 불규칙하지만, 적어도 일주일에 다섯 번은 서점 주인의 얼굴을 본다. 그것이 퍼지한 그의 일상에서의 유일한 루틴이었다.

아무튼 오늘은 조금 늦게까지 서점에 있었다. 평일이니 손님은 주말의 절반도 오지 않았다. 빈 백에 앉아 흥미있는 소설을 대충 훑다가. 오늘은 글을 쓰지 않으시냐는 질문을 받다가. 어쩐지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아서 전개가 나아가지 않는다는 변명을 늘어놓다가. 끝내 폐점 후 셔터를 내리는 것까지 도와주었다.

"변호사가 바쁘긴 한가봐요."

오늘은 필규의 아반떼가 서점 앞에 서지 않았다. 아무래도 야근인 모양이다. 그는 퇴근할 때마다 서점의 내부를 체크한다. 도진이 보이면 냉큼 조수석에 태워서 같이 귀가한다. 이도 하나의 루틴으로 볼 수 있을 테다.

"걔 직장이 어디에 있댔죠?"

"교대?"

기억력에 자신이 없었으므로, 도진은 말꼬리를 힘없이 떨군다.

"아, 하긴 그쪽에 사무실들이 많긴 하지."

현은 납득했다는 얼굴로 끄덕였다.

"그래?"

"엄청 복잡해요. 차라리 그쪽에 집을 구하는 게 나을......"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향하던 현은 입을 다문다. 가게 바로 위의 가정집이 그의 거주지다.

"......뭐, 알아서 하겠죠."

출근이랄 것을 거의 해 보지 않은 도진으로서는 체감되지 않는 묘사였지만, 그 애는 그 애니까, 어련히 잘 할 거라고...... 낙관적인 감상을 갖고야 말았다.

두 사람은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현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도진은 발을 움직였다.

십 분이 좀 안 되어 아파트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둠 사이에서 환히 빛나는 네모난 조명 두 개. 백도화와 강성훈의 작품이다. 두 사람은 집에 있는 듯했다. 물론, 도진과 필규가 거주하는 층의 창문에는 어둠만이 가득하다. 그것은 서천의 소유인 빈 집도 동일했다.

천천히 전진하다가, 도진은 1층 현관 주변에 누군가 앉아 있음을 깨닫는다.

무심코 전봇대 뒤로 몸을 숨겼다.

도화 씨일까, 아니면, 그 사람일까, 잠시 멈추어 서서 상대방을 살폈다.

현관 계단 근처에 쪼그려 앉아선 담배를 물고 있다. 휴대폰을 들고 무언가를 보고 있다. 목을 조금 덮는 정도의 검은 머리칼은 단정한 축에 속한다. 하필이면 그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저런 헤어스타일의 이웃은 도화 씨밖에 없으니까. 도진은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여 아파트로 향하려고 했다.

순간 그가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도진은 움직이던 다리를 멈춘다. 드러난 맨얼굴은, 생면부지의 남자였다.

'......누구지?'

눈동자를 굴려 아파트 주변을 살폈다. 입주자는 아닌 게 확실하니, 손님이라면 어딘가 자가용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으므로.

그리고, 도진은 이상하게 눈에 익은 차를 발견했다.

화단이라고 하기 미안할 정도의 사이즈의 덤불 앞에 그 차는 있었다.

부외자의 제네시스가, 오늘도 서 있었다.

"그래서, 다시 돌아오셨다고요?"

칫솔을 입에 물고 있던 현은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웅얼댔다.

"뭔가, 그 앞으로 지나가기 어려운 분위기라......"

"흐음."

화장실 안으로 사라지더니 입을 헹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 분 후, 현은 한층 뽀송한 얼굴로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평소엔 저녁까지 안 있지 않았어요?"

"해가 지기 전에는 돌아갔던 것 같은데."

입주자가 다섯 명 밖에 없는 아파트의 손님은 아주 귀하다. 도진은 거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아파트 주변을 벗어나지 않으므로, 손님이 언제 들어오고 나가는지 상당히 잘 파악하고 있다. 

현도 마찬가지다. 서점을 운영하느라 늘상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그는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차를 끌고 도진의 아파트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서점 앞 도로를 반드시 경유해야만 한다. 따라서, 현은 이제 이 주변 택배 차량의 번호까지 외우고 있는 것이다.

"도화 씨 손님이랬죠."

"응. 같이 담배 피우는 걸 봤지......"

"오늘은 따로 피우고 있네?"

"심각한 분위기였다니까. 역시 뭔가, 일이...... 있나?"

"흐음."

현은 창가로 다가갔다. 서점 앞 도로가 내려다보이는 위치다. 도진도 쫄래쫄래 그 뒤를 따랐다.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어 안전하진 않은 도로지만, 사람도 차도 많이 지나다니지 않으니 외려 안전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개미새끼 한 마리 기어다니지 않는다.

"오늘 백도화 휴방인데."

"휴방?"

"인터넷 방송 쉬는 날."

도진은 그의 동영상을 몇 개 보았지만, 게임에 큰 흥미가 없어 재미는 붙이지 못했다.

"역시 수상해......"

부르릉,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파트 쪽이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본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에서 뻗어나오는 두 줄기 광선.

"......제네시스다."

현이 중얼댔다.

"지금...... 돌아가나 본데?"

"쫓아갈까요?"

"어?"

"쫓아가죠."

"뭐?"

단숨에 명령조로 바뀐 어미는 신기하게도 박력이 있다. 크게 뜨인 두 눈은 제네시스의 백라이트를 쫓는다.

"궁금하시잖아요, 작가님도."

"그, 그렇긴 한데."

현은 바람막이를 한 손에 챙겨들었다. 확실히 아직 밤 기온은 따스하지 않다. 조급한 걸음걸이로 현관까지 향하더니, 운동화에 맨발을 쑤셔넣는다.

"따라오세요."

제네시스의 배기음이 점차 멀어졌다. 현은 멍하니 선 도진의 손목을 낚아채듯이 잡아끌었다.

"차 번호만 알면 되는 거 아냐?"

"왜요?"

"그...... ......조사, 흥신소, 같은 거 있잖아."

"조사 결과를 어느 세월에 기다려요."

서울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뻥 뚫려있었다.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이쪽에서 서울로 나가는 차는 얼마 없을 터였다. 현은 전방의 제네시스를 주시하며 악셀을 밟는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로.

"......왜 그렇게 도화 씨한테 집착해."

"수상하니까요."

"좋은 사람이라니까......"

도진은 말끝을 흐렸다. 바로 옆자리의 그를 설득할 자신도 없고, 애당초 이웃사촌이 수상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의식도 없었기에.

도화는 적법하지 않은 조사일을 한다. 보험 조사원 따위의, 대충 준법의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조사원과는 결이 다른 모양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제 입으로 해 주었다. 술은 사람의 입을 가볍게 한다. 도진은 그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도진의 전자담배를 실수로 떨어뜨려 부순 사람 역시 도화였다. 그는 그 일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도진이 원하는 조사를 한 가지 해 주었다. 사실 그 전까지는 반신반의했다. 술에 취해 허풍을 늘어놨던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명확한 조사 결과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말았고. 그의 정체는 명명백백해졌다......

하지만 도진은 그의 부업을 남에게 이야기 하지 않았다. 애초에 불법적인 일이니 떠벌리면 곤란할 테고. 또, 그는 어떤 풀의 사람들에게 대강 인지도가 있어서,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한다는 정보가 퍼져나가면 좋지 않은 시선을 받고 말 테니까.

그래서, 이제껏 제법 친한 지인인 현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이런 한밤중의 드라이브이지만......

전방의 제네시스가 잠실 쪽으로 빠졌다. 현의 애마는 작게 커브를 틀어 같은 방향으로 빠진다.

"친구라기엔 친하지 않아 보이고, 조사원이라기엔 허술하네요."

"허술해?"

"대놓고 따라다니는데 별 반응이 없잖아요."

"고속도로에선 피할 방법이 없지 않을까......"

"아니, 그렇다 쳐도 너무 반응이 없어. 정말 앞만 보고 가는 느낌이에요."

터널을 지나 도심에 들어섰지만, 제네시스는 여전히 조금 급박한 속도로 안전하게 주행할 뿐이다. 꿋꿋하게 뒤를 지키고 있는 두 사람의 차에는 눈길 하나 주지 않고.

"뭔가 급한 일이 있는 거 아닐까?"

"이쪽으로 가면 아파트 단지만 나올 텐데요."

현은 목적지가 설정되지 않은 네비게이션을 곁눈질하며 대답한다. 붉은색의 자가용 토큰이 미로 같은 길을 이리저리 헤매고 있다.

"그럼, 그냥...... 집에 가는 건 아니고?"

"흐음. 그건 그것대로 수확이죠."

무서운 소리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한다. 도진은 그의 옆얼굴을 흘긋 살피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얼마 있지 않아 제네시스는 한 아파트 단지로 미끄러지듯 들어가버렸다. 정문에 경비 초소와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어 생판 외부인이 들어가긴 어려워 보인다. 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아파트 이름을 쳐다보다가, 핸들을 훅 꺾어 도심으로 차머리를 돌렸다.

열 한 시를 조금 넘겼다. 도진은 멍하니, 통행량이 적은 서울의 밤길을 눈에 담는다.

"윤필규, 퇴근했을까요?"

"응? 전화해 볼까......"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번호부를 뒤적인다. 그의 번호는 즐겨찾기가 되어 있다. 손쉽게 전화를 거니, 수신음이 두 번도 가지 않아 통화가 연결된다. 자연스럽게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작가님?"

"퇴근했어?"

"이제 막. 차에 시동 걸던 중이에요."

도진은 현을 바라본다. 사거리의 신호에 걸려 정차 중이다. 현은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가 말을 꺼낸다.

"우리 잠실이다."

"어? 여보세요?"

당황스러운 필규의 목소리.

"한강 공원 쪽으로 갈 거야. 그쪽으로 와."

"한강 공원?"

"편의점 앞에 있을게."

"잠깐, 이 시간에 왜 너랑 작가님이......"

현은 팔을 뻗어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도진은 살짝 놀란 얼굴로, 두 눈을 당혹스럽게 껌뻑일 뿐.

"한강 가 보신 적 있으세요?"

"어? 어어...... 글쎄......"

"저도 오랜만이에요."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현의 세단은 시원하게 도로를 내달렸다.

편의점 앞의 거대한 계단 모양 구조물에는 이런 시간에도 사람이 아주 없지 않았다. 도진은 그 점이 조금 신기하다고 생각하다가, 편의점에서 나온 현에게서 병 음료를 하나 받아들었다.

"앗, 뜨거...... 꿀물이네?"

현은 캔커피의 탭을 따고 있다. 저것도 따뜻한 음료수일까, 싶어 빤히 보고 있으니, 뚜껑이 열린 캔을 대뜸 도진의 뺨에 가져다 댄다. 기분 좋은 정도로 따뜻하다.

"커피 못 드시잖아요."

"그건 그래."

꿀물의 뚜껑을 돌려 열었다. 뻥, 하는 경쾌한 소리가 났다. 한 모금 입에 머금으니 또 기분 좋은 정도로 달달하다.

검푸른 강의 수면에 비친 애매한 모양의 달을 바라보며, 두 사람은 잠시 말 없이 음료를 홀짝인다. 계단의 가장 윗 단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있는 그들이다.

"의심은 풀렸어?"

"풀렸겠어요?"

"으응......"

다시 한번 침묵.

"그래도 재미있으셨죠?"

"재미?"

"싫어하시지 않으시잖아요, 이런 거."

도진은 느리게 고개를 모로 꼬아보다가, 뾰족한 대답이 나오지 않아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음, 뭐...... 저 사람의 진짜 정체는 중요하지 않은 거지, 너는."

현은 대답 대신 캔을 기울인다.

"저 사람이 뭐하는 사람인지 밝히고만 싶은 거야. 그렇지."

"수상한 건 못 넘기는 성격이라서요."

"알고 있어......"

또 다시 침묵.

"도화 씨가 나쁜 사람이면 어떻게 할 생각인데?"

"나쁜 사람의 기준은?"

"네가 그랬잖아. 그런 직업을 가졌다면, 누군가에게는 분명 나쁜 사람일 거라고."

그런 직업은, 남의 뒷일을 캐는 직업을 뜻한다. 현은 도화와 제네시스남을 그런 쪽의 종사자라고 가정하고 있는 듯했다.

실상, 틀린 얘기는 아니다. 도화 씨는 실제로 조사원이니까. 

도진은 어쩐지 니코틴이 절실하다는 생각을 한다. 가디건의 주머니를 뒤져 전자담배의 모서리를 만지작댄다.

"그러면."

현은 캔을 찌그러뜨렸다. 벌써 다 마신 건가.

"늘상 주시해야겠죠."

"왜?"

"왜냐니......"

현은 한번 피식, 하고 웃었다.

뒷말을 이으려 입꼬리를 움찔대던 차에, 필규가 저 뒤에서 두 사람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돌아갈 때, 도진은 필규의 차를 타게 되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치다. 논리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그 편이 아주 알맞다.

"먼저 가. 주유소 찾아서 기름 좀 넣고 갈게."

이미 차에 탑승한 두 사람에게 그런 말을 남기곤, 현은 제 차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필규는 도진이 마시다 남긴 꿀물을 몇 모금 홀짝인다.

"미행을 하셨다고요."

조금 어이없다는 투의 목소리다. 도진은 괜히 몸을 움츠려본다. 필규는 꿀물의 뚜껑을 닫아 컵홀더에 끼워넣는다.

"우리 아파트에, 그렇게 주기적으로 오는 사람이 있었어요?"

"응. 너는 항상 출근해서 모르겠지만...... 도화 씨 손님 같았어."

"으음, 무슨 도둑도 아니고, 목적이 뚜렷한 방문객이라면 이런 짓까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러게...... 많이 궁금했나봐."

도화의 부업은 필규 역시 알고 있다. 하지만 의외로 필규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 의아한 도진이 신기하지 않냐고 물었던 적 역시 있었다. 필규는 그에 이렇게 답했다.

"저희 로펌에도 비슷한 일을 하시는 분이 계셔요. 보험 조사원 같은 거 아닌가요?"

무언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계속 착각하게 놔 두었다. 그 편이 도화에게도 필규에게도 좋을 테니까.

현의 차는 움직일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근처 주유소의 위치를 찾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필규는 아반떼의 시동을 걸었다.

"여보세요."

"바빠?"

"아뇹."

"하긴, 네가 바쁠 리 없지."

"항상 느끼는 거지만 넌 말본새가 아주 나빠."

"변호사가 퇴근했는데 비서가 바쁘겠냐."

전파 너머의 동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말의 의미를 파악하고 있는 거겠지. 현은 빠르게 간극을 파고들었다.

"차 번호 좀 조회해 줘."

"갑자기 웬 차."

"아파트 주차장에 기어들어가서 하나하나 찾아 볼까 했는데, 그러면 내일 가게 문을 못 열 것 같더라고. 지정 주차라는 보장도 없고...... 아, 뭔 동이 이렇게 많냐."

"뭐, 뭔 소리 하는 거냐, 너?"

"아무튼 카톡으로 차 번호 찍어 보낼 테니까. 빨리 조회해 줘."

"아니, 야! 끊지 마! 나중에 밥 사,"

현은 무자비하게 전화를 끊었다.

네비게이션의 검색창에 아파트 단지의 이름을 쳐 넣었다. 

그곳을 목적지로 설정하곤, 악셀을 밟아 한강 공원의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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